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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내부에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의 피트 게리슨(마이클 더글러스)은 20여년 전 레이건 대통령의 암살을 몸으로 막은 뒤 안보국의 전설이 된 비밀요원. 조국과 대통령에 충성을 바쳐온 그는 현재 영부인 새라(킴 베이싱어)의 경호를 맡고 있다. 그러나 게리슨의 굳건한 세계는 오랜 동료인 찰리 메리웨더(감독인 클락 존슨)가 살해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찰리의 살인사건을 맡게 된 인물은 오직 증거만을 신봉하는 냉철한 비밀요원 데이빗 베킨릿지(키퍼 서덜런드). 피트의 수제자이기도 한 데이빗은 피트가 대통령 암살음모에 가담하고 있다는 혐의를 발견하고, 자신이 누군가의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트는 누명을 벗고 암살음모를 막기 위한 도망길에 오른다. <센티넬>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할리우드 기성품 스릴러다. 제랄드 페티비치의 원작을 각색한 조지 놀피(<타임라인> <오션스 트웰브>)의 각본은 <도망자>(1993)와 <사선에서>(19
안전하고 느슨한 기성품, <센티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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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갈비집에서 일을 거들며 백수처럼 사는 영운(김승우)은 룸살롱에 다니는 연아(장진영)와 4년째 사귀고 있다. 성격이 불같고 입이 험한 연아는 툭하면 영운과 치고받고 싸우지만, 그를 아끼는 마음은 매우 지극하다. 그러나 영운에겐 참한 약혼녀 수경이 있다. 친구 준용(탁재훈)의 비디오 가게에 모여 소일하는 친구들은 연아만한 여자가 없다고 하고, 영운도 연아가 좋지만, 어머니(선우용녀)를 생각하면 연아와 결혼할 수는 없다. 연아와 앙숙인 룸살롱 전 상무(김상호)의 고자질로 아들의 연애를 알게 된 영운 어머니가 무작정 결혼 날짜를 잡고 혼인신고까지 마치자, 영운은 연아와 연락을 끊고 잠적한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연아가 영운을 유혹하는 첫 만남에서 단번에 4년을 도약하여 동거하다시피하는 오래된 연인의 일상에 내려앉는다. 험한 욕설을 주고받고 레슬링하듯 몸싸움을 벌이다가 섹스로 돌진하는 그들의 연애는 미사여구가 끼어들 여백이 없고, 겉치레에 신경쓸 여유
이런 남자, 다시는 만나지 말기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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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아닌 청춘이 어디 있겠는가.” 노타치파의 2인자 성현(이천희)은 병원 가운을 벗어던지고 뚝방으로 달려가면서 전설과 청춘에 관한 익숙한 경구를 읊는다. 그는 “우리의 전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추억 하나없이 서른 언저리로 가야 하기 때문”에 십대 시절 노닐던 뚝방에서 전설처럼 싸워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청춘이 전설이라면, 그것은 모든 청춘이 왜곡과 과장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터이다. 전설과 현실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혹은 전설과 현실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사라졌던 전설의 주먹이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뚝방전설>은 코미디와 액션이 뒤섞인 상업영화이면서, 진짜 세계와 맞부딪친 전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묘한 청춘영화이기도 하다.
18 대 1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정권(박건형)은 주먹은 세지만 싸움에는 그다지 뜻이 없는 성현(이천희)과 싸움은 전혀 못하고 말만 많은 경로(MC몽)와 함께 교내 조직 물레방아파를 평정한다. 1학군의
전설이 되고 싶었던 청춘, <뚝방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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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되려면 작두를 타야 한다. 날선 칼날 위에서 고통을 견뎌야 한다. 영험한 기운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는 의식이다. 삶과 죽음, 어느 한쪽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외줄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약속은 의지나 욕망에 따라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숙명이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원했다. 그러나 숙명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다른 길을 가도록 용인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사이에서>는 하늘이 내린 숙명의 지도를 어쩌지 못하고 받아든 무속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 손으로 직접 삶을 일구어왔다고 생각하는” 감독의 인도에 따라 카메라는 “손에 신이 그려준 운명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나러 떠난다.
28살의 황인희는 어느 날부터 기이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남의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보이기도 하고, 갑자기 상체가 마비되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그녀의 가족에겐 사고가 발생하고, 그녀가 운영하던 사업체가 망하는 불운
동정과 연민의 굿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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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은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장대한 기행문이었다. 장 뤽 고다르의 2004년작 <아워뮤직>은 단테의 여행기를 지상으로 끌어오려는 거장의 시도다. 영화는 <신곡>처럼 지옥, 연옥, 천국의 세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옥편에서는 고다르가 수집한 수많은 전쟁의 이미지-콜라주들이 관객의 망막에 점멸하며 스쳐지나간다. 연옥편은 속죄와 화해의 장이다. 고다르는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유럽문학과의 조우’에 참석하러 길을 떠나고, 중간중간 실재 혹은 허구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기억을 환기시키며 모든 갈등이 화해로 돌아서는 순간을 꿈꾼다. 마지막 챕터인 천국은 스산한 행복감으로 충만한 고다르의 에필로그다. 카메라는 그저 평화로운 해변에서 한가롭게 경계를 서고 있는 미국 해병대의 모습을 비춘다. <아워뮤직>을 영화라고 일컫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까. 이것은 오히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장 뤽 고다르의 ‘신곡’, <아워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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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의 주인공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애쓸 때, 그것은 세계를 조직해온 것들에 대해 고뇌를 던진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스스로 출연한 작품들을 포함하여 지난 많은 고다르 영화에서 주인공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투쟁과 혁명에 대한 영화적 실천이 혹은 그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들을 향한 지적 야유가 마침내 끝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때에, 고다르는 <만사형통>과 <열정> 같은 유물론적 영화 만들기의 이야기를 써냈다. 그러나 노년에 들수록 고다르는 선전적인 표현을 뒤로 하고, 예술의 기원과 역사의 되돌아옴과 그것들을 잇는 기억의 집합을 영화적으로 배열하는 것에 힘쓴다. <사랑의 찬가>는 그중에서도 특히 아름답게 완성된 작품 중 하나다.
영화감독 에드가(브루노 퍼즐루)는 영화를 준비 중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는 “만남, 육체적 열정, 이별, 화해”라는 “사랑의 네 순간 중 어느 하나에 관한 것”이며 노년, 중년, 청년이라는 세 시기의
영화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어떤 최선, <사랑의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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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예일대의 중국계 건축학도 마야 린은 논란을 뚫고 베트남 전쟁 기념물 설계공모에 당선됐다. 전사한 미군 5만7661명의 이름을 숨진 순서로 새겨넣은 야트막한 검은 벽, 그것이 마야 린의 기념비였다. <플라이트 93>이 구사하는 애도의 화법은 마야 린의 그것을 닮았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엄격한 재연과 최선의 재구성이야말로 지금 영화가, 그리고 자신이 9·11 테러를 적절히 다룰 수 있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1972년 영국군의 북아일랜드 시민 학살을 르포르타주의 문체로 재현한 감독의 전작 <블러디 선데이>(2001), 그리고 그 역동성을 응용한 첩보영화 <본 슈프리머시>(2005)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다.
뉴저지발 샌프란시스코행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편(이하 UA93)은 2001년 9월11일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미국 민항기 4대 중 유일하게- 국회의사당으로 추정되는- 표적에 충돌하지 않은 채 추락했다. 기
2001년 9월11일 벌어진 살인의 해부, <플라이트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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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에도 라일락은 피었다. 4월7일부터 꼬박 100일간 하루 1만명씩 죽어가며 흘린 피를 먹고 라일락이 자랐다. 인류가 보낸 가장 혹독한 4월이었다. 시민과 이웃과 동료와 심지어 성직자들까지 10센트짜리 중국산 벌초용 칼과 몽둥이로 한 동네 사는 투치족을 내리쳐 죽였고 라디오에선 같은 동네 사는 투치족 이름을 거명하며 죽일 것을 선동했다. 벨기에의 교활한 식민 통치가 후투-투치족 갈등을 키웠고 벨기에가 물러나자 그동안 차별받은 후투족이 노골적인 종족차별정책으로 앙갚음을 했다. 그날은 평화협정을 맺은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이었다. 후투족은 투치족한테 혐의를 덮어씌워 바로 투치족 살육에 들어갔다. 여성부 장관은 투치족 여성을 마음껏 강간해도 좋다고 부추겼다. 100일 뒤에 투치족 반군이 사태를 평정했고 학살이 끝났다. 총인구 800만명 가운데 100만명이 죽었다. 소수족인 투치족의 거개가 사라졌다. 세계 평화 유지에 그토록 관심이 많았던 유럽 강국과 미국은 대량학살
이야기의 힘, <호텔 르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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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충무로에서 현장 스탭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신태라 감독의 첫 장편영화 <브레인웨이브>는 SF스릴러다. 어느 날부터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고 ‘나는 누구인가?’ 고민하게 되는 길거리 초상화가 준오(김도윤)는 연쇄살인범으로 의심받고 정체불명의 남자는 그를 뒤쫓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평화롭고 안정돼 보이는 이 세계에 알고 보면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기본 설정은 <X파일>에서 매회 반복된 익숙한 것이다. 뇌활동 조절 연구소 바콜은 인간의 초능력에 대한 비밀 실험을 하는데 궁극적인 목표는 신인류의 창조이다. 그러나 SF영화에서 늘 그렇듯 과학은 인간의 소망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고 실험에 관련된 연구원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지워진 기억, 인간을 통제하는 거대한 조직 등 영화의 줄거리는 낯익다. 황당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는 음모론이 줄기차게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까닭은, 합리적인 사
현 단계 한국 독립영화의 힘, <브레인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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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숲속에서 신원 미상의 끔찍한 시체가 발견된다. 신문기자인 빅터 실람파(다니엘 지멘네즈 카초)는 평소 친분이 있던 대령의 연설문을 써주는 조건으로 이 사건을 독점 취재하게 된다. 빅터는 그 시체가 자신의 실종된 동생이라고 확신하는 에스투피난과 함께 사건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이 사건의 실체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시의원, 변호사, 유흥업자 등의 이해관계와 음모가 도사린 거대한 사건임을 알게 된다.
콜롬비아 영화계 최대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아트 오브 시크릿>은 살인사건을 둘러싼 음모를 추적해가는 과정의 스릴러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남미 특유의 풍경과 배경음악은 매력적이지만,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형사가 아닌 신문기자가 사건에 직접 개입한다는 설정은 스릴러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다. 기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취해 사건을 분해해나가는 과정을 담는 것만으로도 스릴러의 묘미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역으로
콜롬비아 영화계 최대의 제작비, <아트 오브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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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루가만에서 대지진이 발생한다. 미국 학계는 40년 내에 일본이 완전히 침몰할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는다. 일본 정부는 환란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며 안정만을 외친다. 다도코로(도요카와 에쓰시) 박사는 이에 의문을 품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그리고 일본 침몰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맞기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아비규환은 현실로 나타난다. 지진, 해일, 화산폭발로 인해 열도는 지옥으로 변한다. 잠수정 대원인 오노데라(초난강)는 연인 아베(시바사키 고)에게 영국행을 권유하지만, 과거 대지진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베는 거절하고 구조활동에 나선다.
1973년 발표되어 400만부 이상 팔려나간 고마쓰 사쿄의 동명 소설과 그해 만들어진 동명 영화를 뼈대로 한 블록버스터. 650만명의 관객 동원, 400억원의 흥행수익을 기록한 1973년 영화에 비기진 못하겠지만, 7월15일 개봉해 첫주에만 제작비 200억원의 절반 가까이를 회수하는 등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무려
스펙터클의 재연에 만족하는 재난영화, <일본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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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하우스>는 시간의 차이를 넘어 사랑에 빠지는 남녀의 이야기다. 이현승 감독, 이정재, 전지현 주연의 <시월애>를 리메이크한 <레이크 하우스>는 원작의 이야기틀을 그대로 살리면서 비현실적인 설정 때문에 애틋해지는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시각적 아름다움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두 영화의 사소한 차별점은 원작과 리메이크작 제목의 차이가 보여준다.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이라는 뜻의 <시월애>는 <레이크 하우스>가 되면서 바닷가의 집을 호숫가로 옮겨오고 집을 유리로 바꾸었다.
케이트(샌드라 불럭)는 레지던트 과정을 끝낸 뒤 고향을 떠나 시카고의 한 병원에 일자리를 얻는다. 호수 위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집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 케이트는 다음 세입자에게 메모를 남긴다. 그 집에 알렉스(키아누 리브스)가 이사온다. 성공을 위해 가족을 버린 아버지(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지었지만 지금은 황량해진 이 호숫가의 집을, 알렉스는 복원하
따뜻한 멜로영화, <레이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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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극장전>에서 멈칫거렸던 여행이 다시 시작됐다. 영화감독 중래(김승우)는 내켜하지 않는 미술감독 창욱(김태우)을 앞세워 서해안으로 향한다. 창욱이 애인이라 소개한 싱어송라이터 문숙(고현정)은 불청객이다. 불청객은 두 남자 사이에서 야릇한 감정선을 조율하는데, 중래에게 좀더 기회를 준다. 문숙에 따르면 “일단 자야 애인”인데 창욱과 뽀뽀만 했다고 밝혀주니 저지르기 좋아하는 중래의 엔진에 시동이 걸린다. 중래와 문숙이 잠자리를 갖기까지의 기승전결도 대단하지만 감정과 감성의 쓰나미는 그 다음이다. 중래는 약간 치사한 방식으로 문숙을 내친 뒤 홀로 서해안 여행지로 되돌아온다. 거기서 문숙을 닮았다고 여기게 된 선희(송선미)를 만나 또 한번 남성 엔진을 발진시키는데 문숙이 불쑥 찾아오는 바람에 새로운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관계를 횡단하는 주체는 중래지만 그를 횡단하는 건 문숙이다. “우리가 (우주를) 의식해주지 않으면 우주는 무의미”하다고 믿는 문숙이 중래를 의식해주자 중
살가운 홍상수 영화, <해변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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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로 간주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버지가 12년 만에 돌아왔다. 할머니와 엄마의 보살핌 아래 살아왔던 두 아들 안드레이(블라디미르 가린)와 이반(이반 도브론라보프)은 아버지(콘스탄틴 라브로넨코)의 느닷없는 귀향 혹은 침입이 탐탁지 않다. 집에 돌아온 날 오후 내내 죽은 듯이 자던 아버지는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한 다음날 “엄마가 허락했다”며 두 아들을 데리고 낚시 여행을 떠난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아버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여행은 아이들의 생각과 달리 하나도 즐겁지 않다. 아버지는 시종 강압적이고 명령조이며 엄격하다. 여행 일정도 마음대로 바꾸는 바람에 안드레이와 이반은 질질 끌려다니다시피 한다. 그 와중에도 형 안드레이는 아버지에게 순종하려고 노력하지만 동생 이반은 드러내놓고 반항한다. 위험수위를 넘실대는 갈등과 다툼, 침묵과 강압 속에서 세 부자는 쪽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어딘지도 모를 외딴섬에 이른다.
<리턴>은 7개의
부자관계에 관한 이야기, <리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