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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파코 플라자 감독이라고 하면 어딘가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이름이다. 리얼TV 다큐 프로그램을 소재로 했던 공포영화 <REC>(2007)의 공동감독이었다고 하면 아마 기억이 날 것이다. 단독 연출작 <세컨드 네임>(2002)으로 판타스포르투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그는 자우메 발라게로 감독과 공동 연출한 <REC>로 해외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에는 그 인기에 힘입어 발라게로 감독과 <REC> 속편까지 만들었다. 발라게로 감독이야 <네임리스>(1999)로 혜성처럼 등장해 할리우드까지 진출해서 <다크니스>(2002)를 만든 경력도 있으니, 파코 플라자 그 혼자만의 실력이 어떤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REC> 이전에 연출한 2004년작 <더 헌터>가 나름 해답이 될 것 같다.
1851년,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 숲에는 늑대들이 들끓고 사람들이 하나둘, 연이어 실종된다. 마을 사람들은 숲에
가끔 인간으로 변하는 늑대 <더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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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의 원작이 제작되던 당시, 1960년대 대한민국의 하녀는 리얼리티였다. 피아노가 있는 이층집, 단란한 가족. 쪽방에 거처하며 집안일을 돕는 하녀는 이들의 ‘행복’을 완성하는 필요조건이었다. 부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던 당시 한국인에게 이 정도는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실제의 ‘부’였다. 2010년, 대한민국에 ‘하녀’는 사라졌다. 일당제 가사도우미는 물리적 일은 하되, 더이상 예전 하녀를 하녀라 부르던 시절에 보았던 주종의 관계에 매이지 않는다.
임상수 감독은 이렇게 이미 사라진 이름 ‘하녀’를 스크린에 불러온다. 원작의 ‘있을 법한’ 부유층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죽은 역할인 하녀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최상의 부를 재현하기로 한다. 주말드라마에서 조악한 소품과 세트로 구현되던 이른바 ‘재벌’의 실체는 제작비 31억원이라는 물량을 투여받고 화면에 제대로 구현된다. 한국식 된장찌개가 놓인 밥상도, 여느 집안의 TV 시청 소음도 완벽히 차단된 공간. 유럽의 대저택에서나 볼 수
밑바닥까지 파헤쳐진 가진 자들의 본성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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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작품으로서 시(poem)는 ‘아름다움’이지만 문학 형식으로서 시(poetry)는 ‘아름다움을 향하는 자세’에 속한다. 이창동의 신작 <시>는 명백히 포에트리에 관한 이야기다. 완성된 하나의 시(포엠)는 정제된 언어의 조합인 동시에 피어오르는 직관의 언어다. 지극히 이성적인 도덕의 영역과 비범한 직관의 세계가 하나 되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시가 탄생한다. <시>는 이 완성된 아름다움을 완결된 영상으로 담아내기보다 아름다움의 의미는 무엇인지 좇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관객이 영화의 행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에 답하는 ‘순간’ 시가 탄생하고 <시>도 완성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와 소설은 다르다. 소설이 서사를 통해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데 주력한다면 시는 공백의 공간에서 삶과 아름다움의 의미를 묻는다. 그래서 <시>는 결정된 서사가 아닌 미지의 질문에 관한 영화다. 의사가 나이를 묻자 65살이라고 했다가 이
아름다움의 의미는 무엇인지 좇는 영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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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배우 가운데 로버트 칼라일만큼 대책없는 아빠의 대명사도 없을 것이다. 영화 <풀 몬티>에서 연기한 가즈는 무능력한 이혼남이었다. 그는 아들과 전 부인에게 좀더 멋있는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자 옷을 벗었다. 무모한 도전이지만 극중에서 가즈의 아들은 아빠의 도전을 응원했다. 1980년대 남부 웨일스를 배경으로 한 <아이 노우 유 노우>의 아빠는 더 대책없고, 아들은 더 어른스럽다. 11살 소년 제이미(애런 풀러)의 아빠는 여행사 직원을 가장한 영국의 비밀첩보원이다. 여름휴가를 함께 보낸 뒤 아빠 찰리(로버트 칼라일)는 다음 임무만 성공하면 큰돈을 벌어 미국에 가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허황된 꿈처럼 보여도 언제나 자상한 아빠의 말은 제이미의 기대를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미는 따라오지 말라는 아빠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찰리의 임무에 동참한다. 아들이 다칠까 두려운 아빠는 속이 타지만, 아빠를 좋아하는 제이미는 신이 난다. 결국 서로를 사랑하는 부자는 죽이
아버지의 사랑과 그에 대한 아들의 연민 <아이 노우 유 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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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게 말하면, ‘영화, 한국을 만나다’ 프로젝트는 KBS <1박2일>의 영화 버전이다. 다섯명의 감독들이 국내 주요 도시를 배경으로 특별한 정서와 각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담았다. 윤태용(<서울>), 전계수(<뭘 또 그렇게까지>)에 이어 세 번째로 관객과 만나는 문승욱 감독의 <시티 오브 크레인>이 택한 도시는 인천이다. 한국을 떠나려고 해도, 한국에 들어오려고 해도, 누구나 인천을 거쳐야 한다. 밀물과 썰물처럼 만남과 이별이 수없이 교차하는 인천에서 문승욱 감독은 무엇을 발견했을까.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바타르는 인천의 명물이다. 그는 대공원에서 짝 잃은 두루미를 달래는 춤을 추는 기인으로 유명해졌다. 게다가 백화점 건축 현장 사고 때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까지 한다. 지역방송사에서 리포터로 일하는 예진은 인터뷰를 시도하지만, 바타르는 무슨 일인지 황급히 도망친다. 바타르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방송사
로드무비이자, 페이크다큐멘터리 <시티 오브 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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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다양한 면모를 향연(feast)처럼 펼쳐놓는 영화다. 네 커플이 주인공이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브래들리(그렉 키니어)는 아내(셀마 블레어)가 갑작스레 레즈비언임을 선언하며 집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다. 젊은 연인 오스카와 클로에(알렉사 다발로스)는 서로 열렬히 사랑하지만 생활을 지탱할 여력이 없다. 그들은 커플 포르노를 찍어 돈을 벌려 한다. 다이애나는 홀로 된 브래들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불륜 관계를 유지해온 데이비드가 있다. 가족에 대한 상처가 있는 노교수 해리(모건 프리먼)는 세 커플의 주변인으로서 그들을 관조한다.
<피스트 오브 러브>는 인생의 여러 단면들을 촘촘하게 묶어 하나의 정교한 작품으로 완성해낼 줄 아는, 전형적인 로버트 벤튼표 영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우연으로 심경의 변화를 겪고, 그로 인해 한층 더 성장하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벤튼의 전작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
사랑의 다양한 면모를 향연 <피스트 오브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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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들의 합창>의 주인공은 평범한 가장이다. 타조농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하루하루 먹고사는 가난한 가장이지만, 귀여운 아이들과 착한 아내는 그를 마냥 행복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을 앞둔 청각장애인 큰딸의 보청기가 고장난다. 수리를 하거나 새 걸로 교체해야 하는데, 어마어마한 가격이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타조 한 마리가 도망치는 바람에 아빠는 농장에서 쫓겨나고 만다. 우연히 오토바이 택시 운전 일을 시작하게 된 그는, 지금까지와 달리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도시생활에 점점 젖어들고, 한편 아이들은 아빠를 돕기 위해 붕어 장사를 시작할 계획을 세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지적이고 풍성한 영화들로만 이란영화를 단정지어선 곤란하다. <천국의 아이들>로 잘 알려진 마지드 마지디는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연상케 하는 스피디한 스토리 진행과 감각적인 화면, 단순하고 명료하게 형상화된 인물을 내세우며 이란 대중영화의 가능성을 충
침묵의 이미지가 빚어내는 힘 <참새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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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폭격은 못해도 고집 하나는 대한민국 1%다. 이유미(이아이) 하사는 여성 최초로 해병대 훈련 과정을 1등으로 통과한 것도 모자라 남자들만 갈 수 있다는 해병대 특수수색대를 자원한다. 최고 중의 최고가 되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해병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죽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서다. 그렇게 애를 써가며 특수수색대에 들어갔지만 그녀에게 군생활은 험난의 연속이다. 얄궂은 성적 농담을 실실 해대는 사병들과 선배 부사관들을 상대해야 하고, 만년 꼴찌 3팀의 팀장을 맡아 수색 작전을 잘 이끌어야 한다. 또 진급을 노리는 욕심 많은 왕 하사(임원희)의 견제도 신경써야 한다. 금녀의 공간인 해병대에 들어간 이상 그녀가 감수하고 극복해야 할 일이다.
영화는 이유미가 군 생활에 적응하는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군 생활의 자잘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탄알이 사라져 소대 내부가 발칵 뒤집힌다거나 통닭이나 과자로 사병의 마음을 뒤흔드는 모습들은 군 생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배우
금녀의 공간인 해병대에 들어간 그녀 <대한민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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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아쉬움만 남는다고 하고, 또 누구는 여전히 설렌다고 한다. 이처럼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다르다. 세편의 단편들이 모인 옴니버스영화 <첫사랑 열전> 역시 각기 다른 모습의 첫사랑을 그린다. 첫사랑을 하면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밑바닥 인생을 청산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고(<종이학>), 말 못할 어떤 사연(?)으로 어쩔 수 없이 이별하지만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재회하고(<한번만 다음에>), 그리고 이미 지나간 첫사랑 때문에 안타까워한다(<설렘>).
각기 다른 세 가지 사연을 그리고 있는 <첫사랑 열전>은 세편의 완성도 또한 제각각이다. <종이학>은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다. 구질구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가 첫눈에 반한 여자를 위해 애쓰는 내용은 그간 드라마나 뮤직비디오에서 얼마나 우려먹었던가. 보는 내내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다. <한번만 다음에>
각기 다른 세 가지 사연의 첫사랑 <첫사랑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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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근 감독의 ‘원 나잇 스탠드’는 따뜻한 위로의 하룻밤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청년은 매일 밤 짝사랑하는 여대생을 스토킹한다. 청진기로 여대생의 샤워 소리를 훔쳐 듣고, 그것만으론 모자라 여대생이 버린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냄새를 맡는다. 여대생을 필사적으로 떠올리기 위한 청년의 안간힘을 안쓰럽게 훔쳐보는 또 한명의 여자가 있다. 낮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여자는 무슨 이유에선지 좀처럼 집밖에 나서지 않는다. 여자의 동정과 연민은 결국 청년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청년과 여자는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세상을 보지 못하는 남자와 자신을 숨기고 싶은 여자는 상대의 허기진 욕망의 보충물로 자신을 기꺼이 제공하고, 두 변태 남녀의 하룻밤은 결국 놀라운 기적을 낳는다.
이유림 감독의 ‘원 나잇 스탠드’는 끝모를 의심의 하룻밤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변호사는 후배 커플과 함께 동반 여행을 가는 꿈을 꾼다. 꿈속의 아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섹스를 거부하고, 심지어 서울로 돌아오는
서울독립영화제가 사전 제작지원한 옴니버스영화 <원 나잇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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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셰리던 감독에게 가족은 절대적인 이 지구상의 구성원이다. 뇌성마비로 뒤틀린 몸을 간직한 남자에게 <나의 왼발>의 어머니는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었고, 폭탄테러 혐의로 징역 15년을 살던 아들에게 희생을 감내했던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아버지는 용서의 다른 이름이었다. 가족은 이 험난한 세상을 뒷받침해줄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브라더스>는 짐 셰리던 감독이 그간 전개해왔던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끝까지 밀어붙인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영화는 한 남자 샘(토비 맥과이어)과 그의 사랑스런 아내 그레이스(내털리 포트먼), 그리고 두딸의 행복한 생활로 말문을 연다. 그러나 군인인 샘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을 가고, 전사 소식이 들리면서 이 가족의 행복도 산산이 깨진다. 실의에 빠진 가족을 보살피며 형의 빈자리를 대신해줄 동생 토미(제이크 질렌홀)의 등장으로 <브라더스>는 얼핏 멜로드라마의 구성을 띠는 듯도 하다. 그러나 짐 셰리던은 죽
전장이 미국인의 마음속에 남긴 황폐함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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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게 있다. 데뷔작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가수의 두 번째 앨범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블록버스터 시리즈에도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다. 비평과 박스오피스 양면에서 대성공을 거둔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 전편의 영광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경우다. <쥬라기 공원2>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정도가 이 비극적 징크스의 슬픈 사례라고 볼 만하다. 징크스를 무사통과한 사례로는 <스타워즈2: 제국의 역습>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많은 영화광들은 <에이리언2>와 <터미네이터2>를 거론하겠지만, 과연 <스크림>의 주인공들이 동의할까?
그렇다면 이 징크스를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슈퍼히어로 시리즈에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탈출하는 방법은 샘 레이미가 시리즈의 최고 걸작 <스파이더 맨2>에서 제대로 제시한 바 있다. 화력은 더 강하게, 스토리와 캐릭터는 1편과 마찬가지로 간결하고
토니 스타크의 방황기 <아이언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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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스쿨버스 한대가 어린 학생들을 태우고 기찻길을 건너고 있다. 그러다 기차와 충돌하는 끔찍한 참사가 벌어진다. 영화의 첫 장면이며 1957년 에메랄드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사고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몇 십년이 지난 뒤 주인공 멜라니(레아 파이프스)와 그녀의 언니는 지금 밝은 햇살 아래 그 기찻길을 막 건너려 한다. 그들은 에메랄드 마을에 전해져오는 소문에 대해 이야기 중이다. 1957년의 그때 사고 이후 한 가지 믿지 못할 풍문이 떠돈다. 이 기찻길 한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기차가 달려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어린아이들이 나타나 위급한 순간에 차를 밀어주어 사고를 면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멜라니의 언니는 깔깔대고 웃는데, 그때 멜라니의 눈에는 줄리라는 이름표를 달고 서 있는 한 아이가 들어온다. 그 뒤, 멜라니를 중심으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한때 남자친구와 함께 마약에 취해 인생의 바닥까지 경험한 고등학생 멜라니는 무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그녀
무차별적이며 냉혹했던 미국 호러무비의 잔상 <핑거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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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오랜 팬이라면 이번 극장판은 다소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첫 장면부터 케로로 소대의 죽음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 장면에서 우주의 꿈으로 밝혀지긴 하지만, 팬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해 보이는 출발이다. 어두운 분위기는 시작 뿐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 지금까지 ‘케로로 시리즈’에서 주인공 소년 우주와 케로로 소대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밝게 극복해온 것을 생각해보면 이번 극장판은 제법 의미심장하다. 이는 익숙함 속에서 끊임없이 신선한 변주를 해야 하는, 시리즈물의 숙명이 제작진에 크게 작용한 결과이리라.
5번째 극장판 <케로로 더 무비: 기적의 사차원섬>은 거대한 석상 ‘모아이’로 유명한 칠레 서쪽에 있는 섬 이스터를 배경으로 한다. 이 모아이가 사건의 발단이다. 케로로 중사와 똑같이 생긴 모아이를 발견한 우주는 그것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케로로와 함께 이스터섬으로 향한다.
5번째 극장판 <케로로 더 무비: 기적의 사차원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