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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지금에 와서 <대부>를 소개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미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갱스터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 영화에 관해 말하자면 아마 지금까지 나온 찬사만 모아놓는다 해도 짧은 지면이 다 모자랄 것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그저 좀 재능있는 신인감독으로 여겨졌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첫 성공작으로 <대부>를 완성했다. 여기에는 젊은 코폴라의 확신이 한몫 했다. 메소드 연기의 달인으로 청춘을 보냈지만 전성기는 지난 말론 브랜도와 연극판에서만 조금 알려져 있는 신출내기 알 파치노의 캐스팅을 밀어붙인 것도 코폴라였다. 결과적으로 <대부>는 미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불멸의 두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대부>는 특히 국내에서 어느 갱스터무비 이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국내에서는 1977년 5월25일 극장 개봉했으며 그해 한국 극장가의 가장 큰 이슈를 모았다. 작품의
갱스터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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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대학교수 조지(콜린 퍼스)는 연인 짐(매튜 구드)이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상실감에 빠져 살아간다. 매일 아침 눈을 뜨지만 그에게 삶은 더이상 살아갈 즐거움도 가치도 없다. 그를 둘러싼 시간은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현재와 돌이킬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만 있다. 현재의 시간에서 조지는 전에는 잠시 연인이었으나 지금은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만한 유일한 친구인 찰리(줄리언 무어)와 소란스러운 유흥의 밤을 보내거나 때때로 혼자 남겨질 때는 권총을 머리에 대고 세상을 버리겠다는 흉내를 내곤 한다. 그때마다 짐과 함께했던 시간이 그의 머릿속으로 찾아오고 관객의 눈에도 펼쳐진다. 그들은 조지의 단골 술집에서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조지가 짐과 만났던 바로 그 술집에 앉아 있는 순간, 그의 수업을 듣는 젊고 싱싱한 청년 케니(니콜라스 홀트)가 그에게 다가온다. 평소 조지에게 관심의 눈길을 보이더니 기어코 그날 밤 조지의 단골 술집에서 우연을 가장하고 나타난다. 외모가 준수하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첫 번째 연출작 <싱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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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길들이기>의 원작은 영국 작가 크레시다 코웰이 2003년에 펴낸 초등학생 고학년 대상의 동명 소설이다. 원작의 배경과 캐릭터만 가져온 <드래곤 길들이기>는 바이킹과 용의 한판 전쟁으로 시작한다. 손재주는 있지만 싸움재주가 없는 바이킹 소년 히컵(제이 바루첼)은 자신이 만든 돌팔매 투척기로 용 한 마리를 쓰러뜨린다. 다음날 히컵이 발견한 용은 용 중에서도 가장 무섭다는 ‘나이트 퓨어리’다. 용을 죽이려던 히컵은 목숨을 체념한 듯한 용의 눈빛을 보고는 칼을 내려놓는다. 이 일로 둘은 친구가 되고 히컵은 용에게 투슬리스(toothless)란 이름을 붙여준다. 둘은 우정을 나누지만, 이 마을의 바이킹은 일생을 바쳐 용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숙명이다. 히컵은 운명적 과제와 투슬리스와의 우정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사실 <드래곤 길들이기>의 이야기는 상당히 관습적이다. 외롭고 나약한 소년과 그에게 찾아온 미지의 친구가 만드는 우정의 서사는 전세계
소년과 용의 아름다운 우정담 <드래곤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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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규범을 파괴하는 쾌감의 경험’이라고 코미디를 일단 규정할 경우, 일본의 코미디는 둘 중 하나다. 가짜이거나 슬프거나. 일본은 규범에 주눅든 사회다. 코미디 안쪽에서 그 규범을 깨도 영화 밖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그들은 다시 그 규범에 종속됨을 알고 있다. 안과 밖의 이 차이는 해소되지 않는다. 규범의 파괴가 성공한다면 그건 현실에 대한 가짜 생각이다. 파괴가 숙명적으로 실패하면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하고 그건 원치 않는 현실로의 슬픈 회귀다. 후지타 요스케의 장편 데뷔작 <괜찮아, 정말 괜찮아>는 후자에 속하는 코미디다. 다만 원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고 이를 새로운 시작처럼 보여준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헌책방 장남 데루오(아라카와 요시요시)는 공포물에만 집착하는 별 볼일 없는 청년이다. 홈리스 할머니만 그리는 화가 지망생 아카리(기무라 요시노)는 직장업무는커녕 셔터 누르기도 못해 남의 카메라를 망가뜨리는 여자다. 공포물 도착이라는
신중한 웃음을 경험할 기회 <괜찮아, 정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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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택시>는 일본 Music On! TV 창사 10주년 기념 프로젝트다. <구구는 고양이다> <마을에 부는 산들 바람>의 사이미 야스마사 프로듀서가 김태식 감독의 전작인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인상 깊게 보고 영화 연출을 제안한 것이다. 영화는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록밴드 보컬 료(야마다 마사시)가 서울에서 열리는 록밴드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야마다(야마자키 하지메)의 택시에 타면서 시작한다.
택시를 타고 도쿄에서 서울로 갈 생각을 하다니. 타는 사람이나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나 둘 다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도쿄택시>의 재미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초록색의 도쿄택시가 부산, 경주, 명동, 서울역, 김포공항 등 한국을 달리는 것 자체로 신기하다. 오히려 그 풍경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로 생겨난다. 불법 영업 택시로 오인돼 억센 부산 택시 기사들에게 추격을 당하는가 하면,
잔재미 가득한 전형적인 로드무비 <도쿄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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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째’라고 서수를 붙이기 힘들 만큼 ‘로빈 후드’는 이미 수많은 버전을 가진 이야기다. 동시에 오로지 의적인 로빈 후드는 ‘몇명’이라고 셀 필요가 없는 캐릭터다. 그들과 다른 로빈 후드를 보여주겠다고 나선 리들리 스콧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시리즈의 유행을 따른 듯 로빈 후드 프리퀄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로빈 후드는 어쩌다 의적이 되었나. 영화에서 로빈 후드의 의적생활은 팬서비스 차원으로 짤막하게 언급될 뿐이다.
<로빈후드>는 십자군 전쟁의 막바지에서 시작한다. 로빈 롱스트라이드(러셀 크로)는 십자군 전쟁에 뛰어든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의 궁수다. 왕이 전사하자, 그는 동료들과 함께 탈출을 결심하고 영국으로 향하던 도중 왕의 왕관을 운반하다 습격을 당한 기사 록슬리의 죽음을 지켜본다. 록슬리는 아버지에게 훔쳐온 칼을 고향에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영국에 온 로빈은 노팅엄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가 록슬리의 가족을 만난다. 한편, 리처드 왕에 이어 왕관을 물려받은 존
대규모 물량투입으로 일궈낸 스펙터클 <로빈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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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이후 4년 만에 찾아온 배창호 감독의 <여행>은 청량하고 시원한 한 줄기 바람 같다. <여행>은 <여행> <방학> <외출>의 세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뚜렷한 상징이나 연결고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는 감독의 말처럼 통일된 서사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의 중심에는 제주도라는 공간이 있다. 영화는 제주도를 찾아온 사람들과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길가기로 가득하다. 건국대 제자들과 함께 찍은 첫 번째 단편 <여행>은 공모전을 앞두고 사진 촬영을 위해 제주도를 찾아온 대학생 남녀의 자전거 여행을 담았다. 당시 중2였던 딸과 같이 시나리오를 썼다는 <방학>은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여중생 수연이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제주도 현지에서 캐스팅한 배우들의 구수한 사투리와 입담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배창호 감독의 부인인 김유미씨가 주인공 은희로 출연한 <외출&g
청량하고 시원한 한 줄기 바람 같은 영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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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깡패 같은 애인>은 별 볼일 없는 삼류 건달 얘기다. 그러고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많다. 일단 <파이란>(2001)에서 조직 후배에게 무시당하면서도 입만 살아 오락실을 전전하던 강재(최민식)와 무척 닮았다. 한창때 같이 구르던 친구 용식(손병호)이 어느덧 보스로 성장한 상황도, 이제는 동네에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며 친구(박원상) 밑에서 뒤치다꺼리를 하는 처지도 비슷하다. 말하자면 모두가 꺼려하는 쓸모없는 남자다. 대신 교도소에 갔다 오면 조직의 ‘에이스’가 될 수 있을 거란 부추김에 기꺼이 누명을 뒤집어썼지만 그건 그냥 없던 얘기가 됐다. 그저 적당히 체념하고 살아야 편한 게 세상이다. 요즘 영화들 중에서는 양익준의 <똥파리>(2008)가 떠오른다. 조직 내에서는 늘 함께 다니는 어린 후배(권세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사적으로는 욕을 좀 덜하고 여자친구에게 좀더 나긋나긋하고 귀여운 ‘나이 든 똥파리’가 바로 박중훈이라고 할까.
조직에서 거
매끈하고 새끈한 로맨틱코미디 <내 깡패 같은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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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라이즈 선셋>은 달라이 라마 14세와의 만남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그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취합하거나 그의 지난 세월을 되짚어보는 형식이 아니라, 그저 달라이 라마와 함께했던 아주 특별한 하루의 기록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러닝머신을 달리고 신성하고 경건한 큰 절 ‘오체투지’와 기도, 명상의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카메라와 내레이터는 가만히 그의 일상을 좇으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고, 또한 달라이 라마의 설법이 시작되면 가만히 경청한다.
다큐는 종종 저속촬영의 영상으로 휙휙 지나가는 주변과 사물의 속도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윤회론에 따를 때 14번째 생을 맞은 달라이 라마에게는 같은 시간이 14배나 빠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 범인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가 지내고 있는 다람살라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 비폭력의 아이콘이지만 늘 무장경찰이 호위하지 않으면 안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리고 “5시간
달라이 라마 14세와의 만남을 그린 다큐멘터리 <선라이즈 선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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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영화, 한국을 만나다’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미 서울, 춘천, 인천을 배경으로 한 윤태용의 <서울>, 전계수의 <뭘 또 그렇게까지>, 문승욱의 <시티 오브 크레인>이 개봉했다. <그녀에게>의 무대는 부산이다. 부산은 독창적인 풍광과 도시적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에서는 ‘경상도 사나이 장르’의 노스탤지어적인 무대로만 소비되어왔다. 부산이 열렬히 충무로에 로케이션을 지원하고도 남는 장사는 해본 적 없단 소리다. <그녀에게>는 프로젝트의 목적에 맞게 부산이라는 도시의 풍광을 열심히 담아낸다. DSLR 인기 출사지는 다 나온다.
그런데 김성호(<거울 속으로>) 감독은 부산이라는 도시를 근사한 병풍 이상의 주요한 장치로 극 속에 끌어올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그녀에게>는 무대가 어디라도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영화감독 인수(이우성)는 부산에서 혜련(한주영)이란 여
‘영화, 한국을 만나다’ 네 번째 프로젝트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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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파코 플라자 감독이라고 하면 어딘가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이름이다. 리얼TV 다큐 프로그램을 소재로 했던 공포영화 <REC>(2007)의 공동감독이었다고 하면 아마 기억이 날 것이다. 단독 연출작 <세컨드 네임>(2002)으로 판타스포르투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그는 자우메 발라게로 감독과 공동 연출한 <REC>로 해외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에는 그 인기에 힘입어 발라게로 감독과 <REC> 속편까지 만들었다. 발라게로 감독이야 <네임리스>(1999)로 혜성처럼 등장해 할리우드까지 진출해서 <다크니스>(2002)를 만든 경력도 있으니, 파코 플라자 그 혼자만의 실력이 어떤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REC> 이전에 연출한 2004년작 <더 헌터>가 나름 해답이 될 것 같다.
1851년,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 숲에는 늑대들이 들끓고 사람들이 하나둘, 연이어 실종된다. 마을 사람들은 숲에
가끔 인간으로 변하는 늑대 <더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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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의 원작이 제작되던 당시, 1960년대 대한민국의 하녀는 리얼리티였다. 피아노가 있는 이층집, 단란한 가족. 쪽방에 거처하며 집안일을 돕는 하녀는 이들의 ‘행복’을 완성하는 필요조건이었다. 부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던 당시 한국인에게 이 정도는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실제의 ‘부’였다. 2010년, 대한민국에 ‘하녀’는 사라졌다. 일당제 가사도우미는 물리적 일은 하되, 더이상 예전 하녀를 하녀라 부르던 시절에 보았던 주종의 관계에 매이지 않는다.
임상수 감독은 이렇게 이미 사라진 이름 ‘하녀’를 스크린에 불러온다. 원작의 ‘있을 법한’ 부유층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죽은 역할인 하녀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최상의 부를 재현하기로 한다. 주말드라마에서 조악한 소품과 세트로 구현되던 이른바 ‘재벌’의 실체는 제작비 31억원이라는 물량을 투여받고 화면에 제대로 구현된다. 한국식 된장찌개가 놓인 밥상도, 여느 집안의 TV 시청 소음도 완벽히 차단된 공간. 유럽의 대저택에서나 볼 수
밑바닥까지 파헤쳐진 가진 자들의 본성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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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작품으로서 시(poem)는 ‘아름다움’이지만 문학 형식으로서 시(poetry)는 ‘아름다움을 향하는 자세’에 속한다. 이창동의 신작 <시>는 명백히 포에트리에 관한 이야기다. 완성된 하나의 시(포엠)는 정제된 언어의 조합인 동시에 피어오르는 직관의 언어다. 지극히 이성적인 도덕의 영역과 비범한 직관의 세계가 하나 되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시가 탄생한다. <시>는 이 완성된 아름다움을 완결된 영상으로 담아내기보다 아름다움의 의미는 무엇인지 좇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관객이 영화의 행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에 답하는 ‘순간’ 시가 탄생하고 <시>도 완성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와 소설은 다르다. 소설이 서사를 통해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데 주력한다면 시는 공백의 공간에서 삶과 아름다움의 의미를 묻는다. 그래서 <시>는 결정된 서사가 아닌 미지의 질문에 관한 영화다. 의사가 나이를 묻자 65살이라고 했다가 이
아름다움의 의미는 무엇인지 좇는 영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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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배우 가운데 로버트 칼라일만큼 대책없는 아빠의 대명사도 없을 것이다. 영화 <풀 몬티>에서 연기한 가즈는 무능력한 이혼남이었다. 그는 아들과 전 부인에게 좀더 멋있는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자 옷을 벗었다. 무모한 도전이지만 극중에서 가즈의 아들은 아빠의 도전을 응원했다. 1980년대 남부 웨일스를 배경으로 한 <아이 노우 유 노우>의 아빠는 더 대책없고, 아들은 더 어른스럽다. 11살 소년 제이미(애런 풀러)의 아빠는 여행사 직원을 가장한 영국의 비밀첩보원이다. 여름휴가를 함께 보낸 뒤 아빠 찰리(로버트 칼라일)는 다음 임무만 성공하면 큰돈을 벌어 미국에 가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허황된 꿈처럼 보여도 언제나 자상한 아빠의 말은 제이미의 기대를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미는 따라오지 말라는 아빠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찰리의 임무에 동참한다. 아들이 다칠까 두려운 아빠는 속이 타지만, 아빠를 좋아하는 제이미는 신이 난다. 결국 서로를 사랑하는 부자는 죽이
아버지의 사랑과 그에 대한 아들의 연민 <아이 노우 유 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