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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도, 담배도. ‘취향’을 포기할 수 없어 대신 집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친구 집을 전전하는 20대 여성 미소. 전고운 감독은 미생물이 서식지를 찾아다니는 미소서식지(Microhabitat)의 그 미소에서 이 독특한 여성의 이름을 불러왔다. 집, 직장, 남편 같은, 또래의 여성에게 당연히 부과되는 ‘해야 할’ 것들에서 벗어난 미소의 선택을 통해서 전고운 감독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 처한 현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현재를 보여주고자 한다. 긍정적인 캐릭터와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더해진 결과, 영화는 갑갑한 현실에 갇히는 대신 차별화된 시각을 제공해준다. <소공녀>가 가진 차별점이자 대중과 호응할 수 있는 접점도 여기 있다. <소공녀>는 건국대학교 영화·애니메이션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한 전고운 감독의 장편 입봉작으로 <족구왕>(2013), <범죄의 여왕>(2015)을 만든 광화문시네마의 작품이다.
-<소공녀>의 소재는 어디에서
<소공녀> 전고운 감독 - 취향을 포기할 수 없는 여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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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구>라는 영화로 이루어진 만남이지만, 배우 이순재는 자신의 60여년 연기사를 정확한 기억력으로 들추어내며 원로배우가 들려줄 수 있는 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대화는 정치, 사회, 역사, 문화를 폭넓게 오갔다. 어떤 맥락의 대화에서도 배우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또렷이 읽혔다. 그 자부심과 책임감은 곧잘 후배들에 대한 쓴소리로, 개성을 잃어버린 고만고만한 한국영화에 대한 아쉬움의 토로로 이어졌다. 그에게 연기는 오락도 아니고 돈벌이의 수단도 아니다. 오롯이 예술이다. 그러니 그 예술을 탐구하는 자세에 타협은 없다. <덕구>에서 어린 손자, 손녀를 돌보는 시골의 늙은 할아버지 ‘덕구 할배’를 연기하는 일도 언제나 그렇듯 그에게 새로움을 창조하는 작업이었다. 이순재의 거칠한 맨 얼굴과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에 눈물이 맺히는 장면을 볼 땐 크게 심호흡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 순간에도 절제를 아는 대배우의 연기는 감탄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오늘(3월 6일) &
<덕구> 이순재, "배우는 자기가 다 울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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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4>에서 카이(왕카이), 마크(왕대륙), 차오(마천우) 세 주인공은 누가 맡더라도 원작의 적룡, 주윤발, 장국영과 비교될 게 당연하다. 원작 팬들이 추억의 클래식을 어떻게 훼손시킬지 쌍심지를 켜고 보는 가운데, 배우 왕카이는 잘해봐야 본전인 카이를 세 주인공 중에서 가장 먼저 맡기로 했다. 원작의 적룡에 해당되는 카이는 마크와 함께 밀수업을 하는 의리의 사나이다. 동생 차오가 경찰이 돼 자신과 다른 길을 가면서 형제 사이에 금이 가고,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적룡과 비교하기엔 이야기가 전혀 다르고, 적룡의 아우라에 비할 바도 못 되지만, 그럼에도 왕카이가 보여준 카이는 우직하다.
왕카이는 2006년 드라마 <한추>(寒秋)로 데뷔해 10년간의 무명 생활을 보낸다. 목소리가 좋고, 표준어 발음이 정확해 후시녹음을 직접 하는 몇 안 되는 배우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은 한국
<영웅본색4> 왕카이 - 기꺼이 망가트린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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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임민주 음악감독은 <씨네21>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신인 음악감독이며 언젠가 <씨네21>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적극성은 여전했다. “데모 음악을 가지고 영화사를 많이 돌아다녔다. 영화사 문이 잠겨 있으면 배우 프로필 모집함에다가 데모를 넣어두기도 했다. 그렇게 연락이 와서 작업한 작품이 <태양을 쏴라>였다. 이병우 음악감독님, 방준석 음악감독님, 심현정 음악감독님 등 여러 감독님의 작업실에 무작정 찾아가 인사드리기도 했다.” <괴물들> 역시 자기 홍보의 결과로 맡게 된 작품이다. <괴물들>은 학교폭력의 피해자 재영(이원근)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해자-괴물이 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임민주 음악감독은 “재영의 정서를 따라가되, 음악이 감정에 개입하지 않도록 미니멀한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의 레퍼런스로 삼은 건 데이비드 핀처의 <나를 찾아줘>(2014)이다. 멜로디
<괴물들> 임민주 음악감독 - 적극적으로, 보다 저돌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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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연서의 주목할 작품을 꼽으라면 영화보다는 몇몇 드라마의 캐릭터가 먼저 떠오른다. 아무래도 영화보다 드라마에서 먼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리라. 2012년에 MBC와 KBS 연기대상에서 각각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뒤, 2014년에는 <왔다! 장보리>로 그해 MBC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까지 수상했으니 드라마에 비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한 영화 작업이 못내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 이미 걸그룹 LUV로 데뷔해 인기의 단맛, 쓴맛을 모두 맛본 그이기에 스스로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활동해왔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동안 영화 <치즈인더트랩>의 홍설과 같은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홍설은 지금의 20대 여성 혹은 학생들의 솔직 담백한 일상을 대변하는 인물로 보기보다 꽤 마음의 심지가 단단한 캐릭터다. 단단한 마음이 홍설과 닮아 있는 오연서와 진심을 담아 연기한 이번 영화에 대해, 그리고 오연서 자신에 대해 나눈 이
<치즈인더트랩> 배우 오연서, "솔직할수록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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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상냥함이 못 견디게 좋지만, 또 그 애매함 때문에 상처받는 관계. <나라타주>는 정확한 연애의 감정으로 서로에게 돌진하는, 순정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들과 달리 무척 모호하게 감정을 쌓아가는 멜로영화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클로즈드 노트>(2007),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2016)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원작 소설에서 매력을 느낀 지점도 바로 그 불투명한 인물의 상태였다. 영화에서 연애란 이즈미(아리무라 가스미)가 과거를 회상하는 나라타주(내레이션과 몽타주) 기법을 통해 소환된다. 대사 대신 감정을 설명하는 것은 극중 언급되는 영화들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이웃집 여인>(1981), 빅토르 에리세의 <남쪽>(1982),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1955)의 흔적이 흩어져 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최근의 직선적인 영화들과는 다른 멜로를 만들고 싶었고, 그 정서를
<나라타주>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 연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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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무라 가스미는 많은 사람의 추억에 슬그머니 투영되는 배우다. 드라마 <아마짱>에서 ‘세이코짱 커트’(80년대 일본 최고의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의미함)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일본인들에게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을 닮은 소녀’였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를 한, 명문대에 가겠다는 무모한 도전에 뛰어든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사야카는 또 어떤가. 분명 골치 아픈 문제아지만 괜히 신경이 쓰이던, 어느 학교에나 존재했던 그 친구들이 아리무라 가스미의 얼굴로 소환됐다. 현재 일본 내에서만 11개 광고에 출연하고 있고, 1년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연말 프로그램 <NHK>의 <홍백가합전>에서 2년 연속 MC로 발탁됐다. <나라타주>는 아리무라 가스미가 가진 기존의 역량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즈미의 수줍은 모습은 그가 가장 잘해왔던 영역이다. 흥미로운
<나라타주> 아리무라 가스미 - 그 시절의 얼굴, 일본 여성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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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랑스러운 로맨스 사극 시나리오는 처음이었다. (웃음)” <궁합>의 오흥석 미술감독은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미술을 맡아 그해 2012년 청룡영화상, 대종상영화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미술상을 휩쓴 바 있다. 때문에 이후 어떤 사극영화도 선뜻 하겠다고 나서기 부담스러웠다. “당당하게 말해 모든 걸 쏟아부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여러 현대극을 작업하면서도 사극만은 다시 도전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궁합>의 시나리오는 드물게 “여성 캐릭터가 극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며 일종의 로드무비형태의 진행도 엿보이는” 지점이 많은 사극이었기에 “<광해, 왕이 된 남자> 때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오흥석 감독이 발견한 <궁합>의 핵심은 ‘색깔’이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오방색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의 색깔을 찾아 캐릭터와 공간 등에 입혀가며 이야기의 입체감을 돋보이게 하려 했다. “씩씩하고
<궁합> 오흥석 미술감독 - 색(色)으로 살려낸 공간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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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과의 ‘취향 토크’는 조금씩 예상을 빗나갔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예술영화를 수입하고 있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첫키스만 50번째>. 처음에는 웃긴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슬프고, 또 보니까 안에 드라마가 있어서 가끔 꺼내서 본다. VHS가 보편적이던 시절에는 <나인 하프 위크>의 미키 루크에게 반해서 그의 출연작을 모두 모았고, 한창 추리소설을 좋아할 때는 정신의 학쪽만 읽다가 호텔로 넘어가고 했단다. 그러니 그가 이따금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에 출연한다거나 <군함도>가 끝나자마자 한국영화계에서 거의 씨가 말랐던 멜로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선택한 것이 그리 의외의 일은 아닐 것이다.
-동명의 원작 일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의 타쿠미가 그랬던 것처럼, 우진은 매사에 어설프고 건강이 좋지 않으며 남들이 챙겨줘야 하는 남자다. 소지섭이란 배우가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와는 좀 다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소지섭 - 첫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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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이 돌아왔다. 어디 멀리 다녀온 것도 아니고 활동 공백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녀가 꼭 돌아온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뭘까. 그녀의 신작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어린 아들과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던 여인이 여름 장마 기간에 깜짝 환생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멜로 영화다. 결혼과 이혼, 불륜 등 수많은 사랑의 형태를 연기했던 그녀의 지난 영화들이 떠오른다. 최근 굵직한 여러 장르영화를 소화해온 그녀에게 멜로 연기로 복귀한 소감을 물었다.
-다케우치 유코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가 원작이다. 리메이크영화이면서 또 오랜만에 멜로영화로의 복귀인데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재미있고 풋풋하고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각색이 좋았다. 원작 영화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신예 이장훈 감독의 각색 방향이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기다려온 영화를 만났다.
-<비밀은 없다>(2015)와 &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손예진 - 힐링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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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 소지섭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시공간을 거스르는 판타지 장르의 요소를 통해 평범한 일상에서 묻어나는 감동이 곱절로 불어나는 멜로영화다. 서로를 잊지 못해 시공간마저 뒤흔들어버리는 우진과 수아의 일생일대의 러브스토리를 다루지만, 격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치는 멜로영화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최근 <비밀은 없다> <덕혜옹주> 등 굵직한 결을 지닌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줬던 손예진이 연기하는 수아는 과거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외출> 등에서 그녀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소지섭이 연기하는 우진 역시 <군함도> <회사원> 같은 영화보다는 말 없이 감정의 훅을 날리던 <오직 그대만> 같은 영화에서 보여주던 듬직한 인물들이 떠오른다. 잔잔하고 조용하게 격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 말장난 같긴 하지만, 두 사람이 전하는 사랑의 형태는 확실히 깊고 고요하다. 두 사람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손예진·소지섭 - 그때 그 느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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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색으로 칠은 했지만 주위와의 부조화로 조악한 느낌을 안겨주는 모텔 매직캐슬에 사는 꼬마 무니(브루클린 프린스)는 어떻게든 놀거리를 만들어내는 악동이다. 자동차 보닛에 침 멀리 뱉기(그러다 주인에게 들켜 침 닦기), 능청스럽게 동전을 구걸해 아이스크림 사먹기, 마음에 들지 않는 어른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으로 욕하기 등 6살 동급 아이들 중에 최고로 겁없고 자유분방한 아이가 무니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젊은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와 단둘이 모텔에 사는 신세지만 낙담하는 법도 없다. 그런 무니의 능청, 시침, 익살을 완벽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완성한 건 <플로리다 프로젝트> 촬영 당시 6살이었던 2010년생의 브루클린 프린스다. 브루클린 프린스가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연기는 차라리 마법에 가깝다. ‘2017년 최고의 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각종 시상식 아역상과 신인상 후보에 오른 브루클린 프린스는 제23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역대 최연소
<플로리다 프로젝트> 브루클린 프린스 - 눈을 뗄 수 없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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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흥행 강자로 자리잡은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은 3편째 제작사, 배우, 감독을 비롯해 주요 스탭들이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만들어지고 있다. 김민(김명민)과 서필(오달수) 콤비의 액션을 담당한 류현상 무술감독 역시 1편부터 감독과 배우 곁을 지키고 있다. 이 시리즈가 내세우는 김민과 서필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사실 액션의 정교한 짜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무술감독의 역할은 여느 액션영화 못지않게 막중하다. 류현상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3편에서는 이전 두편과는 소재와 전개가 조금 다르기에 “아기자기한 액션”이 많이 등장한다. 많은 공을 들였고 관객 반응도 좋은 주막 장면이 대표적이다. 서필의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는 <올드보이> 패러디 장면을 비롯해서 월령(김지원)의 다듬잇돌 액션 등은 많은 고민을 필요로 했고 실제 준비했던 컨셉에서 여러 부분이 수정되기도 했다. “지금처럼 <올드보이> 액션을 그대로 하는 컨셉 외에 그가 장도리를 휘두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류현상 무술감독 - 유쾌한 액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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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옥을 만나기 하루 전, 드라마 <라이브>의 티저 영상을 보았다. 노희경 작가와 5년 만에 재회한 이 드라마에서 경찰로 분한 배종옥은 용의자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열정은 너희한테만 있는 게 아냐”라고 말하고 있었다. 배우 배종옥의 행보를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여자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 한국 여성배우들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선택지 속에서, 배종옥은 영화와 연극, 드라마를 치열하게 오가며 변화를 모색해왔다. 2월 22일 개봉한 영화 <환절기>는 그렇게 안주하지 않는 배우, 배종옥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녀가 연기하는 미경은 교통사고로 아들이 식물인간이 됐다는 소식과 더불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들의 정체성을 깨닫고 혼란에 빠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미경은 인생의 환절기에 찾아온 시련의 늪에 빠지기보다,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미래를 향해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편을 택한다. 쿨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정말로 쿨한
<환절기> 배우 배종옥,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