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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리고 둘>에드워드 양, 2000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늘 타이베이라는 도시와 그 안에서 길을 잃는 개인들을 다뤘다. 대만 중산층 가족의 일상을 세 시간에 걸쳐 응시한 <하나 그리고 둘>역시 1980년대부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대만 사회의 피로와 공허함, 2000년대 초 경제성장의 둔화와 함께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한 혼란을 관류한다.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나는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영원히 각인될 한 존재는 8살 소년 양양이다. 그는 카메라로 가족의 뒷모습만 부단히 찍는데, 영화가 우리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삶의 이면을 섬광처럼 비추는 매체라는 감독의 믿음이 천진하게 반영돼 있다.
정제된 영화언어는 때로 삶의 교차와 순환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대만 뉴웨이브 영화들의 한 종착지로서 <하나 그리고 둘>이 이를 방증한다. 30년 만에 타국에서 첫사랑을 만난 아버지 NJ와 기다리던 첫 데이트에 나선 딸 팅팅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명하
[특집] 베스트영화10 해외영화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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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9위에 올랐다. 한국영화 최고의 황금기로 평가받는 2003년,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를 제치고 ‘<씨네21> 올해의 한국영화’ 1위에 당당히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지구를 지켜라!>의 상상력은 개봉 이후 20여한국영화 베스트9위부터의 영화들C1531 특집-씨네21 30년, 베스트리스트.indd 58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2025년 11월 현재 아리 애스터와 CJ ENM 공동제작, 요르고스 란티모스 연출의 <부고니아>가 전 세계의 관객들과 만나며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10위는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이다. 이 영화는 <옥희의 영화>가 이룩한 반복의 미학이나 <북촌방향>이 발명한 시간축의 교차에 ‘반응’(Reaction)의 층위를 더하며 2010~20년대 홍상수 세계를 해석하는 규준으로 자리한다.
[특집] 마스터피스! 한국영화 베스트 9위부터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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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창동, 2010
예술과 윤리의 상관성을 논하는 현대사회의 공론장은 종종 예술의 주체인 예술가를 조명한다.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가는 도덕적인가? 예술가의 미적 가치관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얼마만큼 윤리적 책임을 지는가? ‘1995-2024 한국영화 전체 베스트10’ 1위에 오른 이창동 감독의 <시>또한 예술과 윤리가 어떻게 서로를 물고 삼키며 예술가의 ‘감수성’을 잉태하는지를 응시한다. 그 감수성은 시를 한번도 써본 적 없는 60대 여성 양미자(윤정희) 개인이 예술가의 지위를 획득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양미자가 수행하는 미적 탐구는 곧 한국 사회 전체의 부채의식으로도 환원된다. 양미자의 시 쓰기는 집단 성폭행 사건의 주범인 손자 종욱(이다윗)의 범죄에 대해 속죄하는 과정과 교차하고, 이는 동시대 관객으로 하여금 현대사의 여러 참사 앞에 직접적으로 가해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공유하는 최후의 죄책감을 일깨운다. 돌아보면 이창동의
[특집] 베스트영화10 한국영화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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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한국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시>다. 2위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박빙의 승부 끝에 나온 결과다. <시>는 ‘2010년 <씨네21>올해의 영화’에서도, 2020년 시행한 ‘2010년대 최고의 한국영화’와 2021년 시행한 ‘201020년 베스트영화’에도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라며 순위에 오른 바 있다. <초록물고기>부터 <버닝>까지 이창동 감독의 모든 장편영화가 리스트에서 두루 거론됐지만, <시>는 그의 또 다른 최고작으로 꼽히는 <밀양>의 2배가 넘는 지지를 얻으며 1위를 수성했다. 2, 3위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마더>가, 4위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자리했다. 이외에도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6위에,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7위에 안착시키며 전체 순위에 여러 작품을 올리는
[특집] 다른 듯 비슷한, 1995-2024 영화 베스트 1위에 오른 <시><하나 그리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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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를 선정하는 일은 언제나 탐탁지 않지만 그럼에도 비평가와 예술가, 관객과 창작자, 독자와 필자 모두에게 효용을 지닌다. 현재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를 겸하는 직군 종사자들이 업계의 조류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다수결 합의를 통해 해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네21>은 창간 이래 기념일마다 꾸준히 영화의 리스트를 만들어왔다. 올해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지난 30년의 영화를 결산하는 시간을 갖는다. 53명의 기자, 평론가, 영화인에게 ‘1995~2024년에 나온 한국, 해외 영화 중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영화는 무엇입니까?’를 물었다. 신선하면서도 예측 가능한, 동시에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나눌 수 있는 이 통계가 어떤 이에겐 놓친 영화의 보고이길, 다른 이에겐 연구의 제재이길 바란다.
한편 <씨네21>이 선정한 20편의 영화 중 일부는 올해 개관 25주년을 맞는 한국의 대표 예술영화관 ‘씨네큐브’에서 상영된다. 21세기가 도래한 이후 사반세기 동안 씨네큐브는
[특집] BEST OF BEST, <씨네21> 30주년 특집 – 영화인, 평론가 <씨네21>기자가 꼽은 영화베스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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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비롯한 모든 표현예술은 자유로움을 기초로 한다. 그렇다면 현대 미국은 자유로운 국가일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영화의 생산지이자 여러 표현예술을 주도하는 인물과 사조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니 대충 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트럼프와 마가 세력이 융성하고 있는 지금의 미국을 두고, 감히 자유의 기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며, 미국의 리버럴(liberal)들이 자신들의 자유, 즉 불법 이민자를 욕하고 내쫓을 자유, 동성애자를 혐오할 자유, 여성이나 기타의 약자를 조롱할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에 따르면 자신의 이름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리버럴들은 위선자들이며 미국의 적이다. 또 이들은 모든 약자와 소수자뿐 아니라 리버럴까지 제거해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작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200년 전의 남북전쟁은 사실 내전(Civil War)
[특집]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다툼과 경쟁이 향할 곳, 마가(MAGA)가 구가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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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가 지금의 A24처럼 자기만의 고유한 특색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다. MGM은 뮤지컬을, 유니버설은 호러를 잘 만들었다는 식이다. 클래식 할리우드 시절 워너브러더스를 특징지었던 것은 사회비판적인 사실주의 영화들이었다. 이 하나만으로 워너브러더스에서 나온 모든 영화들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불멸의 <루니 툰>애니메이션 단편들이나 베티 데이비스 주연의 멜로드라마 같은 것들은 어디에 놓을 것인가) 그래도 이를 따라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나는 탈옥수>(I Am a Fugitive from a Chain Gang)에서부터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까지 이어지는 나름 일관된 흐름이 읽힌다. 그것은 MGM이나 파라마운트가 내놓은 화려한 영화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사실적인 미국의 역사다.
물론 여기엔 언제나 한계가 있다. 시대의 한계, 미국의 한계, 대중영화의 한계, 대형 제작사의 한계. 많은 영화사가들은 스튜디오 시스템 시절의 워
[특집] 보편적인 선이 비정치적일 수 있는가, 제임스 건의 <슈퍼맨>이 품은 근본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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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서운 이야기는 극장 밖에서 들려온다. 그러나 스크린만큼 흉흉한 소문을 먹음직스럽게 차려놓는 장소도 드물다. 정치적 이슈는 그만큼 호러의 신선한 재료가 될 자질을 가졌다. 현실에서 공포를 조장해 세력을 모으려는 수사가 남발될 때, 영화는 그 전략을 차용해 관객을 끌어들인다. 어쩌면 정치인과 영화인은 모두 얼마나 미더운 거짓말을 꾸며낼 수 있을지 궁리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자회사 뉴라인시네마와 더불어 워너브러더스가 구사해온 호러 필모그래피도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한 이래 한결 흥미로워졌다. 1기에 해당하는 2017년 이후 4년간은 <애나벨: 인형의 주인><더 넌><요로나의 저주>등 <컨저링>유니버스 스핀오프들이 차례로 개봉했고, 스티븐 킹 소설 원작 <그것>과 그 속편이 장르 팬을 넘어 대중의 지지를 받아 크게 흥행했다. 반면 당시 풍자적 호러의 선두 주자는 블룸하우스였다. 조던 필의 이름도 하
[특집] 타자화의 핏빛 공포, <컴패니언><씨너스: 죄인들><웨폰>⋯ 2025년 워너브러더스의 호러 필모그래피를 다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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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무비>부터 <컨저링: 마지막 의식>까지. 워너브러더스는 올해 ‘7편 연속 북미 오프닝 4천만달러 흥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2025년 9월 이미 전세계 박스오피스에서 4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창출했다. 하나의 스튜디오가 이만큼의 기록을 창출한 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영화의 면면이 워너브러더스의 오래된 IP, 오리지널 시나리오, 호러 컬렉션 등으로 저마다 다양한 데다 이들의 총람은 동시대 미국 사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자리하며 비평적으로도 유효한 시료를 제공했다. 지금 워너브러더스를 움직이는 이들은 누구일까. 워너브러더스의 두 핵심 콤비를 소개한다.
워너브러더스모션픽처그룹(WBMPG)의 공동 의장 겸 CEO - 직관파: 패멀라 앱디 & 마이클 드 루카
경질 위기에서 벗어나다
올해 초만 해도 <버라이어티>등 할리우드 산업지는 물론 <블룸버그><퍽>등 금융지는 일제히 워너브러더스의
[특집] 누가 워너브러더스를 먹여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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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미국 내 최고 흥행작 15위 중 7편이 워너 영화로 채워졌다. 이중 <씨너스: 죄인들>이 일으킨 이변, 예상보다 더 강세를 보인 <웨폰>에 주목해볼 만하다.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압도적 흥행. 자국보다 해외 흥행이 더 강세였던 <F1 더 무비>가 올해 워너브러더스의 황금 거위로 자리매김해 스튜디오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손실 앞에 ‘영화적 성취’라는 훈장을 달 수 있게 해줬다.
[특집] 마가에 반응하는 워너 영화, 성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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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워너브러더스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대담한 스튜디오가 되었다. 창립 100주년을 넘긴 이 거대 스튜디오는 트럼프 재집권이라는 격동의 시대에 놀라운 선택을 했다. 다른 스튜디오들이 DEI(다양성·평등·포용성) 정책을 후퇴시키고 ‘모든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안전한 콘텐츠에 집중하는 동안, 워너브러더스는 정치적 메시지가 직간접적으로 빛나는 영화들을 연이어 개봉했다. <미키 17><씨너스: 죄인들><슈퍼맨><웨폰><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이 5편의 영화는 저마다 다른 장르와 톤을 가졌지만, 모두 지금 미국이라는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100주년 이후, 새로운 전략의 시작
2023년 칸영화제에서 열린 워너브러더스 100주년 기념 파티는 할리우드 권력의 재각인을 위한 자리였다. 세계적 스타들과 영화산업 최고경영자들이 모인 화려한 행사 뒤에는 CEO 데이비드 재슬러브의 새로운 비전이 있었다. 클래식 할리우드 시
[특집] 마가 시대, 워너브러더스 영화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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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와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시대. 미국영화는 좌우로 요동친다. 일각에서는 보수 이데올로기의 주류화 현상을 분석하는 가운데, 시대의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는 영화들의 무의식 또한 들끓는 중이다. 그중 2025년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낸 워너브러더스의 영화를 중심으로 할리우드가 동시대 미국을 재현하는 방식을 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미키 17>을 시작으로 <씨너스: 죄인들><슈퍼맨><웨폰><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까지, 워너브러더스가 창립 100주년을 넘어 새로운 국면에 선보인 작품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시대를 감지하고 반응한다. 봉준호, 라이언 쿠글러, 제임스 건, 폴 토머스 앤더슨 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작품들이 차지하는 위상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지금 미국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혼란과 분열,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성을 응시한다.
[특집] 정치, 자유 그리고 블록버스터 - 트럼프 행정부와 마가 시대, <미키 17>을 시작으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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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꾼다. <후광>은 문 앞의 택배를 이전처럼 상자 하나로 여길 수 없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택배 기사 민준(최강현)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지만 경찰서로 달려가게끔 만드는 가족이 간신히 붙여놓은 일상을 찢어버린다. 점성학자(이재용)가 그에게 영국으로 가면 인생이 필 것이라 조언하고 민준은 그 말에 기대를 품는다. <후광>이 ‘아시아의 미래’ 섹션에 초청돼 도쿄에 일찍이 도착한 노영완 감독과 최강현 배우는 생애 첫 영화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후광>으로 맞는 첫 공식 자리라 더욱 떨린다는 둘은, 간절히 찍은 영화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희망을 떠올리던 민준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 현실의 택배 기사와 영화감독인 자신을 반영해 탄생한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다.
노영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모두가 힘들던 때였다. 많은 이들이 사주나 별자리, 타로 같은 것에 기대곤 했는데, 처음엔 왜 저런 걸 믿
[인터뷰] 보이지 않던 이들의 삶에 촛불 하나를, <후광> 노영완 감독, 최강현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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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보다는 품위를
올해 도쿄국제영화제(이하 도쿄영화제)는 선배 세대에 대한 경의로 막을 올렸다. 개막식 후반, 기모노 차림의 배우 요시나가 사유리가 개막작 <삶을 위한 등반>의 주연배우로 무대에 올라 인사를 전한 뒤 돌연 암전이 찾아왔다. 곧 안도 히로야스 도쿄영화제 위원장이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등장했다. 특별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에게 축하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1957년 데뷔해 <삶을 위한 등반>이 124번째 출연작인 요시나가 사유리는 쇼와·헤이세이·레이와 시대를 잇는 국민 배우로, 여든살이 된 지금까지 주연 자리를 지켜왔다. “앞으로도 계속 영화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는 포부 섞인 그의 소감에 객석에서는 지지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방책을 영화적 유산에서 찾겠다는 영화제의 기조는 개막작 선택에서도 엿보였다. 중견감독 사카모토 준지의 연출작 <삶을 위한 등반>은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다베이 준
[기획] 교류하고 섞이고 풀어내다, 제38회 도쿄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