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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장면!
김기덕,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봉준호, 장준환, 임상수, 김지운 등 많은 젊은 작가들이 1990년대 말부터 한국영화의 지평을 비약적으로 확장했다는 데 동의하기는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작가와 함께한 김형구, 홍경표, 김우형 등 새로운 세대의 촬영감독이 화면의 때깔을 더 빛나게 했다는 데도 흔쾌히 동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기술적인 완성도와 더불어 촬영이 그저 폼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에도 성실하게 복무하면서 한국영화는 많은 질적인 성취를 거두었다.
도제수업을 거쳐서 입봉하는 전통적 수련을 거치기도 하지만, 김형구를 위시한 이들 새로운 세대들은 미국과 영국 등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바로 촬영감독이 되면서 충무로의 인력구조를 다변화했다. 전통적 수련과정을 거친 이들도 해외의 흐름을 호흡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웠다. 4월의 양대 기대작이었던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이 감독의 역량 못지않게 촬영감독
한국영화 명장면의 비밀 [1] - <올드보이>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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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는 총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감독 바흐만 고바디가 말하는 나의 영화, 나의 민족
-당신이 태어난 쿠르드 거주지역에는 영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당신은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었는가.
=나는 영화와 관련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다만 8mm 카메라로 30편 넘는 단편영화를 찍었을 뿐이다. 테헤란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배운 건 거의 없지만 단편을 만들면서 조금씩 영화 만드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돈이 많지 않았다. 내가 살던 집의 주인들은 언제나 집세를 내라고 독촉하곤 했는데, 그들을 막기 위해서, 내 영화에 캐스팅하곤 했다. 내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도 내 영화에 조수로 참여해왔다. 쿠르드족 거주지역은 전쟁과 쓰디쓴 생존이 만연한 곳이다. 그곳에서 목격한 모든 일들이 나를 감독으로 만들었다.
-당신은 언제나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왔다. 그들로부터 극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텐데.
=<취한 말
바흐만 고바디 [2]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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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카메라, 뜨거운 눈물을 흘리다
국경을 넘나들며 돈을 버는 어린 쿠르드 소년 둘이 트럭 짐칸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인생이란 놈은 나를 산과 계곡으로 떠돌게 하면서 나를 나이먹게 하고 저승으로 이끄네.” 목청껏 소리지르는 소년 중 한명은 그 장면을 찍기 2주 전에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한쪽 다리만 가진, 그런 몸으로도 살아남아야만 하는 아이의 노래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장편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바흐만 고바디는 그처럼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동족들의 사연을 눈물이 아닌 의지로 덮고선 이방인들에게 전해왔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고향의 노래> <거북이도 난다>. 바흐만 고바디가 만든 세편의 영화들 속에서, 쿠르드족은 <CNN> 카메라로 여과되지 않은, 무방비 상태의 삶을 드러낸다. 그들은 머지않아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하겠지만 그전까지
바흐만 고바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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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수효과 관련 장비
조물주처럼 바람과 비를 조절한다
액션영화가 많아진 충무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장비, 폭파용 컨트롤 박스①. 개별 단자에서 연결된 선이 촬영장소에 설치된 폭발물에 연결되는데, 최대 50, 60번의 폭발까지 한 박스에서 제어가 가능하다. 자동모드에 놓으면 일정한 속도로 연쇄폭파도 가능하다. 배우의 동선과 액션이 폭파의 템포와 세기와 정확하기 맞아야 하기에 철저한 리허설이 관건이다. 심지어 리허설도 노하우에 속한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 주인공이 멋있게 나와야 한다는 것은 상업영화의 불변의 속성인지라 되도록 배우가 폭발물에 근접하길 바라는 것이 감독들의 일관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폭파신에 한해서는 특수효과팀의 지시가 최우선이며, 컨트롤 박스를 쥔 사람이 NG를 부를 수도 있다. 각 특수효과팀들이 업그레이드를 거듭한 끝에 예전에 비해 크기도 많이 작아졌고, 무선 컨트롤 박스도 등장했다. 그러나 사람의 안전에 직결된 장비이니만큼 언제라도 제어
촬영장비 잡학백과 [3] - 특수효관 관련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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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명 관련 장비
조선시대의 달빛, 헬륨풍선으로 만들었다
a. HMI 렌즈: HMI 램프 중에는 다양한 렌즈를 교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각각의 렌즈는 모두 다른 문양을 가지고 있어서 광선의 성격을 조절한다. 어떤 렌즈를 끼우느냐에 따라, 일직선으로 집중되는 스폿에서 넓게 퍼져나가는 플러드까지 빛의 성격이 다양하게 변한다.
b. 밸러스트: HMI는 많은 전력을 일정하게 공급되도록 조정해주는 밸러스트를 통해 전원에 연결해야 한다. 과거에 비해 안정성이 많이 좋아졌다.
모든 조명기는 태양광과 비슷한 색깔의 빛을 낼 수 있는 HMI①와 백열등에 가까운 텅스텐② 계열로 나뉜다. 벌건 대낮에 조명기를 세운다는 것을 사치로 여겼던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낮에 로케이션 현장에서 HMI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HMI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85년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무거운 조명기였기에 고작 4명 정도인 조명부가 들고 다니느라 고
촬영장비 잡학백과 [2] - 조명 관련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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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총없이 전쟁에 나서는 군인없고, 필기도구 없이 취재에 나서는 기자는 본 적이 없다. 카메라 없이 촬영에 나서는 영화제작팀 역시 상상불가다. 아무리 유능한 감독이고 잘난 배우라도 카메라와 조명기 없이 영화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촬영장비들은 현장의 진정한 주인공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 영화의 탄생이나 새로운 영화미학의 발전 역시, 장비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기술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던가. 이는 90년대 후반 이루어진 한국영화의 눈부신 발전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지금은 예사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촬영장비들은 90년대에 걸쳐 일반화됐다. 웬만큼 새로운 장비들은 영화진흥위원회(당시 영화진흥공사)에서만 구경할 수 있던 10여년 전, 좀더 좋은 장비를 챙겨가기 위해 아침부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싸울 정도로 열을 올렸던 스탭들. 그들이 부족한 형편에도 필요한 장비를 하나씩 사모으고, 비싼 외국장비를 국내 상황에 맞게 재개발한 덕분이다. 이를 통해 우리
촬영장비 잡학백과 [1] - 카메라 관련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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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리스크를 스탭들에게 전가하는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건 제일 싫다”는 영화인 신문고(filmunion.ivyro.net) 고병철 팀장의 직설적인 화법은 2001년 9월, 비둘기둥지 2기 시절과 변함이 없다. 아픈 아버지를 모시던 조명부가 있었다. 그는 병원비를 조금이라도 자기 손으로 보태고 싶었다. 체불된 70만원을 받기 위해 그는 제작사에 통사정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알았다, 알았다” 손만 내젓는 임금 체불자. 빈손으로 돌아온 그는 병원 앞에서 도저히 식구들 볼 면목이 없어서 밤새 소주를 들이켜며 울분을 삼켰다. 비토리오 데 시카 영화의 소재가 될 만한 이 스토리는 고 팀장의 실제 경험담이다. 2002년부터 조감독협회에서 영화인 신문고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그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처음으로 단체사업을 지원하는 올해 4년간 애정을 쏟은 이곳을 떠나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지점에서 하는 이야기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영화계 노동문제 표면화 [2] - 고병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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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합니다! 우리도 노동자입니다
연봉 640만원, 평균 근로시간 13∼16시간, 4대 보험 절대 없음. 초과근무 수당 꿈도 꾸지 말 것.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 나오는 새우잡이배 선원 모집 광고나 불법외국인노동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2년부터 국정감사 때마다 꾸준히 발표되는 한국영화 스탭의 평균연봉과 작업환경이 바로 이러하다. 저 수치에 기사급 스탭이 포함된 것을 고려하면 하부 스탭들이 체감하는 삶의 온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4월1일 충무로역 오!재미동에서는 한국영화조수연대회의가 “영화인 신문고 사례고발! 및 영화노동자 생존권 쟁취!”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고생 시집가기> <남남북녀> <별>, 세편의 영화가 임금체불로 발표되었고, 제작자의 실명이 공개되었다. 그러나 2004년 국정감사에 유포된 영화인 신문고 사례 요약본에 의하면 총 21건의 체불사례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인 신문고 게시판에
영화계 노동문제 표면화 [1] - 부당한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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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제작? 스탭 인건비가 더 급선무다”
강우석/ 감독·시네마서비스
요즘 아주 화가 난다. 처음에는 배우 한둘 갖고 지분을 요구하다가 공동제작까지 요구하는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연기자도 겸손할 필요가 있다. 꼭 누구 누가 나와야 하고 그런 게 영화가 아니다. 그런 문제보다 영화계 전체가 모두 머리를 싸매고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스탭 인건비다. 몇몇만 배부르게 하는 현재의 구조는 비정상이다. 너무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한다. 상대적 박탈감도 만들어낸다. 제작자는 영화 한편 망하면 제작비가 다 날아가는 것을 보지 않냐. 무엇을 하더라도 시장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젊은 애들의 경우 매니지먼트사에서 부추기니까 개런티가 천정부지로 뛴다. 드라마 한편 하고 나서 3억원씩 달라는 게 말이 되냐. 난 공동제작이고 뭐고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 꼴을 보지 않고 살지만, 지금 현실이 150만∼200만 관객이 들어도 적자가 나는 구조
2005 매니지먼트 빅뱅 [5] - 우려의 목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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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더베터엔터테인먼트
유지태 차승원
김종학 프로덕션
연정훈 이다해
나무 액터스
김민정 김주혁 김지수 문근영 박건형
노비스엔터테인먼트
조재현
더맨 매니지먼트
강동원 이천희
두손엔터테인먼트
김희선
드림팩토리
김정화 채림
디렉스타
원빈
로고스필름
김태희 이완
마니 시네마
김석훈 조한선
먼데이엔터테인먼트
임창정
메이저엔터테인먼트
고수
바른손엔터테인먼트
배두나 송일국
별모아엔터테인먼트
문소리 송강호 이보영
보람매니지먼트
박중훈 현빈
브라보엔터테인먼트
오달수 임원희 최민식
블루드래곤엔터테인먼트
김래원 김명민 류진
스타아트엔터테인먼트
송윤아
스타제이엔터테인먼트
수애 양동근 이나영 이소연 이정진 조현제 최강희 한채영
스타파크
고소영
스타M엔터테인먼트
신애 장동건
심엔터테인먼트
강신일 설경구 엄정화 엄태웅
싸이더스HQ
공유 공효진 김선아 김성수 김수로 김혜수 박신양 손창민
2005 매니지먼트 빅뱅 [4] - 소속사별 주요 연기자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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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제작사의 불만 “도가 지나치다”
올해 들어 급격화되는 매니지먼트 업계의 발빠르고 적극적인 확장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충무로 제작자들에게서 터져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다. 공동제작과 직접 제작이 본격화되면서 제작사의 존립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제작자들은 “공헌도가 있는 쪽과 지분을 나눈다는 원칙은 맞다고 보지만 지금은 도가 지나치다”고 입을 모으며, 가뜩이나 배우의 개런티가 제작비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공동제작 지분까지 제공하게 되면 재투자는커녕 제작사의 생존조차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히 매니지먼트사가 직접 제작을 꾸리게 될 경우, 신생급 제작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배우를 확보한 제작사와 바로 이야기하길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비스 노종윤 대표는 “투자사는 배우의 지명도보다 시나리오와 감독과 제작사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스타가 거의 없는 <마파
2005 매니지먼트 빅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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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야 살고, 공동제작 해야 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매니지먼트 업체들 또한 다양한 결합을 꾀하고 있지만 맥락은 조금 다르다. 매니지먼트사 K업체의 대표는 “요즘 분위기는 한마디로 ‘뭉쳐야 산다’다. 뒤집어 말하면 ‘안 뭉치면 죽는다’다”라고 말한다. 한국 매니지먼트 사업의 구조는 지출이 많은 데 비해 수입이 적은 탓에 웬만한 규모를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견 매니지먼트 업체 T사의 대표는 “일류 배우의 경우 수입의 8은 연기자에게, 2는 회사로 돌아간다. 중급 연기자의 경우에도 회사의 몫은 3할 정도다. 초특급 배우의 경우 1 대 9 배분도 있다고 들었다. 게다가 자동차를 대주고 각종 경비까지 회사에서 대니 남는 게 거의 없는 장사”라고 말한다.
물론, 업체끼리 뭉친다고 해서 갑자기 수익구조가 좋아지고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이 생길 리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매니지먼트 업계의 또 하나의 화두가 등장한다.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 참여가 그것. 이 분
2005 매니지먼트 빅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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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해선 이들의 질주를 막을 수 없다
충무로가 술렁이고 있다. 제작, 투자, 배급의 지형 변화에 따라 꾸준히 출렁거렸던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그 진앙지는 매니지먼트다. 한때 배우 스케줄 조정 등 단순업무만을 했던 매니저들이 이제 영화산업, 나아가 전반적인 영상산업의 핵심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매니지먼트 산업은 한류 열풍, 대기업 등의 투자 등에 힘입어 대형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갈수록 높아만가는 스타 파워를 근간으로 영화제작 및 투자, 드라마 외주 제작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관련자들은 지금의 움직임이 좀더 거대한 변화의 전조에 불과하다고 분석한다. 현재 매니지먼트 업계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한국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일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지우 히메’ 최지우는 최근 예당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업계에 알려진 최지우의 계약조건은 계약기간 3년에 전속금만 무려 10억원. 여
2005 매니지먼트 빅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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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보고 가슴에 묻어뒀던 엄마이야기 제작 결심
태어나면서부터 세상과의 불화는 예정된 것임을 직감했다는 아웃사이더였지만, 언제까지 홀로 버틸 순 없었다. 무엇보다 카메라 뒤에 서고 싶었다. 지난해 3월, 신생제작사 필름뱅크를 만나 “그는 똑같은 상업영화의 꼴로 만들긴 싫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는 영화다”라고 설득하면서 캐릭터들에 대한 설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더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캐스팅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애초 그는 엄마 역에 비전문 배우를 쓰려고 했다. 전라남도 영광의 한 촌로를 염두에 두고 섭외를 위해 만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집으로…>의 성공을 적용할 순 없었다. 엄마 역에 할당된 대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두심 선생을 찾아뵈었고, 시나리오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 이 영화로 상을 하나 받고 싶습니다. 칸영화제도 아니고 대종상도 아닙니다. 노벨평화상입니다. 보고 나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소도둑 같은
구성주 감독의 먼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