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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의 엘리자베스(데미 무어)가 ‘더 서브스턴스’ 약물 키트를 열었을 때, 그는 이렇게 적힌 안내장과 마주한다. “REMEMBER YOU ARE ONE.”(기억해 너는 하나야) 굵은 대문자인 이 문구가 만약 ‘remember you are one’처럼 소문자에 흘림체였다면? 부드럽게 읽힐 안내장은 엘리자베스와 관객을 덜 긴장시켰을 테고 의미심장함을 심으려는 장면의 의도는 명확히 전달되지 못했을 거다. 영화 타이포그래피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포스터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 등장해 영화의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하고 한 장면의 의도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에 영화 타이포그래피를 역사적 흐름을 주도한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읽고 나면 이 거대한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기억해야 할 이름은 무엇인지 윤곽이 잡힐 것이다. 이번에는 직접 볼 차례다.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이는 최근 영화들의 포스터를 살펴보는 페이지도 마련했다. 설 연휴
[기획] <서브스턴스>의 글씨가 대문자인 이유는?, 영화 타이포그래피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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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말하기에 가장 어려운 영화감독의 이름을 꼽으라면 데이비드 린치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의 난해함을 떠나더라도 그러한 작품들의 기반이 꿈의 공장인 할리우드였다는 것, 그 안에서 디지털 영화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통상적으론 컬트영화의 대부로 말해진다는 것 등의 난잡한 조각들이 그를 특정한 계보나 사조에 편입시킬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을 배회하는 몇개의 키워드를 통해 우리 곁을 떠난 데이비드 린치의 형상을 주물러본다.
컬트
‘컬트의 제왕’, ‘컬트영화의 대부’. 데이비드 린치가 떠난 뒤 그의 이름에 가장 자주 수식된 단어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데이비드 린치의 외적 행보는 컬트영화의 토대에서 출발했을 뿐, 지금 시점에서 컬트란 단어로 그의 전부를 통용하기란 부적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의 첫 장편영화 <이레이저 헤드>는 1977년 작은 영화관에서 개봉해 1981년까지 장기상영하며
그의 조각들, 데이비드 린치를 배회하는 몇개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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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가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작업과 영감들 속에서 그를 대표하는 10여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가 전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선물했던 초현실적 궤적을 다시 살피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1977 <이레이저 헤드>
데이비드 린치가 빚을 지면서까지 만든 인디펜던트 영화다. 2만달러의 제작비로 북미에서 장기상영하여 70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황량한 미상의 도시에서 사는 청년 헨리(잭 낸스)가 메리(샬럿 스튜어트)와의 결혼과 출산을 이어가며 겪는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물들의 살인 충동을 종용하는 환상의 존재 ‘라디에이터 속의 여인’은 이후 <트윈 픽스> 시리즈의 밥처럼 데이비드 린치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프가 된다.
1980 <엘리펀트 맨>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으로 인해 남들과 다른 외형을 가졌던 실존 인물 조셉 메릭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엘리펀트 맨’으로 불린 메릭은 서커스단의 구경거리로 비극적인 일
초현실적 궤적, 데이비드 린치의 대표작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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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가 세상을 떠난 날. 자택에서 데이비드 린치 추모의 밤을 보낸 이경미 감독이 <씨네21> 앞으로 추도사를 보내왔다. 이경미 감독의 애통한 마음을 최대한 필자의 문체를 살려 싣는다. 린치와 협업한 영화인들이 남긴 메시지도 짧게 전한다.
이경미 감독(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연출)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데이비드 핀처도 있지만 내 인생의 첫 데이비드는 만리장성을 통과하고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만든 환상의 마술사 데이비드 코퍼필드다. 마술사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그전에 숟가락을 구부렸던 유리겔라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데이비드 이야기만 하고 싶다.
나는 코퍼필드의 충격적인 마술을 접한 뒤로부터 한참이 지나 남들보다 늦게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3인의 데이비드가 연출한 작품을 한꺼번에 접할 수밖에 없는, 대혼돈을 겪고 말았다. 참고로 나는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놀랍도록 기억하지 못한다. 핀처는 비교적
못다 한 고백, 데이비드 린치를 향한 추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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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들은 요약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데이비드 린치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가 이 부류에 속한다. <이레이저 헤드>(1977)부터 <인랜드 엠파이어>(2006)까지, 끔찍한 현실과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담은 그의 영화들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들을 보고 컬트라고 말했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를 천재라 믿었다. 2025년 1월16일, 78살로 세상을 떠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현실주의자 데이비드 린치. 조각과 그림, 사진과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인 위대한 영화예술가의 행적을 되돌아본다.
1946년 몬태나주 미줄라에서 태어난 린치는 농무부 소속의 과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서 미국 중부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예술과 연관이 없는 환경이었지만 14살 무렵부터 그는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 데이비드 린치가 만든 단편영화는 영화보다 조형예술에 더 가까웠다. 움직이는 그림의 형태들, 그의 작품이 시네마의 개념에 근접한 것은 세 번째 단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현실주의자, 데이비드 린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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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진 느낌이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가 지난 1월16일 영원히 눈을 감았다. 1977년 <이레이저 헤드>부터 2017년 <트윈 픽스: 더 리턴>까지 약 40년간 영화사의 대체할 수 없는 이름으로 불렸던, 늘 꿈의 세계에 둥둥 떠다니며 사는 현자 같았던 거장의 세계가 막을 내렸다. 이 영광의 행로를 모두 집약하긴 어렵겠으나 그의 생애를 요약한 글과 함께 필모그래피 정리, 그를 추모하는 영화인들의 코멘트를 실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 붉은 커튼 뒤의 무한한 가능 세계로 남아 있는 데이비드 린치의 조각들을 할리우드, 컬트 등 몇 가지 키워드로 그러모았다. 한명의 삶이 끝난다기보단, 거대한 시대가 저문다는 감상으로 부고의 전언을 부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데이비드 린치 부고 기획이 계속됩니다.
[기획] Fire Walk with Me, 데이비드 린치(1946~2025)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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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이었다.” 아이즈원의 메인보컬부터 성공적인 솔로 활동까지 아이돌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온 조유리에게도 “고등학생 때부터 품었던 연기의 꿈”을 위해 도전한 배우의 길은 험난했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신 뒤 “두눈 가득 독기를 품고” 임한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오디션. 마침내 조유리는 “연기를 향한 간절한 염원”처럼 “뱃속의 아기와 반드시 게임에서 탈출하리라 다짐한” 어린 미혼모 김준희를 만나게 된다. 본격적인 시리즈물 데뷔는 처음이었던 그에게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임신”을 연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임신을 경험한 분들에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다.” 조유리는 어머니의 육아일지를 읽으며 모성을 헤아려보고, 임신을 경험한 주변 지인들로부터 신체적인 변화를 물었다. “산모들이 배에 손을 대는 이유가 배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기에 “손을 배 밑에 두어 들어 올리듯 받쳐야 한다”는 점을 명심한 채 촬영에 임하느라 나중에는
[인터뷰] 희망과 불안 사이,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조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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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감독에게 <오징어 게임> 시즌2 캐스팅 이유를 들은 박성훈은 적잖이 놀랐다. “예전 출연작인 KBS 단막극 <희수>를 보고 현주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하시더라. 극 중 평범한 가장 역할이었는데 말이다. 감독님이 내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꿰뚫어보신 것 같았다.” 특전사 출신 트랜스젠더 조현주 역할을 맡은 뒤 감독과 함께 세운 첫 번째 원칙은 “절대 희화화하지 말 것”이었다. “대학로에서 연극하던 시절에 게이 역할을 여러 번 하면서 성소수자에 관해 비교적 인식”하고 있었으나 그것으론 부족했다. “실제 트랜스젠더 분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특히 전형적인 과도한 제스처를 삼가”면서 인물과 조금씩 가까워졌다. 대부분의 게임 참가자들과 달리 주변인을 앞장서서 챙기는 현주는 “이타적이고 강인한” 역할로 간단히 정의되곤 하지만 박성훈은 그 너머를 봤다. “특히 후반 반란 때 현주가 총을 거침없이 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굉장한 두
[인터뷰] 감개무량의 순간,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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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속이 시원하다”라며 <오징어 게임> 시즌2의 공개 소감을 말하는 박규영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꽁꽁 숨겨왔던 그의 역할은 게임 참가자가 아닌 진행 요원. 북한에 두고 온 어린 딸을 찾는 게 삶의 목적인 명사수 강노을 역이다. 누굴 맡을지 모르는 상태로 오디션에 참가, 합격 뒤 주어진 예상 밖의 인물은 박규영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핑크가드가 시즌1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만큼 매력적이었다. 또 다른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컸다.” 평소 밝은 성격인 박규영은 “기본적으로 마음 상태가 최저까지 가라앉은” 역할을 헤아리기 위해 촬영하는 동안만큼은 차분히 일상을 꾸려나갔다. “단순한 무표정과 낮은 목소리로는 황동혁 감독님이 생각하는 노을이의 감정적 깊이를 표현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는 건조하고 푸석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체중을 감량하고 액션스쿨에서 자세를 익히”면서 냉철하고 정확한 스나이퍼가 되는 과정을 거쳤
[인터뷰] 고요한 열정,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박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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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완은 처음 대본을 읽고 몰락한 코인 유튜버 이명기를 악인으로 규정하려 했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으로부터 들은 의외의 코멘트는 그 생각을 바꿔놓았다. “임시완이라면 이 캐릭터가 착해 보일 수도 있겠다고 하시더라. 시청자들에게 명기가 그저 사람으로 느껴지기를 바라셨다.” 선인도 악인도 아닌 이명기는 그에게 마지막까지 “거짓과 진심의 정도를 헤아려야 했던” 숙제를 남긴 인물이었다. 유튜브에서 스캠 코인을 추천했다가 모두를 빚더미에 앉힌 명기를 연기하기 위해 임시완은 “홀로 집에서 카메라를 켠 채 리딩방(주식/코인 등의 종목을 추천하는 커뮤니티.-편집자)을 하는 유튜버”가 되어보기로 했다. “가령 추천한 뒤 이미 80% 손실이 발생한 코인이 30% 정도 반등하자마자 ‘거봐, 내가 이 코인 오른다고 했잖아’ 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설정했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친 덕에 명기의 주된 말버릇인 “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 특유의 필요 이상으로 교양을 차린 말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호시탐탐 복수
[인터뷰] 어떤 악인의 입체성,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임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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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할리우드 작품 데려와 봐야 한 <오징어 게임>만 못하다. (웃음)” 이병헌은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 <지.아이.조2> <레드: 더 레전드> 등 할리우드영화들을 부지런히 찍었지만 해외에서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특별 출연한 전 시즌과 달리 <오징어 게임> 시즌2와 시즌3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 해외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건, 이병헌이 연기한 캐릭터야말로 시리즈의 메인 빌런을 넘어 시리즈를 관통하는 화두를 던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서 게임 관리자 프론트맨은 2015년 28회 우승자 132번 황인호였다는 설정이다. 시즌2는 프론트맨이 001번 참가자 오영일로 위장해 게임에 참가한다는 발상을 더해 시즌1이 던졌던 질문을 보다 날카롭게 확장시킨다.
- 시즌1에서 잠깐 등장한 황인호의 고시원 방에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책과 자
[인터뷰]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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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배우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오징어 게임> 시즌1)을 수상하고 <애콜라이트>로 할리우드 프로덕션을 경험한 뒤 돌아온 배우 이정재는, 콘텐츠 제작업까지 규모를 불린 아티스트유나이티드에서 앞으로 제작자로서의 입지도 세워나갈 것으로 보인다. 오승욱 감독의 <리볼버>에서 묻어난 중후함과 연출작인 <헌트>가 보여준 저력을 더하면 지금 배우 이정재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독보적인 올라운더다. <오징어 게임> 시즌2로 들어가자면, 그가 맡은 성기훈의 처지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시즌1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소시민의 절박함이 주인공을 게임으로 이끌었던 데 반해, 시즌2에선 지난 게임이 남긴 트라우마 속에서 더이상의 살육을 중단하고 배후 세력을 응징하겠다는 확고부동한 목표가 중요해졌다.
- 시즌2에서 성기훈이 게임에 재진입한 심리에 대해 관객들의 해석이 분분했다. 그 선택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봤나.
나라면 겁이 많은 성격
[인터뷰] 성기훈의 리더십을 고민하다,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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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까이 있을 땐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오징어 게임> 시즌2처럼 거대한 축제 같은 속편은 더욱 그렇다. OTT 시장의 판도를 바꾼 공전의 히트작 <오징어 게임>의 후속작에 대한 평가는 어쩌면 진즉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신선한 신드롬을 불러왔던 속편을 넘어서기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몇배는 어렵다. 게다가 시즌2와 시즌3로 나뉘어 공개하기로 결정된 순간 <오징어 게임> 시즌2는 필연적으로 미완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수많은 질문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아쉬운 건 수많은 평가의 말로 둘러싸인 화제성에 비해 정작 작품 자체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다음으로 이어질 준수한 징검다리이자 흥미로운 놀이터다. 게임 속 숨겨진 의미들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며 시즌3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황동혁 감독에게
[인터뷰]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힘이 있는가, <오징어 게임> 시즌2 황동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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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리가 익히 아는 게임들이지만, <오징어 게임> 시즌2는 게임의 규칙을 또 한번 낯설게 정의한다. 다가올 시즌3의 피날레를 기다리며 지난해 12월26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2를 총정리하는 커버 인터뷰를 마련했다. 욕망에 눈먼 자와 인간다우려는 자의 한층 더 치열해진 경합인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주역들에게 이들 각자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씨네21>과 일대일로 만난 황동혁 감독, 배우 이정재·이병헌과의 대화를 전한다. 시즌2에 새롭게 합류한 배우 임시완, 박규영, 박성훈, 조유리가 꼽은 각 캐릭터의 결정적인 한순간도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어지는 <씨네21> 1493호에서는 김지용 촬영감독, 채경선 미술감독, 정재일 음악감독, 남나영 편집감독의 제작 비하인드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오징어게임 감독, 배우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게임의 심화, 반전의 시작 <오징어 게임> 시즌2의 모든 것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