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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003년 당시 김상경의 필모그래피는 두고 두고 회자될 만하다. 첫 주연 영화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2002)이고, 그다음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에 집중하기보다 종종 드라마에 출연하며, 과거의 기세를 이어가지 않은 김상경의 이후 필모그래피가 충분히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십수년간 이어진 그의 행보를 모아보면 쉬운 예상을 벗어나기에 되레 신선한 면이 있다. <내 남자의 로맨스>(2004) 같은 로맨틱 코미디나 사극 드라마 <대왕 세종>(2008), 주말극 <가족끼리 왜이래>(2014)에 어떤 일관성이나 두드러지는 파격은 없다. 하지만 <생활의 발견>과 <살인의 추억>으로 이어지는 전성기와 만나면 재미있는 돌출이 된다. 국방부 방산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 박대익 중령을 연기한 <1급기밀>로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1급기밀> 배우 김상경, "보수와 진보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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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빛으로 타오르는 웨스트 할리우드의 크리스마스이브. 포주이자 애인인 남자 대신 마약 소지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신디(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스)를 맞아주는 것은 단짝 알렉산드라(마야 테일러)다. 두 트랜스우먼의 생계 수단은 매춘이다. 알렉산드라의 실수로 남자친구가 바람피운 사실을 알아챈 다혈질 신디가 종일 상대 여자를 수소문하며 폭주하는 동안, 가수 지망생 알렉산드라는 저녁 공연을 홍보하는 전단을 돌린다. 여기에 알렉산드라의 단골인 아르메니아계 택시 기사 라즈믹(카렌 카라굴리안)의 사연이 더해진다. 201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아이폰 5S로 촬영한 와이드 스크린 영화라는 화제성을 넘어 높은 완성도로 찬사를 모은 <탠저린>은, 세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서야 한국 개봉관에 도착했다. 신작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2017년 칸을 시작으로 호평받으며 바쁜 시상식 시즌을 보내고 있는 숀 베이커 감독은 기자의 질문에 동영상으로 답변을 보내왔다.
-시나리오를 본격적
<탠저린> 숀 베이커 - 마이너리티 그룹과 하위문화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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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 살어리랏다>는 대한민국 40대 가장의 모습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대학 시간강사인 중년 남성 오준구는 배우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앞에 두고 갈등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건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아니, 그건 나이보다는 차라리 대한민국이라는 상황의 문제에 가깝다. 5천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이 특별한 건 이 땅에 사는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고민들을 제대로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감독이 직접 보고 느낀 현실이라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반도에 살어리랏다>로 장편 데뷔를 한 이용선 감독은 4편의 단편애니메이션을 연출한 베테랑이다. 전작인 단편 <화장실 콩쿨>로 2015년 11회 인디애니페스트에서 독립보행상, 관객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좀더 확장된 이야기로 돌아온 작품이 바로 <반도에 살어리랏다>다. <반도에
<반도에 살어리랏다> 이용선 감독 - 한국에서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어른을 위한 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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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의 외형적인 규모는 성장하는 듯 보이지만 내실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 사실이다. 70, 80년대 전세계 서브컬처를 뒤흔든 아니메의 파괴력은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산업적으로는 실사영화의 흥행 순위를 가볍게 뛰어넘을 만큼 안정적이기도 하다. 만약 일본 애니메이션에 여전한 저력이 있다면 방점은 규모가 아닌 다양성에 찍힐 것이다. TV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극장판이 흥행하는 가운데 오리지널 극장판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으며 개중에는 독특한 개성으로 표현의 영토를 넓히는 작품도 적지 않다. 유아사 마사아키는 굳이 구분하자면 작가주의 경향의 최전선에 있는 감독이다. 2004년 장편 데뷔작인 <마인드 게임>은 독특한 곡선, 강렬한 색채, 움직임을 중시한 감각적인 이미지 등으로 전세계 애니메이터들에게 유아사 마사아키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2010), <핑퐁 더 애니메이션>(20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그림은 세계에 대한 감각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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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을 너무 빨리 들어가게 돼서 스스로도 놀랐다. (웃음)”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의 기록적인 성공 이후 김지원의 행보는 꽤 조심스러웠다. 해를 넘긴 고민 끝에 선택한 드라마 <쌈, 마이웨이>(2017)는 결국 김지원을 확실한 스타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러니 그가 드라마가 종영한 지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3>) 촬영에 들어갔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월영’은 작품 선택에 신중을 기하던 김지원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한 캐릭터다. 월령은 김민(김명민)과 서필(오달수) 앞에 나타난 미스터리한 여인으로, 두 남자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전편의 여성 캐릭터들보다 서사를 중심에서 이끌고, 장르적 연기는 물론 굵직한 감정 신까지 다양한 얼굴을 보여줄 기회가 있다. 김지원은 인터뷰 내내 표현을 조심스럽게 고르면서도 영화에 대해 말할 땐 설렘이 묻어나는 표정을 보였다.
-첫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김지원 - 배우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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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일의 명탐정 김민(김명민) 옆에는 김민의 빈틈을 채워주는 ‘서필’(오달수)이 있다. 무엇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최고의 조력자 서필은 어느덧 <조선명탐정> 시리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상수가 되었는데, 서필의 존재감이 이만큼 격상될 수 있었던 건 무엇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 오달수의 맛깔나는 연기 덕이 컸다.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에서도 오달수는 행동 하나,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웃긴다. “최상의 팀워크”를 확인할 수 있다는 3편. 오달수의 코미디도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신과 함께-죄와 벌>(이하 <신과 함께>)이 천만을 넘기면서 필모그래피에 또 한편의 천만 영화를 추가했다. 더불어 특별출연을 자청한 <1987>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필모그래피에 흥행작이 많은 이유는 단지 다작을 해서가 아니라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좋아서일 것이다.
=두편 다 잘될 것 같았다. <신과 함께>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오달수 - 최상의 팀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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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까지 사랑받으며 시리즈를 지속해온 <조선명탐정> 현장은 김명민에게 이제 더없이 익숙한 공간이다. “가족 같고 호흡이 잘 맞아서 하고 싶은 연기를 다 할 수 있다. 다른 현장에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이곳에 오면 깨끗해진다.” 그러고 보면 2011년과 2014년 그리고 3편이 나온 2018년. 그사이 김명민은 <연가시>(2012), <간첩>(2012), <판도라>(2012), <브이아이피>(2016) 등 규묘가 큰 액션, 스릴러 장르에 주로 매진해왔다. 3~4년 간격으로 만들어진 시리즈의 사이사이 김명민의 필모그래피는 그렇게 한마디로 ‘치열했다’. 허당기 있고, 여자 밝히는 탐정 ‘김민’이 보여주는 편안한 코믹은 관객뿐 아니라 김명민에게도 반갑다.
-오늘 커버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4편의 영감이 떠올랐다. 조선 명탐정이 잠깐 구한말로 가서 슈트 입고 활약하는 SF 장르도 가능하지 않을까.
=타임머신? 에이, 그런 정도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김명민 - 치유가 되는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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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편이다.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이 개봉(2월 8일)을 준비하는 걸 보니 명절이 다가온 것이 실감날 정도로 이 시리즈는 이제 한국의 명절을 대표하는 히트 시리즈다. 김명민-오달수 콤비의 찰떡같은 호흡은 커버 촬영장에서도 여전했다. 나이는 물론이고 경력도 꽤 터울이 지는 김지원 역시 이제 편안하게 이들과 어우러진다. 다른 현장에서 힘든 마음도 이 촬영장에 오면 정화된다는 김명민과 팀워크가 최상이라는 게 3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자부하는 오달수, 그 사이에서 복합적인 인물 ‘월영’을 연기하면서 고민이 많았다는 김지원. 이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분위기를 보니 이번 영화의 ‘흥’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김명민·오달수·김지원 - 명불허전(名不虛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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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찰리 플러머와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대체 어떤 관계인가? 두 배우는 리들리 스콧의 신작 <올 더 머니>에 석유 재벌 폴 게티와 그의 손자 폴 게티 3세로 함께 출연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성을 가져서 종종 가족으로 오해받는 두 배우는 사실 선후배 사이에 불과하다.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캐나다 출신의 배우인 반면, 열여덟살의 신인배우 찰리 플러머는 배우인 어머니와 TV프로듀서로 활동하는 아버지를 둔 전형적인 뉴요커다. <올 더 머니>는 당분간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부패한 보안관 일라이 톰슨의 아들 마이클, 드라마 <그래나이트 플랫>에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려 하는 경찰서장의 아들 티미 샌더스 역으로 이름을 알렸던 찰리 플러머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을 듯하다. 극중에서 폴게티 3세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은 “왜 이렇게 말랐냐”다. 나이와 성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고 파
<올 더 머니> 찰리 플러머 -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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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선 감독님이 걸어오신 길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다.” <1급기밀> 최강혁 프로듀서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고 홍기선 감독의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서 프로듀서로 함께 데뷔했던 그다. 2016년 12월 15일 홍기선 감독이 <1급기밀> 후반작업을 앞두고 돌연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거목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1급기밀>은 최 프로듀서와 홍 감독이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이후 오랜만에 만나 작업한 영화다. 2008년, 최 프로듀서는 홍 감독으로부터 <1급기밀>의 당시 제목인 ‘별이 되어 떠난 님’ 트리트먼트를 받았지만 “군비리 사건이라는 소재가 부담이 되어 거절”했다. 6개월 뒤에 홍 감독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강혁아, 내가 나이를 먹어 함께할 나이 먹은 PD가 없다. 또 더 많은 소통을 하면서 만들고 싶고,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고 하
<1급기밀> 최강혁 프로듀서 - 정의는 힘이 없어도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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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이 국가폭력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였다면 <공동정범>은 국가폭력을 성찰하는 다큐멘터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인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랐다.” 이혁상 감독의 얘기다. <두 개의 문>(2011)의 후속작 <공동정범>은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망루 농성을 벌이다 구속·기소된 철거민 5명(이충연·김주환·천주석·지석준·김창수)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규명하려 한다. 망루 안에서의 진실과 별개로, 김일란 감독과 이혁상 감독은 그들의 기억을 조립하는 과정에서 철거민들의 갈등을 본다. 용산지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씨와 용산에 연대 농성을 갔다가 구속된 철거민들은 출소 이후 죄책감과 원망과 의심 속에서 멀어진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논쟁적인 질문을 꾸준히 던져온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의 두 감독은 <공동정범>을 통해 질문한다. 우리가 보
<공동정범> 김일란·이혁상 감독, "투쟁에서 배제당했던 ‘우리’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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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구석이라곤 요만큼도 없어 보이지만 어딘지 닮았다. 연상호 감독은 뭘 찍어도 연상호스럽게 찍는다. 정유미 배우는 어떤 역할을 소화해도 정유미라는 특유의 아우라를 입힌다. 두 사람은 마치 형용사처럼 무언가를 묘사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함께하면 편하고 즐거운가보다. <부산행>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연상호 감독과 정유미 배우는 같이 하는 게 당연했다고 말한다. “감독님한테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좋으니 뭐든 시켜달라고 부탁드렸다. 악역이 하나 있다고 해서 그럼 더 좋다고 했다. (웃음)” 정유미 배우는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염력>에서 홍 상무 역할을 맡았다. 건물을 철거하려고 상인들을 몰아내는 배후의 조종자다. “메인 빌런인 셈인데 개인적으로 악역을 좋아한다. 홍 상무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아니 유미씨가 재미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주었다.” 홍 상무는 분량으로 치자면 딱 3신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염력>의 핵심 캐릭터라 할 만하다. 아
<염력> 연상호 감독·배우 정유미 - 1%의 어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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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이중에서 저희가 가장 오래 알고 지냈고 또 친할걸요? (웃음)” 극중에서 사이가 나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모였다고 농담 섞은 인사를 건네자, 박정민이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박정민과 김민재는 각각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09학번과 06학번으로, 서로의 공연을 보러가기도 했던 선후배 관계다. <몽유도원도>라는 단편영화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적도 있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연기할 필요가 없었는데.”(김민재) “내가 형한테 많이 맞았지.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고.”(박정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푸는 모습은 <염력>에서 두 사람이 맡은 역할과도 닮아 있다. 그들은 <염력>의 윤활유 같은 존재다.
강제 철거 명령에 저항하는 치킨집 사장 루미(심은경)와 10년간 떠나 있다 돌아온 아빠 석헌(류승룡)의 이야기를 그린 <염력>에서 박정민은 루미를 돕는 인권변호사 김정현을 연기한다. 열과 성을 다해 상가
<염력> 배우 박정민·김민재 - 우리 이웃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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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났다. 류승룡과 심은경은 9년 전 <불신지옥>(2009)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퀴즈왕>(2010),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만났고 <서울역>에서는 함께 목소리 출연을 하기도 했다. 연상호 감독의 <염력>에 이르러서는 못난 아빠와 억척같은 딸의 정을 나누게 됐다. 상상력이 가미된 SF 소재의 염력, 즉 초능력을 다루고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연상호 감독은 심은경이 <부산행>에서 깜짝출연을 할 때 이미 <염력>의 젊은 창업가 신루미라는 캐릭터에 관한 구상을 처음 그녀에게 들려줬다. 당시엔 구두계약만 맺은 상태였는데, 시나리오를 펼쳐보니 “멋있고 화려한 영화가 아니라 투박한 액션과 현실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이야기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 상상하기 힘든 작품”이었다고.
그래서 특히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반면 류승룡은 상대역이 심은경이라는
<염력> 배우 류승룡·심은경 - SF 아빠와 리얼리티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