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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었다. 긴 세월 무난하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남편의 장례식 날 걸려온 낯선 여자의 전화에 모범주부 도시코(후부키 준)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상하리만큼 서럽게 오열하던 그녀는 불길한 예감대로 남편의 애인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모르던 남편의 비밀은 비단 애인의 존재뿐만이 아니었는데…. 다 키운 줄 알았던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한줌의 도움도 못 주고 각자의 사정만 칭얼칭얼 늘어놓는다. 심란한 마음에 도심의 캡슐호텔에서 외박을 감행한 도시코는 그곳의 수상쩍은 인간 군상에게서 세상을 배운다. 건망증과 고집센 성격으로 늘 티격태격하는 여고 동창들이 그녀의 동지로 옆에 서준다.
<다마모에>는 자기를 위해선 작은 물건 한번 사본 적 없는 한 여성의 변신 이야기다. ‘중년 여성의 자아 찾기’라는 쉬운 표현로 요약해버리기엔 그 결이 풍성하다. 남을 돌보고 배려하지 않으면 제 성에 안 차 괴로워하는 주부의 내면과 그녀가 부딪히는 뻔뻔한 세상이 흥미진진하고 구체적으로
중년 영화의 매력, <다마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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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젊은이들의 달빛과도 같은 은은한 열광을 받고 있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의 감독 이누도 잇신이 찾아온다. 덩달아 쌍수 들고 환영할 사람도 많으니, 인기 아이돌 ‘아라시’의 다섯 멤버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언더그라운드적 존재이며 다수의 서정만화를 남겼던 나가시마 신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드라마 <황색눈물>을 골격으로 했다. 만화가, 소설가, 가수, 화가를 지망하는 네명의 청춘들과, 이들의 파이팅을 묵묵히 지원하는 노동청년. 이 예술구락부원들이 예술가적 자유를 꿈꾸며 에이스케(니노미야 가즈나리)의 좁은 자취방에 모여들며 영화가 전개된다. 주변부 삶에 애정을 보여왔던 이누도 잇신은 사실상 일본의 현재와 과거에도 관심이 많다. 일등과 금메달만을 기억하던 일본의 고도성장기인 1963년을 뒤돌아보며 감독은 조심스레 세대론을 전달한다. 전쟁 전 세대인 에이스케 어머니의 병과 죽음, 에이스케와 그의 예술을
이누도 잇신과 아라시가 찾아온다, <황색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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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억압 속에서 영적 도약을 그려오던 라스 폰 트리에가 코미디를 만들었다! 10년간 덴마크의 컴퓨터 회사를 운영해온 회사의 실제 소유자 라운(피터 겐츨러)은 사장이 마치 미국에 사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직원들을 속여왔다. 사장은 신비한 존재로 남는 대신, 소심한 자신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직원들과 동료애를 나누자는 전략이다. 직원 전원 해고를 조건으로 회사를 매각하려는 상황에서 라운은 사장을 연기해줄 배우 크리스토퍼(젠스 알비누스)를 고용한다. 배우의 얼치기 연기보다 더욱 실소를 자아내는 것은 그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다. IT업계에 무지하며, 회의석상에서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장’ 아래서 직원들이 사장의 권력을 그대로 인정하고 벌이는 일화야말로 코미디의 포인트들을 표현한다.
감독이 전작 <도그빌>에서 추구했던 연극과 영화의 결합이라는 형식은 그가 덴마크로 돌아와 만든 이 코미디에서도 ‘무대’와 ‘법정’이라는 아주 기발한 형태로 되살아났다. 연극배
라스 폰 트리에가 코미디를 만들었다, <오! 마이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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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에 성공한 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오션스 일당을 루벤(엘리엇 굴드)이 라스베이거스로 다시 불러모은다. 동업을 약속했던 윌리 뱅크(알 파치노)의 배신으로 몸져 누워 친구들의 걱정을 산 탓이다. 루벤을 위로하고자 한때 적이었던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까지 끌어들인 대니(조지 클루니), 러스티(브래드 피트), 라이너스(맷 데이먼)를 비롯한 오션스 일당은 복수를 다짐한다. 뱅크가 루벤의 땅에 건립할 호텔 카지노에서 엄청난 잭팟을 터뜨리는 동시에 꼭대기층에 보관된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려는 것. 문제는 뱅크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고의 호텔을 의미하는 ‘다이아몬드 5개 등급’ 호텔을 여럿 지닌 그는 작은 실수에도 “자네, 해고야!”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처럼 편집광적인 완벽주의자다. 호텔의 개장을 지휘하는 개인비서 아비게일 스폰더(엘렌 바킨) 역시 남자에 약하다는 것을 빼면 약점을 찾을 수 없는 고약한 일중독자. 그들을 속이려면 더욱 철저한 작전이 필요하다.
꽤나 치밀하게 조율되는 사기 교향곡, <오션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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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너머의 얼굴이 <아홉살 인생> <여선생 vs 여제자>의 새침데기 이세영이라는 것을 처음엔 좀처럼 알아보기 힘들다. 이 배우는 미디어가 만든 깍쟁이 아역배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나이와 실존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쳐주었다. 전교 일등이거나 불안에 온통 투신하는 완전 날라리가 아닌 이상,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감없는 소녀가 바로 수아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뒤, 이상하게도 수아는 슬픔보다는 환상을 키운다. 바로 유명 가수 윤설영이 자신의 진짜 엄마라는 것. 투명한 오르골 소리와 함께하는 마술도 있다. 환상과 마술은 소녀가 사는 무채색의 세계에 원색의 생생함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환상적 세계 속에서의 수아의 웃음엔 소리가 없다. 처음에 환상은 수아가 자신을 부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수아는 현실을 떠나, 진짜 ‘엄마’를 찾아 기차를 타고 떠난다. 성장이란 그러나 아버지의 말이, 그리고 그로 인해 자라난
진짜 ‘엄마’를 찾아서, <열세살, 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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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독은 평생 단 한편의 영화만 만든다. 지아장커야말로 그렇다. <소무>에서 <플랫폼>과 <임소요>를 거쳐 <세계>에 이를 때까지, 그는 늘 변하는 것을 찍으면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아장커가 만들어내는 단 한편의 영화는 <스틸 라이프>에서 마침내 정점에 올랐다. 이 영화는 완전하다. 그리고 여기엔 장이모와 첸카이거의 요즘 작품들에선 절대로 찾을 수 없는 현실의 중국이 있다.
지아장커는 서른살 무렵에 쓴 글에서 불안정한 자신의 생활을 떠올리며, 영화를 선택한다는 건 뿌리뽑힌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는 늘 자신의 삶과 영화를 일치시키는 감독이다. <플랫폼>이 그랬고, <세계>가 그랬으며, 이제 <스틸 라이프>가 그렇다. 이 영화엔 무너진 돌들이 있고 뿌리 뽑힌 사람들이 있다.
산밍은 16년 전 자신을 버리고 딸과 함께 가출한 아내를 찾아 주소만 달랑
사라져가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불러내는 초혼가, <스틸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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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노 마코토는 쾌활한 열일곱살 소녀다. 등굣길 산들바람은 단발머리를 희롱하고 턱걸이로 지각을 면해도 마음은 노래 부른다. 수업이 끝나면 두 친구 고스케와 치아키와의 즐거운 야구연습이 기다린다. 그러나 소녀는 지금 비탈을 달리는 중이다. 여름은 바야흐로 반환점을 돌고 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좋았던 그녀의 시간은, 이제 끝나려 한다. 선생님은 문과냐 이과냐 진로를 묻고 치아키와 고스케는 그들을 사모하는 여학생들의 고백을 받을 참이다. 7월13일. 일본어 발음으로 ‘나이스 데이’라 불리는 날 마코토는 늦잠부터 시작해 시시콜콜한 재앙을 연달아 겪는다. 그리고 방과 뒤 과학실 구석에서 호두처럼 생긴 괴상한 물체 위로 넘어져 신비한 비전을 본다. 자전거를 달려 귀가하던 철도 건널목에서 마코토는 기차와 부딪힌다. “설마 죽겠냐 했는데 죽는구나.” 다음 순간 마코토는 자기가 시간을 뛰어넘어(time leap) 살아 있음을 발견한다. 곧장 마코토는 복권을 산다, 고 생각하면 그녀를 잘 못
삶을 연장하는 편법, <시간을 달리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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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져: 죽은자들의 경고>는 홍콩의 형제 감독 대니 팡과 옥사이드 팡(<디 아이> <디 아이2>)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샘 레이미(<스파이더 맨> 시리즈) 감독이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과 만든 <그루지>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호러영화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링> <그루지>를 잇는 아시아 출신 할리우드 호러영화로 개봉 첫주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지만, 그 다음주 바로 10위로 밀려나며 잊혀진 영화이기도 하다.
팡 브러더스는 낯익은 공포영화의 코드를 충실히 활용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참극의 비밀을 간직한 미국 외딴 벌판의 농가, 주인공은 도시에서 밀려나 시골에서 새 출발을 하려는 일가족이다. 새 보금자리에서 아이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계속 노출되고, 어른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문제아 출신의 10대 여주인공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고립감을 느끼고, 어
장면 장면의 공포감 등골이 서늘 <메신저: 죽은 자들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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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을 사랑하는 소심한 괴물 슈렉(마이크 마이어스)이 헤어나오기 힘든 늪 속으로 자꾸 빠져든다. 1편에서 차지한 공주의 사랑과 2편에서 공주의 가족에게 인정받은 사랑이 거꾸로 그의 발목을 수렁으로 인도한다. 개구리 왕이 돼버린 피오나 공주의 아버지는 슈렉에게 왕위를 물려받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짝퉁 할리우드인 ‘겁나먼 왕국’을 다스린다는 건 자유로운 패러디의 영혼 슈렉에게 끔찍한 고문이다. 화려한 옷치장부터가 고통이며 거대한 소동의 원인이 된다. 슈렉에게 다행스러운 건 피오나의 먼 친척 아티(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찾아 대신 왕위를 물려주면 된다는 것이다. 슈렉의 인기를 능가할 지경에 이른 동키(에디 머피)와 장화 신은 고양이(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함께 아티를 데려오는 모험이 시작된다.
또 하나의 수렁은 피오나(카메론 디아즈)가 베이비 슈렉을 낳을 예정이라는 점이다. 통제 불가능한 아기를 다스린다는 것 역시 슈렉에겐 악몽이다. 아티 같은 타협책이 있을 리 없으니 계속 악몽에 시달리거
슈렉의 훈계극 <슈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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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병을 앓다 목숨까지 잃은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에 머물 때다. 혼례를 위해 준비했던 아름다운 치마를 관 위에 손수 덮어주는 데 예서 멈추지 않는다. 황진이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더이상 고고한 양반집 규수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생생한 육성으로 고한다. 그런데 기생 명월으로 재탄생하겠다는 이 선언의 타이밍 후보는 좀더 있었다. 가령, 파혼당한 뒤 출생의 비밀과 성인군자로 위장하는 데 성공했던 ‘색마’ 아버지의 정체를 동시에 알고 분노에 차서 아버지의 족자를 집어던질 때라든지, 기생이 되기로 작정한 뒤 신분이 달랐던 놈(유지태)과 처음으로 몸의 정분을 나눌 때는 어땠을까.
배치가 바뀌었다면 환골탈태의 선언적 의미도 좀더 달라졌을 것이다. 아버지와 관련한 신이었다면, 권세있는 수컷의 위선을 작파해보겠다는 쪽으로 기울어 읽힐 것이고, 놈과 관련한 신이었다면, 계급의 위계를 나름대로 무너뜨리고 살겠다는 독한 작정으로 보일 것이다. 상사병 상여장면에 문뜩 끼어든 황진이의 선언에는 이런
생략과 과잉이 충돌하는 불균질의 드라마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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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여행 중이다. 갑자기 사라졌던 연인 E를 찾으러 델리에서 히말라야를 거쳐 라다크로 향하고 있다. 그녀는 K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가장 잔인했던 나를 용서하지 않길 바란다”는 엽서만을 보내왔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로 떠난 것일까. 왜 떠난 것일까를 묻기 전에 K는 3년 전 그녀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들고서 머나먼 천상고원을 찾는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천상고원>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욕망> <달려라 장미> 등을 만든 김응수 감독의 4번째 장편영화. ‘누군가를’ 만나서 ‘무엇인가’ 벌이는 흔한 로드무비를 기대했다가는, 히말라야 산맥의 광활한 풍광을 맘껏 즐기려고 맘먹었다가는, 금세 고산병에 시달리는 K처럼 말을 잃고 눈이 감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뒤섞은 <천상고원>은 굳이 이름 붙이자면 심리적 로드무비가 적당할 것이다. 라다크로 가는 도중 K는 김태훈이라는 한 남자를
전염성 강한 로드무비 <천상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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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물이며, 왜 눈인가. 저주받은 물을 소재로 고독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는 영화 <데스워터>는 임팩트가 없다.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이를 추적하는 기자가 음침한 공간을 따라가지만 영화는 100분이 넘는 상영시간을 단 한번의 놀램도 없이 지루하게 끌고 간다. 물론 일본 공포영화의 리듬이 한국처럼 가파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데스워터>는 <주온>의 스산한 공포를 전해주지 못한다.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감독이 소재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 저주받은 물을 마신 사람에게 환각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은 질병의 증상으로 이해한다 해도, 물에 대한 공포가 눈에 비치는 세상에 대한 공포로 변주되는 과정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특히 <데스워터>는 천천히 분위기를 조성한 뒤 공포적 요소를 등장시키는데, 그 타이밍이 꼭 한 박자씩 느리다. 그리고 그 장치가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사건을 따라가는 기자의 발걸음은
한 박자씩 느린 공포 <데스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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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960년대는 뜨겁기만 한 시대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머리에 꽃을 꽂아주고(스코트 매킨지), 사랑할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찾아 헤매는(제퍼슨 에어플레인)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클럽 ‘맥스 캔자스 시티’의 어두운 무대에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냉소적이고 전위적인 록음악 연주에 몰두했다.
반전과 평화를 목놓아 외치는 뜨거운 세계의 다른 한편에 차가운 아방가르드의 지하세계가 있었다. 실험적인 연극에서 미니멀리즘적인 팝아트까지, 60년대 뉴욕 맨해튼의 예술계는 언더그라운드의 천국이었다. 그리고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정점은 앤디 워홀이었다. ‘팩토리 걸’은 스스로 ‘공장’이라고 불렀던 자신의 창작 스튜디오 안에서 현대 예술의 혁명을 제조했던 앤디 워홀의 여자, 에디 세즈윅에 관한 영화다.
1965년, 앤디 워홀(가이 피어스)은 파티에 들렀다가 에디 세즈윅(시에나 밀러)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
예술가 그룹의 내부 엿보기 <팩토리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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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 속 홍콩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아틀란티스나 희망봉처럼 특정한 정서의 기호다. 사연없고 치떨리는 기억 하나 없는 도시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1997년 중국 반환과 21세기 들어 홍콩을 엄습한 전염병은, 홍콩을, 뿌리 뽑힌 자의 만성적 고독과 사춘기적 불안을 도맡아 상징하게 만들었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그 이미지에 아예 ‘무간지옥’, ‘상처받은 도시’라는 이름을 붙여 영화 제목으로 앞세웠다. <상성: 상처받은 도시>의 영어 제목은 ‘고통의 고백’(Confession of Pain)이다. 고통받는 자들은 이번에도 두 남자다. 양조위와 금성무는 1995년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만나진 않고 따로따로 방황했다. <상성: 상처받은 도시>에서도 둘의 성격은 <중경삼림>의 캐릭터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12년 전 연인을 떠나보내고 한밤중 스낵 코너에 말없이 들러 요기를 하던 양조
고통받는 두 남자 <상성: 상처받은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