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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어떤 역할을 맡든 완벽하고 치열하게 파고드는, 그래서 그 빛나는 성취의 왕관이 얼마나 매혹적인 것인지 잘 알고 있는 배우에게도 종종 그가 감당해야 할 왕관의 무게는 버겁게 느껴지는 편이다. 지난 2014년 상반기까지 원나라의 황후가 된 고려 여인, 기황후를 연기했던 하지원의 심정이 바로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근육의 움직임을 허투루 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연습이 수반되어야 했던 작품인 <기황후>는 그녀에게 연기 대상을 안겨주었지만 몸과 마음의 피로 또한 함께 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지원에게 찾아온 <허삼관>은 계산하지 않는 연기와 유쾌한 동료들, 상상의 즐거움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청량제 같은 작품이었다.
-오늘 촬영을 지켜보니 하정우와 눈만 마주쳐도 웃더라.
=진짜 웃긴다. 내가 웃음이 많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하)정우씨의 웃음코드와도 잘 맞는 것 같다. 현장에서도 연기할 때를
[하지원] 늘어진 티셔츠 입고 맘껏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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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철저한 계획자다. <허삼관>의 감독 겸 주인공 허삼관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그는 무서울 정도로 시나리오에 파고들었고 프리 프로덕션에 온 힘을 쏟았다. 감독인 자신이 작품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만 배우로서 연기에 집중하고 드라마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곧 희극적 인물 허삼관이 진한 부성애를 깨달아가는 대장정 <허삼관>을 만든 하정우의 제일원칙이었다.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 이후 1년을 조금 넘기고 곧바로 두 번째 연출작을 내놨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멀티 플레이어형 배우라는 건 알았지만 감독 하정우와 이렇게 빨리 재회할 줄이야.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후 제작사로부터 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가슴이 막 뛰더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롤러코스터>를 끝내고 상업영화를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고 <허삼관>이라는 산을 넘으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연을
[하정우] 엉덩이 힘으로 끝까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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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크리스마스이브. <허삼관>의 감독 하정우는 하지원에게 <허삼관>에서 허삼관, 허옥란으로 부부의 연을 맺자고 프러포즈했고 그날 비로소 결실을 맺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201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사람은 <허삼관>을 완성해 스튜디오를 찾았다. 감독이자 주연배우로 <허삼관>을 책임진 하정우에게서는 위화 작가의 <허삼관 매혈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온 과정을 세세하게 전해들었다. 시대극 속에서 처음으로 엄마 역을 맡으며 배우로서 변화를 시도한 하지원에게서는 생생하고 유쾌했던 현장의 추억을 들을 수 있었다. 동갑내기 두 배우가 들려줄 허삼관네 이야기 <허삼관>(1월15일 개봉)을 미리 만나봤다.
[하정우, 하지원] 許許 河河 好好(허허 하하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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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는 ‘워킹걸’ 아니, ‘워커홀릭’이다. 연기 하나 집중하기도 힘들 텐데, 얼마 전 앨범 ≪귀요미송2≫를 내며 가수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1년 동안 준비했던 책 <클라라의 시크릿>도 냈다. 그뿐이 아니다. 최근엔 레깅스 사업을 시작해 직접 디자인 작업도 떠맡고 있다.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은 <워킹걸>(1월8일 개봉)에서 그가 연기한 난희와 똑 닮았다. 섹스숍을 운영하며 ‘엔조이’의 즐거움을 전파하지만, 경영난 때문에 마케팅의 귀재 보희(조여정)와 동업하게 되는 그다. 인생을 바꾼 프로야구 시구 이후,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클라라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영화는 봤나. 어땠나.
=감독님께서 난희를 잘 만들어주신 것 같다. 연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조여정 언니와의 호흡도 괜찮게 나왔고. 무엇보다 영화가 재미있었다. 기자님은 어땠나?
-야할 줄 알았는데 로맨틱 코미디더라.
=아하하. 코드가
[클라라] <워킹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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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5 <언브로큰>
2014 <타워블록> <300: 제국의 부활>
2011 <유나이티드>
2009 <디스 이즈 잉글랜드>
2007 <이든 레이크>
드라마
2009 <스킨스>
“나는 쿡이다.” 논리도 설명도 필요 없이 이 말 한마디면 상황이 정리된다. 영국 드라마 <스킨스>는 할리우드 라이징 스타의 보고다. <스킨스> 시즌1, 2에서 화제의 인물이 니콜라스 홀트였다면 시즌3부터 최근의 시즌7까지는 쿡 역을 맡은 잭 오코넬의 세상이었다. 반항기, 장난기, 불량스러움으로 무장한 쿡은 전형적인 골칫거리 문제아다. 잭 오코넬은 누가 맡아도 미움받기 십상인 이 캐릭터에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했다. 잇단 사건과 사고에도 쿡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건 잭 오코넬의 깊은 눈빛에서 묻어나오는 한줌의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항상 얻어터진 얼굴로 세상에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어도 어딘
[who are you] 잭 오코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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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4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2013 <안녕, 투이>
“엄마! 쪽팔려~.” 대선배들 사이에서 맛깔나는 조연의 역할을 해낸 건 아홉살밖에 안 된 꼬마 이지원이었다. 관객은 빵빵 터졌지만 정작 본인은 “목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목소리를 최대한 높고 가늘게 내며) 엥옝옝옝, 이렇게 나왔잖아요”라며 투덜댄다. 연기 비법을 묻자 최소한의 대사암기 외에는 연습을 거의 안 한다는 의외의 대답을 했는데 “연습을 많이 하면 굳어버리잖아요”라고 곧바로 똑 부러진 이유를 댄다. 예닐곱살 무렵 우연히 출연한 CF에서 콘티 작업까지 참여했다는 똑순이 배우는 <안녕, 투이>에서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니면서 “소금!”이라는 단 두 마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했던 과묵한 현정을 거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 그보다 수다스러우나 역시 촌철살인의 대사를 내뱉는 채랑이 됐다. 극중 삼총사인 지소(이레), 지석(홍은택)과는 카메라 뒤편에서
[who are you]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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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정이 ‘애엄마’가 됐다. 딸 하루의 엄마가 되고 5년 만에 영화계로 돌아온 강혜정은 한결 너그러워지고 편안해졌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되바라진 눈빛을 쏘는 대신 생글생글 미소에 말끝마다 아이 얘기가 따라붙는다. 혹시 한국영화가 예민하고 힘 있는 여배우 하나를 잃은 게 아닐까 싶어 불안해졌다. “까놓고 말씀드릴까요. 멋모르는 얘기죠. 사람이 어디 그렇게 쉽게 변하나요. 하루가 지금은 풍선을 잘 못 불지만 제 나이가 되면 터지기 직전까지 풍선 부는 법을 알게 될 거예요. 어떻게 불어야 불 줄 모르는 사람처럼 부는지도 알게 될 거고요. 저는 풍선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통제능력이 생긴 거예요. 예전의 제게서 보셨던 예민함과 우울함은 여전히 죽지 않았어요. 다만 지금은 그걸 내보일 타이밍이 아닌 것뿐이죠.” 영영 잃어버린 것인지, 잠시 숨겨둔 것인지는 앞으로의 그녀를 지켜보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찌됐든 지금 강혜정은 첫 엄마 역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trans × cross] 풍선을 터뜨릴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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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있어 사연을 보냅니다. 저는 서울 사는 초등학교 교사 준수(이승기)입니다. 제게는 인기 기상 캐스터로 활약하고 있는 현우(문채원)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알고 지낸 지 18년 된 ‘고환’ 친구입니다. 그래서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 친구의 오피스텔 비밀번호까지 압니다. 가끔 청소도 해놓고 옵니다.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십니다. 하지만 정작 그 친구는 제가 “결정적일 때 흥분이 안 되는 남자”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녀 곁에서 얼쩡대는 다른 남자가 마음에 걸립니다. 같은 회사 상사인데 유부남(이서진)입니다. 저 역시 다른 여자들을 안 만나본 게 아닙니다. 만나는 여자마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100일을 못 넘기고 헤어졌습니다. 그때마다 현우가 생각나더군요. ‘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저는 ‘그린 라이트’인가요? 내년 1월15일 개봉하는 <오늘의 연애>(감독 박진표)를 보시고 한번 생각해봐주세요.
-촬영장
[이승기, 문채원]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우리 시대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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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진은 할리우드에서 주로 활동해온 작곡가이자 뮤지션이다. 1999년 개봉한 <엔트랩먼트>의 스코어 코디네이터로 일을 시작해 <스파이더맨2> <스파이더맨3>의 오케스트라 편곡을 담당했고 할리우드 스튜디오영화와 독립영화의 음악 파트에서 두루 활약 중이다. 한국영화 <평행이론>의 작곡가로 <미스터 고>의 스코어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재즈, 클래식, 연주, 작곡, 지휘 등 장르와 파트 구분 없이 음악을 공부했다. 연주부터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가능한 작곡가다. 그 내공으로 미국뿐 아니라 한국, 중국영화의 음악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계획임을 밝혔다. 이번에는 지휘자로서 한국을 찾았다.
-12월17일에 열린 소프라노 신영옥의 새 앨범 ≪미스티크≫(Mystique)의 발매 기념 콘서트에 지휘자로 나섰다.
=앨범 프로듀싱과 편곡을 맡은 게 인연이 돼 지휘까지 했다. 학생 때 지휘도 배웠다.
[flash on] 경계는 장애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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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마드 기름을 발라 쫙 올려붙인 머리에 새빨간 가죽 재킷, 청춘의 상징인 청바지에 매서운 눈빛까지. <국제시장>에서 오달수가 제임스 딘 복장을 하고 등장하는 장면에선 그 상상하지 못한 자태에 객석에서 폭소와 경탄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류성희 미술감독의 아이디어에서 태어난 컨셉으로 오달수가 연기한 달구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덕수(황정민)의 죽마고우 달구는 나름 1960년대 국제시장의 얼리어댑터이자 이슈메이커다. 누구보다 빠르게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걸치고 나타난 달구는 시사에 밝고 유행에 민감한 영화광. 단박에 눈길을 끄는 주인공 덕수의 곁에서 달구는 당대의 문화적 코드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은근하게 시대상의 변화를 드러낸다. “강력한 개인사를 가진 덕수와 달리 달구는 말랑말랑하게 완급 조절을 하고 있죠. 덕수가 굵직한 드라마를 끌어간다면 달구는 외관을 통해 그때의 공기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파독 광부 일을 제안하는 등 달구는 덕수에게 매번 새로운 소식
[오달수]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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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5일 국내개봉을 앞둔 <맵 투 더 스타>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21번째 장편영화이자, 그가 미국에서 촬영하는 첫 영화다. 야간 버스를 타고 할리우드에 입성한 소녀(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작가 혹은 배우 지망생인 리무진 운전기사(로버트 패틴슨)에게 스타들의 집을 지도에 표시한 스타맵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묻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들을 포함하여 한물간 여배우(줄리언 무어), 최연소 약물중독 셀러브리티, 처세술 혹은 자기계발서 저자이자 강연자인 그의 아버지(존 쿠색) 등 과잉된 욕망 속에서 길을 잃은 등장인물 모두는 자신만의 지도가 필요하다. 할리우드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면에서 소녀와 다르지 않은 크로넨버그는 별들이 그리는 추락의 궤적을 서늘한 차분함으로 그려냈다. 그가 지닌 빛나는 지도를 엿보고 싶어, 눈 오는 토론토로 화상 대화를 청했다.
-시나리오를 쓴 브루스 와그너와는 첫 작업이다. 원래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함께 작업하게 된 계기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그게 할리우드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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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았어. 일단 전진.” 업무 전화인 듯하지만 누구와의 통화인지는 모르겠다. 이석준은 일단 ‘고’ 하는 것으로 통화를 마쳤다. 2004년 4월에 시작한 소극장토크쇼 <뮤지컬 이야기쇼 이석준과 함께>(이하 <뮤지컬 이야기쇼>)도 이렇게 지난 10년을 버텨왔구나 짐작된다. <뮤지컬 이야기쇼>는 월 2회, 공연계 휴일인 월요일에 열린다. 이석준이 “아는 사람은 아는” 양질의 대학로 창작공연을 배우들과 함께 소개하고 그 비하인드와 음악을 들려주는 형식이다. 어렵다, 어렵다 하는 대학로 연극계에서 대형스타 없이 10년을 지속해온 것만 봐도 보통 내공이 아니다. 2011년 6월부터 시즌2를 시작해 현재 71회 공연을 앞두고 있다. 매회 다른 배우들이 출연료 없이 참여하며 티켓 판매 수익금 전액은 사회복지 NGO 단체 ‘함께하는 사랑밭’에 기부한다.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이야기쇼>는 과감한 프로젝트를 하나 궁리 중이다. <배우수업>
[trans x cross] 관객의 가려운 곳 긁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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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고, “그렇다”고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부터 쳐주는 남자. 더 많이 말하기보다 더 오래 듣는 쪽에 서 있는 사람. 그가 바로 고수다. 배우로서 고수가 걸어온 길도 그와 똑 닮았다. 소란스럽지 않게 작품에 임하면서 쉼 없이 꾸준히 자신의 보폭을 유지해왔다. 속독으로 더 많은 걸 탐하는 다독가보다는 마음에 드는 책 하나를 오래도록 정독하는 애서가와 같은 배우. 그런 그가 이번에 꺼내든 작품은 <상의원>이다. 그가 맡은 이공진은 조선에서 최고의 디자이너로 불리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 모든 수식어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이다. 얼핏 보면 공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거침없이 말하는 호방한 남정네 같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진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세우는 사람도 없다. 그러고 보니 고수와 공진, 둘 사이에 묘한 교집합이 그려진다. 그럴듯한 조합이다.
우당탕탕. 웬 날짐승 같은 사내가 지체 높은 양반들이 모여 있는 술자리로 겁 없이 뛰어든다. 예의니
[고수] 자유롭게, 거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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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섬광 혹은 소멸>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창의적인 아티스트필름 및 비디오들이 내년 1월31일까지 대거 상영된다. 한편 이곳에서는 <논픽션의 기술들>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주목할 만한 주요 다큐들이 이미 상영되기도 했다. 한편 이곳에서는 얼마 전 아세안필름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이곳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영화관으로, 서울에 숨어 있는 좋은 영화관이다. 최근에야 이곳에 대해 잘 알게 된 우리는 전주영화제, 세네프영화제 등의 프로그래머를 지냈고 영화 <딱정벌레>의 감독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영화관의 모든 일을 담당하는 김은희 학예사를 만나서 그간의 일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물었다.
-지금 하고 있는 행사부터 물어보자. <섬광 혹은 소멸>전의 특별한 점이 있나.
=예컨대 이번에 했던 포럼 제목이 ‘이미지의 막다른 길: 전시와 상영 사이에서’였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전시된 영상 설치 사이에는
[flash on] 주목! 미술관 속 영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