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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만 봐도 알아볼 수 있어. 그놈도 날 알아봤을까.” <살인자의 기억법>의 병수(설경구)는 우연히 마주친 연쇄살인범 태주(김남길)를 단번에 알아본다. 아마도 짐작건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않았을까. 이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까 말이다. 살인범의 눈빛이 따로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잊지 못할 강렬한 눈빛에 관해서라면 진즉부터 정평이 나 있는 두 배우다. 특히 김남길은 <강철중: 공공의 적1-1>(2008)에서 강철중(설경구)에 맞서는 조직폭력배의 행동대장 문수 역을 맡아 강렬한 눈빛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극중 강철중의 상대역은 거성그룹 이원솔(정재영)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영화 내내 대립각을 세우는 건 김남길의 몫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남길이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된 건 드라마 <선덕여왕>(2009)의 비담 때부터다. 여리고 순수한 얼굴과 단칼에 적을 베어버리는 검객의 잔혹한 눈빛을 한몸에 지닌 아이러니한 분위기는 이후 김남길의 트레이드마
<강철중: 공공의 적1-1> 김남길 - 날것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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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초’에 끌렸다.” <남한산성>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고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내어 끝내 살아남는 백성의 삶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이 영화에서 백성의 삶을 대표하는 캐릭터 날쇠에게 이끌린 건 우연이 아니다. 성실한 대장장이 날쇠는 고립된 남한산성에서 고관대작들이 정치적 신념을 맞대고 싸우고 있을 때 홀로 ‘살아남는 것’의 중요함, 삶 자체의 신념을 굽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두고 연기해야 했기에 더욱 부담이 됐다”고 말하는 고수를 고민에 빠뜨린 날쇠는 어떤 인물일까. 고수는 왜 날쇠를 연기하며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말했을까. <남한산성>을 기대하는 관객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70만부 이상 팔린 원작 소설 자체의 무게감 때문에라도 시나리오를 신중하게 봤을 것 같다.
=오래전에 소설을 읽은 적 있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소설과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원작에 가까우면서 영화적인
<남한산성> 고수 - 정의롭게, 인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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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캐스팅이 대세가 되면서 박희순이 바빠졌다. 대개 강골의 마초, 남성성의 끝자락에 그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올레>(2016)처럼 망가지는 것도 즐긴다.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명이지만 출근 도장 찍듯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거르지 않는 속깊은 배우. <남한산성>에서 박희순이 맡은 무장 이시백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중심을 지키며 맡은 바 도리에 충실한 인물이다. 배우 박희순도 그렇다.
-어떤 계기로 출연을 결심했나.
=원작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 인물 한명 한명이 각자의 철학과 세계를 가지고 설전을 벌인다. 범인들의 말싸움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들의 충돌이다. 어느 쪽의 손도 쉽사리 들어줄 수 없는 상황에서 각 인물들이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있는, 단단한 소설이다. 그리고 각색 과정에서 균형을 훌륭하게 지켜낸, 기품 있는 시나리오였다. 매우 영화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한편 원작의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요새 흔
<남한산성> 박희순 - 묵묵히 충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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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박해일은 곤룡포를 입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럼에도 황동혁 감독은 “인조 역으로 박해일을 떠올리며 <남한산성>을 썼”고 “박해일 캐스팅에 가장 오래 매달려 삼고초려 끝에 그의 마음을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잘 알려진 대로 인조는 서자 출신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까닭에 눈물 많고 우유부단하며 트라우마 때문에 항상 의심과 불안감에 시달렸던 임금이다. 박해일은 역사적으로는 소심하고 나약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는 인조를 어떤 인간으로 받아들였을까.
-황동혁 감독이 가장 오랫동안 매달렸고, 삼고초려 끝에 캐스팅했다던데.
=<컨트롤>(감독 한장혁)을 찍고 있을 때 출연 제안이 왔는데 물리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두 차례 거절했다. 그럼에도 황동혁 감독이 “해일씨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와 다시 만났다. 이병헌, 김윤석 등 선배들이 먼저 출연을 결정한 상태에서 인조라는 인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의심을 하다가 해볼 만한 것 같아 하기
<남한산성> 박해일 - 그 시대의 임금이 된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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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추위와 배고픔으로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47일간의 전쟁. 이조판서 최명길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조(박해일)를 향해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라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건 직언을 한다. “영웅이 되거나, 무언가를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 소신 하나로 죽음을 무릅쓴 충신 명길은 이병헌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과 언어로 강렬한 힘을 얻는다. “아껴두는 마음에” 미리 영화를 보지 않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사회를 기다린다고 할 만큼, 이병헌은 <남한산성>이 가진 영화적 가치와 무게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황동혁 감독이 “김훈 작가 원작의 강렬하고 묵직한 대사를 재연하려는 마음에, 배우들이 대사를 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어려움을 전하기도 했다.
= 나는 반대였다. 오히려 예스러운 말투와 약간은 생경한 단어가 캐릭터나 상황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 그 시절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인
<남한산성> 이병헌 - 시대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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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혀’들이 모였다. 척화파 김상헌(김윤석)은 지원군이 올 때까지 청나라에 맞서기를 고집하고, 주화파 최명길(이병헌)은 역적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당장 성 밖으로 나가 청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해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장 이시백(박희순)은 이들의 논쟁에 흔들리지 않고 무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다. 조정이 논쟁으로 치닫는 사이 날쇠(고수)는 백성의 목소리를 낸다. 신하들 사이에서 인조(박해일)는 조정의 안위와 백성의 안전을 위해 고심한다. 이병헌, 박해일, 고수, 박희순 등 네 배우가 47일 동안 고립된 성에서 벌어진 ‘썰전’의 출연 뒷이야기를 전한다.
<남한산성> 이병헌, 박해일, 박희순, 고수 - 삶의 길은 땅 위로 뻗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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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얼굴 낭비다. 빌 스카스가드가 <그것>의 페니와이즈 역할에 지원했을 때 주변 반응은 대체로 의아함이었다. 드라마 <헴록 그로브>에서 뱀파이어 역할로 퇴폐미를 발산한 바 있는 빌 스카스가드가 얼굴을 가리는 분장을 하고 피의 피에로로 변신한다는 게 팬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빌 스카스가드의 얼굴 보는 재미로 드라마를 본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의 외모는 치명적이다. 빛나는 외모가 도리어 연기를 가리는 경우라 해도 좋겠다. 어쩌면 <그것>의 광대 페니와이즈는 빌 스카스가드가 배우로 도약하기 위한 승부수였고 결과는 성공적이다.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화한 캐릭터 중에서도 손꼽히는 페니와이즈는 1990년 <피의 피에로>에서 팀 커리가 이미 존재감을 각인시킨 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빌 스카스가드는 자신만의 표정과 분위기로 새로운 페니와이즈를 완성시킨다. 얼굴을 망가트리는 대신 표정의 완급과 호흡으로 익숙한 광대
<그것> 빌 스카스가드 - 분장 뒤 독보적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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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줄 알았다.” 지난해 제1회 덱스터스튜디오 시나리오 공모대전을 기획한 서호진 콘텐츠 비즈니스실 실장의 소회다. 김용화 감독이 이끄는 덱스터스튜디오는 지난해 처음으로 SF, 판타지 장르의 시나리오를 찾는 공모전을 열었다. 스튜디오에 도착한 수백여편의 시나리오 중에는 <인터스텔라>를 연상케 하는 우주영화 시나리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에픽 판타지 작품 등 다양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품들이 많았다. “평소 시나리오작가들을 만나보면 아이디어도 풍부하고 아이템도 많다. 그런데 기존 한국영화의 장르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하다보니 상상력을 풀 데가 없어 아쉽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덱스터의 경우 시각효과(VFX)가 강점인 회사이기 때문에 이런 갈증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전이었다.”
얼마 전 덱스터스튜디오는 제2회 시나리오 공모대전의 접수를 마감했다. 570여편의
서호진 덱스터스튜디오 콘텐츠 비즈니스실 실장 - 다양한 장르를 개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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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첫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 정보를 상대에게 전달한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그 세월의 흔적, 삶의 형태들을 얼굴에 담아 전달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배우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를 통해 평범하지만 강렬한 삶을 담아냈던 설경구는 꽤 오랫동안 강철중의 얼굴로 살아왔다. 한국영화사를 뒤져봐도 기념비적인 캐릭터임에는 분명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강철중의 변주를 즐겼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그가 다시 새로운 얼굴들을 보여주고 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에서 ‘멋짐’을 뽐내며 순식간에 팬덤을 형성하더니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메소드 배우의 대명사였던 진가를 새삼 증명했다.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을 알게 된다는 50대의 입구에서 배우 설경구는 매 작품 새로운 얼굴로 발견되는 중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응원하기 위해
<살인자의 기억법> 배우 설경구 - 바뀌었다 또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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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그의 음악은 길고 긴 투쟁의 현장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광우병 촛불 시위(2008년),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2009년) 무대에 올랐고 제작 난항을 겪던 영화 <26년>(2012)에 투자자로 참여해 힘을 더했으며 세월호 참사 추모곡 <가만히 있으라>(2015)를 내놓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했고 공연 <한쪽 눈을 가리지 마세요>(2015)를 직접 열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지난겨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국민들의 힘겨운 겨울나기에 든든한 힘을 보탰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싱글 앨범 <돈의 신>을 발표해 음원을 무료로 배포했다. <돈의 신>은 주진우 기자의 ‘MB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풍자한 곡이다. 최근 들어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이승환은 “주진우 기자의 취재와 그가 출연한 영화 <저수지 게임>을 응원하기 위해서 나오게 됐다
<돈의 신> 가수 이승환 - 적어도 정의롭게 살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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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이제훈은 그와 함께한 배우들이 관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현장을 보좌한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박열>(2017)에 이어 <아이 캔 스피크>까지 충무로에서 드물게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그들의 눈부신 순간을 옆에서 응원하고 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그는 명진구청 직원들에게 문제적 인물이라 불리던 옥분(나문희)에게 원리 원칙을 내세우며 꼼짝 못하게 하는 9급 공무원 박민재를 연기한다. <파수꾼>(2010)으로 영화인들과 관객에게 이제훈이 눈도장을 찍을 무렵, 이 배우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으리라. 이제훈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유망한 젊은 배우가 고민 끝에 찾아나간 어떤 길 중 하나다.
-영화를 공동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설득으로 <아이 캔 스피크>를 함께하게 됐다고.
=<건축학개론>(2012)을 함께하며 인연을 맺었다. ‘민재라는
<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 앙상블 연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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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옥분은 동네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하는 할머니다. 구청 민원 접수 외에 옥분이 열심인 일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영어 공부다. 옥분이 영어에 매달리는 이유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옥분을 연기한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가 “할머니가 될수록 할 일이 있어야 하고, 할머니가 돼서도 할 수 있는 것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주는 해방감과 ‘할 수 있다’는 다짐이 준 안도감을 느끼며 촬영에 임했다는 나문희는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고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나는 연기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이 캔 스피크>는 한명의 관객으로서 굉장히 반갑고 고마운 영화였다.
=그 말이 너무 고맙다. (웃음)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악몽이란 표현도 약한 것 같다. 악몽보다 더한 기억이 항상 짓누르고 있을 텐데. 연기자로서 그 아픔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해줄 수는 없을까, 그런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 "옥분은 입체적이고, 아주 재밌고 훌륭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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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분 할머니 같은 모습이 아니잖아요.” 사진 촬영을 위해 스타일링을 마친 나문희를 보고 이제훈이 웃으며 말했다. 온 동네 사람들의 일에 오지랖을 떠는 ‘문제적 인물’, <아이 캔 스피크>의 옥분과 나문희의 겉모습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다. 깐깐해 보이는 안경을 끼고 단정한 옷만 입는 민재 역시 웃음이 많고 살가운 이제훈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제훈에 따르면 나문희는 “일상과 연기에 큰 차이가 없는” 배우이며 “나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저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촬영현장에서 틈틈이 스탭과 기자들을 챙기던 두 배우의 배려와 긍정적인 기운은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아픈 과거를 가진 피해자를 다루는 사려 깊으면서 연민에만 머물지 않는 새로운 태도를 보여준 <아이 캔 스피크>가 가진 힘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던 나문희, 이제훈과의 만남을 전한다.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이제훈 - 힘 빼기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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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리느라, 귀를 막느라 양손이 분주한 공포영화. 허정 감독의 신작 <장산범>은 오랜만에 사운드가 선사하는 공포를 만끽할 수 있는 호러영화다.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내 사람을 홀린다는 괴수, 장산범에 얽힌 괴담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가장 익숙한 목소리가 가장 두려운 존재로 변모하는 순간의 서스펜스로 관객을 공략한다. <장산범>의 음향효과는 영화 사운드 스튜디오 블루캡이 담당했다. 블루캡의 문철우 팀장은 <장산범>을 “처음부터 소리가 중요한 영화라는 점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김석원 대표를 포함해 블루캡의 많은 직원이 “개봉 직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만큼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라고 <장산범>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
문철우 팀장이 <장산범>의 음향효과를 맡으며 가장 주목한 건 괴담 속 존재, 장산범의 목소리를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많은 이들의 목격담에 등장하는 장산범이 ‘하얀 털을 뒤집어쓴 호랑이’의 모습을
<장산범> 문철우 사운드 이펙트 디자이너 - 소리에 두려움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