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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츠*> 세트 방문을 위해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애틀랜타를 찾았다. 애틀랜타는 저렴한 물가, 풍부한 인력, 주정부의 세금 혜택을 바탕으로 미국 내 새로운 영화의 중심지로 떠오는 곳으로, 이곳에 마블 역사상 가장 큰 세트가 지어졌다. 신비주의로 이름난 마블이 프레스에게 촬영 현장을 공개한 것은 <블랙 위도우> 이후 처음이다. 남미, 유럽, 아시아 등 대륙별로 단 하나의 매체만이 초청받은 이 자리를 <씨네21>을 대표해 찾았다.
세트 방문이 있던 날 배우 데이비드 하버, 플로렌스 퓨가 촬영을 위해 현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의 감정선이 극대화되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어지는 글에서 영화 <썬더볼츠*> 세트 방문기와 제이크 슈레이어 감독, 배우 플로렌스 퓨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마블’의 공간적 역사의 한 장면, <썬더볼츠*> 애틀랜타 세트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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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은 핫한 신작보다 이미 검증된 구작을 보길 희망하는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다. 안방 극장에서 취향 따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HBO> 작품들을 소개한다.
대체역사물을 바란다면
연방정부 세력과 분리주의를 추구하는 자유주의 군대 FSA(Free State Armies)로 나뉘어 2차 내전이 벌어진 가상의 역사적 상황을 다루는 4부작 <DMZ>를 추천한다. 로사리오 도슨이 8년 동안 아들을 찾아 헤매는 의료진으로 등장한다. 동명의 인기 만화 시리즈가 원작이라 재미를 보장한다. 분쟁 발발 당시 뉴욕시 대피령으로 아들을 잃어버린 알마가 갱단의 두목이자 새로운 세계를 지배하려는 파르코에 맞서 희망의 아이콘이 되는 이야기다. 앨런 무어의 원작에서 이어지는 세계관 확장 스토리 <왓치맨>도 대체역사물로 분류 가능하다. 원작 만화에서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가상의 미국이 배경인데, 여전히 첨예한 인종차별 갈등을 겪고 있다. 오클라호마주 털사가 주요 배경
슈퍼히어로냐 고전이냐 - 당신을 위한 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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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이 벌이는 나쁜 짓을 구경하는 것만큼 우리에게 순수한 보는 재미를 제공하는 콘텐츠가 또 있을까? 그 주인공들이 돈은 많지만 평판은 좋지 않은 거대 미디어 그룹의 창업주 가족이라면, 게다가 지금 그들이 경영권 승계 과정 중에 있다면, 그리고 심지어 그 모습이 현실에서 벌어진 특정 재벌 기업의 수난사를 떠올리게 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드라마를 보기 좋게 진열해놓았다 하더라도 방금 설명한 이 작품에 먼저 손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왕좌의 게임> 이후 비어 있던 드라마 명가 <HBO>의 정당한 후계자 자리를 계승받았다고 평가받는 <석세션>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석세션>에 대한 세상의 찬사가 단순히 그 재미로부터만 비롯된 건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이 에미상과 골든글로브를 비롯한 여러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거의 독점했다시피 수집한 수많은 트로피들은 다른 작품들에 골고루 분배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지
다시 ‘그레이트’를 꿈꾸는 거대 그룹, 혹은 미국에 대하여, <석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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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2010년대를 통틀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의 프리퀄이자, 용과 기사가 등장하는 정통 하이 판타지다. 용을 조종하는 신성한 혈통 타르가르옌 가문의 인물들이 왕좌를 두고 각종 정치적 암투와 혈투를 펼치는 이야기가 골자다. <왕좌의 게임> IP의 창조주인 조지 R. R. 마틴의 원작 소설 <불과 피>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위의 줄거리 요약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1 역시 위 요약에 부합했다. 주인공인 라에니라 타르가르옌 공주(에마 다시)가 아버지에 이어 왕위 계승자에 오른다. 어릴 적 친구이자 새엄마가 된 알리센트 하이타워(올리비아 쿡)와 그 맏아들인 아에곤의 추종 세력은 호시탐탐 왕위를 노린다. 근친을 통해 가문을 유지할 정도로 혈통에 의존하는 군주 정권의 가치관이 가족 내외의 여러 갈등을 부르고, 죽음을 불사하는 인물들의 명예와
지루한 용의 시간, <하우스 오브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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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가 처음으로 10대 청소년을 다룬 드라마를 기획하면서 시리즈 제작 경험이 전무했던 A24에 손을 내밀었다.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방식으로 영어덜트 콘텐츠 타깃을 공략할 목적이었다. 밀레니엄 이후 태어난 이른바 젠지 세대(1997년부터 2012년 출생)의 혼란스러운 일상을 다룬 <유포리아>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폭력과 섹스, 마약 묘사에 거침이 없다. 가족, 친구,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내재된 트라우마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은 현실도피 수단으로 마약과 섹스에 탐닉한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탐닉이란 단어가 과연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옳은 건지 고민의 장을 열어젖히겠다는 듯이 시즌 첫화부터 시각적인 충격을 선사한다.
막장 범죄드라마처럼 소개했지만 최근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어떤 작품에서도 이렇게 진지하게 젠지 세대의 갈등과 고민을 다루지 못했다. 부모 집에 처박혀 사회로 나오지 못한다는 조롱을 듣고 있는 이 아이들은 별다른 안전망
트라우마와 첫경험 사이, <유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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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펭귄>의 시작은 <더 배트맨>(2022)의 결말 시점 일주일 후다. 고담시의 마피아 보스 르미네 팔코네(마크 스트롱)는 리들러(폴 다노)에게 살해되고, 팔코네 가문의 수하 ‘펭귄’ 오즈 코블팟(콜린 패럴)은 혼란을 틈타 고담시의 일인자가 되려 한다. 한편 팔코네 가문의 장녀 소피아(크리스틴 밀리오티) 또한 왕좌를 노린다. <더 펭귄>은 두 안티히어로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악에 악을 거듭하는 범죄 스릴러다. 오즈와 소피아의 입체성을 살리기 위해 <더 펭귄>은 한 에피소드에 플래시백을 통째로 할애해 두 캐릭터의 전사를 간곡히 풀어내는 결정도 불사한다. 화려한 음악과 촬영이 그 위에 얹히고, 배우들은 클로즈업의 독무대에서 보란 듯이 열연한다. 게다가 <대부> <스카페이스>가 보여준 마피아 조직간의 합종연횡이 오즈와 소피아를 통해 오마주에 가깝게 재현된다. 재미없기가 어려운 이 시리즈는 공개 나흘 만에 미국 내 530만
미화 없는 악, <더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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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위기로 인해 제작 현장이 폐쇄적으로 변하자, <HBO>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을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으로 제한된 촬영 환경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면 뭐든 만들어도 좋다는 제안을 받은 쇼러너 마이크 화이트는 특정 로케이션 촬영지 한 군데에서 찍을 수 있는 컨셉의 이야기를 고안, 5성급 리조트를 찾은 특권계층 사람들이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화이트 로투스란 이름의 글로벌 리조트 호텔 체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화이트 로투스>는 동시대 드라마 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세태 풍자 코미디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2021년 하와이 배경의 첫 시즌이 방영됐고, 곧장 시즌2 제작이 확정되어 이탈리아 휴양지에서 벌어진 두 번째 참극이 큰 사랑을 받았으며, 최근 종영한 시즌3는 태국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된다. 모두 동일한 럭셔리 리조트 체인에서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휴양지를 찾는 부자 관광객들과 이들을 케어
배우의 (재)발견, <화이트 로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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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데드>를 떠올리고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즌1을 감상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아니, 얘가 이렇게 죽는다고?”라는 충격적 단말마를 연신 자아내며 좀비 디스토피아의 끝없는 절망과 자극적 충격을 선사한 <워킹 데드>류의 작품과 달리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그 속의 한 줄기 희망에 유장하게 집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의 설정과 배경은 꽤 잔혹하다. 곰팡이인 동충하초가 인간을 숙주 삼아 퍼지고, 숙주가 된 인간은 좀비처럼 변해 인간을 공격한다. 감염자에게 물린 인간은 곰팡이에 전염돼 인격을 잃고 감염자가 된다. 이에 세상은 순식간에 초토화됐으며 주인공 조엘(페드로 파스칼)은 가족을 잃고 피폐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조엘의 앞에 나타난 이는 소녀 엘리(벨라 램지)다. 으레 좀비 디스토피아 장르의 전통적 ‘희망’의 역할을 지닌 엘리는 감염자에게 물려도 곰팡이에 전염되지 않는 항체의 보유자다. 이런저런 사건으로 인해 조엘
그대들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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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HBO>는 어떻게 아성을 쌓았나.
응접실을 영화관으로 만들기. 홈 박스 오피스를 표방한 1972년 신생 케이블 네트워크 <HBO>는 영화 방영 중 중간광고를 없애는 신의 한수를 택했다. 일리가 있다. 영화관엔 상영 전 광고만 있을 뿐 중간광고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약간의 구독료만 더하면 극장에서 금방 막을 내린 영화를 집에서 광고 없이 바로 볼 수 있는 <HBO>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기엔 운도 따랐다. 마침 1970년대는 미국 내 케이블TV 수요의 폭발적 증대가 이루어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1974년 5만명에 불과하던 케이블TV 이용자는 1978년 150만명으로 급증했고, <HBO>는 1977년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HBO>의 광고 배제 전략은 영화의 2차 배급을 넘어 ‘영화 같은 시리즈’를 만들어낼 때에도 변동 없이 적용됐다. 그래서 <HBO>는 광고주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고, 광고의 외압을
스타일의 핵심 - ‘영화 같은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전략들, 에 대한 4가지 F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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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박스 오피스(Home Box Office). 유료 케이블 네트워크 <HBO>는 집에서도 영화관과 같은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1972년 출발했다. 1975년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경기 등 생생한 복싱 중계로 명성을 얻은 <HBO>는 이후 케이블TV가 미국 전역에 확산되자 콘텐츠 제작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시사코미디쇼의 시조 격인 <뉴스는 아닐지도>(Not Necessarily the News), 시트콤 <래리 샌더스 쇼>와 <드림 온>이 수익을 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모두가 아는 <HBO>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TV가 아니라 <HBO>입니다”라는 슬로건을 유행시키며 <섹스 앤 더 시티> <소프라노스> <왕좌의 게임> <석세션> 등 ‘영화 같은 시리즈’라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이 등장했던
[특집] HBO 해부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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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에 따르면, 챗GPT 이미지 생성 기능이 업데이트된 후 1억3천만명이 7억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특히 지브리풍 이미지를 생성하는 게 유행처럼 번져갔다. 자신의 얼굴을 지브리 그림체로 바꾸거나, 유명 장면을 애니메이션처럼 재현해 SNS에 공유하는 식이다. 그러자 비슷한 질문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거 법적으로 문제없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법으로는 문제 삼기 어렵다. 지브리 스타일은 법이 보호하는 대상이 아니다. 저작권법은 구체적인 ‘표현’을 보호하지만, 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스타일’은 보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울’이나 ‘토토로’ 캐릭터를 그대로 베끼면 불법이지만, 지브리 느낌만 담긴 새로운 이미지는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 스타일은 보호받지 못할까? 창작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법은 창작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작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스타일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열어뒀다. 특정 스타일을 법으로 독점하는 순간 그 스타일
지브리 그림체로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도 문제없나요? - 저작권법은 화풍을 보호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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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니까 올려봅니다.” AI에 비판적인 초로의 인문학자의 프사(이하 프로필 사진)까지 지브리풍으로 바뀐 것을 보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지브리풍이 함의하는 평화와 선함, 자연과의 공존, 공동체 연대가 정말 갈급했나보다. 그러나 지브리풍으로 도배된 프사는 더이상 한 개인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챗GPT가 만든 ‘지브리 스타일’(이하 지브리풍)의 ‘가상’(시뮬라크르)일 뿐이다.
오픈AI가 지난 3월25일 공개한 GTP-4o 이미지 생성 서비스 열풍은 2주가 넘어가는 지금도 여전하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출시 직후부터 거의 매일 SNS 서비스 X(옛 트위터)를 통해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녹고 있다”라거나 “제발 이미지 생성 서비스 이용을 조금만 쉬어달라. 1시간에 100만명이 가입했다”라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올트먼은 지난 4월4일, 원래 계획보다 수개월 앞당겨 GPT-5 출시를 예고했다. 브래드 라이트캡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같은 날 X에 “
우리 시대의 무의식 - 지브리풍 챗GPT이미지 생성 열풍과 생각의 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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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기술은 우리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어,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로 데려간다. 오픈AI가 GPT-4o를 업데이트하면서 세상이 온통 지브리 스타일로 도배 중이다. 원하는 이미지를 맞춤형으로 그려주는 기술 자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중립적인 결과물이다. 예측할 수 없었던 건 왜 많고 많은 화풍 중 유독 ‘지브리’ 화풍이 (특히 한국에서) 대유행일까 하는, 사용 방식이다. (<데스노트>의 사신 류크의 대사를 빌린다면) “역시 인간은 재미있다”. 이 카오틱한 존재의 행보를 AI 따위가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
몇 가지 짐작 가능한 이유는 있다. 우선 ‘지브리’ 스타일은 아날로그의 끝자락에 있다. <바람이 분다>의 4초짜리 군중 장면을 만들기 위해 1년 3개월을 투자하는 비효율의 극치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도구를 활용하여 그것으로부터 제일 먼 결과물에 당도했다. 그 거리가 멀수록 신기하고 매력적이므로. 여기엔 아날로그적인 수작업의 결과물 중
[기획] “챗GPT야, 이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꿔줘” 놀이는 왜 논쟁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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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틱>은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감독이 10여년간 머릿속에서 굴리며 애정을 키워온 영화라고 들었다. 작품과 연을 맺은 계기는.
기존 촬영감독을 대신해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감독의 전작 <65>의 재촬영을 도운 적이 있다. 그때 두 감독을 알게 됐는데, 어느 날 <헤레틱> 시나리오를 전해주더라. 그 후 제작이 진전되지 않는 것 같더니 2023년 미국작가조합, 영화배우조합의 파업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A24는 독립영화 제작·배급사라서 파업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아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 종교와 믿음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집 한채 안에서 다루는 실내극이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었나.
너무 대사밖에 없더라! 지문도 거의 없어 도대체 어떻게 찍으라는 건지 의문이었다. 두 감독에게 “그냥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지 그래? 팟캐스트에서 2시간 동안 읽고 끝내는 건 어때?”라고 농담도 했다. (웃음) 하지만 그런 텍스트도 다르게
[인터뷰] 영화적 어둠을 구현하는 정교한 과정에 대하여 - <헤레틱> 정정훈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