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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건 내가 보여준 최현수가 나의 최대치였다는 점이다. 여한이 없을 정도로 다 쏟아부었다.” 자신의 40대가 응축된 작품이라는 말에서도 류승룡이 <7년의 밤>에 쏟은 에너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최현수는 세령마을에 발을 디딘 첫날 교통사고를 내고, 차에 치인 소녀 세령의 시신을 호수에 유기한다. 우발적 사고 혹은 명백한 범죄 이후 현수는 개인적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딸 세령을 잃은 오영제(장동건)는 최현수에게도 아들을 제물로 내놓으라는 듯 목을 졸라온다. “과정도 행복하고 결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과정의 행복이라는 절반의 기쁨에 만족해야 했던 <염력>을 뒤로하고 <7년의 밤>으로 류승룡이 다시 돌아왔다.
-2016년 5월에 크랭크업을 했으니 개봉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꽤 길었다.
=소설의 영화화가 결정되고, 시나리오 최종고가 나오고, 촬영에 들어가고,
<7년의 밤> 류승룡 - 감정의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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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에 더 악의 무게가 기울어질까. 사고로 아이를 죽인 남자 최현수(류승룡), 그리고 아이를 학대하던 남자 오영제(장동건). 정유정 소설 <7년의 밤> 속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펼치던 두 인물이, 안개를 걷고 스크린으로 걸어나왔다. 두 남자의 악행을 거슬러 올라가는 7년의 밤. 지난 10개월의 촬영기간 동안 류승룡과 장동건은 그 긴장에 사로잡혀 있었다. 팽팽한 심리전을 위해, ‘촬영 기간 동안 서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는 추창민 감독의 주문을 실행해온 시간이기도 했다. “장동건 배우는 현장에서 늘 오영제로 있었다. 우두커니 오영제로 있는 모습이 영화 전체에 큰 힘이 됐다”는 류승룡. “같이 연기하는 게 즐겁고 도움도 많이 됐다”는 장동건, 첫 시사가 끝난 직후 스튜디오에서 만난 둘은 작품 속 대립구도를 깨고 시종 화기애애했다.
<7년의 밤> 류승룡·장동건 - 악의 지도를 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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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고르는 눈이 탁월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필모그래피는 보고 있으면 부정형의 캐릭터를 다듬어가는 베테랑 배우의 신중한 손놀림이 연상된다. 2009년부터 TV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후 대니 보일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에 짧게나마 얼굴을 비쳤다. 이후 한동안 <라스트 엑소시즘> <서머 송> 등 장르물에도 부지런히 출연했지만 아무래도 눈에 띄는 건 선명한 개성을 지닌 감독들과의 호흡이다. 매튜 본 감독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초음파를 발산하는 소년 밴시 역을 맡아 대중에 얼굴을 각인시켰고, 2013년에는 자비에 돌란의 <탐 앳 더 팜>에서 모두를 매료시키는 인물 기욤 역을 맡아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그리고 대망의 2017년, <아메리칸 메이드> <겟 아웃> <플로리다 프로젝트> &
<쓰리 빌보드> 케일럽 랜드리 존스 - 위태로운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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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 파스타를 만들어보세요. 봄철 배추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 수 있어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푸드 스타일링을 맡은 진희원 스타일리스트에게 제철 요리를 추천받으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리틀 포레스트>는 농촌의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과 다채로운 음식의 향연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배추빈대떡과 팥케이크, 막걸리와 감자빵…. 자연에서 거둬 혜원(김태리)의 손으로 완성되는 영화 속 음식들은 시각적인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보는 이의 허기를 조장했다. <리틀 포레스트> 이전에 주로 CF와 방송, 잡지 콘텐츠의 푸드 스타일링을 담당했던 진희원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음식의 재료와 레시피를 선정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한눈에 맛있어 보이고 튀는 CF 스타일의 음식은 오히려 만들기 쉽다. 그런데 영화 속 음식은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캐릭터에도 어울려야 한다. 감독님과 ‘자연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음식이 무엇일
<리틀 포레스트> 진희원 푸드 스타일리스트 - 영화다운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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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곳이 없어서 “하룻밤만 재워줄래?” 하고 친구집을 전전하는 20대 여성 미소. <소공녀>의 미소는 대학 중퇴 후 제대로 된 직장 없이 일당 4만5천원을 받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이다. 과거 기준대로라면 구제가 불가능한 ‘사회낙오자’로 평가받기 딱 좋은 상황. 하지만 미소는 정해진 기준에 구속되지 않고, 담배와 위스키 같은 기호 식품을 탐닉하며 살아가는, ‘제멋’을 지닌 요즘 여성이다. 큰 키에 독특한 스타일, 건조한 화법으로 무장한 이솜의 당당함과 어우러지고 보니, 미소의 라이프스타일이 한층 더 멋지고 부러워진다. 이솜은 판타지와 리얼함을 이종교배한 <소공녀>의 독특한 설정 안에서, 미스터리함과 사실성 두 가지를 모두 획득하는 과제를 수행해낸다. 기존 상업영화 위주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소공녀>는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이 영민한 배우는 지금의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에 꼭 맞게 소화해냄으로써 자신의 색깔을 입증해낸다.
<소공녀> 배우 이솜, "개성 있어 보이는 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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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도, 담배도. ‘취향’을 포기할 수 없어 대신 집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친구 집을 전전하는 20대 여성 미소. 전고운 감독은 미생물이 서식지를 찾아다니는 미소서식지(Microhabitat)의 그 미소에서 이 독특한 여성의 이름을 불러왔다. 집, 직장, 남편 같은, 또래의 여성에게 당연히 부과되는 ‘해야 할’ 것들에서 벗어난 미소의 선택을 통해서 전고운 감독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 처한 현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현재를 보여주고자 한다. 긍정적인 캐릭터와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더해진 결과, 영화는 갑갑한 현실에 갇히는 대신 차별화된 시각을 제공해준다. <소공녀>가 가진 차별점이자 대중과 호응할 수 있는 접점도 여기 있다. <소공녀>는 건국대학교 영화·애니메이션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한 전고운 감독의 장편 입봉작으로 <족구왕>(2013), <범죄의 여왕>(2015)을 만든 광화문시네마의 작품이다.
-<소공녀>의 소재는 어디에서
<소공녀> 전고운 감독 - 취향을 포기할 수 없는 여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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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구>라는 영화로 이루어진 만남이지만, 배우 이순재는 자신의 60여년 연기사를 정확한 기억력으로 들추어내며 원로배우가 들려줄 수 있는 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대화는 정치, 사회, 역사, 문화를 폭넓게 오갔다. 어떤 맥락의 대화에서도 배우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또렷이 읽혔다. 그 자부심과 책임감은 곧잘 후배들에 대한 쓴소리로, 개성을 잃어버린 고만고만한 한국영화에 대한 아쉬움의 토로로 이어졌다. 그에게 연기는 오락도 아니고 돈벌이의 수단도 아니다. 오롯이 예술이다. 그러니 그 예술을 탐구하는 자세에 타협은 없다. <덕구>에서 어린 손자, 손녀를 돌보는 시골의 늙은 할아버지 ‘덕구 할배’를 연기하는 일도 언제나 그렇듯 그에게 새로움을 창조하는 작업이었다. 이순재의 거칠한 맨 얼굴과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에 눈물이 맺히는 장면을 볼 땐 크게 심호흡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 순간에도 절제를 아는 대배우의 연기는 감탄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오늘(3월 6일) &
<덕구> 이순재, "배우는 자기가 다 울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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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4>에서 카이(왕카이), 마크(왕대륙), 차오(마천우) 세 주인공은 누가 맡더라도 원작의 적룡, 주윤발, 장국영과 비교될 게 당연하다. 원작 팬들이 추억의 클래식을 어떻게 훼손시킬지 쌍심지를 켜고 보는 가운데, 배우 왕카이는 잘해봐야 본전인 카이를 세 주인공 중에서 가장 먼저 맡기로 했다. 원작의 적룡에 해당되는 카이는 마크와 함께 밀수업을 하는 의리의 사나이다. 동생 차오가 경찰이 돼 자신과 다른 길을 가면서 형제 사이에 금이 가고,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적룡과 비교하기엔 이야기가 전혀 다르고, 적룡의 아우라에 비할 바도 못 되지만, 그럼에도 왕카이가 보여준 카이는 우직하다.
왕카이는 2006년 드라마 <한추>(寒秋)로 데뷔해 10년간의 무명 생활을 보낸다. 목소리가 좋고, 표준어 발음이 정확해 후시녹음을 직접 하는 몇 안 되는 배우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은 한국
<영웅본색4> 왕카이 - 기꺼이 망가트린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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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임민주 음악감독은 <씨네21>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신인 음악감독이며 언젠가 <씨네21>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적극성은 여전했다. “데모 음악을 가지고 영화사를 많이 돌아다녔다. 영화사 문이 잠겨 있으면 배우 프로필 모집함에다가 데모를 넣어두기도 했다. 그렇게 연락이 와서 작업한 작품이 <태양을 쏴라>였다. 이병우 음악감독님, 방준석 음악감독님, 심현정 음악감독님 등 여러 감독님의 작업실에 무작정 찾아가 인사드리기도 했다.” <괴물들> 역시 자기 홍보의 결과로 맡게 된 작품이다. <괴물들>은 학교폭력의 피해자 재영(이원근)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해자-괴물이 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임민주 음악감독은 “재영의 정서를 따라가되, 음악이 감정에 개입하지 않도록 미니멀한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의 레퍼런스로 삼은 건 데이비드 핀처의 <나를 찾아줘>(2014)이다. 멜로디
<괴물들> 임민주 음악감독 - 적극적으로, 보다 저돌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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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연서의 주목할 작품을 꼽으라면 영화보다는 몇몇 드라마의 캐릭터가 먼저 떠오른다. 아무래도 영화보다 드라마에서 먼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리라. 2012년에 MBC와 KBS 연기대상에서 각각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뒤, 2014년에는 <왔다! 장보리>로 그해 MBC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까지 수상했으니 드라마에 비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한 영화 작업이 못내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 이미 걸그룹 LUV로 데뷔해 인기의 단맛, 쓴맛을 모두 맛본 그이기에 스스로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활동해왔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동안 영화 <치즈인더트랩>의 홍설과 같은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홍설은 지금의 20대 여성 혹은 학생들의 솔직 담백한 일상을 대변하는 인물로 보기보다 꽤 마음의 심지가 단단한 캐릭터다. 단단한 마음이 홍설과 닮아 있는 오연서와 진심을 담아 연기한 이번 영화에 대해, 그리고 오연서 자신에 대해 나눈 이
<치즈인더트랩> 배우 오연서, "솔직할수록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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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상냥함이 못 견디게 좋지만, 또 그 애매함 때문에 상처받는 관계. <나라타주>는 정확한 연애의 감정으로 서로에게 돌진하는, 순정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들과 달리 무척 모호하게 감정을 쌓아가는 멜로영화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클로즈드 노트>(2007),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2016)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원작 소설에서 매력을 느낀 지점도 바로 그 불투명한 인물의 상태였다. 영화에서 연애란 이즈미(아리무라 가스미)가 과거를 회상하는 나라타주(내레이션과 몽타주) 기법을 통해 소환된다. 대사 대신 감정을 설명하는 것은 극중 언급되는 영화들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이웃집 여인>(1981), 빅토르 에리세의 <남쪽>(1982),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1955)의 흔적이 흩어져 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최근의 직선적인 영화들과는 다른 멜로를 만들고 싶었고, 그 정서를
<나라타주>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 연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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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무라 가스미는 많은 사람의 추억에 슬그머니 투영되는 배우다. 드라마 <아마짱>에서 ‘세이코짱 커트’(80년대 일본 최고의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의미함)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일본인들에게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을 닮은 소녀’였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를 한, 명문대에 가겠다는 무모한 도전에 뛰어든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사야카는 또 어떤가. 분명 골치 아픈 문제아지만 괜히 신경이 쓰이던, 어느 학교에나 존재했던 그 친구들이 아리무라 가스미의 얼굴로 소환됐다. 현재 일본 내에서만 11개 광고에 출연하고 있고, 1년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연말 프로그램 <NHK>의 <홍백가합전>에서 2년 연속 MC로 발탁됐다. <나라타주>는 아리무라 가스미가 가진 기존의 역량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즈미의 수줍은 모습은 그가 가장 잘해왔던 영역이다. 흥미로운
<나라타주> 아리무라 가스미 - 그 시절의 얼굴, 일본 여성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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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랑스러운 로맨스 사극 시나리오는 처음이었다. (웃음)” <궁합>의 오흥석 미술감독은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미술을 맡아 그해 2012년 청룡영화상, 대종상영화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미술상을 휩쓴 바 있다. 때문에 이후 어떤 사극영화도 선뜻 하겠다고 나서기 부담스러웠다. “당당하게 말해 모든 걸 쏟아부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여러 현대극을 작업하면서도 사극만은 다시 도전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궁합>의 시나리오는 드물게 “여성 캐릭터가 극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며 일종의 로드무비형태의 진행도 엿보이는” 지점이 많은 사극이었기에 “<광해, 왕이 된 남자> 때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오흥석 감독이 발견한 <궁합>의 핵심은 ‘색깔’이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오방색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의 색깔을 찾아 캐릭터와 공간 등에 입혀가며 이야기의 입체감을 돋보이게 하려 했다. “씩씩하고
<궁합> 오흥석 미술감독 - 색(色)으로 살려낸 공간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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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과의 ‘취향 토크’는 조금씩 예상을 빗나갔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예술영화를 수입하고 있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첫키스만 50번째>. 처음에는 웃긴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슬프고, 또 보니까 안에 드라마가 있어서 가끔 꺼내서 본다. VHS가 보편적이던 시절에는 <나인 하프 위크>의 미키 루크에게 반해서 그의 출연작을 모두 모았고, 한창 추리소설을 좋아할 때는 정신의 학쪽만 읽다가 호텔로 넘어가고 했단다. 그러니 그가 이따금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에 출연한다거나 <군함도>가 끝나자마자 한국영화계에서 거의 씨가 말랐던 멜로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선택한 것이 그리 의외의 일은 아닐 것이다.
-동명의 원작 일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의 타쿠미가 그랬던 것처럼, 우진은 매사에 어설프고 건강이 좋지 않으며 남들이 챙겨줘야 하는 남자다. 소지섭이란 배우가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와는 좀 다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소지섭 - 첫사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