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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서사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당한 만큼 갚아주려면 필요한 고통의 저울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서 멈춰야 할 것인가. <악마를 보았다>의 김수현(이병헌)은, 사랑하는 약혼녀를 토막 살해한 병적인 연쇄살인범 장경철(최민식)에게 사형은 너무 관대하고 무기징역은 지나치게 태평한 벌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오랜 시간 많은 양의 고통을 준다는 사적 평결을 내리고 단호히 집행한다. 국정원 경호요원답게 GPS 캡슐을 이용해 경철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수현은, 경철이 강간과 상해를 저지르는 현장마다 나타나 죽지 않을 만큼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다음 응징까지 버틸 수 있도록 돈까지 찔러주고 사라진다. 수현의 분노는 너무도 뜨거워서 진범이 누군지 모를 때도 용의자들을 찾아가 호되게 폭행해 제 발로 경찰을 찾아가게 만든다. 어차피 악인들이니까. <악마를 보았다>의 맞수인 두 인물은 대조적이다. 김수현은 고도로 훈련된 전투력과 절제된 말과 표정, 정연한 움
잔혹한 폭력묘사가 아닌 그 효과의 무시무시한 공허함 <악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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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 윗치>로 시작해 <REC> <클로버필드> 그리고 최근의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푸티지 장르의 영화로서 <폐가>의 서두는 당연히 자막이다. 경기도 모처의 폐가를 취재하던 방송팀과 폐가 동호회 회원이 사라졌다. 폐가에는 그들이 떨어뜨린 카메라가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복원, 재편집했다. 장르의 약속으로 볼 때, 영화 <폐가>는 바로 이 영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첫 부분은 동호회 회원 중 하나가 사라지기 전에 전화로 남긴 구조요청과 마지막 비명이다. 그리고 방송팀 PD가 프로그램을 위해 만들었다는 오프닝 시퀀스가 폐가에 얽힌 사연을 알려준다. 구성상으로 볼 때, <폐가>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형식을 구성하고 있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장르의 특성상 <폐가>가 가장 공력을 들여야 했을 부분은 알면서도 속아넘어가는 어느 한순간일 것이다. 가짜
한국형 페이크 다큐멘터리 <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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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수만 맞으면 무엇이든” 하는 익스펜더블팀의 구성원은 총 6명이다. 리더인 바니 로스(실베스터 스탤론)를 비롯해 리 크리스마스(제이슨 스타뎀), 인 양(이연걸), 헤일 시저(테리 크루즈), 톨 로드(랜디 커투어), 그리고 거너 젠슨(돌프 룬드그렌)이다. 어느 날, 처치(브루스 윌리스)란 남자가 작은 섬나라인 빌레나의 독재자 가자 장군을 없애달라는 의뢰를 해온다. 답사차 빌레나에 도착한 바니와 리는 산드라를 통해 이 섬이 전 CIA 공작원이었던 제임스 몬로(에릭 로버츠)에 의해 코카인 재배의 근거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니와 리는 우여곡절 끝에 섬을 탈출하지만, 바니는 섬에 두고 온 산드라가 내심 마음에 걸린다. 결국 바니와 친구들은 다시 빌레나로 향한다.
전설의 액션 스타들에게 붙여진 ‘익스펜더블스’(Expendables: 소모품들)란 팀명의 느낌은 상당히 짠하다. 대부분의 인물은 이미 버려졌거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다. 리는 애인에게 차인 상태고, 거너는
옛 시절을 호기롭게 추억하는 영화 <익스펜더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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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자 젠(캐서린 헤이글)은 완벽한 이상형 스펜서(애시튼 커처)와 사랑에 빠진다. 초고속으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3년 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긴다. 그런데 잠깐, 젠은 스펜서의 과거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과거 꽤 날리던 프로페셔널 킬러 요원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를 노리는 라이벌 킬러 조직이 동네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킬러스>는 몇몇 영화들을 대놓고 연상케 한다. 007 시리즈를 닮은 오프닝 화면부터 시작하여,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라든가 <나잇 & 데이>처럼 위험천만 액션과 남녀간의 아옹다옹 사랑싸움을 동일선상에 놓는 종류의 영화다. 그러나 <킬러스>에서 두 요소의 조합은 착착 들어맞는 궁합을 보여주지 못한다. <금발이 너무해> <어글리 트루스> 등으로 로맨틱코미디의 관습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며 톡톡 튀는 매력을 보여줬던 감독 로버트 루케틱은, 그러나 액션 블록버스터에까
위험천만 액션과 남녀간의 아옹다옹 사랑싸움 <킬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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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지>는 일본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했으며 <데스노트>의 주연배우 후지와라 다쓰야가 출연하고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일본의 명배우 가가와 데루유키도 조역으로 출연한다. 편의점 직원으로 일하며 젊은 날을 허송세월하던 주인공 카이지(후지와라 다쓰야). 그에게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진다. 친구의 빚보증을 서준 게 잘못되었으니 대신 갚으라는 사채업자의 협박. 돈이 다급해진 카이지는 사채업자의 이상한 제안에 끌려 도박선에 올라타고 거기서 절체절명의 도박판에 휩쓸리게 된다. 카이지처럼 돈이 필요한 사람들 수십명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거대한 지하도시를 건설하려는 야욕을 지닌 정체불명의 대기업이 이 게임을 벌였으며 여기에서 진 사람들은 지하도시 건설의 인부로 끌려간다. 카이지도 패배하여 인부로 끌려가지만 그는 다시 필사적으로 지상에의 복귀를 꿈꾼다.
영화에 등장하는 몇개의 게임이 어떤 인간성의 면모와 연관되어 있다는 건 재미있다. 특히 첫 번째 게임의 연출 장면이 가
나태한 인간이 영웅적 초인으로 변모하는 이야기 <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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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수정과 함께 지구에 떨어진 슈퍼맨처럼 <마법천자문: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이하 <마법천자문>)의 손오공은 ‘마법천자패’와 함께 화과산 자락에 불시착한다. 세월이 지나 손오공이 이 산의 두목이 된 어느 날, 혼세마왕이 나타나 마법천자문의 조각을 찾는다며 마을을 뒤집어놓는다. 조각들을 모아 마법천자문의 비석을 완성해야 비석에 봉인된 대마왕을 부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한 오공은 화과산을 지키기 위해 한자마법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보리선원을 찾아간다. 이곳에는 한자마법의 1인자가 되기를 원하는 삼장과 마법보다는 먹는 것에 심취한 돈돈이 있다. 마법천자패의 도움으로 한자마법을 단기완성한 손오공은 혼세마왕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만화 <마법 천자문>은 아이가 아닌 부모에게 마법을 부렸다. 이것만 읽으면 ‘한자’가 외워진다! ‘한자습득’의 기능적인 면에서 볼 때 애니메이션 <마법천자문>은 원작을 읽은 아이들을 위한 복습용 교재다. 원
오공이 한자마법을 공부하는 과정 <마법천자문: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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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우주비행사인 코멧(정재헌)은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다. 우주기지 건설을 위한 침팬지들의 2차 탐사에 자신이 참가할 것이라고 코멧은 확신한다. 우주영웅 대접을 받는 선배 침팬지들의 뒷수발을 들면서도 코멧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말고르 행성의 외계생명체 킬로와트(이용신)와 교신하며 곧 현실이 될 판타스틱 우주비행을 꿈꾼다. 그런데 웬걸. 예산문제로 최종 선발 명단에서 코멧이 쑥 빠졌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코멧은 조종간이라도 한번 만져보자고 아무도 모르게 로켓에 탑승하는데, 그가 탄 로켓이 오작동으로 발사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한편 전편에서 침팬지들에게 포획되어 지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말고르 행성의 폭군 자톡이 깨어나 혼란에 빠진 우주항공국을 공격한다.
3D로도 상영되는 속편에선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제트팩, 아름다운 말고르 행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외계 가오리 플루비안, 코멧과 킬로와트가 흠뻑 빠져드는 놀이기구 캥거루 버섯 등이 등장한다. 전편 <스페이스
전편보다 업그레이드 된 볼거리 <스페이스 침스: 자톡의 역습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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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사우디타’(Venezuela Saudita). 1970년대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석유 부국을 꿈꿨다. 마라카이보 호(湖)에서 솟아난 석유는 분명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다. 1975년 사관학교를 졸업하면서 페레스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지휘도를 수여받은 우고 차베스 역시 조국의 번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16년 뒤 페레스 대통령과 미국과 초국적 기업을 향해 칼을 빼들 반역의 주인공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누구나 장밋빛 미래를 말하던 시기, 불가능한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베네수엘라는 탐욕스러운 제국들의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그들의 귀에 민중의 신음과 통탄은 그치지 않았다. 1975년 엘 시스테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우린 예술로 싸웁니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음악이라는 기치 아래 하나가 되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거죠.” 엘 시스테마가 택한 건 총 대신 음악이었다.
엘 시스테마의 공식 명칭
엘 시스테마의 열정적인 합주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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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트>의 결말은 완벽했다. 닐 마셜은 살아서 동굴을 빠져나온 사라와 동굴 속에서 눈을 뜨는 사라의 이중 결말을 마지막에 배치했다. 그건 마치 반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관객에게 두 가지 여운을 동시에 주겠다는 시도이기도 했다. <디센트>의 결말은 쓸데없는 속편의 가능성을 애초에 막아세웠다는 점에서도 훌륭했다. 슬프게도, 돈의 논리 앞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속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디센트>의 편집자 출신 존 해리스가 메가폰을 쥔 <디센트: PART2>는 기어이 사라를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낸 뒤 다시 동굴 속으로 처박아넣는다. <디센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홀로 지옥에서 빠져나온 사라(쇼나 맥도날드)는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병원에 누워 있는 신세다. 현지 보안관은 상원의원의 딸인 주노(내털리 잭슨 멘도자)의 생사를 확인하겠다는 욕심으로 사라를 다시 병원에서 빼내 조사단과 함께 동굴로 들어간다. 동굴로 깊숙이
관객의 목을 조아대는 호러영화 <디센트: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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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하나 밝히고 넘어가자. ‘<파라노말 액티비티> PART2’라는 홍보 문구는 일종의 사기다. <파라노말 포제션>은 영국 저예산 호러영화이며 <파라노말 액티비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국 수입사에서는 <Paranormal Possession>이라는 영어 제목을 홍보자료에 이용하고 있는데 진짜 원제는 <The Possession of David O’Reilly>다. 오리지널 <파라노말 액티비티2>는 미국에서 10월22일에야 개봉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파라노말 포제션>은 어떤 영화인가. 시작부에 주인공이 자신들의 집을 촬영할 수 있는 캠코더를 잠시 실험해보긴 하지만 캠코더는 영화 속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파라노말 포제션>은 실제 기록이 담긴 영상을 누군가가 발견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척하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장르가 아니라 ‘귀신 들린 집’ 장르에 해당하는
‘귀신 들린 집’ 장르에 해당하는 보통의 극영화 <파라노말 포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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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요약 불가능한 스토리의 세계다. 영화의 주축은 킬러, 아니 킬러임으로 추측되는 ‘고독한 사나이’(이삭 드 반콜)다. 임무를 부여받은 남자는 차례로 사람들을 접선한다. 서로가 건네는 낡은 성냥갑 안에는 임무가 적힌 쪽지가 있지만, 관객은 그 임무가 무엇인지 통 알 수가 없다. 전달자들 역시 임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각자 슈베르트, 영화, 분자, 보헤미안의 삶, 환각적 상태의 자유로움 등 자신의 관심사를 사나이에게 실컷 떠들고 홀연히 사라진다.
수수께끼 같은 만남과 기승전결 없는 진행, 철학적인 대사의 반복.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감독의 전작 <데드맨>과 닮아 있다. 모티브는 서부극이지만 주술의 영역을 건드렸던 전작처럼, 짐 자무시는 범죄장르를 차용하고 있지만 범죄가 아닌 초현실의 영역을 건드린다. 이 영화를 들어 “액션 없는 액션영화”라는 짐 자무시의 설명은 그런 의미에서 절묘하다. 사나이의 행적을 좇으며
액션 없는 액션영화 <리미츠 오브 컨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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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의 <그랑 블루>가 부활한 것 같은 스토리다.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사랑했던 베테랑 스쿠버 다이버 망텔로 형제는, 그러나 <그랑 블루>의 주인공 자크와 달리 자신들이 보아온 심해 속 풍광을 관객과도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20년 동안 망텔로 형제는 <바다의 신비 3D> <상어의 세계 3D> <돌고래와 고래의 세계 3D> 등을 발표할 때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3D 해양다큐멘터리의 신기원을 창조했다.
<오션월드 3D>는 망텔로 형제가 직접 개조한 75kg 3D 카메라로 7년 동안 1500여 시간을 들여 완성한 대작이다. 출산을 위해 5천 마일을 헤엄쳐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다거북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시선을 따라 지금껏 한번도 보지 못한 심해 생물들의 내밀한 삶이 드러난다.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리는 혹등고래의 노래, 동화 속 요정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은 풀잎 해룡, 근사한 싱크로
심해 생물들의 내밀한 삶 <오션월드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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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안즈(오시다 유코)는 친구 카나가 자살하기 전에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비슷한 시기 도쿄에선 동시다발적으로 여고생들이 <나의 꽃>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살하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잡지 <마사카>의 기자 리쿠(마쓰다 류헤이)와 타이치(이세야 유스케)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한다.
<주온>이나 <링> 같은 일본 특유의 끈적한 호러물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쥬바쿠> <이누가미> <망량의 상자> 등으로 잘 알려진 감독 하라다 마사토는 드라마 안에 당대의 사회적 이슈들을 녹여넣는 것에 관심이 많다. <전염가>에서도 귀신이나 초현실적 존재들이 등장하지만 거의 코미디에 가까울 정도로 가벼운 터치로만 스쳐간다.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쪽은 온갖 불길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과 휴대폰 등 신매체들의 부정적 측면, 자살 비즈니스라는 끔찍한 풍조, 가정 폭력과 이지메와 원
공포의 외피를 뒤집어쓴 사회드라마 <전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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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에로영화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여성 감독인 이구치 나미의 <남의 섹스를 비웃지마>는 지난해 <씨네21>이 개봉 촉구한 영화 중 한편이다(당시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그만큼 일본 개봉 당시 작품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는 말이다. 3년 만의 한국 개봉이라 뒤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남의 섹스를 비웃지마>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는 영화다.
‘우연’이 반복되면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도 ‘운명’의 상대가 된다. 미대생 미루메(마쓰야마 겐이치)는 새벽에 우연히 자신의 트럭에 태운 유리(나가사쿠 히로미)를 다음날 학교 벤치에서 다시 만난다. 알고 보니 유리는 미대의 석판화 강사였다. 39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인 외모, 자유분방한 행동 등은 19살 미루메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미루메는 판화 작업의 조수, 누드 모델 등 유리의 작업을 돕다가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된다. 섹스
고민 많은 청춘의 마음 <남의 섹스를 비웃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