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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없는 하늘빛 바지에 새하얀 블라우스 차림, 게다가 찰랑거리는 포니테일까지. <오빠생각>에서 전쟁 고아를 보살피는 고아원 보육교사이자 피아노 선생님 박주미의 첫 등장은 그 자체로 화사하고 곱다. 전쟁의 공포와 피로에 찌들 대로 찌든 군인들이나 폐허가 된 일상을 어떻게든 헤치고 살아가는 피난민들과 박주미는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만약 전쟁이라는 현실 저 너머에 평온의 세계가 있다면 주미는 그곳에서 온 인물 같다. 주미를 연기한 고아성은 “주미가 워낙에 밝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자신이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밝아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취”라고 말한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정서가 있었을까. 그땐 모든 게 너무 힘들었을 테니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작은 구석이라도 있어야 했을 거다. 마치 마취가 되듯. 주미에게는 그게 해맑음, 밝음의 정서였을 테고 영화 속 아이들에게는 음악이었을 것이다.”
박주미는 아
[고아성] 매번, 미지의 세계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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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몰래 쓰레기통을 뒤지다 들킨 길고양이 같은 눈을 가진 남자. 매번 “캐릭터를 만들 때 눈부터 시작한다”는 이희준은 ‘갈고리’를 그런 남자라고 상상했다. “너무나 선량한 눈을 타고나서 사나운 인상을 주는 게 정말 어려웠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이희준이 연기한 <오빠생각>의 갈고리는 당대의 불안과 결핍을 스치는 순간들마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선하고 사려 깊은 인물들의 영화인 <오빠생각>에서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불길함을 안기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갈고리는 한때 군인이었지만 전투에서 손을 잃은 뒤 고아들을 데려다 수족처럼 부리며 돈을 벌게 한다. 돈을 모으기 위해 권력자에게 빌붙거나 친일파 후손에게 고개 숙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음 한곳엔 일말의 도의와 꼿꼿한 자존심을 숨겨둔 남자다. 전쟁통의 아비규환을 그리면서도 이한 감독은 갈고리를 끝내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이희준의 말에 의하면 갈고리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어
[이희준] 눈으로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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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감독의 여섯 번째 연출작 <오빠생각>은 6•25 전쟁 당시 실존했던 해군 어린이 합창단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영화다. 포화에 가족을 잃고, 전쟁을 핑계 삼아 살육을 자행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상렬 소위(임시완)는 교외의 한 부대로 전출을 간다. 한 소위는 그곳에서 고아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박주미 선생(고아성)을 만나 어린이 합창단을 결성하고, 근처 빈민촌에서 수장처럼 군림하는 갈고리(이희준)의 아이들을 데려와 돌본다. 어린이 합창단은 한 소위뿐만 아니라 전쟁에 지친 군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존재로 성장한다. “현대적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경주와 합천에서 약 4개월간 세 배우는 영화 속 세계와는 사뭇 다른 평화로운 날들을 보낸 것 같다. 배우들이 ‘선량한 사람’이라 입모아 말하는 이한 감독의 지휘하에 그들은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임시완, 이희준, 고아성] 희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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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통령’ 꼬마버스 타요가 극장판 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의 에이스 구출작전>으로 돌아왔다.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TV시리즈 <꼬마버스 타요>의 첫 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자 ‘뽀로로’와 ‘타요’를 탄생시킨 아이코닉스가 최초로 제작한 장편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메가폰을 잡은 류정우 감독은 TV시리즈 <꼬마버스 타요> <뽀롱뽀롱 뽀로로>의 스토리보드에 참여했고, <천년여우 여우비>(2007)에서 조감독을 맡아 TV시리즈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경험한 감독이다. ‘타요’의 스크린 데뷔와 함께 장편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한 류정우 감독을 만나기 위해 판교의 아이코닉스 사옥을 찾았다. ‘타요’와 ‘뽀로로’ 캐릭터들에 둘러싸인 사내 카페에서 나눈,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 가득한 대화를 전한다.
-TV시리즈 <꼬마버스 타요>의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아이코닉스의 첫 장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 회사 차원에서도 신경을
[people]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의 토대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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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은 외모, 담백한 연기, 무던한 성격까지. 평범함은 사이먼 페그가 지닌 최고의 무기다. 그런 점에서 SF 코미디 <앱솔루틀리 애니씽>의 소심하고 평범한 남자 닐은 사이먼 페그의 맞춤 캐릭터처럼 보인다. 닐은 은하계 고등생물위원회가 실시하는 선악능력테스트의 시험 대상으로 무작위 선출돼 갑자기 초능력을 얻는다. 지구의 존폐가 그의 손에 달려 있지만 닐은 초능력 사용법을 모른 채 1차원적 소원들을 실현시킨다. <앱솔루틀리 애니씽>은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 <몬티 파이튼: 삶의 의미>(1983) 등을 만든, 영국의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의 멤버 테리 존스가 오랜만에 연출한 작품이다. 더불어 사이먼 페그의 종횡무진 활약상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다.
-유년 시절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에 영향을 받기도 했나.
=몬티 파이튼은 어릴 적 내 영웅들이다. 그들의 TV쇼와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영국식 유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people] 장르보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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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시라크>
2015 <헤이트풀8>
2015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4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2014 <로보캅>
2013 <올드보이>
2012 <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2 <어벤져스>
2011 <퍼스트 어벤져>
2011 <토르: 천둥의 신>
2010 <아이언맨2>
2009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2009 <스피릿>
2008 <아이언맨>
2007 <1408>
2005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드라마
2013 <에이전트 오브 쉴드>
2011 <더 마운틴탑>
착한 편인지 나쁜 편인지 아무래도 분간이 안 되는 묘한 미소, 은근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리드미컬한 웃음소리, 저음과 고음을 자
[새뮤얼 L. 잭슨]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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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어 맨 인 더 다크>
2015 <구스범스>
2014 <난 지구 반대편 나라로 가버릴 테야>
2013 <레이버 데이>
2013 <프리즈너스>
2010 <렛미인>
2008 <스노 버디즈>
2007 <게임 오프 라이프>
TV
2014 <스캔들>
2014 <에이전트 오브 쉴드>
2013 <세이브 미>
2012 <어웨이크>
2010 <맨 오브 어 서튼 에이지>
2010 <로스트>
2008 <멘탈리스트>
2007 <세이빙 그레이스>
2006 <산타 없는 해>
2005 <프리즌 브레이크>
2005 <드레이크 앤드 조시>
잠시만 눈 돌려도 소년은 금세 어른이 된다. 하지만 아역 출신 배우들은 단번에 어른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딜런 미네트의 얼굴에도 아직 소년의 앳된 흔적이
[who are you] 훈훈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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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그리고 싶은 것>(2012)
프로듀서
<언더그라운드> 프리 프로덕션 중
<할머니의 먼 집>(2015)
<홀리워킹데이>(2015)
<소꿉놀이>(2014)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
<거미의 땅>(2012)
<Jam Docu 강정>(2011)
배급책임
<나쁜 나라>(2015)
<밀양 아리랑>(2014)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
<다이빙벨>(2014)
<망원동 인공위성>(2013)
<슬기로운 해법>(2013)
<노라노>(2013)
<탐욕의 제국>(2012)
<그리고 싶은 것>(2012)
안보영 프로듀서는 최근 들어 ‘세월호 세대’라는 단어의 쓰임을 새삼스레 새기고 있다. “독립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어떤 역할로든 같이 머물러 발언하고 환기하는 자리
[STAFF 37.5] 소신 있게, 경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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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과 연출은 기본이다. 저예산영화 <러시안 소설>(2012), <배우는 배우다>(2013), <조류인간>(2014)을 연달아 연출해온 신연식 감독은 작품마다 각본, 연출 외에 제작과 제작투자, 배우 캐스팅 등에 깊숙이 관여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래저래 바삐 활동하지만, 신연식 감독의 포부는 소박하다. 제작비 1억~2억원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선에서, 뜻이 맞는 스탭, 배우들과 함께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김기덕, 홍상수 감독의 제작 시스템이 연상되는 그의 작업은 늘 이 목표 아래 진행되어왔다. 신연식 감독이 제작하고,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동주>(2월18일 개봉예정) 역시 콤팩트한 신연식 감독의 제작방식에 맞춘 작품이다. 그는 이 ‘소박한’ 작업을 위해서는 스타 캐스팅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는 과정이 선결되어야 하며, 배우들 역시 이런 기회를 통해 연기자로서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고 믿는다. 바로 거대 자본의 틈새에
[신연식] “부딪히고 저질러야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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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 부분을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했다.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촬영 몇달 전부터 리허설을 많이 했다. 최대한 자연광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촬영 때마다 적절한 시간대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매 순간 적응해야 했다. 너무 추워서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배우들이 연기가 안 될 때도 있었다. 반대로 지구 온난화 때문에 때로는 너무 더워서 촬영하기 어렵기도 했고.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듯 느껴졌다. 감독의 비전은 명확했지만 그것을 시각화하기까지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랐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를 연기해야 했다.
=직접 그런 슬픔을 경험한 적은 없다. 사실 나는 내가 연기하는 모든 배역을 직접 경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난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라 해도 개인적인 아픈 경험들을 이용할 때도 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아들이 원주민과의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
“걸작을 만나기 위해 계속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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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거대한 모험극이다. 전작 <버드맨>(2014)으로 쇠락한 예술가의 내적 갈등과 그 각성을 집요하게 들이팠다면 이번에는 보다 광대한 자연 앞에 인간을 던져놓고 지켜본다. 영화는 대자연, 그것도 19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에 내동댕이쳐지듯 던져진 한 남자의 생존 투쟁을 그린다. 극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기도 한 휴 글래스는 곰의 습격을 받고 유일한 가족인 아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동료들의 배신을 지켜보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살아서 돌아온다. 마치 ‘나비 효과’처럼 예기치 못한 하나의 사건이 어떤 식으로 한 개인을,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일원을 뒤흔들고 바꾸어놓는지를 묻는 것 같다. 이 질문이 생존이라는 극한의 목표와 만났을 때, 자연이라는 거대한 품 안에서 펼쳐질 때 어떤 모습으로 뻗어나갈지 궁금하다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그 하나의 대답이 돼줄 것이다. 할리
운명을 거슬러 살아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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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땅>(2012)은 폐허가 된 기지촌, 그 공간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성을 붙잡기 위해 세명의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이어간다. 그런데 각각의 여성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첫 번째 여성은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과거사를 덤덤히 들려준다. 두 번째 여성은 카메라와의 직접적인 대화가 아니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미국에 있는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세 번째 여성은 자신의 과거 속 기억을 끄집어내 본인이 직접 재연까지 해 보이며 환상적인 장면 연출의 주인공이 된다. 극화된 장치 없이 대상을 담는 다큐멘터리의 화법과 비교해보면, 대상에 접근해가는 <거미의 땅>의 방식은 생경하다.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를 눈에 띄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문제를 꾸준히 주목해온 김동령, 박경태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에서의 형식적 실험이 어떤 의
[people] “상처를 보듬는 각자의 방식을 하나의 필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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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애니메이터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총체적 단어로 인식되지만, 분업이 확실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는 캐릭터의 감정 연기와 액션 연기를 담당하는 이들을 말한다. 한국에서 의사로 일하다 2006년 픽사에 입사한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업>(2009), <토이 스토리3>(2010),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 <인사이드 아웃>(2015) 등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굿 다이노>에선 알로와 스팟 캐릭터의 연기를 맡았다. 알로와 스팟이 베리 열매를 따기 위해 끊어진 절벽을 건너는 장면은 그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대표적 신이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이 장면이 어떤 공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직접 만들어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알로는 코끼리의 움직임을, 스팟은 강아지의 움직임을 참고했다고 들었다. 두 캐릭터의 특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작업했나.
=움직임도 움직
[people] “디테일의 힘으로 캐릭터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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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다이노>(2015)를 연출한 피터 손 감독은 디즈니•픽사 최초의 동양인 감독이다. 2000년에 픽사 스튜디오에 입사해 <니모를 찾아서>(2003)와 <인크레더블>(2004)의 아트, 스토리, 애니메이션에 참여했고, <라따뚜이>(2007)와 <몬스터 대학교>(2013)에선 목소리 연기를 맡았으며, <월•Ⓔ>(2008)의 스토리 아티스트로 활약했다. <업>(2009)의 오프닝 단편 <구름 조금>도 연출했는데, 참고로 <업>의 러셀 캐릭터의 모델이 피터 손 감독이다(실제로 꽤 닮았다). 꼬마 공룡 알로와 야생 소년 스팟의 모험으로 뭉클한 가족애와 성장담을 전한 피터 손 감독이 내한했다. 함께 온 드니스 림 프로듀서는 “픽사의 경영진이 굳게 신뢰하는, 재능 많은 젊은 감독”이라고 그를 거듭 칭찬했다.
-<굿 다이노>는 애초에 밥 피터슨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가 하차하면서 중단된
[people] “사랑으로 두려움을 버텨내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