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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고 이후 총여섯명의 고속도로 운전자들을 살해한 끝에 2002년 10월9일 플로리다 형무소의 전기의자에 앉기까지, 아일린 워노스를 표현하는 언론들의 선정적인 헤드라인은 항상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이었으며, 그녀를 표현하는 공적인 이미지는 ‘괴물’ 같은 거구의 여인이었다고 한다. 8살 때 처음 아버지 친구에게 강간당했고, 13살 때 이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창녀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어떤 종류의 관심이나 애정에도 철저하게 버림받은 채 돈으로 육체를 거래하는 과정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를 표현하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단순명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를 다룬 영화 <몬스터>를 보면서 우리는 또 한번 함정에 빠지게 된다. 영화를 통해 재현되는 실존 인물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만큼 가능한 일인가?
<몬스터>의 아일린 워노스- (영화 속에서는) 리를 보고 있노라면 어떤 타입에도 묶을 수 없는
미성숙한 영혼이 폭발하는 정화의 순간,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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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늪지의 괴물 슈렉은 마법에 걸린 피오나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미녀와 야수>를 닮은 키스신은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었다. 슈렉은 여전히 괴물로 남았고, 피오나는 인간이 아닌 괴물로 변해버렸다. 자기 본성에 맞게 살아가는 괴물과 그에게 매료돼 자기 자신을 버린 연인. 그뒤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마침표를, 그들은 그렇게 찍은 듯했다. <슈렉2>는 ‘과연 그랬을까?’라는 의혹으로부터 심술궂은 후일담을 풀어낸다. 신분이 다르고, 인종(!)이 다른 남녀가 만나 사랑할 순 있지만, 그들의 결합을 세상이 축복하겠느냐고 딴죽을 걸어보는 것이다.
<슈렉2>는 슈렉이 피오나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은 ‘겁나먼’ 왕국의 초대를 받지만, 피오나의 부모와 왕국 사람들은 슈렉 부부의 모습에 경악한다. 환대받지 못한 슈렉은 피오나와 다투기도 하고, 피오나의 아버지가 보낸 자객 ‘장화 신은 고양이’의 습격
악당이 늘어난 좌충우돌 풍자극, <슈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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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 콜핏’이라는 똑같은 이름의 모녀 삼대가 있다. 노년의 씨씨1은 술 취한 바람둥이 남편을 욕조에 익사시킨다. 중년의 씨씨2는 도통 무심한 뚱보 남편을 바다에 익사시킨다. 갓 결혼한 씨씨3는 수영도 못하는 새신랑을 수영장에 익사시킨다. 그때마다 불려온 검시관 매짓은 연쇄살해극을 단순사고사로 위장해준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모종의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는 매짓을 그녀들은 매번 퇴짜 맞힐 뿐이다. 이 기묘한 죽음의 퍼레이드와 욕망의 숨바꼭질이 영국산이라면, 히치콕 같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영화적 후예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줄넘기소녀의 별 이름 100개 외우기로 시작한 영화가 화면과 대사 곳곳에 1에서 100까지의 숫자를 숨은그림처럼 뿌려놓는다면? 실로 영화는 스릴러적 몰입을 방해하는 별난 게임들로 가득하다. 매짓의 아들 스멋은 제멋대로 창안한 꽤 지적이면서도 허망한 구석이 있는 게임들을 차례차례 선보인다. 피터 그리너웨이 체질이 아니라면 이마저 얼떨떨하겠지만, <차례로
별난 게임들로 가득한 지적 유희, <차례로 익사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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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월30일 일요일 비무장 시위를 벌이던 북아일랜드 데리 시민 열세명이 영국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열네명이 다쳤고, 그중 한명이 곧 죽어 사망자는 열넷이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날 벌어진 일 때문에 처벌받지 않았다. <블러디 선데이>는 ‘피의 일요일’이라고 기억되는 이날 진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기록하고 있는 영화다. ‘피의 일요일’ 꼭 30년 뒤인 2002년 1월25일 영국에서 개봉한 <블러디 선데이>는 마치 카메라를 가지고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것처럼 사실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영화는 단 한번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판단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객을 목격자로 만든다. 목격자는 자신이 본 사실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본도 직접 쓴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1만명 넘는 사람이 행진에 참가한 이 사건에서 네명을 골라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각각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블러디 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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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해. 내 곁에 있어줘.” “나의 일을 포기할 순 없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단 얘기야?”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동문서답처럼 보이지만, 일본에서도 이 대화는 남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중년 남녀의 절대적인 사랑을 그렸던 <실락원>의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 그의 또 다른 소설을 영화화한 <메트레스 연인>은 결혼 적령기를 넘긴 한 여성의 혼란스러운 자아찾기라는, 진부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의 소몰리에(와인 전문가)인 미혼 여성 카타기리 슈코(가와시마 나오미)와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유부남 토노 슈헤이(미타무라 구니히코)는 달콤한 한때를 즐기는 연인 사이. 여자는 결혼의 정의를 “서로가 정착할 수 있는 곳의 발견”이라고 믿고 싶어하지만, 남자는 이에 대해 “결혼은 서로 나아가길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대꾸한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부인에게 토노가 버림받은 이후, 둘
결혼에 대한 진부하지만 절실한 물음, <메트레스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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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어쌔신>은 생소한 직종 하나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케빈(스킷 울리히)은 “법질서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 지사들을 갖고 있기에 고객과 사원의 안전을 자체 인력으로 보호하는 다국적 금융회사 요겐슨의 보안요원이다. 생부를 잃은 케빈을 거두어 양육한 사장은 그를 아들처럼 여기는데, 덕분에 사장의 친아들은 그를 원수로 여긴다. 승진한 케빈은 요겐슨사의 직원인 애인에게 청혼을 준비하지만, 룸서비스 대신 들이닥친 킬러는 연인의 심장과 케빈의 미래를 부숴놓는다. 범죄 현장에 출동한 인터폴은 살인이 돈세탁과 연루되어 있음을 내비치고 진실을 추적하는 케빈 앞에 드러나는 사실들은 속속 새로운 용의자를 지목한다.
<소울 어쌔신>이 궁극적으로 고발하는 범죄는, 이윤을 위해서는 인간의 기능뿐 아니라 영혼까지 착취해 마땅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조직이다. 케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도구에 불과했으나 딱 한 가지, 바른 질문을 던지는 법만은 잊지 않았기에 영혼을 건진다. 그러나 이
복수의 끝에 이르러 적의 실체를 깨닫는 남자의 모험담, <소울 어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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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스크림2>에서 공포영화 전문가 랜디는 다음과 같이 ‘속편의 법칙’을 정리한 바 있다 “오리지널보다 시체가 더 많아지고, 더 잔인해지고, 더 피가 튀기고, 플롯은 더 꼬인다.” 이에 충실한 모습으로 돌아온 <데스티네이션2>는 반문한다. “그런데?” 영화는 법칙 따위 개의치 않는다. 전략적으로 ‘공포영화 사상 가장 거대한 스펙터클’을 전면에 내세웠다. 초반 10분의 대형 자동차 충돌신은 시작일 뿐이다. 사람들은 “해괴한 사건”에 의해 더 화려하게 죽어간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던 킴벌리(A. J. 쿡)는 고속도로에서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는 환상을 본다. 그리고 환상의 징조들이 현실에 출현하자 그녀는 국도 진입로를 가로막는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곁에서 곧 대형사고가 발생하고 사람들은 경악한다. 한편, 킴벌리는 1년 전 180기 폭발사고의 생존자들이 겪은 죽음과 연관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클레어(알리 라터)에
공포영화 사상 가장 거대한 스펙터클, <데스티네이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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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혼은 다시 돌아온다. 어린 시절 수없이 들었던 괴담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교훈은 그것이다. 억울하게 죽어 한이 맺힌 자들은 산 자에게 간곡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공포의 강을 건널 수만 있다면 원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페이스>의 전제는 이처럼 유서 깊은 귀신 이야기다. 피부나 머리카락처럼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하나도 없는 두개골이 있다. 누구의 두개골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복안’이다. 두개골로 죽은 자의 얼굴을 유추, 재현하는 방법인 복안으로 죽은 자의 얼굴이 하나둘 맞춰진다. 그것이 누구의 얼굴이냐가 <페이스>가 던지는 질문이다.
4년 전 복안 전문가를 만나면서 시작된 <페이스>는 원귀가 나오는 공포영화인 동시에 범인을 찾아가는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은 과학수사연구소의 복안 전문가 현민(신현준).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어린 딸이 안쓰러운 그는 연구소에 사표를 던지고 딸의
두개골로 죽은 자의 얼굴을 유추하라, <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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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 발랄 엽기적인 그녀가 빌딩 옥상에 서 있다. 그 밤에, 그 높은 곳에, 그 처연한 표정은, 왜일까. 옥상 끝에 걸린 두발이 흔들리면서, 그녀는 바람을 타고 한없이 아래로 미끄러져내린다. 평온한 얼굴 위로 흐르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바로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의 이름은 경진이다. 그녀의 이름을 말하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녀에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층 빌딩에서 추락하고 있는 ‘그녀’를 소개하는 남자친구의 목소리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에 대해 우리가 오해한 것이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과 곽재용 감독이 의기투합해 만든, 제목부터 명랑한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다. <클래식>풍의 신파 멜로 속으로 다이빙한 ‘엽기녀’는 웃거나 웃기기보다는 울거나 울리길 더 자주 한다.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에서 과거의 기억으
<클래식>풍의 신파 멜로 속으로 다이빙한 ‘엽기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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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남자가 있다.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남자는 어린 여자를 납치한다. 자신의 방 안에 여자를 감금하고 정성스럽게 그녀를 먹이고 입히고 씻긴다. 반항하던 여자는 어느새 남자를 받아들이고 떠나지 못한다. 이것은 체념일까, 사랑일까. 영화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마쓰다 미치고의 소설 <여고생 유괴 사육사건>(1994)이 원작인 니사야마 요이치의 <완전한 사육>은 언뜻 김기덕의 <나쁜 남자>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매일 한곳에서 UFO를 기다리는 여자(후카우미 리에)와 그녀를 호기심 가득히 지켜보던 심리치료사(다케나카 나오토)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최면에 걸린 그녀가 들려주는 과거의 기억은 뜬금없이 등장한 UFO가 이 영화의 핵심임을 암시한다. UFO는 외롭던 그녀가 간절히 기다리던 구원의 손길이며, 어이없게도 그것은 납치범(히다 야스히토)으로 현실화된다. 물론 영화 초반에는 그녀도, 관객도 이 사실을 믿을
외로움에 대한 값싼 연민, <완전한 사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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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아비가 있다. 세상은 기상 이변의 대재앙에 휘말린다. 평소 아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恨)이던 아비는 재난 한가운데 놓인 아들에게 ‘구출’을 약속하고 아내를 남기고 길을 떠난다. <투모로우>는 롤랜드 에머리히가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문제해결 방식과 정반대로 나아간다. 국가를 위해 가족을 등지고 위험에 뛰어들던 ‘영웅’은 세상의 파멸 앞에서 아들을 찾아나서는 ‘아비’로 탈바꿈한다. 다만 감독의 전매특허인 ‘크기가 중요’하다는 원칙은 여전하고 스펙터클에 대한 무한한 신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잭 홀(데니스 퀘이드)이 처음 기후 변화의 조짐을 포착하는 극지장면, 강풍과 폭우에 휩싸인 뉴욕, 그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세계 곳곳의 ‘특파원 신’을 통해 여름 블록버스터 특유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뉴욕 전체를 냉장고로 활용하여 얼렸다 녹였다 하는 설정은 그러한 쇼맨십의 절정을 보여준다. 물바다로 변한 뉴욕이 빙하기로 변해가는 장면의 CG는 관객의 시
기상 이변의 대재앙 앞에 선 아비의 애틋함, <투모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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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과 에단. 코언가의 머리 좋은 두 아들은, 거의 시계추 같은 공평함으로 누아르와 코미디의 함량을 번갈아 우위에 두며 영화를 만들어왔다. <허드서커 대리인> <위대한 레보스키> <참을 수 없는 사랑>처럼 코미디가 앞자리에 놓인 작품의 경우, 스티브 부세미, 존 터투로, 프랜시스 맥도먼드 같은 단골 배우 외에 주류 영화계 스타들이 가세한다는 점도 규칙 아닌 규칙처럼 보인다. 톰 행크스 주연의 신작 <레이디 킬러>는 물론 후자에 속하는 영화다. 덧붙여 비고(備考)란을 만든다면, 1955년 영국 일링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동명영화의 리메이크이고, 감독 크레딧을 늘 조엘에게 넘겼던 에단이 나란히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을 적어둘 만하다.
배우 캐스팅에 준하는 세심함으로 영화의 지역적 배경을 고르는 코언의 이번 선택은 미시시피. 죽은 남편의 초상화와 고양이를 벗 삼아 혼자 사는 존경할 만한 미망인 먼슨 부인(이르마 P. 홀)에게 하숙을 희망하는
코언형제의 강도코미디, <레이디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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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큼 근원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부한 것은 없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를 매개로 팬과 스타 사이에 발생하는 교감은 사실 동의(이성)나 공감(감성)에 속한 것이기보다는 차라리 동일시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질문의 무게는 (물론) 다를 것이다. 스타나 아이돌이 화려한 ‘타자’라는 사실은 한 개인에게 동일시라는 방식으로 폭사되는 시대의 집단적 무의식 때문이다. <퍼펙트 블루>가 그 화려한 ‘타자’에게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시작하는 것도 물론 그런 맥락에서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는 있지만 내리막길만 남아 있는 일본의 소녀 아이돌 그룹 ‘참’의 리더격인 미마. 롱런을 위해 에이전시로부터 배우로의 전업을 권유받고 그룹을 탈퇴한다. 광적인 팬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핑크빛 공주 의상을 입는 자신에 익숙했던 그녀에겐 갑자기 강간신을 찍는 성인 연기자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겨운 일. 시골에서 올라온 자연인으로서의 그녀가 진짜 그녀일까? 아니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집요한 질문으로 만든 서스펜스, <퍼펙트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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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완성된 신화에 영원히 속박된 감독들이 있다. 누벨바그와 무관하게 프랑스영화의 대명사가 된 <남과 여>의 클로드 를르슈도 그렇다. 그 매혹적인 이미지-사운드의 울림에 반했던 이들에게 <남과 여 20년 후>는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할 영화였다. <아름다운 이야기> 로 프랑스영화의 규모를 과시하기도 했지만, 국민감독 를르슈는 <남과 여>의 세계적 감독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중년의 눈높이로 주특기에 복귀한 작품이 2002년 칸 폐막작으로 선정된 <레이디스 앤 젠틀맨>이다. 시놉시스만 보면 이 영화는 20년 뒤가 아니라 2002년의 <남과 여>가 돼야 할 것만 같다. 변장과 허풍의 대가인 영국의 보석털이범 발렌틴(제레미 아이언스)은 삶에 회의를 느끼고 아내를 놔둔 채 혼자 세계일주에 나선다. 프랑스의 재즈가수 제인(파트리샤 카스)은 애인이 동료와 바람를 피우자 우울하게 파리를 떠난다. 둘이 우연히 만난 곳은 모로코.
중년 남녀의 기억과 사랑의 줄타기, <레이디스 앤 젠틀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