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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기왕성한 젊은 배우 셋을 한꺼번에 만났는데, 셋 다 성격이 차분한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영화제작사에서 마련했다는 <궁합> 체육대회 이야기를 꺼내봤지만 그날 축구 경기에서 가장 활약한 배우는 이 자리에 없는 최우식이었다. “오늘 보니 성격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 굉장히 반갑다”며 강민혁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조복래가 인생을 몇년 더 산 선배로서 말했다. “아마 몇년 더 지나면 너도 농담을 잘하게 될 거다. 그런데 사람의 본질은 결국 변하지 않더라. (웃음)” 정말이지 뼛속까지 조용할 것 같은 이 배우들. 하지만 계속 지켜보니 조금씩 돌출되는 매력이 안에 있었다.
지난해 연우진은 <내성적인 보스> <7일의 왕비> <이판사판> 등 무려 세편의 미니시리즈 주연을 맡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조용조용한 것처럼 보여도, 안에는 파이팅 넘치는 기질이 있는 편이다. 일부러 속에 비축해두다가, 작품을 할 때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게 아닐까.” 그런 그에게
<궁합> 연우진·강민혁·조복래 - 진지한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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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배우와 캐릭터의 ‘궁합’이 첫눈에 딱 맞는 영화가 얼마나 될까. <궁합>은 흉년으로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계속되는 가뭄의 해결책이라 여기는 부마 책봉에 사활을 건 왕(김상경) 때문에 졸지에 혼인을 앞두게 된 옹주와 어명을 받고 부마와 옹주의 궁합을 봐야 하는 역술가의 부마 찾기 소동을 그린 코미디영화다. 시나리오를 읽은 이승기는 이끌리듯 조선 최고의 젊은 역술가 서도윤 역에, 심은경은 어려서부터 박색이라 구박받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만의 사랑을 갈구하는 송화 옹주 역에 빠져들었다. “공들여 찍으면 책이 가진 최소한의 재미만큼은 전달할 수 있겠다”는 이승기의 확신과 “내가 직접 말하고 싶었던 대사들이 있었고 사랑에 대한 담담한 표현, 사극에 대한 갈증, 당시 연기에 대한 열망 등을 원 없이 풀어내보고 싶었다”는 심은경의 염원을 두고 궁합을 본다면 누구든 헤어지라는 소리는 절대 하지 못할 것 같다.
두 사람의 준비 자세에 이어 그들이 연기하게 될
<궁합> 이승기·심은경 - 힘을 빼니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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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의 배우들이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모인 날, 취재하는 틈틈이 명리학을 공부해온 임수연 기자가 배우들의 사주를 적어왔다. 역시 배우는 배우인지라 대부분 미래가 밝고 또 예능의 끼를 타고난 사주를 지니고 있었지만, 사주를 근거로 사람의 길흉화복을 들여다보는 명리학의 기본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미래를 개척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데 있음을 배우들도 잘 알고 있었다. 심은경, 이승기, 연우진, 조복래, 강민혁이 참여한 영화 <궁합> 역시 주어진 사주대로 살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말하는 영화다. 왕의 어명과 사주에 맞춰 부마를 간택해야 하는 송화 옹주와 역술가 도윤, 그리고 두 사람이 찾아 나서는 수많은 부마들을 통해서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사랑, 즉 최고의 궁합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 다섯 배우들이 함께 만들어갈 코미디와 로맨스와 감동의 ‘궁합’, 벌써부터 기대된다.
<궁합> 심은경·이승기·연우진·조복래·강민혁 - 환상의 연기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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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이 밝을 것 같은 <환절기>의 수현과 드라마 <치즈인더트랩>(2016)의 음침한 스토커 오영곤을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니. 이 사실을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인 지윤호가 연달아 촬영했던 두 작품은, 캐릭터부터 연기 방식까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수현은 딱 그 나이 대 소년처럼 엄마 미경(배종옥)에게 어리광을 피우고 풋풋한 연애를 한다. 여기에 그가 엄마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겨왔고 연인인 용준(이원근)과 함께 사고를 당한 후 혼자만 식물인간이 됐다는 설정은 ‘드러내지 않는’ 연기를 필요로 한다. 눈을 비비고 다시 얼굴을 확인하게 만드는 배우 지윤호를 만났다.
-첫 주연 영화를, 명필름랩(옛 명필름영화학교) 1기 졸업작품으로 하게 됐다.
=<치즈인더트랩>이 끝난 후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전까지는 대체로 감정이격하거나 아예 다운이 된 캐릭터성 연기를 했는데, 중간쯤의 감정을 보여주며 물 흐르듯이 흘러가
<환절기> 지윤호 - 욕심을 다스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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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가 주는 우울함, 괴로움을 전복시키고자 했다.”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의 오희정 프로듀서의 방향성은 명쾌했다. 축축하고, 검붉은 피가 아닌 생리컵에 담긴 것처럼 맑은 피, 그 맑고 밝은 피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금기시되던 생리라는 용어를 다큐멘터리에 담아내고자 하는 작품 의도였고, 그러자면 관객에게 ‘최대한 재밌게 다가갈’ 방법이 필요했다. 장소가 허락하는 대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신 배경이 될 장소를 선정하고, 인터뷰이를 찍을 때 조명도 신경 썼다. 뿐만 아니라 생리의 모든 것을 쉽게 설명해줄 영화 속 애니메이션 역시 패션매거진 필름처럼 컬러풀하게 만들었다.
오희정 프로듀서가 김보람 감독과 <피의 연대기>를 기획한 건 2015년 11월. 함께 다큐멘터리 해외배급을 하는 ‘독에어’에 근무하던 둘의 의기투합에서 비롯됐다. “당시 국내는 아직 여성 이슈가 잠잠할 때였지만 해외는 말 그대로 들끓고 있었다. 인류 절반의 움직임, 그 조류를 우리도 담
<피의 연대기> 오희정 프로듀서 - 관객에게 재미있게 다가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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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의 흥행 성공은 기념비적이었다. 마켓은 부디 ‘제2의 <부산행>’을 내놓으라는 아우성으로 과열되었다. 덕분에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부산행>과 비슷한 한국 감독의 액션 블록버스터라면 환영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시장이 아시아 블록버스터의 또 다른 신화를 쓰려 요동칠 때 정작 창작자인 연상호 감독은 이미 <부산행>을 떠나 있었다. “<부산행2>를 다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전작의 범접할 수 없는 성공으로 다소 여유롭게, 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깊게 담아낼 차기작의 기회.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에 연상호 감독은 다분히 용산참사를 연상시키는 철거민 문제를 바탕으로한 코믹 판타지물 <염력>을 선보였다. “<염력>은 흥행 안 되면 조롱받기 십상인 영화다. 그래서 하고 싶더라. 영화를 하다보면 조롱받기 싫어진다. 그런데 그걸 겁내기 시작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염력>의
<염력> 연상호 감독, "결국 진짜 빌런은 보이지 않는 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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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에서 ‘홍 상무’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누구라도 방심할 만큼 작고 가녀린 모습의 젊은 여성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거구의 용역들을 박살내버리는 순간 말이다. 이런 악역도 가능하다는 걸 배우 정유미의 연기를 보고 알았다. “전무후무한 신선함”이라는 연상호 감독의 표현대로, 정유미라는 필터를 거치면 어떤 인물이든 전형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흥미로운 건 그 인물들이 단순히 독특하다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웃음 뒤의 잔혹함, 사랑스러움 이면의 어두움. <부산행>(2016) 같은 블록버스터이든 <옥희의 영화>(2010) 같은 작가영화이든, 배우 정유미가 지닌 복합적인 결은 뭇 연출자들이 적시에 꺼내 쓰길 원하는 비장의 카드 같은 개성일 것이다. 어느덧 데뷔 15년차에 이르고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으로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은 그녀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진솔한
<사랑니> 정유미 - 전형성을 깨부순 유일무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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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밖의 강동원은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폐 끼치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성격은 2월 14일 개봉하는 <골든슬럼버>(감독 노동석)에서 그가 연기한 택배기사 건우와 닮았다. 유력 대선 후보가 폭탄 테러에 의해 암살당하고, 건우는 그 사건의 살해 용의자로 지목돼 영문도 모른 채 도망다니는 신세가 된다. 전작 <1987>(감독 장준환)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이한열 열사가 그랬듯이, 건우는 궁지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을 먼저 챙길 만큼 심성이 곱다. 강동원은 “건우와 그의 오랜 친구들이 거대한 권력에 맞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1987> <골든슬럼버> <인랑>을 연달아 작업하고 있는 강동원을 만났다.
-7년 전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화를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작의 어떤 점이 좋았나.
=평소 권력 때문에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에 관심
<골든슬럼버> 강동원 - 강동원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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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최대 수혜자는 해롱이 이규형이었다. 앞서 <비밀의 숲>에서 막판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윤 과장으로 등장했던 이규형은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제대로 홈런을 날렸다. 마약 복용으로 ‘감빵’에 들어온 ‘해롱이’ 유한양은 2상6방의 귀여운 트러블메이커다. 해롱이의 행동이 언제나 너그럽게 이해될 수 있었던 건 이규형의 뻔뻔한 희극 연기가 통했기 때문. 하지만 이규형은 “혼자서는 이만큼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들지 못했을 거”라며 대부분의 공을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에게 돌렸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롱이 캐릭터 덕에 사람들이 전보다 친근하게 다가올 것 같다.
=‘와, 해롱이다’ 하면서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고 알아봐주는 분들도 꽤 생겼다. <비밀의 숲> 때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웃음)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연극 <날 보러와요>, 뮤지컬 <팬레터>를 보
<슬기로운 감빵생활> 배우 이규형 - 자꾸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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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긴 능력이기 때문일까. <염력>에서 석헌(류승룡)이 염력을 쓰는 자세가 어째 좀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초능력을 쓸 때마다 몸도 덩달아 움직이는 품새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중독성이 강하다. 안무가 전영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이 자세를 인형뽑기 게임에서 착안했다. “석헌은 원래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인형뽑기를 할 때 집게의 위치나 각도를 잘 맞추지 못하면 몸도 집게를 따라 움직이지 않나. 석헌이 컨테이너를 움직이는 장면에서 그런 자세로 초능력을 쓰면 되겠다 싶었다”는 게 전영의 설명이다. 이 아이디어는 그가 “좋아하는 만화 <원펀맨>의 사이타마 캐릭터가 공격하는 자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연상호 감독은 “그 동작 하나 때문에 관객이 천명은 더 들겠다”고 무척 만족해했다. ‘컨테이너 박스를 옮긴다’ 정도로 표현된 시나리오의 지문에 ‘(석헌의) 다리가 움직이고, 혀가 나온다’는 식의 구체적인 행동이 추가됐다.
안무
<염력> 안무가 전영 - 대본에 없던 지문을 만드는 동작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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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003년 당시 김상경의 필모그래피는 두고 두고 회자될 만하다. 첫 주연 영화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2002)이고, 그다음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에 집중하기보다 종종 드라마에 출연하며, 과거의 기세를 이어가지 않은 김상경의 이후 필모그래피가 충분히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십수년간 이어진 그의 행보를 모아보면 쉬운 예상을 벗어나기에 되레 신선한 면이 있다. <내 남자의 로맨스>(2004) 같은 로맨틱 코미디나 사극 드라마 <대왕 세종>(2008), 주말극 <가족끼리 왜이래>(2014)에 어떤 일관성이나 두드러지는 파격은 없다. 하지만 <생활의 발견>과 <살인의 추억>으로 이어지는 전성기와 만나면 재미있는 돌출이 된다. 국방부 방산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 박대익 중령을 연기한 <1급기밀>로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1급기밀> 배우 김상경, "보수와 진보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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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빛으로 타오르는 웨스트 할리우드의 크리스마스이브. 포주이자 애인인 남자 대신 마약 소지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신디(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스)를 맞아주는 것은 단짝 알렉산드라(마야 테일러)다. 두 트랜스우먼의 생계 수단은 매춘이다. 알렉산드라의 실수로 남자친구가 바람피운 사실을 알아챈 다혈질 신디가 종일 상대 여자를 수소문하며 폭주하는 동안, 가수 지망생 알렉산드라는 저녁 공연을 홍보하는 전단을 돌린다. 여기에 알렉산드라의 단골인 아르메니아계 택시 기사 라즈믹(카렌 카라굴리안)의 사연이 더해진다. 201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아이폰 5S로 촬영한 와이드 스크린 영화라는 화제성을 넘어 높은 완성도로 찬사를 모은 <탠저린>은, 세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서야 한국 개봉관에 도착했다. 신작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2017년 칸을 시작으로 호평받으며 바쁜 시상식 시즌을 보내고 있는 숀 베이커 감독은 기자의 질문에 동영상으로 답변을 보내왔다.
-시나리오를 본격적
<탠저린> 숀 베이커 - 마이너리티 그룹과 하위문화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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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 살어리랏다>는 대한민국 40대 가장의 모습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대학 시간강사인 중년 남성 오준구는 배우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앞에 두고 갈등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건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아니, 그건 나이보다는 차라리 대한민국이라는 상황의 문제에 가깝다. 5천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이 특별한 건 이 땅에 사는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고민들을 제대로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감독이 직접 보고 느낀 현실이라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반도에 살어리랏다>로 장편 데뷔를 한 이용선 감독은 4편의 단편애니메이션을 연출한 베테랑이다. 전작인 단편 <화장실 콩쿨>로 2015년 11회 인디애니페스트에서 독립보행상, 관객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좀더 확장된 이야기로 돌아온 작품이 바로 <반도에 살어리랏다>다. <반도에
<반도에 살어리랏다> 이용선 감독 - 한국에서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어른을 위한 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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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의 외형적인 규모는 성장하는 듯 보이지만 내실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 사실이다. 70, 80년대 전세계 서브컬처를 뒤흔든 아니메의 파괴력은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산업적으로는 실사영화의 흥행 순위를 가볍게 뛰어넘을 만큼 안정적이기도 하다. 만약 일본 애니메이션에 여전한 저력이 있다면 방점은 규모가 아닌 다양성에 찍힐 것이다. TV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극장판이 흥행하는 가운데 오리지널 극장판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으며 개중에는 독특한 개성으로 표현의 영토를 넓히는 작품도 적지 않다. 유아사 마사아키는 굳이 구분하자면 작가주의 경향의 최전선에 있는 감독이다. 2004년 장편 데뷔작인 <마인드 게임>은 독특한 곡선, 강렬한 색채, 움직임을 중시한 감각적인 이미지 등으로 전세계 애니메이터들에게 유아사 마사아키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2010), <핑퐁 더 애니메이션>(20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그림은 세계에 대한 감각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