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출은 마술사이지만 마술 솜씨가 별로다. 변두리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빈 주먹을 움직이다가 동전을 쥐어보이는 정도가 고작이다. 여자 관객을 불러내 콧김을 잔뜩 불러넣은 뒤 여자 등 뒤편으로 팔을 펴 한번 휘젓는다. 손을 펴자 여자 팬티가 나오고 그걸 흔들다. 유머랍시고 한 짓이지만 바로 여자에게 뺨을 맞는다. 여자는 일행과 함께 클럽을 나가고, 세출은 클럽에서 잘린다.보잘것없는 이 인생은 가족관계에도 마찬가지다.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이틀 뒤면 아들도 부인에게 보내야 한다. 10살 남짓한 아들은 세출이 마술 부릴 때 사용하던 닭을 잡아서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찬이랍시고 밥상에 올려놓고 세출에게 생떼쓰듯 부탁한다. 숟가락을 휘는 마술을 자기 친구들에게 보여달라는 것이다. 친구들이 아버지를 우습게 보고 놀려대니 본떼를 보여달라는 말이다. 숟가락 휘는 재주가 없는 세출은 고민하며 악몽까지 꾸다가 마침내 방법을 떠올리다. 아들을 보낸 뒤 그 방법을 가지고 다시 나이트클럽 무대에 선다. 화려한 마
[단편영화 Review] 으랏차차
-
텅 빈 집에 한 남자가 천장을 올려다보고 서 있다. 곧이어 땡볕 아래 땅이 말라 갈라진 벌판을 엄마와 아들이 걸어간다. 아들이 자꾸 뇌까린다. “유재건, 유재건…, 이상해.” 그 말을 듣는 엄마의 표정이 편치 않다. 아들이 “김재건, 김재건은 더이상 내 이름이 아니야!”라며 신경질부리듯 말을 내뱉자 엄마는 쓰러진다. 카메라가 엄마의 시점으로 옮겨와 함께 쓰러지면서 화면이 크게 흔들린다. 엄마가 쓰고 있던 양산이 땅바닥에 나뒹군다. 아들이 그걸 들고와서 엄마 머리 위에 펴준다. 공간이 바뀌어 이삿짐이 잔뜩 쌓인 집에, 처음 등장했던 이와 다른 남자가 서서 천장을 본다. 천장에서 물이 샌다. 새는 물방울을 컵으로 받친다. 물방울이 컵에 떨어지자 남자가 미소를 짓는다. 마른 땅 위로 소나기가 퍼붓는다.<새 집…>은 여자가 아들과 함께, 새 남편을 만나 새 살림을 시작하는 날의 풍경화이다. 그 풍경은 대사나 설명없이 이미지로 채워진다. 땡볕, 갈라진 땅, 물이 새는 천장, 소나기
[단편영화 Review] 새 집이라고 했는데 이 얼룩은 뭐죠?
-
다 큰 자식과 부모 사이가 다정다감하기란 쉽지 않다. 자식이 집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과 부대끼기 시작하면 부모와 나눌 얘깃거리가 드물다. 자기 고민을 부모에게 말하는 건 의지하려는 것 같아 싫고, 자기 때문에 부모가 걱정하는 모습도 보기가 싫다. 부모 입장에서도, 스스로 잘하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말만 하면 잔소리로 여기고 대드는 자식들에게서 어릴 때의 귀여움을 찾기는 힘들다. <알 수 있다>는 서로 대면대면하고 말을 시작하면 다투기 십상인, 다 큰 딸과 엄마 사이의 특이한 소통 방식을 스케치하듯 특징을 잡아 그려낸 단편이다.서울에서 대학다니는 딸이 부산 집에 와서는 ‘시집가라’는 말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로 다툰다. “니는 배웠다는 가시나가 말버릇이 그게 뭐꼬. 공부고 뭐고 다 집어치아라.” “모처럼 집에 오면 좀 편하게 해줄 수 없나. 내 간다.” “가라. 다시는 오지 마라.” 딸은 밥먹다가 숟가락을 놓고 바로 집을 나와 서울로 온다. 서울 집에 다 와서 가
[단편영화 Review] 알 수 있다
-
■ Story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1945년. 미군 중위 토마스 하트(콜린 패럴)는 독일군에게 잡혀 연합군 포로수용소로 끌려온다. 미군 포로들의 지휘관격인 맥나마라 대령(브루스 윌리스)은 하트를 장교 막사가 아닌 사병 막사에 배치한다. 며칠 뒤 하트의 막사에 흑인 장교 둘이 배치되자, 실세인 베드포드 상사(콜 하우저)를 비롯한 백인 사병들은 불만을 드러낸다. 뒤이어 두 흑인 장교 중 하나가 모함을 받아 처형되고, 베드포드가 살해된다. 용의자는 살해현장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흑인 장교 스콧(테렌스 대션 하워드). 맥나마라는 군법회의를 열고 하트에게 스콧의 변호를 맡긴다.■ Review <하트의 전쟁>은 드라마의 방향을 끌어가는 사공이 많은 영화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투장면 하나 없는 만큼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전쟁영화와는 다르다. 기본 골격은 빌리 와일더의 <스탈라그17>이나 존 스터지스의 <위대한 탈출&g
[Review] 하트의 전쟁
-
-
■ Story 웹 디자이너 매트(조시 하트넷)는 니콜에게 푹 빠져 지내다가 차였다. 니콜이 금융회사 중역인, 잘 나가는 남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니콜을 좀처럼 잊지 못하는 매트는 이 여자, 저 여자와 자보지만 섹스가 잘 안 된다. 섹스 도중에 지붕에 금이 가고 지진이 일어나는 환영이 자신을 덮친다. 신부 지망생인 형을 찾아가 상담하다가, 가톨릭의 사순절에서 힌트를 얻어 40일간 금욕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결심한 첫날 빨래방에서 우연히 에리카(섀닌 소사몬)를 만난다.■ Review 한창 욕구가 왕성할 나이인 20대의 남자가 40일 동안 섹스를 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그 기간 동안 자위도 안 하겠다고 다짐한다. 섹스를 떠올리거나, 다른 여자와라도 섹스를 하면 자꾸 전 애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장 섹스가 잘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전 애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스스로 납득이 잘되지 않는다. “남자는 씨를 뿌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며 40일 금욕 계획을
[Review] 40데이즈 40나이트
-
■ Story 아우디(허준호), 르까프(이창훈), 각그랜져(박준규), 해태(이원종)는 광주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주먹계 친구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사이다. 공부를 잘했던 르까프는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입성하고, 나머지 세 친구도 힘든 밑바닥 조폭 생활을 이겨내고 차츰 세력을 넓혀간다. 똘똘 뭉친 ‘4발가락’ 친구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중간급 보스로 성장해나간다. 어느 날 4발가락은 서울의 중간급 보스들이 모두 참석한 홍두깨(정성모) 주최 모임에서 강남 요지 호텔 건립에 따른 반대세력 제거를 위한 모의를 하는데, 4발가락과 그들의 라이벌인 역4인방은 금도끼와 은도끼의 전설에 얽혀들어가면서 심각하게 대립하게 된다.■ Review 발가락이 4개뿐인 조폭 4인방이 펼치는 코믹갱스터영화 은 <친구> <두사부일체>로 이어지는 요즘 조폭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얏트(HAYTT) 호텔을 ‘해태’라고 당당하게 읽는 조폭의 ‘무식한’ 행태가 자아내
[Review] 4발가락
-
■ Story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연인에게 프리지어 꽃다발이라도 전해줄 듯한 모습으로 쳐다보고 있던 진수(이정재)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해 부분적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자신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대학 동창생들을 찾아다니며 기억의 복구작업에 나선다. 연희(장진영)는 동창이자 연인이었던 상인(정찬)과 헤어진 후유증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수의 노력을 따뜻한 마음으로 돕는다.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확인될 무렵, 진수가 ‘무지개’라고 이름 붙였던 옛 연인을 확인할 수 있는 슬라이드 사진 한컷이 입수된다. ■ Review <오버 더 레인보우>는 사랑이라는 ‘현상’을 잔잔하게 추적하는 정통 멜로드라마다. 만난 지 백일을 기념하는 의식이 젊은 연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것은 사랑의 지속성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을 방증하는 것 같다. 이같은 요즘 세상에(‘요즘 세상’이라니! 이런 구닥다리 표현이 절로 나올 만큼 이 영화가 보여주는 믿음이 고전적이다) 진
[Review] 오버 더 레인보우
-
■ Story 소림사 여섯 사제 가운데 다섯째인 씽씽(주성치)은 쿵후를 발전시킬 묘안을 고민하던 차에 황금발 명봉(오맹달)을 만난다. 오래 전 최고의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다리가 부러진 뒤 부랑자 신세가 된 명봉은 씽씽의 발차기가 괴력을 발휘하는 걸 보고 축구팀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씽씽은 사형들을 찾아가 축구를 하자고 설득하지만 쿵후만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에 익숙해진 사형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씽씽을 외면한 뒤 사형들은 품에서 한장의 사진을 꺼내본다. 여섯이 함께 쿵후를 닦았던 지난날이 담긴 사진, 그것이 마음을 움직이고 드디어 소림축구팀이 탄생한다.
■ Review 위대한 희극은 누추한 우리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추레한 행색에 손가락질하지 않으며 궁핍한 안주머니를 탓하지 않는다. 위대한 코미디 배우는 세상의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권력자의 구두를 닦기 위해 무릎 꿇고 닳고 닳아 구멍난 운동화를 신고 있는 순간에도, 당당하다. <모던 타
[Review] 소림축구
-
■ Story 영국 국가대표 축구팀 주장으로 한때 ‘인간병기’라고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던 대니 미헌(비니 존스)은 승부조작 혐의로 축구계에서 퇴출돼 방탕한 생활을 하던 끝에, 음주 운전과 경찰 폭행으로 3년형을 살게 된다. 대니는 교도관들로 이뤄진 준프로 축구팀에 맞서 동료 죄수들로 팀을 꾸려 경기를 준비하지만, 교도관 팀에 거액의 판돈을 건 교도소장의 협박에 갈등하게 된다.■ Review 월드컵에 발맞춰 술집의 오전 영업을 허용하고, 교회의 일요일 예배 단축을 장려하는 나라, 무시무시한 폭력축구팬 훌리건이 1천명을 웃도는 나라 영국. 월드컵을 앞두고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는 축구영화 중에서 가장 먼저 영국의 <그들만의 월드컵>이 한국 극장가에 당도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들만의 월드컵>은 국교의 경지에 이른 축구의 열기, 짠한 슬픔이 있는 <풀 몬티>식 코미디의 전통, 그리고 최신 패션이 된 가이 리치의 흔적까지 엿보이는, 대단히
[Review] 그들만의 월드컵
-
■ Story 스페인 해안도시에 교사로 부임한 우리시즈(조르디 몰라)는 마르티나(레오노르 발팅)라는 여성을 만난다. 둘은 처음 만나자마자 정열적으로 사랑에 빠져든다. 마르티나는 우리시즈가 들려주는 그리스 신화의 매력에 빠져 시에라(에두아르드 페르난데즈)의 청혼과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시즈와 결혼한다. 어느 날, 바다에 혼자 배를 타고 나갔던 우리시즈가 행방불명되고 사람들은 그가 사망했다고 결론짓는다. 마르티나는 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시에라와 재혼한다. 7년뒤 우리시즈가 돌아온다.■ Review 이런 남자가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애인에겐 한없이 자상하다. 그가 주로 애용하는 레퍼토리는 신화의 세계를 들려주는 것. 오묘한 이야기 솜씨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재주가 있다. 음악에 대한 식견도 탁월하다. 킹 크림슨의 오래된 실내악을 들려주면서 여인에게 “당신에게 이 곡을 꼭 들려주고 싶었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매력이 넘친다. 이 남자와 커플이 되는 여성 또
[Review] 마르티나
-
■ Story 죽마고우 설리의 부음을 듣고 고향을 찾은 사진작가 바비 가필드(데이비드 모스)는 유년의 마지막 해였던 11살의 여름을 회상한다. 생활고와 죽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자식에 대한 배려를 잠시 잊은 엄마(호프 데이비스)에게 방치 당한 소년 바비(안톤 옐친)는 기묘한 하숙인 테드 브로니건(앤서니 홉킨스)로부터 삶의 가르침과 부성애를 얻는다. 그러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테드는 ‘빨갱이 사냥’에 그를 이용하려는 FBI의 추적을 받는다.■ Review 유년기를 잃어버린 낙원에 비유하는 영화 <하트 인 아틀란티스>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이 흘러가는 마을은 <돌로레스 클레이본> <미저리> <스탠 바이 미>의 바로 그 동네다. 원작자 스티븐 킹의 고향이기도 한 이 마을 캐슬록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날들이 모래톱처럼 퇴적되어간다. 그리고 아주 가끔 한 인생의 지반을 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집에 묶인
[Review] 하트 인 아틀란티스
-
■ Story 성환(송승헌), 우섭(권상우), 진원(김영준), 셋은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 수업이 끝나면 늘 어울려 다니는 그들에게 어느 날 밤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성환이 몰던 차에 묵직한 부대와 사람이 떨어진 것이다. 사람은 죽은 듯 보이고, 부대엔 달러가 가득하다. 세 친구는 의식이 없는 사람을 차에 싣고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하는데 그러는 동안 이번엔 시체가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들은 일단 돈을 성환의 집에 숨긴다. 한편 신참 형사 지형(이범수)은 한 사채업자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뒤 뺑소니 흔적을 발견한다. 수사가 진척되면서 지형은 세명의 고등학생이 이 사건에 연관됐음을 알게된다.
■ Review
그들은 돈벼락을 맞는다. 어느 날 갑자기 손에 쥔 21억원을 고등학생 세 친구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일단 뛰어>라는 제목 그대로 그들은 임자없는 그 돈을 들고 튄다. <일단 뛰어>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가방을
[Review] 일단 뛰어!
-
■ Story 조선시대 말기의 한양 땅. 어린 장승업(최민식)은 거리의 부랑자로 떠돌다 개화파 선비 김병문(안성기)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 그림의 소질을 계발한다. 천재를 타고난 덕에 곧 걸출한 화원이 되고 궁중에까지 진출하지만, 술과 여자에 탐닉하고 방랑벽이 심한 탓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소운(손예진)에게 첫 연정을 느끼고, 매향(유호정)을 평생 사랑하지만, 그가 짧게나마 동거하는 여인은 억척스런 기생 진홍(김여진)이다. 시대적 격랑과 예술적 갈증 사이에서 방황하던 장승업은 결국 모두의 곁을 영원히 떠나는 길을 택한다.
■ Review <서편제>의 눈먼 송화는 기어이 길을 떠난다. 그 뒷모습에 의붓동생 동호는 끝내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억장이 무너져도 결국 손 내밀지 못하고 떠나보낸, 한때 우리의 일부였으나 더이상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들. 임권택의 영화는 그 기억의 상처를 스크린에 불러들여, 우리의 혹은 한국 근대사의 결핍을 상기시키고 또 어루만진다. 상실의
[Review] 취화선
-
■ Story 시 공무원인 남편, 대학생 아들이 있는 안국지씨네 가족은 별로 대화도 없고 소통도 거의 하지 않는다. 안국지는 곗돈을 받은 날 가족에게 써봐야 소용없으니 쌍꺼풀 수술을 하라고 부추기는 친구들의 말에 수술을 받는다. 또 길거리에서 짐을 들어준 룸살롱 호스트와 여관까지 가지만 그냥 나오고 만다. 아들은 여자친구와 유럽 배낭여행을 가려 부모를 조르지만 승낙을 얻지 못한다. 뇌물을 받고 한 마을을 묘지 부지로 선정했던 아버지는 반대 시위를 벌이던 마을 주민들에게 얻어맞는다. 세 식구는 오늘도 식탁에 둘러앉지만 거리감은 여전하다.■ Review <냉장고>가 가족의 화목을 회복하는 이야기인 데 반해 <가화만사성>은 가족의 소통부재를 그린다. ‘집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다 잘된다’는 뜻의 제목인 ‘가화만사성’은 역설적으로 주제를 암시하는 셈. 행복한 가족의 표상인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을 잡은 카메라는 곧 시선을 돌려 가족의
[Review] 가화만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