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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왜 농촌 스릴러인가?
김소희 | 이 영화 안에서 드라마적인 장치와 시대적인 코멘터리가 얼마나 잘 작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라설 수 있을 것 같다.
봉준호 | 그에 대해서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양분된다. “전경들 다 시위 진압하러 갔댄다!”라는 대사나 등화관제 훈련과 여학생 살해장면의 노골적인 교차편집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직설적이다.
남동철 | <플란다스의 개>는 인물과 사건을 떨어져서 보겠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살인의 추억>엔 감독이 느낀 울분이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전달돼서 좋았지만, 그걸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 <블랙 호크 다운>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벌어지는 상황은 전혀 다른 종류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시점으로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뭔가 느낌은 있지만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하기 어려운 그런 분위기가 이 영화에 있다고 느꼈다.
봉준호 |
<살인의 추억>의 감독 · 비판자 · 지지자가 가진 3角 대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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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 화성이라는 공간의 넘실거리는 보리바닷물결과 햇빛 그리고 여기에 쓰인 잔잔한 음악이 형성한 무드는 후반에도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엔딩신에서 굉장히 화려한 이미지로 사용된다.
봉준호 | 후반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등화관제 모티브다. 누가 나에게 “80년대를 어떻게 기억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등화관제의 시대요”라고 말할 거다. 그건 인위적인 어둠을 만드는 행위다. 그런 상황에서 살인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니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들더라. 아까 말했던 직설적 감정 표출이 우려되는 클라이맥스의 살인장면은 “거기 쌀집 불 꺼!”라는 방송과 함께 셔터가 내려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견 노스탤직한 장면으로 시작했고 관객을 그렇게 유도했지만, 내 진심을 폭발시키는 교차편집과정에서 그 노스탤지어와 완전히 분리됐다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인물과의 거리감도 허물어졌다.
김소희 | 한 시대를 추상적으로 컨셉화해서 필요할 때마다 인물이나 사건에 와서 붙는다면 인물이
<살인의 추억>의 감독 · 비판자 · 지지자가 가진 3角 대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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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웃음)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결국 어떤 기대치를 갖고 극장에 오느냐에 따라 다를 거다.
남동철 | 송강호의 코미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지 않을까. (웃음)
봉준호 | 그 사람 정말 괴물 배우지.
김소희 | 어떤 자료에서, 현실의 공포로부터 웃음이 비롯된다는 봉 감독의 멘트를 읽었다. 그런 측면도 있지만, 이 영화가 주는 웃음은 상당 부분 관객을 의식하면서 배우의 기량에 기댄 즉발적인 것들이라고 본다. 봉 감독이 그걸 노련하게 절충했던 거 아닐까.
봉준호 | 내가 원래 코미디를 좋아하는 것이지, 웃기자고 기를 쓴 건 아니었다.
김소희 | 박두만이 무모증 얘기를 꺼내는 장면을 보면, 바퀴 달린 회전의자를 타고 프레임 아웃 됐다가 다시 들어오는 모습이 웃음을 끌어내는데 그 톤은 영화의 내적 맥락과 무관한 것이고, 그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가 아니라 <넘버3>의 송강호다.
<살인의 추억>의 감독 · 비판자 · 지지자가 가진 3角 대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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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감독이 고전적인 드라마나 소설에 대한 애호가 있는가. 혹은 기독교적인 배경을 가졌는가.
봉준호 | 어렸을 때 성당에 열심히 다녔지만 지금은 아니다. 문학작품은 대학 때 많이 봤지만 심취하진 않았다. 대신 70년대 미국영화를 좋아한다. 고전적인 호흡과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드라마들. 존 프랑켄하이머, 윌리엄 프리드킨, <E.T.> 까지의 스티븐 스필버그, 그리고 코폴라의 영화들에 대한 애호가 있다. 이 영화도, 정공법이라고 하긴 거칠지만, 크게 봤을 때 강한 드라마와 캐릭터가 있고 하나의 감정을 향해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그 부류의 영화들과 비슷할 수 있다.
김소희 | 어떤 특별한 영화를 참조했거나 반대로 의식적으로 차별화하려고 했던 레퍼런스는 없었나.
봉준호 | 특별한 건 없다. 다만 <파고>와 비교할 수 있겠다. 그 영화는 미국 노스다코타주에 있는 파고라는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지만, <살인의 추억>은 화성이라
<살인의 추억>의 감독 · 비판자 · 지지자가 가진 3角 대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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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강우석 | 시네마서비스 회장
올해 또 1등이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건 곳은 지중해 연안의 작은 섬인 말타공화국이었다. <실미도>에 나오는 수중침투장면을 찍기 위한 특수효과 스튜디오가 있는 곳. 소감을 묻자 강우석 감독은 준비된 듯 차분히 말하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히 기분좋다. 지난 한해도 열심히 살았구나 싶고 이거 유지하려면 올해는 또 뭘 벌여야 되나, 걱정도 된다. 어쨌든 현재로선 <실미도>가 가장 중요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이고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다. 늦어도 내년 설엔 심판을 받을 텐데…. 한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수중침투장면 하나 찍으려고 말타공화국까지 왔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실미도> 연출에 집중할 한해지만 그는 시네마서비스가 펼칠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는다. “6월에 스튜디오가 완공되고 하반기에 극장체인도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올해는 투자한 영화 가운데 대작이 많다. <
2003 충무로 파워 50 - [1] 1위~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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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스케줄표는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자리를 잡은 부산영화제가 위상을 드높이면서 그의 발걸음도 분주해지는 것이다. 지난해 15개 영화제를 순회했고 올해도 1년 중 절반 가까이를 한반도 밖에서 지내야 할 형편이다. 특히 올해는 칸영화제 기간 중 미국 영화산업지 <버라이어티>가 주최하는 국제회의 ‘페스티벌 디렉터스’에 베를린, 선댄스영화제 집행위원장 등과 함께 참석하게 된다. 해마다 관심이 높아지는 부산영화제의 이모저모를 꾸리고 세계 곳곳의 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해외를 누비는 것만이 그의 일은 아니다. 김동호 위원장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칸영화제 등을 돌면서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등 ‘외교사절’ 역할까지 자임하고 있다.
★ 지나온 1년 |
7회 부산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특히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처음으로 모두 모였다는 점이 인상에 남는다.
★ 앞
2003 충무로 파워 50 - [2] 11위~2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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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박무승 | KM컬쳐 대표
<반칙왕> <달마야 놀자> 등에 투자, 매년 수익에서 ‘플러스’를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 기대를 모았던 <이중간첩>이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해 15억원을 잃고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까먹은 게’ 아니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여긴다. “관객이 덜 들어서라기보다 해외 로케이션 등을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말. 하지만 순위는 지난해 직접 제작에 나선 <품행제로> 외에도 <빙우> <오! 브라더스> 등 하반기 카드들이 대기하고 있어 9계단이나 뛰었다. 음반, 매니지먼트 등의 사업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리기 위해 애썼던 그는 올해도 “KM컬쳐를 명실상부한 토털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다지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각오다.
★ 지나온 1년 |
제작사를 겸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프리 프로덕션을 좀더 강화해야겠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 앞으로
2003 충무로 파워 50 - [3] 21위~3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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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김혜준 |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영진위의 안살림을 책임지게 되면서 순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박사 학위를 줘야 한다”는 한 추천인의 재미난 언급처럼, 그동안 한국영화 진흥책 마련에 있어 ‘싱크 탱크’ 역할을 담당했다. 2000년부터 영진위 정책연구실장으로 일하다 올해 초 사무국장에 임명된 그는 “영진위와 영화계의 거리감을 좁히겠다”는 목표 아래 “발로 뛰는 사무국을 만들겠다”며 체질개선 작업 중이다. “1기 때는 위원 구성 등의 내홍으로 사업 심의나 집행에 있어 디테일한 부분들을 놓치고 간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그는 “위원회가 어느 정도 안정성을 갖춘 만큼 여기에 위원들과 사무국이 보조를 맞춘다면 이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 지나온 1년 |
선택을 할 권한이 없어서 답답했는데, 이제는 현실적인 안을 도출하기 위해 때론 타협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스트레스가 쌓인다.
★ 앞으로 1년 |
영화 좀 극장에서 많이 봤으면 좋겠다.
32.
이은 |
2003 충무로 파워 50 - [4] 31위~4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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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봉준호 | 감독/NEW
“파워 500이 아닌가요? 아니면 집계 착오던가.” 파워 50에 들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봉준호 감독의 첫 반응은 의외란 것이었다. 이제 2번째 영화를 만들었고, 그나마 아직 흥행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시점인데도 그에게 표가 쏠린 것은 분명 <살인의 추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웰메이드 영화이면서도 흥행성을 갖춘 이 영화의 성공 여부가 향후 한국영화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기에, 그와 이해관계가 거의 없는 충무로 관계자들도 흔쾌히 그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 지나온 1년 |
2년8개월 동안 준비해서 두 번째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틈틈이 세 번째 영화 준비를 했다.
★ 앞으로 1년 |
세 번째 영화를 준비한다. 개봉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다. 밝고 통쾌한 영화를 찍고 싶다. 장르? ‘SF의 탈을 쓴 리얼리즘영화’라고 하겠다. 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42.
전지현 | 배우
지
2003 충무로 파워 50 - [5] 41위~5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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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원화평은 홍콩액션이 지금 같은 파워를 가지게 된 까닭을 묻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는 <매트릭스>를 향한 찬사와 함께 자신이 안무한 액션을 뿌듯해하는 장인의 자존심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오우삼과 서극, 임영동, 우인태가 할리우드에 나섰지만, 그중 어떤 감독도 카메라 뒤에 묻힌 한 무술감독이 했던 것처럼 동양의 정서와 영혼을 살려내진 못했다. 원화평은 세계 대부분 육지를 지배한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전제 자체를 뒤집었다. 사스(SARS)가 첫 번째 절정에 달한 홍콩, “괴질이 두렵긴 하지만, 예의를 차리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인터뷰 장소에 나온 원화평을 만나 <필름메이커>로부터 “영화적이고 초현실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꿈의 단계라고 말해야 할” 액션을 창조했다는 찬사를 받은 무술감독의 목소리를 들었다. 새로운 세기의 액션영화는 원화평과 그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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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영역엔 겸손하게, 자신의 영역엔 고집있게원화평은 1980년대에 무술감독보다 감독으로 더 많은 영화를 찍었다. 그런 그에게 “동작을 짜는 것 외에 촬영이나 편집을 연구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아니, 오직 동작만 생각한다”고 짧게 대답했다. 원화평이 서극과 함께 <황비홍>을 만들어 홍콩영화를 한 고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까닭은, 조화를 깨지 않는 창조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원화평이 액션안무만을 맡은 <황비홍>은 그와 인연이 깊은 영화였다. 청조말의 혼란기, 중국인들 마음의 영웅으로 남아 있는 황비홍은 수십년에 걸쳐 영화 속에 등장해왔다. 원소전은 1960년대 <황비홍> 시리즈의 무술감독이었고, 원화평 역시 <취권>과 <철마류>의 이야기 속으로 황비홍을 데려왔다. 서극이 감독한 1991년작 <황비홍>은 이연걸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만나 어느 때보다도 당당하고 기품있는 영웅으로 태어났지만, 원화평이 정교하게 짜맞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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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현지에서 만난 원화평 인터뷰 “<매트릭스>는 할리우드 액션의 새로운 고전이 되었다”<매트릭스> 모자를 쓰고 들어선 원화평은 자그마한 사람이었다. 몸집 작은 동양인들 사이에 있어도 쉽게 묻힐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매트릭스> <와호장룡>으로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태풍을 일으킨 무술감독이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접 선택했다는 원화평. 그는 영화사 스탭들과 에이전트가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사무실에서도 한여름 골목길에 바람이나 쐬러 나온 것처럼 편안하게 처신했다. 수십년을 쿵후와 영화로 살아온 그는 대인(大人)이라고 부를 만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매트릭스> 시리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가.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가 내 영화들을 보고 의견을 냈다. 그들은 다른 할리우드 감독들과 달리 액션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매트릭스>는 내가 할리우드에서 만든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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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무술영화는 어떻게 할리우드영화를 바꾸었나 ‘볼거리용’ 무술의 관행을 깨고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성공이 있기까지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모든 것은 <매트릭스>(1999)에서 시작되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사이버 펑크의 세계에 홍콩 무술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오버랩했을 때,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다른 세계로 도약했다. 그리고 <와호장룡>이 북미대륙에서 외국어영화로는 처음 흥행수익 1억달러를 넘었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홍콩과 아시아영화에 대한 장벽이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무술감독 원화평이 이끄는 홍콩 무술은 이후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풍경을 바꾸어놓고 있다.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가장 큰 공헌은, 주인공이 20m를 날아가 발차기하는 모습을 북미의 관객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매트릭스>에서 키아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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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성공 비결<미녀삼총사>그렇다면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은 홍콩 무술이 들어간 할리우드영화의 일반적인 오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단 하나다. 무술감독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랜드 마스터’를 신뢰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설마? 주윤발은 리안과 원화평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리안은 쿵후장면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이디어를 원화평에게 말했다. 계속해서 두 사람은 다퉜다. 원화평은 리안의 아이디어가 실현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원화평이 고안한 장면을 들은 리안은 마찬가지로 거부했다. 이건 자신의 영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될 수 없음을 알게 된 리안은 타협을 했다. 마침내 원화평에게 당신의 방식으로 가자고 말한 것이다.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어낸 것은 원화평의 몫이다. 즉 리안이 위대한 무술영화 감독이 된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