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되는 순간 통행이 금지되던 그때 그 시절, 넓디넓은 광화문 거리를 중앙정보부의 주 과장(한석규) 차가 홀로 질주한다. 신경질적으로 한번 빙글, 또 한번 빙글. 높은 빌딩에서 중앙청 건물까지 시원하게 잡은 이 장면은 다분히 함축적이다. 김 부장(백윤식)의 도박에 기꺼이 동참했던 일생일대의 모험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는 순간의 절박함과 다른 선택이 불가능했던 개인의 처절한 마음 풍경이다. 큼직큼직하게 지어진 건축물(권력체계) 앞에선 초라한 개인. 또 이 장면은 지금의 한국영화가 한국 현대사의 어떤 정점에 이르렀음을 웅변한다. 아마도 주변의 교통통제 없이는 촬영이 가능하지 않았을 터다. 24시간 차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 곳이며 청와대가 지척인 권력의 코앞이니까. 그런 곳에서 촬영하면서도 의 비밀제작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사실 충무로의 공공연했던 비밀이 촬영 종료까지 유지됐던 건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암묵적 동의 내지 희망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권력’이 어디까지 ‘작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나침반 같은 작품이다. 그것도 촬영과 미술, 연기와 연출이 앞다퉈 세련미와 여유를 뽐내며 자신을 짓뭉갰던 권력의 천박함을 우아하게 조롱하면서.
사무라이 김 부장은 자신의 주군 다카키 마사오(송재호)보다 더 ‘똘아이’스럽다. 주한 미 대사를 만나 모종의 합의를 이뤘다고 의심치 않는 그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신념을 흔들림 없이 실천하지만 참모총장을 대기시켜놓은 것 빼고는 준비의 치밀성이 영 신통치 않다. 영화는 그와 한배를 타야 했던 주 과장과 그의 부하들의 비극적 운명을 대비시키는 시선을 명쾌히 노출하지만 그들이 권력의 ‘개’였던 건 부인할 수 없다. 채홍사 주 과장은 각하를 수청든 딸의 어머니(윤여정)에게 쌍욕을 해대며 뒷소문을 막고, 남산 지하취조실의 고문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김 부장의 도박이 리스크가 높은 만큼 돌아올 대가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직감할 줄 안다. 영화가 그들을 동정하는 건 비록 권력의 주구였을지언정 그들이 지닌 개인의 실존적 무게까지 삭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10·26에 정면으로 다가서되 ‘국부’에 맞서는 무기로 ‘개인’을 내세우는 전략이다.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신호등을 건너야 하는지 마는지, 버스를 타야 하는지 마는지 망설일 수밖에 없는 학생(개인)들의 풍경으로 부조리를 고발하는 방식이다. 그게 지금 그때를 영화로 말할 수 있는 방법의 최대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