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공포는 다시 시작된다이 처참한 살인극으로 얼룩진 영화는 아니다. 뜻밖에도 이수연 감독은 이 영화를 ‘한 남자의 실패한 성장담’이라고 불렀다. ‘안전한’ 식탁에서 정원의 아버지가 뜨거운 국을 놓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뜨거운 국물을 마실 때) 그 시원하다는 게, 뻐근한 거고 뻐근하다는 게 사실 아픈 거지.” 이 장면은, 가족의 형상이지만 가족이 될 수 없는 이들이 ‘4인용 식탁’을 채우는 마지막 이미지, 그리고 마지막 대사와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 어린아이들이 뜨거운 걸 잘 먹지 못한다는 통념을 빌려온 은유다.“뜨거운 걸 삼켜 시원함을 느낀다는 건 고통의 맛이 뭐라는 걸 안다는 비유다. 자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고통스런 상황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그걸 돌파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랄까. 진정한 어른의 의미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정원은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아 자는 듯 죽어버린 두 아이를 목격한 뒤 약혼자가 들여온 4인용 식탁에서 자꾸 그
<4인용 식탁>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2]
-
현실의 공포, 슬래셔의 테크닉을 봉인하다 <가위>에서 <장화, 홍련> 까지, 한국 공포영화의 진화론적 연구다시 공포영화의 계절이다. 지난 6월 <장화,홍련>으로 막을 연 이 시즌은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에 이어 과 <거울속으로>가 개봉하면서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9월에 개봉할 <아카시아>까지 포함하면 무려 5편의 공포영화가 1년에 60편 남짓 생산되는 한국영화의 한 부분을 선연한 핏빛으로 장식할 참이다. 여름하면 공포영화를 연상하는 버릇 때문에 그닥 새로운 일이 아닌 듯하지만 한국영화가 1년에 5편씩 공포영화를 쏟아낸 일이 빈번했던 건 아니다. <가위> <해변으로 가다> <하피> <찍히면 죽는다> <공포택시> 등이 개봉했던 2000년 이후 3년 만이며 1998년 <여고괴담>이 흥행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없었던 일이다. 가히 한국 공포
<4인용 식탁>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3]
-
1998년 이후 공포영화 흥행성적2000년가위 | 안병기 | 33만4364해변으로 가다 | 김인수 | 8만4227찍히면 죽는다 | 김기훈 | 3만130하피 | 라호범 | 2만6591공포택시 | 허승준 | 1만46512001년소름 | 윤종찬 | 8만700세이 예스 | 김성홍 | 5만5200대학로에…있다 | 남기웅 | 20432002년폰 | 안병기 | 76만5천쓰리 | 김지운 외 | 7만3750하얀방 | 임창재 | 7만2천2003년장화, 홍련 | 김지운 | 101만6983<여고괴담> - 현실을 끌어들이다공포영화를 테크닉의 산물로 이해하는 이런 경향은 할리우드의 예로 보면 당연해 보인다.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 아래 발전한 공포영화는 시점전환, 몽타주, 격렬한 사운드 등 다양한 영화적 트릭을 선보인 장르였고 이 장르의 대가들은 당대의 테크니션들이었다. <싸이코>와 <새>의 앨프리드 히치콕은 물론이거니와 스티븐 스필버그
<4인용 식탁>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4]
-
10편 이상 ‘롱런’하길!
7월29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극장에서 ‘여고괴담 동창회’가 열렸다. 200석이 넘는 좌석은 1∼3편의 배우, 감독, 스탭들로 가득 찼고, 이들은 이제 막 동창회 막내로 합류한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을 즐겁게 관람했다. 동창회가 열릴 만큼 <여고괴담> 시리즈는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괴담 시리즈가 아니었으면 혹시나 빛을 보지 못했을 숱한 인재들을 쏟아냈다. 박기형, 민규동, 김태용 감독뿐 아니라 1편에서 ‘소품’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던 류승완, 2편에서 스크립터로 연출을 도왔던 정재은 등이 성공한 감독 대열에 합류했고, 최강희 ·김규리·김민선·박예진·공효진 등의 새 얼굴이 스타로 발돋움했다. 1, 2편의 프로듀서로 시리즈 탄생에 결정적 공헌을 남긴 오기민 PD는 <장화, 홍련>이란 또 다른 괴담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동창회는 뚝심있게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그래서 10편까지는
여고괴담 동창회에서 생긴 일 [1]
-
-
민 | 둘이서 일주일 동안 설전을 벌였다. 결론은 우리가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고민도 없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찾아갔더니, 원하는 대로 만들어라, 제목만 가면 된다, 그러더라. “그럼 여고에서 만들어지는 괴담이면 되죠. 그럼 하죠” 하고 시작한 거다. 얼마나 힘든 건지도 모르고. 석달 동안 시나리오 쓰고 처음 들어간 거다. 어쨌든 <여고괴담>은 굉장히 예외적인 시리즈인 것 같다.
김 | 일단 그 테두리 안에 딱 들어오면 엄청난 자유를 주는 기획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 자율성이 있고, 공포라는 테두리 안에서 마음대로 해볼 수 있으니까.
민 | 지금은 3편이 만들어져서 시리즈가 됐지만, 우리한테의 제안은 속편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얘기로 가자고 합의를 봤다. 전편하고 달라져야 하는 게 너무 큰 사명이었다. 지금은 갈수록 훨씬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하려는 이야기에 뭔가 집중할 수 있다. 1편은 입시제도의 문제점, 억압적인 학교
여고괴담 동창회에서 생긴 일 [2]
-
2기생들의 대빵 두 머리 귀신은 당시 두 머리가 번갈아가며 정신을 잃곤 했다. 다섯명의 말만한 여고생들을 휘어잡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인지 과로로 쓰러져 다음날 눈도 못 뜨는 일을 사이좋게 반복했던 두 머리 귀신.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첫쨋날, 김 감독님이 쓰러지셨다… 둘쨋날, 민 감독님이 쓰러지셨다….”
3기생인 지효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2기 때의 두 머리 귀신이 합쳐져서 우리 감독님 귀신이 된 거 같아요.” 한쪽 귀신은 연기지도 및 상황설명, 의견묻기 등의 행동 패턴을 보였고, 다른 한쪽 귀신은 “그걸 내가 아니∼ 니가 알잖아∼”라는 말만 하고 다녔다는 두 머리 귀신의 특징을 지효 학생이 듣고, 이 상반된 현상이 3기 감독 귀신에게서는 모두 나타났다며 추론해낸 것이었다.
지효 | 저도 혼자 생각하고 정리 다 해서 감독님 귀신이랑 얘기하고 나면 더 불어나기만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피해다니고 그랬어요. (웃음) 촬영이 점점 시나리오랑 달
여고괴담 동창회에서 생긴 일 [3]
-
<블랙잭> 촬영 당시, 최민수는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상대배우인 조선묵을 흠씬 두들겨패서 기절시킨 적이 있다. <유령>을 찍을 당시 그는 감정선을 잃지 않으려고 세트에서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워가며 촬영을 마쳤다. 심지어 최근 상영 중인 <청풍명월>에선 진짜배기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소품이 아닌 진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최민수가 있는 촬영현장은 에피소드가 끊이질 않는다. 이건 일상의 문턱을 넘어서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를 벗어나기 무섭게 배우라는 갑옷을 훌러덩 내던지곤 하는 이들과 달리 그는 평소에도 배우로서의 자의식을 되새긴다. 혹시 핏줄 때문일까. 한 영화제가 마련한 회고전에서 한 지인은 그의 아버지인 고 최무룡 선생을 “무대 바깥에서도 배우였다”는 말로 회고한 적 있다. 그런데 최민수의 경우는 더 심하다. 모두들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최민수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내 털은 내가 뽑는다”라든지 한때 회자됐던 최민수 시리즈 속 ‘최민수’는 이 둘의
고독한 제왕,영화배우 최민수 [1]
-
#5. 연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비해 배우 최민수가 점유한, 그리고 90년대 한국영화가 그에게 허락한 영역은 넓다고 보긴 어렵다. <테러리스트> <유령> <리베라 메>로 대표되는 강한 남성의 이미지, 반대로 <결혼이야기> <미스터 맘마> 등에서 보여준 ‘대발이’식 코미디. 그가 보여준 것이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상업적인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그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던 것일까.연기에 대한 욕심을 상업영화의 룰에만 쏟아부었는데. 관객이나 평자들 중에 최민수가 하면 60밖에 못한다고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선 애초 20밖에 안 되는 것을 끌어올렸을 수도 있어요. 전에 임권택 감독님이 <백치 아다다>를 제의하셨는데, 세상을 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못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건방지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그때부터 했다면 탄탄한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을 텐데 그건 내가 찾은 게 아니라 배운 거니까. 전 전
고독한 제왕,영화배우 최민수 [2]
-
가을, 겨울 그리고 여름, 하지만 윤석호가 어떻게 변하니?<가을동화>에서 <여름향기>까지, 유석호 드라마에 나타난 불변의 법칙 혹은 콤플렉스<가을동화> <겨울연가>에 이은 윤석호 PD의 계절시리즈, 그 세 번째인 <여름향기>가 현재 방영 중이다. 국내 시청자들에게 ‘윤석호 PD’는 이제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브랜드임이 분명하며, 제작초기부터 여러 국가 취재진들이 몰려들었을 만큼 범아시아적으로 ‘한류열풍’의 주역임을 부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92년작 <내일은 사랑>부터 2002년 <겨울연가>까지 그의 드라마는 대중으로부터 끊임없는 관심을 받아왔고, 주인공들의 패션은 곧 유행이 되었으며, 전국팔도를 찾아 다니며 헌팅한 아름다운 장소들은 여행상품으로 등장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계절을 달리하며 속속들이 선보이는 윤석호의 드라마는 세월을 역행하고 있다. 지금 채널만 돌리면 옥탑방에 동거하며 생활대사를 내뱉는
윤석호 드라마의 불변의 법칙 [1]
-
■ 그대들의 오지랖, 한강보다 넓구려 _ 필참! 방자와 향단이“상혁이 니 입으로 유진이 보내준다고 했잖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잖아!!”(<겨울연가>) 자신보다 더욱 남의 일에 팔 걷어붙이고 흥분하는 사람들. 윤석호 드라마엔 늘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 사이에는 ‘방자와 향단이’ 같은 캐릭터를 심어놓는다. 이들 조연은 대사대비 출연횟수가 지나치게 빈번하며 주인공에 비해 늘 떨어지는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주책스럽거나 수다스럽거나 눈치없다는 스테레오타입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따른다. <겨울연가>에서 박용하와 최지우의 친구로 등장하는 진숙(이혜은)과 용국(류승수)에 이어 <여름향기>의 방자와 향단이는 송승헌의 선배인 대풍(안정훈)과 손예진의 선배인 장미(조은숙)다. 이들은 시퀀스마다 패셔너블한 의상과 나름대로 튀는 설정으로 등장하지만 결국엔 드라마가 한정지운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처리된다.이들의 역할은 두 가지다. 주인공들
윤석호 드라마의 불변의 법칙 [2]
-
DVD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막무가내의 젊음을 돌이키다소피 마르소, 유덕화, 나스타샤 킨스키 등 DVD로 다시 만나는 80년대 청춘스타 10人요즘 문구점에선 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인기스타들의 사진이 박힌 책받침과 연습장. 수북이 쌓인 사진 중에서 나의 우상을 골라내 정성껏 코팅하고 가방 속에 찔러넣으면, 진귀한 보물이나 신통한 부적이라도 얻은 듯 괜스레 가슴이 뻐근해오던 기억들. 19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당신이라면, 그들을 추억하고 싶을 것이다.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맷 딜런, 로브 로, 왕조현, 유덕화, 제니퍼 빌즈, 나스타샤 킨스키, 마이클 J. 폭스, 패트릭 스웨이즈….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남았지만, 남은 이들도 예전의 그들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을 추억할 작품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손상됐다. 십수년간 닳고 닳아 사람의 형체와 움직임 정도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화질이 엉망이 돼버린 비디오 테이프, 바래지고 뭉개진 추억 앞에 망연할 필요는 없다. 80
DVD 연속기획2 - 다시 만나는 청춘스타들 [1]
-
"나는 네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열혈남아>의 유덕화熱血男兒, 1988 | 감독 왕가위 | 출연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 출시사 라이브 DVD | 그외 출시작 <아비정전>,<천장지구>,<무간도>,<지존무상>,<결전> ,<파이터 블루>,<재전강호>,<용의 가족>“왜 지금껏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죠?”“나는 나를 잘 아니까. 나는 네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유덕화는 항상 가진 것 없는 남자였다. 그는 트렌치코트와 권총보다는 땀에 젖은 티셔츠와 식칼이 더 어울렸고, 조직의 보스라기보다는 그저 뒷골목 깡패에 가까워 보였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무거운 짐을 날라주는 것이 고작인 와. 연인 앞에 상처투성이 모습으로 굴러떨어지곤 하는 <열혈남아>의 한물간 깡패 와는, 그렇게 지독하게도 없어 보였던 십몇년 전 유덕화를 낯설고도 풍요로운 현재
DVD 연속기획2 - 다시 만나는 청춘스타들 [2]
-
거장인가? 사기꾼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도그빌>로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선 라스 폰 트리에, 열광과 혐오의 이유들소문대로다. 라스 폰 트리에는 다시 도발적인 영화를 내놓았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나왔던 <도그빌>은 관객의 극단적 반응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영화언어의 혁신을 이룬 걸작’이라는 찬사와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가짜 예술품’이라는 비판이 트리에의 다른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으르렁댄다.<뉴욕타임스>의 평론가 A.O.스콧은 올해 칸영화제를 취재한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칸영화제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 장대한 규모와 더불어 논쟁적 영화를 선호하는 취향이다. 그리고 이것이 칸영화제가 트리에를 그처럼 환영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중략) 칸영화제에서 월요일에 있었던 <도그빌> 시사회는 전류가 흐르는 듯한 순간이었다. 마침내 논쟁거리가 생긴 것이다. <도그빌>은 냉소주의에 기반한 가학적이
<도그빌>로 돌아온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 [1]
-
4. 트리에는 순수의 서약을 지키고 있는가?아마도 도그마95가 아니라면 트리에에 대한 논란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8년 칸영화제에서 <백치들>과 <셀레브레이션>을 내놓으며 알려진 이 서약은 한때 21세기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서약을 깬 것은 바로 서약의 주창자인 트리에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창작과정에 어떤 제한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선언을 했지만 다시 도그마의 10계명에 얽매이는 것은 도그마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서약을 위반했다.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지키지 않을 서약을 또 다른 누벨바그의 선언처럼 제시한 이유는 단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닌가? 트리에를 과대평가된 감독으로 평하는 이들이 트리에를 결과(영화)보다 말을 앞세우는 감독이라고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이름 앞에 ‘선동가’, ‘호객꾼’, ‘앞잡이’ 같은 단어가 등장한 배경이다.그렇다면
<도그빌>로 돌아온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