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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19일 오전 9시. 미 해병대는 2만2천명의 일본군이 주둔한 이오지마섬에 상륙한다. 5일이면 함락이 가능하다는 윗대가리들의 호언은 틀렸다. 3월26일에야 미군은 이오지마를 함락할 수 있었고, 2만여명이 부상당하고 6천여명이 전사했다. <아버지의 깃발>의 상륙 작전이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톰 스턴의 카메라가 ‘유황섬’(硫黃島)의 언덕으로부터 해변을 굽어보는 순간, ILM이 새겨넣은 수백척의 군함과 수만명의 군인은 신이 만든 디오라마처럼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잔혹한 스펙터클의 감흥이 영화를 지배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는 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둘러 스펙터클을 끝낸 뒤 한장의 사진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수리바치산 정상에 6명의 해병이 성조기를 꽂는 순간. 사진작가 조 로젠탈의 플래시가 작렬한다. 미 정부는 사진 속의 군인 중 전사하지 않은 3명을 본국으로 불러들여 전쟁기금 마련을 위한 홍보활동에 참여시킨다.
이오지마 연작, 그 첫 번째 마스터피스 <아버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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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타임즈>는 세 가지 에피스드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다. ‘연애몽’, ‘자유몽’, ‘청춘몽’은 허우샤오시엔 자신의 이전 작품들인 <펑구이에서 온 소년>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와 각각 조응하며 발전된 것이기도 하지만, 전작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사랑에 대해 각 에피소드들이 내뿜는 자신만의 빛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쓰리 타임즈>는 ‘최호적시광’(最好的時光)이라는 또 다른 제목을 지니고 있는데, 이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작품이 ‘연애몽’이다. 1966년 어느 날 군 입대를 위해 떠나는 날 첸(장첸)은 당구장에서 일하는 하루코에게 사랑의 편지를 건넨다. 그 편지를 받아든 하루코는 이내 그것을 봉인해버리고, 첸의 고백도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그 속에 가둬지고 만다. 허우샤오시엔은 첸의 고백을 편지 주인인 하루코가 아닌 그녀를 대신해 당구장에서 일하게 된 메이(서기)를 통해서 들려줌으로써 그 사랑의 진짜 임자가
사랑의 세가지 맛 <쓰리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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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의 진동음이 음산하게 울리는 가운데, 아름다운 여성이 넋나간 얼굴을 하고 알 수 없는 노래를 읊조린다. “거기 털 많은 창녀야, 너랑 하도 심하게 해서 내 거시기가 너무 아파.”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발 아래로 왈칵 양수가 쏟아진다. 헐떡이는 숨소리는 세탁기 소음에 묻히고, 곁에서 다림질을 하던 여자는 무심하게 다가와 바닥을 훔칠 뿐이다. <천국의 나날들>의 오프닝은 이 영화가 결코 제목에 부합하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으리란 걸 예고한다. 헝가리영화인 <천국의 나날들>은 2002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은표범상 수상을 비롯, 유럽의 각종 영화제의 이목을 끈 작품이다. 이 영화를 통해 서른살의 코냐 먼드루샤 감독은 동구권영화의 대표적인 기대주로 자리잡았다.
방금 감옥에서 나온 피터(토마스 폴가)는 누이 마리카(카타 웨버)가 운영하는 세탁소를 찾는다. 그곳에서 피터는 막 아이를 낳으려는 마야(오르소냐 토스)를 발견한다. 마리카가 태어난 아기를 3천유로에
음울한 살풍경 <천국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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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날다>(1997), <괜찮아, 울지마>(2001)를 만들었던 민병훈 감독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이 아닌 한국에서 한국 배우들과 세 번째 영화를 완성했다. 수많은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첫 장편영화 <벌이 날다>가 명료한 알레고리와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있다면, 세 번째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잎 새 한장만 덧씌워져도 무거움을 느끼는 영혼들을 묘사한다. 주인공 수현(서장원)은 빌립보서를 통째로 외우는 모범적인 신학생이지만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회의한다. 수현은 신학교 동기인 강우(이호영)도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짐작하지만 강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수현이 갈등하는 사이 학교를 떠난다. 강우는 자신이 수현에게 던진 “넌 가라면 갈 수 있고 멈추라면 멈출 수 있냐”라는 질문에 대해 행동으로 답을 보여준 것이다. 수현의 갈등 가운데는 수아(이민정)가 있고, 수현은 그녀에 대해서도 갈팡질팡하는
감사와 용서가 넘쳐나는 삶 <포도나무를 베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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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정의 귀여운 아이들을 정말로 위험에 빠뜨리는 자는 누구일까? 신상이 언론에 공개된 미성년 성범죄자일까? 아니면 그의 집 앞에서 밤마다 고성방가하는 전직 경찰일까 그도 아니면 그 ‘위험인물’이 공공장소에 나타나자마자 대피하듯이 아이들을 서둘러 안고 흩어지는 주부들일까? 토드 필드의 <리틀 칠드런>은 이러한 자성적인 질문을 통해 미국 백인 중산층들의 위선과 부조리를 파헤친 웰메이드 작품이다. 우아하고 차분한 미국 소도시의 밝은 풍경과 지적 톤의 내러티브가 조화를 이룬다. 애보기를 하루 일과로 하는 여성 주부와 남성(!) 주부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기본 흐름이지만,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로맨틱한 에피소드는 마을 주민들의 파시즘 분위기, 험악한 공격 성향과 매끄럽게 결합한다.
성범죄 전과자를 조심하라는 삼엄한 마을의 공기는 새라(케이트 윈슬럿)가 다른 주부들과 어울리는 소소한 일상 안에서 잘게 쪼개져서 재현된다. 공원에서 새라와 함께 아이를 돌보는 주부들은 삶의 딜레마를
보수적인 ‘불륜’ 로맨스 <리틀 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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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명제에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한정된 영역들에는 여전히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놓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정치적, 경제적 자유와 평등의 원칙들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용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의 왕실, 그중에서 현재까지도 상대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이 영국 왕실이다. <위험한 관계>에서 귀족사회의 추악한 욕망 게임을 파헤치고, <그리프터스>에서 거미줄처럼 엮인 범죄의 연결고리들을 포착했던 스티븐 프리어스는 신작 <더 퀸>을 통해 영국 왕실을 조망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왕실에 접근할 때 품게 되는 일종의 동화 같은 환상은 멀찌감치 치워두고,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영국 왕실의 ‘사람들’에 렌즈를 들이민다.
이 영화에서 ‘더 퀸’이 지시하는 대상은 1952년 즉위한 이래 50년이 넘도록 여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헬렌 미렌)다. 현재 영국은
소박한 여황의 일상 훔쳐보기 <더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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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골든글로브 최다부문 수상작인 <드림걸즈>는 25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빌 콘돈은 6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 그룹 ‘슈프림스’의 활약상을 영화에 맞게 다시 각색했고 뮤지컬 음악을 맡았던 헨리 크리거는 기존의 곡들에 4개의 곡을 새로 추가했다. 여기에 삼인조 여성 그룹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스타, 비욘세 놀스와 <레이>에서 레이 찰스로 환생했던 제이미 폭스가 가세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드림걸즈>는 ‘뮤지컬영화’다. 그 말은 60년대 미국 쇼 비즈니스계의 명암을 그린 이 영화의 관건이 (아이러니하게도) 얼마나 화려한 쇼를 제공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시카고>의 감옥처럼 특정한 공간적 성격에 기대지 않고 자못 심각했던 당대의 사회적 배경을 자신의 무대로 열어둔다. <시카고>가 최고의 쇼를 보여주기 위한 한편의 쇼였다면, <드림걸즈>는 그 쇼의 어두운
쇼의 어두운면을 보여주는 쇼 <드림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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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욕구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되기도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 오만불손한 건축물을 짓는 인간에게 야훼가 내린 벌 때문에도 자주 언급되곤 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야훼는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창세기 11장7절) 했고, 결국 바벨탑 건설은 무산됐다. 이때의 벌 때문에 애초 하나의 언어와 단어를 사용하던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됐다는 성서의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믿기 어렵지만, 이 ‘세계화’ 시대에도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때문에 사람들이 전면적으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상황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바벨>이 다루는 대상도 서로의 진의를 도무지 전달하지 못하는 이 세계 속에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다. 지구의 4개 지역에서 벌어지는 총체적 소통의 위기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사막에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대 속 사람들의 ‘마음의 감옥’ <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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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명의 웬수들>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10여명이 넘는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하나같이 제각각 특색이 다르고 별별 일이 다 벌어진다. 그건 부담없는 가족코미디의 소재로 그만이다. 그래서 2편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 영화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모두 다 합치니 18명이다. 12명이 적어 보인다.
옛날 서로 사랑했던 프랭크(데니스 퀘이드)와 헬렌(르네 루소). 시간은 아주 많이 흘렀고, 그들은 각각 다른 남녀를 만나 결혼했지만, 운명은 그들을 중년의 시간에 다시 만나게 한다. 서로 몇년 전 배우자를 잃은 프랭크와 헬렌은 우연히 만나 사랑을 꽃피우고 결혼을 약속한다. 웬만한 로맨틱코미디라면 여기가 끝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나, 너 그리고 우리>는 제목이 알리는 것처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전 부인이 남긴 8명의 아이를 키우는 프랭크와 남편이 죽은 뒤 아이들을 입양하면서 10명의 자녀를 둔 헬렌. 프랭크와 헬렌의 결혼으로 그 아이들이 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가족코미디 <나, 너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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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만한 지방 마을에 세명의 김 관장이 모여든다. 태껸도장을 운영하는 곱슬머리 김 관장(신현준)과 검도도장을 지키는 긴 생머리 김 관장(최성국)이 코흘리개 부원들을 모집하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는 이곳에 또 다른 김 관장이 나타난 것이다. 쿵후도장 김 관장(권오중)은 수련생들의 인심은 물론, 앞서 두 김 관장이 사모하던 동네의 대표미녀 박연실(오승현)의 마음까지 얻을 태세다. 살벌한 무술대결보다는 치졸한 질투와 술수가 난무하는 이 마을의 혼란상황은 수상한 외부인까지 흘러들어오면서 한결 심화된다.
태권도 챔피언과 유도 챔피언 중 누가 더 셀까. 권투선수와 레슬링선수 중 누가 싸움을 더 잘할까. 유치하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이 호기심은 결국 이종격투기를 낳았다.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의 호기심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신현준과 최성국 중에서 누가누가 더 웃길까. 여기에 정준하와 탁재훈까지 가세한 개그펀치는 얼마나 강력할까. 이에 <김관장…>은
스크린 속 ‘개그콘서트’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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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돼지 윌버(도미닉 스콧 케이)는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도축당할 위기에 놓인다. 다행히도 농장 주인 딸인 펀(다코타 패닝)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윌버. 길 건너 펀의 삼촌네 농장에서 살게 된 그는 말 아이크(로버트 레드퍼드), 거위 거시(오프라 윈프리), 모두가 징그러워하는 거미 샬롯(줄리아 로버츠) 등과 친구가 된다. 그러나 돼지의 운명이란 결국 베이컨과 햄으로 귀결되는 것이 농장의 순리다. 성격 뒤틀린 집쥐 템플턴(스티브 부세미)은 윌버가 크리스마스 만찬에 오를 것이라 실토하고, 윌버를 구하기 위해 샬롯은 자신의 거미줄에 ‘멋진 돼지’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거미줄의 메시지가 온 마을에 알려지면서 윌버는 유명해진다.
<샬롯의 거미줄>은 E. B. 화이트가 1952년에 펴내 전세계적으로 4500만부 이상 팔린 어린이용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80년대 초 유년기를 보낸 관객이라면 TV로 종종 방영된 1973년판 동명의 애니메이션 역시 기억하
어른들을 위한 고전 <샬롯의 거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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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람피기 좋은 날’은 없다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다. 30대 초반의 중산층 유부녀 ‘이슬’(김혜수)과 ‘작은새’(윤진서)는 채팅으로 사귄 남자를 만나 바람을 피운다. 대범하고 솔직한 이슬은 열살 연하의 대학생(이민기)과 발랄한 외도를 즐기고, 내숭형의 작은새는 이쪽 방면 선수인 ‘여우두마리’(이종혁)를 한껏 애태우다 자신의 성적 로망을 충족시킨다. 영화에서 이슬과 작은새의 내면은 이미지들로 설명되고 있다. 깨진 어항에서 튕겨나와 길바닥 위에서 퍼덕이는 붕어나 완전 진공상태로 밀봉된 채 열리지 않는 양념병은 작은새나 이슬의 실존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람피기 좋은 날>은 ‘섹시코믹드라마’라는 컨셉대로 상당히 코믹하다. 이슬과 대학생은 가히 18금(禁)급의 수위 높은 대화를 주고받지만 에로틱한 효과보다도 웃음을 유발하고, 작은새와 여우두마리가 모텔에서 섹스를 빌미로 밀고 당기는 모습은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영화의 전반부는
‘바람피기 좋은 날’은 없다 <바람피기 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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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르 톰슨의 <파리의 연인들>은 프랑스의 심장 ‘파리’가 환기하는 두 가지, ‘사랑’과 ‘예술’을 두루 관통하며 이야기의 씨실과 날실을 잣는다. 미술, 음악, 영화 그리고 연극 등을 아우르는 예술적 흥취와 그것을 동경하거나 예술, 그 자체가 자신의 인생의 일부가 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인기를 의식한 때문인지 엉뚱한 제목이 붙었지만,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오케스트라 좌석’이다. 원제는 폭발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마치 베틀 위의 북처럼 다양한 인물들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제시카(세실 드 프랑스)의 시선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적절해 보인다.
제시카는 젊은 날 호화로운 삶을 꿈꿨던 할머니의 말을 듣고 파리로 상경해 몽테뉴 거리의 바에 웨이트리스로 취직한다. 그리고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파리의 예술계를 오케스트라석에 앉은 것처럼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앞으로 십년 동안의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
다소 밋밋한 로맨틱 코미디 <파리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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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에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사무라이)는 온 국민의 아름다운 이상이었다.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을 정도였다. 인간의 삶에 대한 본연의 자세, 사고방식 등 무엇 하나 무사도에서 영향을 받지 않은 게 없었다”며 <무사도>(한국어판 제목 <일본의 무사도>)에서 서양인들을 향해 썼다. 사무라이는 일본적 정신세계를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대표적인 열쇠말이다. 그 말 속에 ‘섬기는 자’라는 뜻을 갖춘 사무라이,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당연히 많았고 지금도 많다. 주군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마치고 할복하여 죽은 16세기 47인의 충신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의 충과 의를 대변하는 명예율에 관한 오래된 서사가 되었고, 미조구치 겐지는 그걸 장중하게 담았다. 혹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많은 영화에서 도시로 미후네의 건장한 얼굴과 육체, 웅장한 목소리는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삐딱한 방식으로 현현되는 사무라이의 대표였다. 대체로 영화 속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 마지막 사무라이의 생활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