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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야귀’(夜鬼)가 조선의 밤을 뒤덮는다. 왕권이 위태로워진 왕과 그의 아들, 그리고 야귀들의 틈을 비집고 나타나 권력을 쥐어보려는 자들이 맞서 싸운다. 영화 <창궐>에서 배우 장동건이 맡은 역할은 선도 악도 아닌 ‘나라’만을 생각하는 병조판서 김자준. 그는 야귀들을 무찌르는 이청(현빈)에 맞서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과연 누구의 편일까.
-한복 입는 역할을 맡은 게 드라마 <일지매> 이후 25년 만이라고.
=당시 MBC 공채 탤런트로 입사하고 두 번째 작품이었던 터라,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일지매>를 찍고 나서 연기를 평생 하려면 사극은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웃음) 이후 결혼식 폐백 사진 찍을 때도 한복이 안 어울리더라. 이번에는 많은 고민 끝에 분장 테스트를 해봤는데 이질감이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김성훈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김자준을 단순한 악역으로
<창궐> 장동건 - 안타고니스트의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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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영화보다는 새로운 조합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액션영화가 목표다.” <창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올해 초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씨네21> 1138호 한국영화 톱 프로젝트 16 - <창궐> 김성훈 감독, “액션의 힘을 최대한 보여준다” 기사 참조). 그가 말한 대로 <창궐>은 화끈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지향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역병처럼 불어닥친 야귀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무사들의 이야기. 그런데 화려한 액션보다 더 시선을 잡아끄는 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본 적 없던 장동건과 현빈의 조합이다. 두 사람이 <창궐>로 만나기까지 최근 맡아왔던 캐릭터의 결이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는 점도 이번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현빈과 장동건의 에너지가 <창궐>을 통해 어떻게 다시 한번 폭발하는지 지켜보자.
<창궐> 장동건·현빈 - 에너지라는 것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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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제8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여름이 가기 전에> <미국인 친구> 등을 연출한 성지혜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로 합류했다. 그는 중화권 영화를 담당한다. 프로그래머 채용 면접 당시 “유럽쪽으로 지원하지 그랬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예전부터 시네필로서 자신의 가슴을 떨리게 한 영화는 허우샤오시엔, 왕가위 등 중화권 감독의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열혈남아>(1988) 같은 영화는 100번씩 보고 모든 장면과 대사를 외웠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난 영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관심사는 문득 중국어에 관심이 생겨 학원에 다니다 중국을 오가는 것으로 이어졌고, 아예 2016년부터 베이징영화아카데미에서 방문학자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베이징에 갔다가 정말 기절할 뻔했다. (웃음) 젊은 사람들의 태도가 매우 개방적이다.” 지금 중국인들이 좋아하
성지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 - 중국 상업영화의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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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윤재호 감독의 <뷰티풀 데이즈>(2017)는 이나영이 6년의 공백을 깨고 선택한 영화다. 탈북 여성에 다 큰 아들을 둔 엄마 역할. 악질 탈북 브로커를 만나 고생하는 10대, 나이 많은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 시골에서 가정을 꾸리는 20대, 그리고 서울에서 술집을 운영하며 애인과 새 삶을 사는 30대의 현재까지, 캐릭터의 긴 역사도 소화해야 했다. 작품에 대한 혹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작품이다. 고정된 이미지에 갇히길 거부하며 늘 과감한 선택을 해온 이나영은 <뷰티풀 데이즈>에서도 전에 본 적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빨갛게 머리를 염색하고 빨간색 가죽 코트를 입고 아들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엄마’ 이나영의 잔상은 꽤 깊다. 부산영화제가 개막하기 전, 서울에서 미리 이나영을 만났다.
-<씨네21>과의 인터뷰는 물론 인터뷰 자체가 오랜만이다.
=언제가 마
<뷰티풀 데이즈> 배우 이나영, "이야기와 캐릭터에 설득됐다면 그 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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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도래한 가을 속에 쌍을 이루는 서로 다른 기행이 있다. 장우진 감독은 <춘천, 춘천>(2016)에서 20대 끝자락의 피로와 권태로 방황하는 청년 지현(우지현)과, 서울에서의 역할로부터 도피해 짧은 여행에 나선 중년의 커플 흥주(양흥주)·세랑(이세랑)의 이야기가 ‘데칼코마니’ 같다고 말한다. 춘천행 열차에 몸을 싣는 세 인물이 안개처럼 서서히 흩어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덧 선명한 우울과 고독을 대면하게 된다. 2014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했던 데뷔작 <새출발>(2014)에서 시작해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던 <춘천, 춘천> 그리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겨울밤에>(2018)까지 장우진 감독은 지금껏 세편의 영화에서 조금씩 형식적 변주를 거듭해온 주목받는 감독이다. 영화제 순방으로 바빴던 <춘천, 춘천>의 개봉을 앞두고 만나는 자리
<춘천, 춘천> 장우진 감독 - 아름답고 지루한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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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쑥한 청춘 스타의 얼굴인 줄 알았더니, <춘천, 춘천>에서 하릴없이 호반의 도시를 배회하는 ‘지현’을 보면서 그의 타고난 쓸쓸함도 발견하게 됐다. 장우진 감독의 <새출발>로 스크린에 데뷔해 <춘천, 춘천>이 개봉관에 당도하기까지 쉼 없이 일해온 그는, 그사이 명필름랩 1기로 입성해 내실을 다졌다. <너와 극장에서> <환절기> 같은 독립영화 기대작들에서도 우지현은 꾸며놓는 대로 어울리고 편안한 배우였다. “얼굴이 많다”라는 평가를 들을 때 가장 즐겁다는 그에게서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한 배우의 지혜가 묻어났다.
-<춘천, 춘천>의 지현은 어떤 인물인가.
=장우진 감독의 전작 <새출발>의 연장선 안에 있는 캐릭터다. 표면적으로는 취업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모든 것이 유예된 상태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들을 자꾸 잃어버리고 있다는 슬픔이 핵심적이라고 봤다. 지현의 미래가
<춘천, 춘천> 우지현 - 풍경과 조응하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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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처럼 접근하자.” <암수살인>의 이봉환 미술감독이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매료됐던 김형민 형사(김윤석)와 살인범 강태오(주지훈)의 팽팽한 두뇌 싸움은, 말 그대로 사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져야 했다. 일례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교도소의 수사 접견실은 지금은 폐허가 된 건물인 부산의 옛 사상경찰서 1층에 세트를 지었다. 2층에는 형사과 세트를 지었다. “진짜 접견실을 가볼 수 없기 때문에 자료 수집차 교도소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거의 다 훑어봤다.” 40석 정도의 형사과 책상을 만들 때도 “성격상 엇비슷하게 묘사하는 걸 견디지 못해” 40명의 캐릭터를 상상하며 각자의 성향에 맞는 책상 디자인을 모두 달리 꾸며놨다. 형민이 태오가 던져준 단서를 좇다가 결정적 증거를 포착하는 유치장 창고 장면도 의도치 않게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 경우다. 형민의 실제 모델이었던 김정수 형사가 단서를 발견하게 된 것도 실제로 유치장 창고라는 걸 알게 된 김태균 감독이 그 장면을 유
<암수살인> 이봉환 미술감독 - 전면에 드러나지 않되 진짜처럼 보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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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했네. (웃음)” 차지현 AD406 대표와 인터뷰 하기 전에 그의 친동생인 배우 차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차태현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형이 제작자로서 충무로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차지현 대표는 방송 음향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충무로에 들어가 창립작 <미확인 동영상: 절대클릭금지>(2012)를 시작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끝까지 간다>(2013), <사랑하기 때문에> (2016), <반드시 잡는다>(2017) 등 개성 있는 영화들을 제작해왔다. 그런 그가 올해 제작한 영화 <목격자>는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 등 맹수들이 즐비했던 올해 여름 시장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252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모으며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차 대표를 만나 ‘배우 차태현의 형’이
<목격자> 제작한 차지현 AD406 대표, "여름 언제라도 개봉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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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디 VR>의 채수응 감독은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이하 베니스영화제)에 한국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진출해 가상현실(VR) 경쟁부문에서 ‘최고 VR 경험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무려 20여년 전인 17살 무렵, <씨네21>과 인터뷰한 경험(1998년 <씨네21> 174호 특집 ‘영화를 만드는 아이들’ 기사에 1회 청소년영상페스티벌 수상자로 소개되었다)이 있다.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만들겠다”던 ‘영화 꿈나무’는 어느덧 성장하여 미래 기술 VR을 개척하고 있다. 현재 VR과 영화의 접목 가능성을 최전방에서 고민하고 있는 그를 만나 <버디 VR>을 연출하게 된 사연과 앞으로의 비전을 함께 들어봤다(그가 미국에서 경험했던 시각특수효과(VFX) 분야에 관한 이야기는 <씨네21> 1100호 특집 ‘국내 최고 VFX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미래의 시각효과기술’ 기사에서도 볼 수
<버디 VR> 채수응 감독 - VR의 상호작용성이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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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시스터스라 불러도 될까? <컨저링> 시리즈 내내 워렌 부부 곁을 떠나지 않고 서성이던 악령의 실체를 다룬 스핀오프영화 <더 넌>의 주인공 아이린 수녀 역의 타이사 파미가는 <컨저링>의 로레인을 연기한 베라 파미가의 동생이다. 코린 하디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이린을 연기할 최고의 배우가 하필 타이사 파미가였을 뿐, 언니의 후광 때문에 캐스팅한 것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파미가가 연기하는 아이린은 종신서원 전의 예비 수녀다. 1952년, 루마니아의 성 카르타 수녀원에서 벌어진 수녀의 자살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바티칸에서 버크 신부(데미안 비치르)와 아이린 수녀를 지목해서 파견하는데 영문도 모른 채 악령으로 뒤덮인 수도원에 도착한 아이린은 누구보다도 침착하고 용감하다. 타이사의 언니 베라가 그녀에게 해준 조언은 “촬영장에서 돌아오면 항상 집 안을 밝게 하고 창문을 열어두라”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또 자매인 두 배우의 연결고리는 <더 넌>
<더 넌> 타이사 파미가 - 호러의 신선한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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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은 최근 1년 동안 <씨네21> 표지에 4번 등장했다. 네편의 작품 중 이미 개봉한 세편의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그중 <신과 함께> 시리즈 두편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미 2018년을 대표하는 영화배우가 된 주지훈이 민낯에 삭발을 감행한 <암수살인>으로 다시 관객을 찾는다. 자신이 7번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먼저 고백하는 강태오는 액션보다는 말, 감정보다는 침착한 이성이 앞서는 <암수살인>에서 판을 쥐고 흔드는 인물이다.
-특수효과가 가득한 <신과 함께> 시리즈와 파워풀한 선배 배우들에 둘러싸인 <공작> 촬영을 마친 후, 연쇄살인범으로 나오는 <암수살인>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여러 이유로 망설였다. 캐릭터가 강렬해서 배우로서는 연기하는 맛이 날 것 같은데, 관객에게 잘 흡수가 될까 싶더라. <아수라>(2016) 때부터 형들과 작업하면서, 연기와 영화는 물론 작품을 보는 관객의 반
<암수살인> 주지훈 - 주지훈이라는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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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형사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김윤석은 여러 유형의 형사를 연기해왔다. 그런데 <암수살인>에서 그가 맡은 김형민은 이제껏 맡았던 형사와 많이 다르다. 범인과 육탄전을 벌이는 대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하기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진득하게 풀어나가는 ‘진짜’ 형사다. 요행을 부리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니 배우 김윤석을 쏙 빼닮았다.
-김형민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성격이 하나둘씩 드러난다는 점에서 양파 같은 남자다.
=상황을 차분차분 바라보되 단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해 사실과 강태오(주지훈)의 증언 사이에 널린 퍼즐들을 꿰맞추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서사 초반에 설정하거나 하드보일드한 장르 속 형사 캐릭터로 접근하지 않아서 좋았다.
-용의자나 범인과 뒤엉키거나 육탄전을 벌이는 여느 형사영화와 달리 액션은 없지만 태오가 던져준 단서를 세심하게 수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강태오가 하는 말이
<암수살인> 김윤석 - 영화적인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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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상박. <암수살인>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첫 번째로 목도한 관객이었던 김태균 감독은 김윤석과 주지훈의 기세를 이렇게 비유했다. 김윤석이 정적으로 보이지만 내재된 용광로 같은 감정을 숨기고 눈빛으로 표현하는 호랑이 같았다면,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을 능글맞고 혹은 악마같이 표현하는 주지훈의 연기에서는 여유로운 뱀장어나 용이 떠올랐다고. 극중 형사와 살인범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촬영 전 대기시간에도 일부러 떨어져 앉았다는 두 사람이지만, <씨네21> 표지 촬영 현장은 영화와 달리 훨씬 편안한 기운이 맴돌았다.
<암수살인> 김윤석·주지훈 - 용호상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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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배종 감독은 <웰컴 투 동막골>(2005) 이후 12년 만의 신작 <조작된 도시>를 연출하면서, 장편영화는 처음인 남동근 촬영감독을 기용했다. 90년대 후반부터 150여편의 뮤직비디오와 1천여편에 달하는 광고촬영으로 잔뼈가 굵은 그의 감각을 믿었기 때문이다. 박배종 감독이 그 가능성에 ‘모험’을 걸었다면, <안시성>의 김광식 감독은 그 모험에 ‘확신’을 더했다. 총제작비 220억원, 촬영기간 7개월, 97회차의 사극 액션 블록버스터 <안시성>의 비주얼을 진두지휘할 촬영장의 ‘눈’으로 남동근 촬영감독은 절대적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 전쟁 사극의 또 다른 레퍼런스를 만들자는 각오로 접근했다”는 남동근 촬영감독은 “인물들의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영화 속 전투인 공성전을 제대로 스크린에 구현하는 것이 큰 목표였다”고 전한다. 총 135분의 러닝타임 중 액션 신만 영화의 1/3을 훌쩍 넘는 50여분. 1차 주필산 기마전투를 시작
<안시성> 남동근 촬영감독 - 한국 사극 액션의 새로운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