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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자라는 소재를 상업영화의 영역 안으로 끌어와 웃음과 감동을 끌어낸다. 무거운 소재를 코믹으로 풀어내기까지는, ‘소재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이 ‘어려운’ 기획 뒤에 명필름과 함께 영화의 공동 제작사로 참여한 영화사 시선의 강지연 대표가 있다. 처음 원안을 쓴 5년 전부터 개봉 후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낸 현재에 이르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작품을 만든 강지연 대표에게 <아이 캔 스피크>의 제작과정을 들어보았다.
-소재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코믹 장르와 접목해 대중적인 호응을 높인 기획이다. 기존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영화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접근 방식이었는데.
=그 부분에 우려의 말이 많았다. 극단적인 말로 만류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코믹 톤 때문에 자칫하면 소재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큰 작품이었다. 이런 시선들 때문에 이후 투자받고 영화를 만들기까지 쉽지 않았
<아이 캔 스피크> 강지연 영화사 시선 대표 - 무거운 소재로 쉽게 마음을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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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이목구비, 그중에서도 선한 눈빛이 주는 힘이 커서 김래원이 연기한 캐릭터엔 인간미가 흐른다. <해바라기>, <마이 리틀 히어로>(2012), <강남1970>(2014), <프리즌>(2016)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능글맞거나 폭력적이거나 위악적인 순간에도 김래원의 연기엔 언제나 인간적 동의를 구하는 순간들이 있다. 철저히 감정을 절제하며 연기해야 했던 <희생부활자>에선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죽은 엄마(김해숙)가 살아 돌아와 복수하려는 대상인 검사 아들 진홍은 김래원이 그간 연기해온 캐릭터들과 달리 차갑다. 그 새로운 캐릭터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기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김래원은 조심스레 단어를 골라 말했다.
-사진촬영하는 걸 지켜보니 김해숙 배우의 카리스마가 엄청나더라. 현장에서 그런 기운을 받으며 함께 연기하면 연기할 맛도 나고 긴장도 될 것 같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워낙 익숙해서
<희생부활자> 김래원 - 기존의 김래원을 배제하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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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숙이 연기하는 인물은 대부분 누군가의 엄마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엄마들은 누구의 무엇이란 설정을 뛰어넘는 강력한 개성을 가진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엄마의 숫자만큼 매번 차별화되게 연기해야 한다”라는 배우의 믿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해바라기>와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 이어 <희생부활자>까지 김래원과 세번 모자 관계로 조우했지만 모성을 실현하는 방식은 양극단에 서 있다. 자신의 친아들을 죽인 양아치 오태식(김래원)을 용서하고 기꺼이 양아들로 거둬들이거나(<해바라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인을 둔 아들을 포용하던(<천일의 약속>) 그가 자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살아 돌아왔다.
-7년 전에 사망했다가 부활하는 비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했다. 시나리오에서 “신진대사가 없는 코마 상태”라거나 “원망과 복수만 남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묘사된다. 이런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나
<희생부활자> 김해숙, "엄마는 엄마다"라는 말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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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진 투숏이라니. 김해숙이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분위기를 리드하면 김래원은 차분히 보조를 맞춘다. 서로의 에너지가 조화로우니 어떤 포즈를 취해도 어색함이 없다. <해바라기>(2006), 드라마 <천일의 약속>(2011), <희생부활자>(2017)까지 세 번째 모자 관계로 호흡을 맞춰온 터라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한없이 가볍고 따뜻하다. 그러나 곽경택 감독의 <희생부활자>에선 이들의 모자 관계가 초현실적 상황 속에서 복잡하게 꼬인다. <희생부활자>는 아들(김래원) 하나만 바라보며 희생적 삶을 살아온 엄마(김해숙)가 그 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다. 살기 어린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와 냉철한 태도로 엄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희생부활자> 김해숙·김래원 -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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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에서 위안부 피해자 나옥분 할머니와 호형호제하는 슈퍼주인 진주댁은, 전반부 코믹과 후반부 감동을 책임진다. 정감 있는 슈퍼주인이라는 ‘짐작 가능한’ 캐릭터의 선입견을 깨고, 감동을 더한 것은 염혜란이라는 배우의 공이 크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은탁(김고은)을 몹시도 괴롭히는 못된 은탁 이모로 눈도장을 찍었다. “<씨네21>에 실리는 오디션 정보를 보고 오디션 엄청 보러 다녔다. 공연전단 나눠주려 이 건물(<씨네21> 스튜디오가 있는 <한겨레> 본사 건물)도 숱하게 왔는데, 여기서 인터뷰를 하게 되다니…”라며 감회를 전한다.
-나옥분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안 진주댁이 나옥분을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샘이 폭발한다.
=찍을 때도 그랬는데, 시사 때 보니 그 장면의 느낌이 더 커져 있더라. 정말 어려웠다. 증언집을 많이 봤는데, ‘오히려 나는 이걸 몰라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알고
<아이 캔 스피크> 염혜란 - 우는 사람은 진주댁 하나였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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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은 극중에서 연극 <다크라이프>에 트랜스젠더 역으로 캐스팅된 배우 송준(남연우)의 심리 변화를 좇아가는 작품이다. 영화 초반 송준은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친구에게 인권을 운운하며 깨어 있는 사람인 척하지만, 정작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송준의 사연을 통해 영화는 이해한다는 말에 숨은 위선을, 진정성이란 말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가시꽃>(2012)으로 제1회 들꽃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남연우는 <분장>을 통해 첫 장편 연출에 도전했다. 초저예산으로 완성한 작품이지만, 송준의 심리에 밀착해 밀도 높은 감정선을 쌓아가는 덕에 만듦새는 단단하다. 예고편도 직접 작업했다는 남연우 감독 겸 배우는 인터뷰 당일에도 <분장> 사운드트랙의 뮤직비디오 편집을 하다 달려왔다며 작업용 노트북을 들고 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로 영화가 좋은 반응을 받아왔다. 같은 해
<분장> 남연우 감독 - 온전히 한 인물을 집요하게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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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예쁘다. <시인의 사랑>에서 두 가지 명제는 충돌하지 않는다. 대개 미술이 칭찬받는 영화들은 인위적으로 꾸민 세트나 촘촘한 장식 등으로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류선광 감독은 미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적인 미술을 구현하는 가장 단순한 방식이 있다. 주어진 조건하에서 가능한 한 사실을 재현하면 된다. 전구에 빛이 들어오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빛이 들어오게 하면 된다.” 구체적인 방식보다 태도의 문제다. <시인의 사랑>은 저예산영화의 단점을 극복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저예산이기에 가능했던 장점들을 살렸다. “상업영화는 의무적으로라도 보기 좋은 미술을 구현해야 할 때가 있다. 예산이 적은 영화는 있는 걸 그대로 살리려 노력한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 리얼한 화면이 나오기도 한다.”
류선광 감독은 1998년 <카라> 미술팀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들였다. 애초에 특수효과 중 하나인 매트페인팅(실사 촬영이 어려운 영화 속의
<시인의 사랑> 류선광 미술감독, “진짜를 구현하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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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랑>의 현택기는 일견 양익준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캐릭터다. 현택기는, 의사에 따르면 정자 수도 적고 그나마도 움직일 의지가 없는 정자감소증에다가 본업인 시를 쓸 때도 절실함 없이 너무 꽃노래만 부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력하게 아기를 원하는 강순(전혜진)과 관계를 맺을 때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만큼 권태에 빠져 있다. 잔잔하던 택기의 인생에 파문이 이는 것은 도넛 가게에서 일하는 소년 세윤(정가람)을 알고부터다. 양익준은 <똥파리>(2008)를 찍고 개봉하는 과정에서 모든 에너지를 써버려 남은 게 없게 됐다고, 그래서 극중 택기처럼 성감이 없어졌다고 느낀 시절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니까 <시인의 사랑>은 <똥파리>에서 그가 보여준 강렬한 모습에 가려져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양익준의 얼굴이면서, 그가 예술가로서 가진 현재진행형의 고민이 겹쳐 보이는 작품이다.
-사실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시인의 사랑> 양익준, "불현듯 영감으로 다가올 무언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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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다크 지역에 사는 9살 소년 앙뚜는 티베트에서의 전생을 기억하는 린포체다. 린포체는 티베트 고승이 환생한 존재로,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린다. 티베트 사원의 제자들이 찾아와야지만 제 사원을 갖고 앙뚜가 린포체로 살아갈 수 있는데 중국의 티베트 탄압이 거세지면서 티베트로 향하는 길도, 나오는 길도 막혀버렸다. 린포체로 인정받았지만 린포체로 살아가지 못하는 앙뚜를 헌신적으로 모시는 건 노승 우르갼이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이 두 사람, 앙뚜와 우르갼의 특별한 관계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아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다는 문창용 감독은 오랫동안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운명처럼 앙뚜와 우르갼을 만나 첫 영화를 찍게 된다. 종교적, 문화적 주석을 다는 대신 앙뚜와 우르갼의 인간적 모습에 집중하는 문창용 감독의 시선은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오롯이 피어나는 휴머니즘을 놓치지 않는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 대상 등 해외 영화제에서의
<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 감독 - 눈빛을 잊을 수 없어 다시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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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에도’ 문성근이 총대를 멨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 82명을 대표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겨울 한국 사회를 수놓은 촛불집회를 통해 “내가 움직여야 세상이 바뀐다”는 진리를 깨닫고 “피해자들이 고소를 하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으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그는 문화·예술인 82명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수소문해 함께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박찬욱, 김미화, 이외수, 김여진, 문소리, 김규리, 명계남 등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기로 했다. 검찰조사를 받은 다음날인 9월 19일 오후 일산에서 문성근을 만났다.
-7시간 동안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쟁점이 무엇이었나.
=주로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검찰에 전달한 자료(‘MB 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건’)를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내 경우에는 조사 범위가 2011년으로 한정돼 있었다. 또 하나, 국정원이 블랙
문성근 단독 인터뷰 - “영화인, 블랙리스트 고발 함께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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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의 세계에 좋은 아버지, 나쁜 아버지가 있다면 에이전트 위스키(페드로 파스칼)는 나쁜 아버지로 분류될 것이 분명한 인물이다. 위험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는 미국 배우 페드로 파스칼이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올해 42살의 이 배우는 <킹스맨: 골든 서클>에서 영국식 매너로 충만했던 <킹스맨>의 세계에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연기하는 에이전트 위스키는 킹스맨의 ‘미국 사촌’ 스테이츠맨의 일급 요원이다. “한눈에도 까불다가는 큰 코 다칠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 이것이 위스키라는 캐릭터에 대한 매튜 본과 페드로 파스칼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물론 위험해 보이는 남자가 되기 위한 길은 쉽지 않았다. 카우보이 스턴트 전문가에게 채찍과 올가미, 총을 사용하는 법을 제대로 배워야 했고, 빠르게 회전하는 곤돌라 속에 들어가 균형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하지만 4년 전까지만 해도 TV의
<킹스맨: 골든 서클> 페드로 파스칼 - 기회를 잡아챈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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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트리플로 돌아가다가 한번에 전복되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림. 원신연 감독이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김민수 무술감독에게 요구한 가장 중요한 액션 신은 바로 김병수(설경구)의 기억을 망가뜨린 17년 전의 차량 전복사고 장면이었다. 눈이 쌓인 한겨울의 뚝방길, 김병수의 두뇌에 각인된 그날의 사고는 영화의 베스트컷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차량 전복 신이야 경험이 많다. 그런데 단 한번의 기회에, 세번 돌아서 정면으로 착지한다는 건 타이밍과 계산이 정확해야 하는 싸움이었다.” “마치 CG를 쓴 것 같은” 이 장면은 김민수 무술감독과 서울액션스쿨 팀원들, 그리고 설경구 대역으로 차량에 탑승한 권귀덕 무술감독이 장비 없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김병수가 혈기왕성한 청년 민태주(김남길)와 엉켜 붙는 장면도 영화에서 중점을 둔 액션이었다. “UFC 경기에서 서로 붙어서 하는 컨셉을 기본으로 했다.” 손의 힘 하나로 연쇄살인을 해온 김병수의 기술과,
<살인자의 기억법> 김민수 무술감독 - 현혹하기보다는 드라마에 호응하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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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가장 따뜻한 감정을 동력으로 삼는 인간적인 소동극. 거기에 슴슴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유머. <YMCA 야구단>(2002),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스카우트>(2007),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쎄시봉>(2015)까지, 김현석 감독의 작품이 품고 있는 요소들이다. 김현석 감독이 <쎄시봉> 이후 2년6개월 만에 선보이는 <아이 캔 스피크>에도 김현석 감독 특유의 유머와 화법과 인간애가 담겨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시장에서 옷수선 가게를 하는 민원왕 나옥분(나문희)이 구청 공무원 박민재(이제훈)에게 악착같이 영어를 배우면서,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말을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다. 알려졌다시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극영화지만, 웃으면서 (사실은 꽤 많이 울게 되지만) 아픈 과거에 접속하게 하는 휴먼 코미디다. 직접 쓴 각본은 아니지만 김현석 감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 "배우들을 믿고, 그 장면의 진실함을 믿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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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랑>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시인 택기(양익준), 그런 철없는 남편을 부양하며 적극적으로 현실을 살아내는 아내(전혜진), 무욕의 택기에게 특별한 감정을 안겨주는 소년(정가람)의 삼각관계를 그린다. 희극과 비극을 능란하게 오가는 이 작품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김양희 감독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삶의 일면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무엇보다 서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영화 고유의 분위기를 지켜낸 점이 인상적이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김양희 감독을 서울에서 만났다. 데뷔작 <시인의 사랑>은 제42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6년 전 생활 터전을 제주도로 옮겼다. 오늘도 제주에서 올라왔다고.
=제주 생활 6년차다. 사는 곳은 애월이고 서귀포에서 헌책방을 하고 있다. 원래는 작업실로 쓰던 사무실인데 작업이 뜸해지면서 책방으로 꾸몄다. 3개월 전에 책방 문을 열었는데 하루에
<시인의 사랑> 김양희 감독 - 삶이 영화와 맞닿으면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