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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마릴루 베리)는 자기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포악한 삶 가운데 예술의 위안을 예찬하는 노래를. 그러나 소녀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가 이어폰을 빼자 택시 안의 우악스런 음악이 달려든다. 볼륨을 낮춰달라 부탁해도 택시기사는 막무가내다. 차 안의 권력은 그에게 있다. 결국 기사의 무례를 이기는 것은 소녀의 호소가 아니라,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장 피에르 바크리)의 더 강력한 무례다. <룩 앳 미>는 이렇게 첫 장면부터 이 영화에서 ‘최강의 악당’이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임을 분명히 한다. 명성과 부를 누리는 작가이자 파리 문화계의 권력자인 에티엔은, 훌륭한 예술가라고 훌륭한 인격자는 아니라는 속설의 흉한 마스코트다. 그는 남의 이름을 결코 기억하지 않으며, 다른 인간에게서 귀기울일 만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믿지 않기에 질문만 던지고 대답을 듣지 않는다. 가학적 농담을 사교의 기술로 착각하는 에티엔은 본인이 가장 연약할 때에도 위로하는 사람을 용케 상처줄 방법을
권력과 관용의 함수관계에 대한 고찰, <룩 앳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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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들이 천장에서 뿜어 내려오는 피로 샤워를 하며 춤을 추는 나이트클럽 장면만으로도 <블레이드 1>은 흥분제라고 부를 만하다. <헬보이>의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 2편은 1편을 어린애 장난으로 만들 정도로 격렬한 혈관 수축을 부르는 아드레날린 촉진제였다. 테크노 리듬 속에서 뱀파이어를 잿더미로 만드는 스타일 강한 액션은 물론이거니와 아들이 아버지를 물어뜯고 아버지가 딸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도된 관계가 잘 짜인 이야기와 서로 잘 스며들었다. 뱀파이어가 얼마나 무궁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창조적으로 변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고 할까. 할 얘기는 끝도 없이 더 이어질 듯했다.
2편에서 에일리언적인 해부적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자외선 폭탄 등의 신필살기로 중무장했던 블레이드 웨슬리 스나입스는 3편에선 좀더 담백한 모습을 보여준다. 창조적 변용보다는 맨주먹과 칼 그리고 활로 뱀파이어를 잡는 원초적 무용담을 택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부피도 함께 줄어들면서 뱀파이어가
뱀파이어들의 원초적 무용담, <블레이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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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하는 질문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속세의 때가 묻은 어른들은 물론 영악해진 아이들에게도 산타클로스는 상징 그 이상은 아니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만약에, 만에 하나, 북극 어딘가에 산타와 요정들의 마을이 있다면, 믿음이 사라진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어떻게 입증하려 할까. <엘프>는 이런 엉뚱한 가정에서 출발해, 유쾌하게 ’크리스마스 정신’을 설파하는 가족용 코미디다.
산타의 선물 자루에 기어들어간 아기가 산타와 엘프들의 북극 마을로 간다. 500살 넘는 노총각 엘프에게 맡겨져 성장한 버디(윌 페럴)는 몸집이 서너배는 크고 바리톤의 음성을 지닌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충격받고, 생부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찾아간다. 출판계의 거물인 아버지 월터(제임스 칸)는 ‘나쁜 어른’ 명단에 올라 있는 일중독자로, 버디가 친자임을 확인한 뒤에도, 그를 처치곤란한 사이코로 치부한다. 아버지와 그의 새 가족,
유쾌한 크리스마스 가족용 코미디,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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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은 지난 11월5일 미국에서 개봉해 첫주 707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니모를 찾아서>가 지난해에 세운 개봉주 성적을 40만달러 넘어섰고, 2위를 차지한 레이 찰스의 전기영화 <레이>와는 약 5700만달러의 수익차를 냈다. 그 다음주에 개봉한 로버트 저메키스의 <폴라 익스프레스>도 <인크레더블>의 위력을 감잡지 못했다. 픽사나 디즈니나 이 애니메이션이 분명 잘될 거라 예상했겠지만 이 정도까지 폭발해주리라 믿었을지는 모르겠다. 실사영화가 배우와 감독의 네임밸류를 팔아먹을 수 있다 치면 <인크레더블>한텐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의 픽사 스튜디오 신작!’ 정도가 홍보에 써먹을 수 있는 가장 섹시한 문구였다. 여기에다빨간 옷을 입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중년의 히어로와 그의 가족들을 내세운 <인크레더블>은 개봉 5주째까지 2억2500만달러
본격 액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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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은 수수께끼와 같은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그가 활동했던 일본에서조차 그의 진실은 논란거리였다. 80년대까지 그의 출신지(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가 펼친 승부는 항상 극적이었지만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따른 쇼라는 소문을 늘 꼬리표처럼 붙이고 다녔다. 링 위에서 그가 보여준 열정은 비즈니스, 그러니까 돈에 대한 집착과 간혹 혼동됐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암흑세계의 그림자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품게 했다. 특히 그의 돌연한 죽음은 단순사고에서부터 야쿠자의 계획범행, 의료사고, CIA 음모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추측을 낳았다. 결국, 뛰어난 레슬러, 비정한 사업가,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난봉꾼, 어린이를 사랑했던 스타 등 사람들이 기억하는 역도산의 얼굴은 지금까지도 제각각으로 존재한다.
‘역도산의 진짜 얼굴은 무엇인가.’ 송해성 감독의 <역도산>이 던지는 질문은, 때문에 자못 의미심장하다. 역도산의 39년 인생 중에서도 가장 극적 순
한 사내의 격투와도 같은 삶, <역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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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차야 있겠지만 도시의 삶은 아무래도 삭막하다. 수백만이 부대끼고 테크놀로지가 섭리하는 곳. 정해진 시간, 정해진 루트를 따라 되돌아오고 다시 정해진 일상을 반복하는 곳. 인간은 왜소해지고 시스템은 비대해진다. 여기서 자아를 되찾겠다는 형이상학적 노력이 아주 없을 순 없으나 ‘존재란 다만 기능(function)의 연장일 뿐’이라는 유물론적 생각까지 재고(再考)할 줄 모르는 이들은 오히려 테크놀로지와 기계의 힘을 빌리려 한다. “인간의 육체를 재발견하라!” 기계를 신체의 연장으로 삼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식 악취미, 쓰카모토 신야의 사이버펑크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나와 적(敵)이, 거대도시를 향한 애정과 증오가, 자아실현과 자폭의지가 한데 얽혀 융합한 문제적 인간의 불길한 폭주가 시작된다. 이것이 필모그래피 면면히 가득한 쓰카모토 신야풍(風) 카타르시스다.
또한 사이버펑크적인 골격을 그대로 가지고 온다. 삶이 걸려 있는 긴박한 문제마저 전화로 상담하는 건조한 도시, 그나마도
사이버펑크 대신 도시의 철학자, <6월의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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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당나라로 유학차 왔다 25년 동안 머물고 있는 라이시(나카이 기이치)는 왕명을 받아 사막 한 벌판에서 10년째 한 인물을 쫓고 있다. 그의 표적은 터키 포로들을 죽이라는 상부의 명령에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군인이 할 짓이 아니다”라며 거역하고 탈영한 이 부관(장원). 그는 사막의 대상(隊商)들을 호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침내 라이시는 사막 저편으로부터 당의 수도로 불교 경전을 옮기는 행렬을 보호하고 있는 이 부관을 찾아내지만, 산적과 터키족 등이 득시글거리는 사막을 건널 때까지만 그를 살려주기로 한다. 결국 친구의 딸인 원주(조미)를 수도로 호위해야 하는 라이시 또한 이들 대열에 합류한다. 하지만 이들이 옮기고 있는 수수께끼의 ‘보물’을 빼앗기 위해 안 두령이 이끄는 산적 무리가 이들을 공격하고, 라이시와 이 부관, 그리고 이 부관이 예전에 거느렸던 무사들이 합세해 강력하게 맞서 싸운다.
<천지영웅>은 언뜻 보기에도 김성수 감독의 <무사&
광활한 사막 위에 펼쳐지는 비장한 남성 액션, <천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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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인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케냐에 머물렀던 어느 유대인계 독일 가족의 이야기다. 변호사인 발터(메랍 니니트체)와 그의 아내 예텔(율리안느 쿨러), 그리고 사랑스런 다섯살짜리 딸 레기나(레아 쿠르카)는 2차대전의 발발로 독일에서의 풍족한 삶을 뒤로 한 채 케냐로 도피한다. 현실적인 발터는 기후와 풍토가 전혀 다른 이국에서도 바로 직업을 얻고 생활력을 발휘하지만, 아내 예텔은 냉장고 대신 싸들고 온 고급 접시를 꺼내놓지도 않은 채 곧 고향에 돌아갈 것을 믿는다. 혀와 생각이 굳지 않은 레기나는 현지인 요리사 오부워(지데데 오뉼로)에게 케냐 부족어를 빠르게 배우며 피부색 다른 아이들 틈으로 섞여들어간다.
<러브 인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대륙을 일종의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쯤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예텔의 눈에 이 땅은 어쨌거나 오지이고 그들의 관습은 이해할 수 없는 규칙이고 사람들은 가난하고 시대에 뒤떨어졌고 지저분하다. 때때로 부족인들은 예텔을 원숭이 쳐다
백인의 시각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다, <러브 인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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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전하다. 보드카를 병째 입에 물고 <올 바이 마이셀프>를 온몸으로 불러젖히며 세계 만방에 자기를 알리고 한살 더 먹었지만 33살의 싱글족이란 신분은 그대로다. 알코올과 담배? 물론 이 정다운 친구들과 절연하지 못했다. 몸무게? 행복해져서일까, 통통하던 몸매는 좀 퉁퉁해졌다. 그 무엇보다 변함없는 건 브리짓 존스를 매력적이게 만들었던 그녀만의 행동거지다. 좀더 좋은 것과 좀더 나쁜 것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망설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행동하는, 그러나 이따금 엉뚱한 방향으로 사태를 도약시키는 재주.
그 남자들도 여전하다. 마크 다시는 냉정해보일 만큼 말끔한 표정의 기품있는 인권변호사다. 무뚝뚝한 낯빛에 그 속내가 자주 묻혀버리기는 하지만 사랑의 열정을 은근히 감춰두었다. 그래서 더 완벽한 상대가 된다. 다니엘 클리버는 섹스 클리닉을 받고 있다고 ‘신분 위장’을 해야 할 정도로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치기해가며 누군가를 침대로 끌어들이고 있다. 브리짓을 향한 유혹의
보통 사람들의 삶과 연애,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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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초연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을 각색한 영화다. 가스통 르루의 소설이 원작인 이 뮤지컬은 화려하고 장중한 음악과 지하 호수까지 만든 경이로운 무대, 호러와 로맨스가 뒤섞인 스토리로 사랑받아왔다. 그러므로 감독 조엘 슈마허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전으로 안착한 소설과 뮤지컬의 무게를 이중으로 짊어지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담한 변형 혹은 충실한 복제,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면, 슈마허는 후자를 택했다. <폰부스> <배트맨 & 로빈> <타임 투 킬> 등에서 불균등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그는 제작자이기도 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함께 그를 향한 충성에 가까운 각색을 시도했고, 뮤지컬 무대에서는 불가능했던 스펙터클만을 덧붙였다.
1919년 파리. 노인이 된 라울 드 샤니 백작은 파리 오페라극장 소장품을 판매하는 경매장을 찾는다. 극장 지하에서 발견된, 아직도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낡은 뮤직박스를 산
원작 뮤지컬의 충실한 복제, <오페라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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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원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다. 최근 할리우드영화들은 독창적인 주제를 도무지 감당해내지 못한다. 훌륭한 주제들은 어김없이 샛길로 빠져 결론에 이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주절대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이라고 봐주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멀쩡한 이야기에 자본의 잉여가 탄생시킨 쓸데없는 살덩어리가 붙여지고 있다. 이 천박함 속에서 영화는 ‘슬퍼하라, 울어라, 무서워하라’를 강요한다. 그러니 가볍게 웃어줄 수밖에. 영화가 당면한 새로운 비극이다. <포가튼> 역시 기대만발했던 시작의 꿈을 결말은 어김없이 배신한다. 탱탱했던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모성이라는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서사에 기억, 상실의 아우라를 첨가한 영화의 도입부는 꽤 신선하다. 비행기 사고로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 허덕이는 텔리(줄리언 무어). 아들을 떠나보낼 수 없는 그녀는 기억을 통해 아들의 존재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물건들이 사라졌음을 발견하고 경악하는
망각의 세계에 기억을 되돌려 세상을 구원하리, <포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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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는 떠돌아다니는 신세로, 글래스고와 에든버러를 오가는 부부의 바지선에 일꾼으로 고용돼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강에서 젊은 여자의 익사체를 발견한다. 얇은 속치마만 걸친 채 떠내려온 여자의 허옇게 불어터진 시신. 그는 남몰래 시신의 등을 쓰다듬고, 경찰의 들것에서 떨어진 여자의 다리를 응시한다. 그녀는 사고를 당한 것일까, 자살한 것일까, 살해당한 것일까. 범죄스릴러의 모양새로 시작하는 <영 아담>은 뜻밖에도, 범인의 정체와 사건의 진상을 풀어가는 과정에 집중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담이 아니라 조다. ‘영 아담’이라는 제목은 그러니까, 인간의 선과 악, 본성과 실존의 문제를 건드리는 영화가 될 거라는, 가장 직접적인 힌트다.
여인의 익사체를 발견한 건 ‘계기’에 불과하다. 이때부터 바지선 남녀의 ‘캐릭터 반전’이 시작된다. 수줍고 우직해 보이던 그 남자 조(이완 맥그리거)는 노골적으로 바지선의 여주인 엘라(틸다 스윈튼)를 유혹한다. 엘라
검푸르고 음습한 유혹의 기술, <영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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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민병대원 치키(브랑코 쥬리치)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세르비아군한테 동료를 모두 잃고 전선 한가운데 놓인 참호 속으로 피신한다. 세르비아의 신참 병사 니노(레네 비토라야츠)도 전황을 확인하고자 참호로 들어왔다가 치키에게 동료를 잃는다. 이제 적국의 두 병사는 참호 안에서 정면대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치키와 니노는 총을 뺏고 빼앗기며 주도권을 다투지만 상대방을 제거할 수는 없다. 아군이 살해됐다는 사실을 안 적군으로부터 포격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참호 안에는 또 한명의 병사가 있으니, 그는 대인지뢰 위에 눕힌 채 정신을 잃었던 치키의 동료 체라(필립 쇼바고비치)다. 그가 몸을 약간만 움직여도 세명의 목숨은 순식간에 날아간다. 결국 공멸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세 사람의 이상하고도 위험한 공존이 시작된다.
1992년 유고연방의 한 공화국 보스니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촉발된 보스니아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불린
그 누구의 땅도 아닌 곳, <노 맨스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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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에 태어난 두 남자가 액션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까불지마>의 오지명, 최불암은 모두 1930년대생이다. ‘100% 대역이겠지’라는 섣부른 판단은 거절한다. 특히 오지명은 꽤 어려운 난이도의 수차례의 ‘합’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몸을 내던진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로 와이어 액션마저 직접 해내는 그의 투혼은 인상적이다. 장동휘, 박노식과 더불어 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주역으로 부상하며 150여편의 활극에 출연한 그의 과거를 고려하면 이는 납득이 되기도 한다. <까불지마>는 두 주연간에 철저히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 활극은 오지명, 드라마는 최불암, 노주현은 코미디와 드라마를 아우르며 두 사람의 가교 역할을 한다. 그래서 <까불지마>는 막가는 코미디보다는 ‘휴먼코미디’의 성격이 강한 영화다.
벽돌(최불암)과 개떡(오지명)은 동방파의 실세다. 삼복(노주현)은 구두닦이를 하다가 그들에 의해 발탁된다. 벽돌과 개떡은 후배
수사반장와 오반장의 합체, <까불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