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영화 <바라나시>는 죽음을 준비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지켜보는 아들의 이야기를 사려깊게 그린 영화다. 배경은 순례자의 도시로 유명한 인도의 바라나시. 경쾌한 춤과 노래 대신 사실적인 캐릭터와 보편적인 감정, 따스한 기운이 영화를 채운다. 배우 아딜 후세인은 영화의 보편성과 따스함을 책임진다.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서 파이의 아버지로 출연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딜 후세인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자국영화와 합작영화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제6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일출>이란 영화로 방문한 이후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파르토 센굽타 감독의 <일출>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지원을 받아서 포스터 출력 비용을 마련했던 기억이 난다. 사정이 어려워 감독이 직접 크레딧 타이틀을 만들 정도였는데, 영화가 부산에서 상영되고 평단의 평이 꽤 좋아 뿌듯했다. 그래서 부산
<바라나시> 배우 아딜 후세인 -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
김재범 감독은 박래전 열사와 같은 학교 4년 후배였지만, 생전에 얼굴을 본 적은 없다. 그가 아직 군대에 있던 1988년 6월 4일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박래전은 “광주는 살아 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친 후 분신했다. 김재범 감독은 학교 선배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박래전의 10주기와 20주기 기념사업 때 후배로서 조금씩 참여를 해오며 열사에 대해 알아갔다. 어느덧 박래전 열사의 30주기를 앞두게 된 그는 ‘래전이 형이 살았던 생애의 두배 이상을 살게 됐는데 그동안 내가 뭘 했지?’라는 생각에 전보다 더 열심히 추모 사업을 준비했고, 그 결과 열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겨울꽃>까지 만들게 됐다. “박래전 열사가 우리에게 자신이 다 하지 못했던 것을 하라는 숙제를 남기고 간 것 같다”는 김재범 감독을 만났다.
-박래전기념사업회에서 박래전 열사 30주기 추모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도 만들게 됐다고.
<겨울꽃> 김재범 감독 - 평범한 이의 절박한 시대정신
-
<오목소녀>의 이바둑(박세완)에겐 뼈아픈 도피의 역사가 있다. 이름부터 타고난 바둑 신동이었으나 천재를 향한 찬사 앞에서 실패 공포증이 생겨버린 것. “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가 하얘지는 바둑은 어느덧 한쪽 옆구리에 효자손을 끼고 오목두기를 즐기는 기원 아르바이트생이 됐다. 오목이 스포츠이긴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이라면 <오목소녀>의 풍경은 꽤 센세이셔널하게 다가올 테다. 백승화 감독은 경보에 목매던 만복이의 성장 스토리(<걷기왕>(2016))를 거쳐 어느덧 승리가 목적인지 월세 벌이가 목적인지 분간이 힘든 이바둑의 오목 선수 훈련기를 그린다. 세상살이에 초연한 초등학생 조영남(이지원)과 바둑의 라이벌 김안경(안우연)도 청춘의 애잔한 귀여움을 더한다. 마이너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에 대한 두 번째 작품을 만든 백승화 감독은 SK 브로드밴드 옥수수앱 공개와 스크린 상영을 동시에 진행하며 주류
<오목소녀> 백승화 감독 -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좋다
-
“운이 좋아요.” <데드풀2>의 팀 ‘엑스포스’ 면접에서, 당신의 능력이 무엇이냐고 묻는 데드풀에게 도미노(재지 비츠)는 이렇게 말한다. 운은 능력이 될 수 없다고 데드풀은 응수하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도미노의 말에 곧 동의하게 될 거다. 운이 최고의 능력이라는 걸. 도미노가 가는 곳이라면 총알이 빗나가고, 돌진하던 차가 멈춰서며, 날아다니던 쇳덩이는 하필 적에게로 떨어진다. 이처럼 모든 불운 사이로 유쾌하고 당당하게 걸어나가는 도미노의 모습은 <데드풀>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흑인 여성들은(대중문화에서) 대개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해방감을 느낄 특권을 갖지 못한 거다. 그렇지 않나?” 도미노를 연기한 배우 재지 비츠는 아프리카계 미국/독일 여성으로서 주류 슈퍼히어로영화가 묘사하는 흑인 여성의 모습에 다채로움을 더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원작 코믹스에 대한 <데드풀2>의 멋진
<데드풀2> 재지 비츠 - 존재 자체가 러키!
-
-
<버닝>은 CGV아트하우스가 꾸려온 신인감독 중심 라인업에서 비죽 솟아나온 영화 중 한편이다. 파인하우스필름이 제작하고 CGV아트하우스(전 무비꼴라쥬)가 배급한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2014)를 통해 맺은 지속적인 파트너십이 이어진 결과였다. 강경호 사업담당의 손에 <버닝>의 시나리오가 쥐어져 있을 무렵 영화계 안팎의 기대도, 회사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8년 만에 공개되는 이창동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규모에 걸맞은 투자 유치에 대한 불안도 있었지만, 감독님의 연출력에 대한 굉장한 기대가 있었기에 흔들림이 없었다”. 여기엔 택배 기사로 일하는 가난한 청년 종수(유아인)를 중심으로 미스터리가 파생되는 <버닝>이 “요즘 20대들의 삶과 인간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관객과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리란 예측도 포함됐다.
아트하우스 전용관을 포함해 일반 상영관으로 확대 개봉한 <버닝>은 개봉일인 5월 17일 72
<버닝> 강경호 CGV아트하우스 사업담당 - 관객과 예술영화의 긴밀한 접점을 찾는다
-
영화가 배우의 실제 삶과 너무 밀접해서, 배우가 곧 영화가 되는 작품들이 있다. <판타스틱 우먼>의 트랜스젠더 가수를 연기한 다니엘라 베가처럼. 마리나는 동거하던 남자친구 오를란도(프란시스코 리예스)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이후 이를 온전히 슬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성소수자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용의자 취급을 받고,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온갖 폭력을 견뎌내야 한다. 마리나가 극중에서 받아야 했던 모욕처럼, 다니엘라 베가 역시 10~12살에 처음으로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의 차별을 경험했다. 여성의 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에 남학교를 다녔던 그는 주변 학생들로부터 엄청난 폭력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절을 거치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소리에 더 민감했던 그의 할머니는 그의 직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리’에 집중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힌 성장배경
<판타스틱 우먼> 다니엘라 베가 - 오직 내가 되는 연기
-
“<박하사탕>으로 데뷔했을 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 후배들이 나 무서워하는 게 어이가 없지. (웃음) 그땐 겁도 많고 부끄러운 것도 많았던,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애였는데.” <박하사탕>(1999) 개봉 이후 18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문소리는 까마득한 선배 배우가 됐고, 스크린뿐만 아니라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배우가 됐고, <여배우는 오늘도>(2017)를 연출한 감독이 됐고, TV프로그램 <전체관람가>에 출연해 단편영화를 찍은 동료 감독들에게 날카로운 평을 날리는 진행자로도 활약하기에 이르렀다. 연극, 무용 등 공연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인 덕에 최근엔 제37회 국제현대무용제(이하 모다페, 5월1 6~27일)의 홍보대사로도 위촉됐다. 부쩍 다방면에서 얼굴 볼 일이 많아진 것 같다고 하자 문소리는 “어떤 성과나 남들의 평가에 상관없이, 그동안 공부해왔고 애정을 가져왔던 것들을 가지고 재밌게 이것저것 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제37회 국제현대무용제 홍보대사 문소리, "쉰살, 예순살 넘어서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
-
“환대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질문이 필요했다.” <종로의 기적>(2010), <공동정범>(2016)의 이혁상 감독에게 이제는 프로그래머라는 직함 또한 무척 자연스럽다. 지난해에 이어 5월 18일 개막한 제6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역시 영화제의 유일한 프로그래머인 이혁상 프로그래머의 든든한 존재감에 힘입는 중이다. 디아스포라영화제의 본뜻에 더욱 첨예하게 다가가려는 노력과 동시대의 목소리 안에 산재하는 모두의 디아스포라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올해는 더욱 또렷한 공명을 자아낸다. 공안사범으로 쫓겨 일본으로 도망친 청년이 우연히 재일조선인들의 마을에 스며드는 영화 <조선의 태양>을 준비 중이기도 한 이혁상 프로그래머에게 영화제 안과 밖, 감독과 프로그래머, 개인과 사회를 넘나드는 다양한 고민을 청해 들었다.
-먼저 지난해로 돌아가보자. 처음 프로그래머직을 수락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강석필 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의 역할이 컸는데, 내가 그분의 스탭 제의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 -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를 찾고 싶다
-
명랑만화의 주인공 같은 올망졸망한 이목구비로 과장된 표정 연기를 하고, 설렁설렁 팔자걸음을 걷고 대충대충 오목을 두는 박세완의 모습은 시트콤 <뉴 논스톱>(2000)의 장나라와 <걷기왕>(2016)의 심은경을 떠올리게 한다. <오목소녀>에서 박세완이 연기하는 이바둑은 한때는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라고 말하던 바둑 신동이었지만 패배의 쓴맛을 본 뒤 바둑을 접고, 상금이나 타볼까 하여 참가한 오목대회에서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캐릭터다. 드라마 <학교 2017> <로봇이 아니야> <같이 살래요>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박세완은 털털하고 꾸밈없는 자신의 성격이 이바둑과 닮았다고 했다.
-<오목소녀>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백승화 감독님이 <학교 2017>을 보고 연락을 주셨다. 내게 코미디 연기를 맡겨도 좋겠다고 생각했다더라. 나 역시 <걷기왕>
<오목소녀> 박세완 - 명랑 소녀 탄생기
-
<데자뷰>에서 이천희는 어딘가 수상한 우진(이규한)과 지민(남규리) 커플을 지켜보는 형사 차인태를 연기한다. 커플이 차로 친 건 사람이 아니라 노루라고 하지만, 그 말을 의심하며 커플의 주변을 맴돈다. <데자뷰>의 속을 알 수 없는 차인태와 달리 이천희는 솔직하다. 꿍꿍이나 전전긍긍 같은 단어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사람. <돌연변이>(2015),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남영동1985>(2012), <바비>(2011) 등 작품의 의미를 관객과 함께 나누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연기한다는 것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이천희는 배우로서의 삶과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조화롭게 디자인할 줄 아는 사람이다.
-<돌연변이> 이후 3년 만의 영화다.
=공방에서 가구 만드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마음이 확 끌리는 작품이 아니면 고사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은퇴한 거야?” 묻기도 하더라. (웃음)
<데자뷰> 이천희 - 연기, 정말 재밌다
-
저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데자뷰> 표지 촬영 현장의 이규한을 보며 생각했다. 드라마 <부잣집 아들>의 밤샘 촬영을 마치고 왔다는 그는, 스튜디오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끊임없이 웃게 만들었다. 그건 이규한이 “얼굴 보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그들을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뭇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보였던 밝고 유쾌한 모습 그대로의 배우 이규한이 <데자뷰>에 출연한다는 건 그래서 뜻밖이었다. 웃음기를 지운 그의 모습은 어떨까. 그보다도, 데뷔 20년을 눈앞에 둔 배우로서 본격적인 스릴러 장르에 뒤늦게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마파도2>(2007) 이후 11년 만의 영화다.
=그렇다. <공범>(2012)에 특별출연하고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2011)에 카메오로 등장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영화를 하는 건 정말 오
<데자뷰> 이규한 - 현장을 즐기다
-
<데자뷰>에서 남규리가 연기한 인물 지민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영역을 시시각각 오가며 미스터리를 남기고, 끝내 애틋하게 사라진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인물인 지민을 연기하는 데 있어 배우 남규리의 실제 삶이 반영된 지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고, 강남 한가운데서 혼밥을 즐기고, 온라인 속 익명의 댓글에 무덤덤하다는 그의 말은 여리고 화사한 첫인상과 놀라운 괴리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몰랐던, 혹은 그사이 더욱 변모한 배우 남규리가 <데자뷰>를 통해 오랜만에 스크린을 찾았다.
-<고死: 피의 중간고사>(이하 <고死>, 2008) 이후로 장편영화의 주연은 10년 만이다.
=그동안 꾸준히 기다렸다. 기다리면 언젠가 내게 맞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확신이 강하게 있었던 것 같다. 또 <고死>의 경험을 통해서 영화가 매우 인간적인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서
<데자뷰> 남규리 - 의외의 강인함
-
차로 사람을 치었다고 믿으며 환각에 시달리는 지민(남규리), 교통사고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지민을 안심시키는 남자친구 우진(이규한), 그런 커플을 수상쩍게 지켜보는 형사 인태(이천희). <데자뷰>(2018)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환각이고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스릴러영화다. 남규리·이천희·이규한 세 배우 역시 각자의 반전을 손에 꼭 쥐고 이중적 캐릭터를 연기한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터라 더 반가웠던 세 배우와의 만남,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데자뷰> 남규리·이규한·이천희 - 반전의 그들
-
프로덕션 디자이너에 관한 거의 교과서에 가까운 책이 나왔다. <왕의 남자> <강남 1970> <사도> 등에서 시대의 맥락을 재현하는 영화미술의 품격을 높였던 강승용 미술감독이 <님은 먼곳에>를 촬영하던 당시에 구상해 최근 4년 반 동안 집중적으로 써내려간 결과물이다. “공백기에도 쉬지 않고 ‘포인트’를 잡기 위해” 책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그는 영화미술의 이론과 실제, 그간의 작업물을 접목시켜 꼼꼼히 풀어나간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할리우드 키드”였던 강승용 미술감독은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하는 와중에도 항상 영화를 놓지 않았다. “조각가의 입장에서는 난감했던 특수분장에 관한 해외 서적들까지 독파”하며 <구미호> <화엄경> <그 섬에 가고 싶다> 등에서 조금씩 배워나갔고, 1994년 <테러리스트>로 처음 미술감독의 직책을 얻었다.
“대부분의 영화미술 서적이 할리우드를 기반으로 한 번역서”
<프로덕션 디자이너> 쓴 강승용 미술감독 - 영화미술 서적의 새 장을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