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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12. 07<살인의 추억> 현장에 놀러갔다.송강호와 김상경이 취조실에 있는 한컷을 봤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앵글, 연출, 연기의 삼박자가 완벽한 호흡을 이루며 전율을 느끼게 했던 경험은 <복수는 나의 것> 현장 이후 처음이었다.봉준호의 눈빛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좋은 스탭과 훌륭한 연기자와 호흡을 맞춘 봉준호의 치밀함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이거 분명히 우리랑은 적어도 한달 정도 차이나게 개봉하는 거지?”촬영 전까지만 해도 한달 이상 사이를 두고 서로의 영화를 개봉하는 일정으로 촬영을 하자는 약속을 했던 봉준호.그런데 봉준호의 태도에 싸늘함이 느껴졌다.“글쎄 잘 모르겠네요. 좀더 늦춰질 것 같기도 하고…. 김무령 PD한테 물어보세요.”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이런… 배… 신… 자.”나는 김무령에게 뛰어가(물론 바로 앞에선 여유있는 폼으로 걸어갔다) 개봉일이 우리랑 부딪치는 거 아니겠지? 하고 물었다.“<장화, 홍련>이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장화,홍련> 제작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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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의 어처구니들 새로운 길을 걷다.확실히, 우린 수식어에 약하다. ‘영화’를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고 숭배해 마지않는 시네필조차도 그 앞에 ‘독립’이란 수사가 붙으면 표정이 일그러지곤 한다. 그런 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닌 것이, 그동안 독립영화는 뭔가 비어 있고, 어딘가 부실하고, 왠지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6월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인디포럼 2003은 그런 고정관념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더라도 저마다의 색깔을 다채롭게 입어가고 알맞게 숙성돼가는 독립영화의 싱싱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올해 <씨네21>이 발견한 인디포럼의 감독들은 오늘의 독립영화라는 지형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3명의 감독이 모두 인디포럼에 처음 얼굴을 선보이며, 그중 두명은 독립영화로서도 ‘데뷔작’을 내놓고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충무로의 비주류인 독립영화계에서도 비주류인 셈이다. 물론 그들의 ‘비주류
인디포럼 2003에서 발견한 감독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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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그의 것, 이야기는 나의 것___<미안합니다>의 박명랑 감독복수를 결심해본 적이 있는가. 잠깐, 너무 비장해질 필요는 없다. 주인공 K의 복수극은 지극히 사소한 데서 출발한다. 그는 버스에서 별 이유도 없이 한 고등학생으로부터 욕설을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때 꼬맹이에게 저항하지 못한 게 억울했는지 K는 복수를 결심한다. 이제부터 30대 남성의 철부지 10대를 향한 집요한 스토킹이 시작된다. 섬뜩하냐고? 이상하리만치 그의 복수극은 폭소를 자아낸다. “너의 잘못을 기억하는가?”하는 말투도 웃기고, 단지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생업까지 포기하는 그의 태도도 코믹하다. 하지만, 하지만, 그 누구도 마지막 장면에선 히히덕거릴 수 없을 거다. 편집증, 강박증, 결벽증을 가진 이들이라면 절대 놓쳐선 안되는 영화.명랑 청년의 ‘비디오를 둘러싼 모험’ 어린 시절부터 박명랑 감독에겐 이상한 증상이 있었다. 그는 소설책을 읽으면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 못했고, 대신 그
인디포럼 2003에서 발견한 감독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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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꾼___<제목없는 이야기>의 김진곤 감독쉿! 지금부터 김진곤 감독이 속사포처럼 늘어놓는 이야기에 주목하시길. “김구선생의안경은원래다른사람의것이었는데이토히로부미가쓰던것이었다안중근의사가하얼빈에서이토히로부미를암살할때김구선생이그자리에있었다는사실을알고있었나그때이토히로부미가떨어뜨린안경을김구선생이주웠다(…이하 생략).” 이후의 출연진도 빵빵하다. 이시영 선생, 이종찬, 헤겔, 후쿠자와 유키치, 구텐베르크, 정약용 등등등. 아차, 이 영화를 <역사스페셜>로 오해하면 안된다. <제목없는 이야기>는 역사를 빙자해 크게 ‘뻥’을 치는 영화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대반전은 가히 <유주얼 서스펙트>급이다. 믿거나 말거나….역사, 거짓말, 그리고 내러티브 역사 마니아이거나 능청맞은 이야기꾼, 분명히 둘 중 하나일 거라는 예상은 들어맞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실(史實)들의 진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김진곤 감독은 태연하게, 그리고 이상하다는 눈빛
인디포럼 2003에서 발견한 감독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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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카메라 진짜를 찍다___다큐 <나와 부엉이>의 박경태 감독자, 문제 나갑니다. 거기, 바쁜 걸음 하시는 분들도 잠깐이면 됩니다. 여기, 한번 봐 주세요. 맞추면 이 영화, 거들떠 안 보셔도 됩니다. 예를 들어, 기지촌 여성들이 미군들의 화대 떼먹기에 항의하며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칩시다. 당신은 이 경우, 이들 여성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뭐라구요? 매춘은 불법인데 무슨 소리하냐구요? 아, 그런가요. 예? 요즘은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로 바뀌었으니 별 신경쓸 것 없다구요? 역시 다들 법에 밝으시고, 시사에 밝으십니다. 하지만 삐∼. 다들 이 다큐멘터리를 보셔야 할 것 같네요. 입장은 이쪽으로. 특히, 금방 고함 지르신 분들! 벌칙으로 가족 동반 관람입니다.두 얼굴을 가진 여인을 보셨나요? 인순이 아줌마. 후덕한 인상의 50대 여인이다. <나와 부엉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첫 장면. 상대를 쥐었다놓았다 하는 입심과 넉살은
인디포럼 2003에서 발견한 감독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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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쓰니가 좋아? 쯧쯧‥ 우리도 없으면서“아 정말 답답하네. 왜 그 사람 있잖아. <**>에서 !!로 나왔던 배우… 정말 생각 안 나?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 하면….” 이런 식으로 기억의 물꼬를 트게 되는 배우들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그런 배우들을 조연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말라버린 기억력을 다시 길어올려야 할 만큼 그들이 가치있다는 사실을 그 누가 모를까? 기억을 더듬으며 할리우드의 명조연들 12명을 여기 초대한다. - 편집자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그러니까 그는출렁거리는 두부살 속에 예민한 촉수를 숨긴 남자■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Philip Seymour Hoffman1967년 생주요작1992 <여인의 향기>1997 <부기 나이트>1998 <위대한 레보스키>1998 <해피니스>1999 <매그놀리아>2000 <올모스트 페이머스>2002 <펀치 드렁크 러브>멍하니 벌린
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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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녀는불안하게 반짝이는 불빛, 그러나 검은 재는 그녀 안으로만 떨어진다■토니 콜레트 Toni Collette3331972년생주요작1994 <뮤리엘의 웨딩>1996 <엠마>1998 <벨벳 골드마인>1999 <식스 센스> |2002 <어바웃 어 보이>2002 <디 아워스>토니 콜레트를 ‘조연’이라고 칭하는 건 사실 실례일 수 있다. 할리우드영화에서는 인상적인 조연으로 익숙하지만 그는 사실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쳇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적인 오스트레일리아산(産) 여배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8살에 앤서니 홉킨스와 찍은 데뷔작 <스팟츠우드>로 호주영화협회의 여주조연상 후보에 오를 만큼 큰 주목을 받았던 코니 콜레트가 진정한 ‘월드와이드’ 배우로 도약한 것은 P.J. 호건의 <뮤리엘의 웨딩>을 통해서였다. 7주 동안 40파운드를 불리면서 만들어낸 뚱뚱한 몸에 꿈꾸는 표정과 세상 끝에 떨
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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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는무섭게 생겼다. 하지만 하나도 안 무섭다■루이스 구즈만 Luis Guzman1957년생주요작1993 <칼리토>1997 <부기 나이트>1998 <스네이크 아이>1999 <매그놀리아>2000 <트래픽>2001 <몬테크리스토 백작>2002 <웰컴 투 콜린우드>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배우 루이스 구즈만이 갖고 있는 별명은 ‘늑대인간’이다. 사진을 보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알 것이다. 이런 생김새를 잊기란 쉽지 않다. 밤에 한적한 골목길에서 마주친다면 발이라도 얼어붙을 것이다. 감독들도 처음엔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인상을 갖다 쓰자. 그래서 루이스 구즈만은 1980년대 <마이애미 바이스> <헌터> <호미사이드> 등의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냉혹한 갱스터 또는 살인청부업자로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이 배우에게서 얼굴과는 딴판인 따뜻한 심성의 연기가 배어나왔다. 그 모습은
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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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는나치옷 입고 난초를 캐도 어색하지 않을 사람■크리스 쿠퍼 Chris Cooper1951년생주요작1987 <메이트 원>1991 <꿈꾸는 도시>1993 <이 소년의 삶>1995 <머니 트레인>1996 <론 스타>1999 <아메리칸 뷰티>2002 <어댑테이션>크리스 쿠퍼에 대해서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질문으로 끝나기 쉽다. 50살이 넘어 이제 막 노년의 길목에 접어들고 있는 이 배우에게 사람들은 아직도 존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묻는다. 어떤 영화에 출연했었냐고 묻는다. 사실상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에 존 라로쉬로 출연해 2003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기 전까지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출연작을 기억하는 사람도 적었다.12년 동안 연극무대 위에서 살아오던 그가 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할리우드의 양심 존 세일즈가 1987년에 만든 영화 <메이트 원>에서였
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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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그의 순풍을 똑바로 막을 수 없다씨네21, 시트콤 공장에서 `작가` 김병욱을 발견하고 `오바`하다1950년대까지 미국 평론가들이 스튜디오의 일관된 공정을 거쳐 나온 영화들을 2류로 여겼던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대형 영화사의 철저한 관리를 거쳐 오락물로, 흥행상품으로 만들어진 숱한 영화가 걸작으로 재평가된 것은 60년대 누벨바그의 주역이 된 프랑스 평론가들 덕이었다. 하워드 혹스, 앨프리드 히치콕, 니콜라스 레이 등이 그렇게 해서 뒤늦게 발견된 작가들이었다. 이처럼 창작자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지 않으면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오해는 뿌리 깊다.오늘날엔 비슷한 일을 방송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방송 비평의 주류는 지금도 선정성이나 도덕성을 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김병욱의 시트콤을 이야기하면서 욕이 많이 나온다고,화장실 장면이 많다고 트집 잡는 현실은 놀랍다기보다 서글프다.시청률에 좌우되는 방송의 한계 안에서 고유의 세계를 만들어낸 작가를 격려하는 일은 TV냐 영화냐는
<순풍‥>에서 <똑바로‥>까지,`작가` PD 김병욱 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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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김병욱은 집요하다“장인어른,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순풍 산부인과> 미달이 아빠) “아버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박정수) “아빠, 너무 해요.”(<똑바로 살아라> 형욱) 김병욱의 인물들은 “너무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들은 정말 너무들 한다. 노구와 노주현, 노주현과 형욱 같은 부자지간에 두드러지는 특징이지만 장인과 사위, 시아버지와 며느리처럼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입장이어도 별로 다르지 않다. <똑바로 살아라>의 이응경과 리나 자매를 보라. 억척스런 아줌마 이응경은 동생 리나에게 수시로 돈을 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쇼핑 가면 계산하는 쪽도 리나인데다 자기 화장품을 사면서 카드로 사면 5% 할인된다며 동생의 지갑을 열게 한다. 그런데 정작 기가 차는 일은 그 다음이다. 리나가 백화점 카드로 계산하면서 받은 사은품까지 자기 것이라 우기는 이응경. ‘동생은 영원한 내 밥’이라는
<순풍‥>에서 <똑바로‥>까지,`작가` PD 김병욱 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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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김병욱은 배우를 발견한다김병욱 시트콤은 하루 100신을 찍는 속도전이다. 주 5회분을 이틀에 나누어 찍는데 노주현 집을 배경으로 하루, 박영규 집을 배경으로 하루를 찍는 식이다. 이만하면 충무로의 전설인 빨리찍기 권위자 남기남 감독 못지않은 스피드다. 그러나 녹화 당일 자정에 대본을 받아든다는 배우들의 연기는 수준급이거나 적어도 편집이 구획 지은 리듬 안에서 자연스럽다. 실제로 김병욱 시트콤을 통해 오지명, 노주현, 신구, 박영규, 선우용녀를 비롯한 중견배우들은 대중에게 새로운 레퍼토리를 보여주고 안재환, 서민정, 노형욱 등 젊은 연기자들은 잠재력을 꽃피웠다. 가만히 앉아서 눈썹만 꿈틀해도 설득력을 발휘하는 베테랑 연기자들의 공력 덕택이기도 하지만 연출자의 밝은 눈과 용병술을 빼놓고는 성공의 비결을 이야기할 수 없다.연기를 끌어내는 김병욱 PD의 기본적 방법론은 ‘투사’(投射)다. 대본을 읽히는 대신 “무엇을 좋아하냐”, “비는 시간에는 뭘 하고 지내나” 같은 일상적인 인터뷰
<순풍‥>에서 <똑바로‥>까지,`작가` PD 김병욱 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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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형으로 보이니" 하고 놀다가 동생이 정서불안이 됐어요김병욱 PD와의 사소한 12문 12답월요일 오후 4시. 김병욱 PD는 언제나처럼 수줍은 자세로 등장했다. 하지만 주말 내내 <똑바로 살아라> 녹화테이프를 복습하며 감동과 폭소로 고양된 기자의 눈에는 그의 머리 뒤로 위인의 후광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신감 같은 것은 웬만해서 키우지 않는 김병욱 PD는 영화를 고급 요리에, 자기가 만드는 시트콤을 패스트푸드에 비유하는 버릇이 있다.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호텔 요리를 감식하던 미식가들이 우연히 길에서 떡볶이를 한번 먹어보고 맛있어서 진지하게 조리법을 캐묻는데 해줄 말이 없어서 더듬는 포장마차 할머니의 심정”이라고 난처해하는 김병욱 PD에게 우리는 한사코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답변 중 다수가 “그래서 이젠 정말 그만 만들려고요” 하는 한탄으로 끝나긴 했지만,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가족끼리 모여서 게임하면서 놀았어요. 그것도 1
<순풍‥>에서 <똑바로‥>까지,`작가` PD 김병욱 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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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똑바로 살아라> 모두 중심에 폭군 같은 가부장이 이끄는 가족이 있는데요. 일일 시트콤인 까닭이 커요. 회사는 일만 하고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만 있으니 이야기가 커지기 힘든데 가정이 들어오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소재가 다양해지죠. 조금 오래 쉬고 주간 프로그램을 하면 모를까, 이제 일일 시트콤을 더하면 양심불량이죠. 폭군적 가부장이라는 요소는 테크니컬한 건데, 난 갈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갈등 자체를 코미디로 보죠. 갈등은 성격에서 오는 것, 지위에서 오는 것이 있는데 폭군이 있어야 갈등이 증폭돼요. 송창의 선배 시트콤은 싸워도 즐거운데 우리 프로 경우는 아주 첨예하게 싸우거든요. <똑바로 살아라>가 <순풍 산부인과>보다 힘이 약한 이유 중에는 노주현씨가 오지명씨처럼 절대자로 보이질 않고 어쩔 수 없이 선해 보이는 탓도 있어요. 극중 역할도 원장이 아니라 한 단계 건너 돈을 투
<순풍‥>에서 <똑바로‥>까지,`작가` PD 김병욱 론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