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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본때를 보여주마. 그게 바로 나다. 여기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니까.” 묵시록적인 도시의 이미지들에 섞여 들려오는 폴 제프리(존 딜)의 무시무시한 다짐의 목소리다. 그는 감시 카메라를 비롯하여 각종 기기들을 장착한 개조 차량을 몰고 거리를 쏘다니며 목표물을 찾고, 터번을 쓴 아랍인만 보면 테러리스트 용의자로 취급하며, 그들이라면 세탁물 세제로도 폭탄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의심하며 뒤를 쫓는 전직 특수부대원 출신이자 과거의 망령으로 얼룩진 과대 피해망상의 애국주의자다. 그의 전화벨 소리조차 미국의 국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 내 집, 내 조국으로 인도해주셔서…. 오래 떨어져 있어서 낯설지만, 돌아와서 기쁩니다.” 폴 제프리가 미국의 안존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혹은 그렇거나 말거나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그때, 멀리 이스라엘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들어
혼돈의 땅, 미국에 보내는 편지, <랜드 오브 플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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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파운드 상당의 마약을 둘러싸고 정신나간 갱단, 세르비아 민병대 출신들, 마약 도매상, 판매책, 중개상, 그리고 또 여러 세력들이 어지럽게 뒤얽힌다. 게다가 배경이 영국이라면, 어떤 영화가 떠오르지 않나.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를 연상케 하는 <레이어 케이크>는, 아니나다를까 이 두 영화의 프로듀서였던 매튜 본의 감독 데뷔작이다. 하지만 초록은 동색이라는 속담까지 떠올릴 필요는 없다. <레이어 케이크>는 영국 범죄영화라는 장르의 궤도를 돌고 있지만 범죄와 범죄자들을 단지 얄팍한 영화적 재미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영상 테크니션’ 가이 리치의 영화와 달리, 범죄라는 악의 고리에 사로잡힌 영혼들을 보여주려 한다.
끝끝내 이름이 밝혀지지 않으며 엔딩 크레딧에도 그냥 ‘XXXX’로 적힌 주인공(대니얼 크레이그)은 스스로를 갱스터가 아니라 ‘마약을 취급하는 비즈니스맨’이라 규정하는 인물이다. 그는 케임브리
범죄라는 악의 고리에 사로잡힌 영혼들, <레이어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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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 로알드 달은 어린아이처럼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개만 먹으면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는 풍선껌이나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 민트로 이루어진 풀밭은 군것질거리에 애틋해하는 철없는 사람만이 생각해낼 수 있다. 아마도 로알드 달은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초콜릿과 캔디가 넘쳐나고, 공장의 주인이 창조자처럼 군림하며, 심술궂은 아이들을 마음대로 혼내줄 수 있는. 그러므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상상의 세계와 그 원천이 꿈처럼 녹아드는, 거친 손길이 그 둘을 분리하고자 한다면 생명을 잃고 시들어버릴, 완벽하게 고립된 창조물일지도 모른다. 이 고집 센 동화를 어떻게 다른 장르로 옮겨놓을 것인가. 그 자신 또한 기괴한 환상의 창조자이자 거주민인 팀 버튼은 그에게 어울리고 그만이 가능한 방법을 선택했다. 팀 버튼은 신이 나서 과자로 만들어진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어린아이처럼 초콜릿 공장을 건설했다. 천진하
광활한 상상의 세계, <찰리와 초콜릿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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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에 활동한 미국 복서 짐 브래독은 뉴욕의 설움 많은 아일랜드계 이주민 2세였다. 5남2녀가 바글거리는 집에서 태어나 갖은 잡역부 일로 가계를 돕던 그는 스물한살 되던 1926년에 라이트 헤비급으로 프로에 데뷔했다. 치르는 경기마다 초반에 KO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다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전에서 패한 해가 1929년. 공황으로 모든 것을 잃고 오직 생계를 위해 싸웠는데 뭣 때문인지 그는 5년간 22전16패의 기록만 남겼다. 그러다 또 뭣 때문이었는지 기적처럼 재기했다. 햄 한 조각 먹지 못한 스물아홉의 체력으로 젊고 유망한 헤비급 복서들을 제쳐내더니 브래독은 1934년, 경기 중 몇명의 숨을 끊어놓았다는 챔피언 보유자와 맞붙게 됐다.
이 ‘뭣 때문인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영화 <신데렐라 맨>은 끈질기고 처절한 스포츠 드라마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정신병을 지닌 천재 수학자의 실화에서 아름다운 부부애와 노벨상 수상이라는 극적인 감동을 찾아내 영화 <뷰티풀
링 위의 힘겨운 투쟁, <신데렐라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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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었음직한 괴담이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밤마다 움직인다, 미술실에 혼자 있으면 석고상이 노려본다, 유관순 초상화에는 7가지 비밀이 있다, 소풍날 비가 오는 건 학교 귀신 때문이다, 등등. 불합리한 교육제도나 폐쇄공간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원초적이고 근거없는 두려움들이, 어린 마음들을 떠돌았던 것 같다. <학교전설>은 어린 시절 우리의 귀와 입을 바쁘게 했던, 전설과 괴담을 다룬 영화다. 어른 관객도 나눠가질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건 이런 이유다.
<학교전설>은 시청각적으로 매우 공포스럽다. 음악, 음향효과, 특수분장, CG 등은 학교에, 아이들 머릿속에 떠도는 괴담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하지만 ‘본격 키즈엔터테인먼트 무비’를 표방한 이 영화도, 계몽과 선도에 대한 강박을 벗어내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영주를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이 동급생들의 왕따로 밝혀지면서,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식의, 진
본격 키즈엔터테인먼트 무비, <학교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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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콜렉터>는 철저한 할리우드식 시나리오의 영화다. 연쇄살인범의 초상은 <양들의 침묵> <쎄븐> 이후 할리우드의 단골로 급부상했고, 범죄를 일종의 예술처럼 여기는 기묘한 사디즘은 정교한 내러티브 속에서 관객과 게임을 벌인다. 물론 <본 콜렉터>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양념들을 듬뿍 쳐놓았다. 머리를 제공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흑인배우 덴젤 워싱턴이며, 그의 수족이 되어 몸을 아끼지 않는 일은 안젤리나 졸리가 맡았다. 할리우드영화에서 남성의 두뇌와 여성의 몸의 결합은 요즘의 한 경향이고 그것도 다른 인종간의 결합이면 금상첨화다. 범인이 제시하는 단서를 따라 뉴욕의 과거를 훑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낡은 도살장, 한권의 추리소설, 뉴욕의 어두운 지하도 등.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강과 결말로 이끈다.
하지만 범인의 등장은 빛이 되기에는 함량미달이다. <긴급명령> <패트리어트 게임>을 만든 호주 출신의 필립
철저한 할리우드식 시나리오, <본 콜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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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역사가들은 뮤지컬과 네편의 영화에 원안을 제공한 애나 레노웬스의 회상록을 한 고독한 여인의 분홍빛 몽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미 감정한 바 있다. 그러니 이 로맨스가 실화인가는 따로 묻기로 하자. 무엇보다 <애나 앤드 킹>은 두 사람의 강한 인간, 온 세상을 짊어진 남자와 자기 안에 하나의 세계를 가꾸어 온 여자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무뚝뚝한 떡갈나무의 가지를 흔드는 산들바람. 우리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그런 커플을 보았다. 마리아가 폰 트랩 가에 노래를 가져다 주었다면, 시암의 왕궁에 당도한 애나의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것은 자애와 용기다.
말레이시아 로케이션과 런던 스튜디오를 오가며 촬영된 2시간이 훌쩍 넘는 <애나 앤드 킹>은 호화 양장본의 증보판이다. 앤디 테넌트 감독이 생각한 이 리메이크의 존재이유는 무엇보다 미장센과 색채의 보강이었던 모양. 첫 그림부터 스크린은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을 상기시
무뚝뚝한 떡갈나무의 가지를 흔드는 산들바람, <애나 앤드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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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비틀거리는 걸음, 초췌한 얼굴, 일그러진 표정의 마흔살 남자. 우리가 영화에서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이 사내는 불행해보이지만 별 동정은 가지 않는다. 야유회장에 술 취한 채 나타나 분위기 깨는 이런 인간은 가능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행히 사라졌나 했더니, 어느샌가 철로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질러댄다. 뻔하다. 저 한심한 인생이 더러운 꼴 크게 한번 당한 게로군, 하면서도 놀던 사람들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가 달려오는데, 사내는 물러서기는커녕 눈을 부릅뜨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왜 저럴까. 정말 죽을 작정인가. 아무리 꼴보기 싫은 인간이라도, 죽겠다고 나서면 썩 내키진 않지만 놀이를 멈추고 일단 만류한 뒤 그의 사연을 들어주는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 눈물이 흐를 듯 고인 채 파르르 떠는 사내의 눈은, 피하고 싶은데도 결국 속을 울렁이게 만든다.
<박하사탕>은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며, 결코 호감은 안 가지만 냉큼 외면하기도 힘든 이 사내의 2
한 사내의 20년에 걸친 개인사, <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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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여.” ‘조폭마누라’가 장성한 세 아들을 뒀다면 이랬을까. 여수 백호파의 대모 홍덕자(김수미)는 조직을 물려받은 세 아들을 끊임없이 다그친다. 그 덕에 조직은 외풍없이 평화를 누리지만, 그녀에게도 고민은 있다. 세력 확장을 위해 서울로 올라간 큰아들 인재(신현준)가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급기야 그녀는 두 아들에게 “내 환갑날까지 느그 형 색싯감을 찾아오라”는 엄명을 내린다.
전국관객 500만명을 끌어모았던 <가문의 영광>의 속편. 이번엔 엘리트 며느리를 들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재는 어느 날 도식(김해곤) 일당한테 쫓기던 여검사 진경(김원희)을 구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상대가 실은 “깡패들 잡아 콩밥 먹이는” 강력부 검사이고 “오후 2시에 출근해 6시면 사우나로 직행하는” 깡패 보스임을 알아차리기까지, 현실에선 불가능한 기막힌 데이트를 더해간다.
조
과도해진 웃음강박증, <가문의 위기: 가문의 영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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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크레이븐이 돌아왔다. 상영시간은 짧아졌고, 공간은 압축되었고, 인물들도 줄었다. 정체불명의 목소리도, 가면을 쓴 괴한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나이트 플라이트>의 웨스 크레이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포의 긴장과 이완에 영화의 무게를 싣는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의 순간이 없어도 안도의 한숨과 절박한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은 그 자체로 충분히 생동감 있다. 과연 7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긴장감을 잃지 않는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여기에 영화는 공간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두번의 급박한 반전과 입체적인 캐릭터, 그리고 비행기의 공간적 성격을 통해 답한다.
호텔리어 리사(레이첼 맥애덤스)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친절한 남자, 잭슨(킬리언 머피)과 같은 비행기, 옆자리에 탑승하게 된다. 그런데 기상 악화를 뚫고 비행기가 이륙을 마친 순간, 잭슨의 정체가 드러난다. 리사의 호텔에 머무르기로 계획된 정부 인사를 암살하기 위해 리사를 협박하는 잭슨. 불안정한
미국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불안한 시선, <나이트 플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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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옛날 조선에서. <형사 Duelist>는 여느 나그네의 요설처럼 막을 올린다. 아니, 영화의 프롤로그는 정말로 인간인지 귀신인지 모를 여인네에게 유혹당하는 나그네의 요설이다. 극과 상관없는 프롤로그가 갑자기 중단되면, 장터에서 잠복근무 중인 좌포청의 안 포교(안성기)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처럼 걸걸한 남순(하지원)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화폐위조범들의 출처를 알아내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병조판서(송영창)와 그의 하수인인 슬픈눈(강동원)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남순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슬픈눈과 사랑에 빠지면서 임무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사라져간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이명세는 더이상 서사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서사의 공백을 대신하는 것은 활동사진의 쾌락이다. 고속촬영과 저속촬영, 프리즈 프레임(정지화면), 색감과 명암의 급격하고 다양한 변화를
서사를 대신하는 활동사진의 쾌락, <형사 Du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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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아내와 남편은 불륜을 저질렀다.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낯선 고장 삼척으로 달려와 혼수상태인 아내와 남편을 볼 때까지도. 아마 그들은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낯선 곳에서, 절대로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자기를 속인 배우자를 간호하면서, 그들의 변명조차 듣지 못하면서,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수와 서영은, 일상에서 만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장 혹독한 고통의 순간에 만난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니’라는 인수의 말처럼,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다. 만약 이곳이 서울이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또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먼길을 찾아온 후배에게, 취한 인수는 그냥 가라고 말해야만 한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
결코 외면할 수는 없는 이탈과 내쳐짐의 정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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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말이지만, 배우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실사까지 파고든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발전상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배우 없는 영화’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좀 호들갑스러울 수는 있으나, 불가능하다 도리질만 할 수 없는 것은 <스튜어트 리틀>이 내비친 가능성 때문이다. 사람 세상에 입양된 쥐의 모험담이 애니메이션 아닌 실사로도 만들어질 수 있고, 그것이 1억달러의 제작비가 쓰일 만한 보람직한 프로젝트일 수 있다는 사실. 여기서 사람은 기껏 조연이거나 배경 그림에 불과하다. 3D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가상의 캐릭터 스튜어트, 립싱크 솜씨가 훌륭한 고양이 스노벨과 그 패거리들이 이끌어가는 이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여전사 지나 데이비스나 영국 출신 연기파 휴 로리에게 눈길을 보내는 관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스튜어트 리틀>이 일궈낸 기술혁명은 그렇듯 눈부시다. 풍부한 표정연기와 다이내믹한 액션연기를 소화하는 스튜어트의 생생함은, 그것이 살아
어린 관객에게 전하는 ‘친화적인’ 메시지, <스튜어트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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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깊이, 오래 생각하면 성자나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소나티네>를 보면 성자나 철학자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소나티네>는 죽음에 대한 기타노 다케시의 사고가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이다. 언젠가 기타노는 자신의 최고작으로 <소나티네>를 꼽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랫동안 죽음에 홀려 있던 자기 모습이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머리에 지그시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기타노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세번 반복되는데 한번은 총알없이 하는 장난이지만 두번은 뻥 뚫린 두피 사이로 피가 용솟음치는, 몸서리쳐지는 장면들이다. 그는 왜 이런 끔찍하고 살벌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일까? 다케시는 야쿠자 보스 무라카와를 통해 그 의미를 돌아본다.
기타노 자신이 연기하는 무라카와는 처음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으로 등장한다. 작은 조직의 보스지만 마음에 안 들면 최고 보스의 오른팔이라도
죽음에 대한 기타노 다케시의 사고, <소나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