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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장에서의 김기덕 감독.세태 혹은 문화8월14일, 오전 11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리다. 그리고 오후 4시15분 열린 공식 상영장에서는 몇분간이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예상대로다. 김기덕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추상적인 ‘세태’가 아닌 정서적인 ‘문화’를 표현했고, 그것이 캐릭터와 풍경을 근거삼아 외국 기자(관객)들에 의해 한국 문화 또는 불교 문화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절이 한국에는 실제로 있는가?” “불교 문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등등. 적어도 그런 수준을 벗어난, 몇 가지 질문과 대답.당신의 이번 영화는 전작과 많이 다른 것 같다. 비유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전작들이 ‘클로즈업’의 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다소 한 걸음 빠져나와 세상을 보는 ‘롱숏의 영화’이다.당신의 영화에서 ‘언어’란 어떤 의미인가. 이 영화는 나조차도 이 영화의 대상이 되는 그런 영화이다. 내 영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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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씨앗으로 시(詩)를 짓다2003 한국 호러의 ‘예술’ 도전- 절반의 성공, 혹은 시행착오에 대하여듀나 djuna01@hanmail.net<여고괴담>이 개봉된 1998년을 원년으로 잡는다면, 우린 벌써 한국 호러영화 부흥기의 5년째를 맞이하는 셈이다. 그동안 우리는 두 차례의 여름 호러영화 열풍을 맞이했다. 첫 번째는 <가위> <하피>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와 같은 영화들이 무더기로 우리를 찾아왔던 2000년이고, 두 번째는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장화, 홍련> <거울속으로> 과 같은 영화들이 개봉된 2003년이다.겨우 3년이 흘렀지만 그동안 한국 호러영화가 이룩한 발전은 상당하다. 2000년 호러 열풍의 결과는 소문과 작품 수를 고려해본다면 시시했다. <가위>를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흥행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고, 대부분 약간의 오컬트를 첨가한
듀나의 2003 한국 공포 에세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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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너무 의식했던아까 2003년이 한국 호러영화가 ‘예술’을 하기 시작한 해라고 했는데, 만큼 그 표현에 어울리는 영화는 없다. <장화, 홍련>이 작정하고 만든 장르 호러영화라면, 은 작정하고 만든 아트하우스 영화이다. 이수연은 김지운처럼 공포감 조성 따위에 매달릴 생각 따위는 없다. 공포를 주면 좋다. 하지만 억지로 관객을 질리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이 영화는 ‘예술영화’니까. <장화, 홍련>의 안전망이 ‘깩깩 소음’이라면 의 안전망은 ‘예술영화’의 자의식이다.호러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무리한 시도 때문에 좋은 영화가 막판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꿋꿋한 태도는 상당히 긍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영화’의 자의식이 늘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영화가 의식적으로 ‘예술영화’가 되려고 한다는 데 있다.은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다. 영화는 강한 비극적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
듀나의 2003 한국 공포 에세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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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의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한국을 찾았다. 국내 케이블방송에서도 방영된 <카우보이 비밥>은 애니메이션의 영역을 실사쪽으로 한 걸음 더 끌어당긴, 그러면서도 애니메이션의 자유로움을 잃어버리지 않은 독특한 작품이었다. 현실과 환상을 한 화면에 담았다고나 할까. 언제나 끼고 다니던 선글라스를 벗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이 말하는 ‘이야기와 현실’을 들어보았다. - 편집자반절은 꿈속에서, 반절은 현실에서애니의 새 지평 연 <카우보이 비밥>과 와타나베 신이치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카우보이 비밥>의 마지막 화에서, 죽으러 가는 스파이크를 페이가 말린다. 그 순간 스파이크는, 처음으로 진심을 말한다. “이 눈을 봐. 사고로 없어져서, 만들어 넣은 거야. 그때부터 나는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현재를 본다구.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은 아냐, 그렇게 생각했어. 깨지 않는 꿈을 보려했지. 하지만, 어느샌가 깨버린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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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과 고우사토를 불러오다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우리에게 ‘현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즘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현실감이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좋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나 자신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 않나. 방송을 할 속셈으로 머리를 잘라버리는 녀석들도 있고, 허구의 세계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녀석도 있고. 뭔가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실감 자체가 점점 옅어지고 있어서, 자기 자신조차 때로는 좀 의심스럽지 않나. 아마, 이런 생각도 작품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한 대담에서도 와타나베는 ‘<이지 라이더> 같은 영화를 오락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즘 세태’를 한탄한다. 오락이면서도, 현실에 굳건하게 뿌리를 박고 있었던 영화와 사람들이 있었던 과거를 동경한다. 그것이 와타나베 신이치로이고, 스파이크 스피겔이다.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살아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안에 피가 흐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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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현실을 볼 수 있을까?<카우보이 비밥>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Profile | 1965년 교토 출생 · 선라이즈 입사 · 제작진행 스탭을 거쳐 <기갑엽병 메로우링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연출 및 그림 콘티를 담당 · <마크로스 플러스> <카우보이 비밥>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애니매트릭스: Kid’s story> <애니매트릭스: Detective story> 감독모두들 농담으로 듣지만, 애초 <카우보이 비밥>에서 그가 그리고 싶었던 건 이소룡의 정신세계였다. 빈센트와의 대결장면에서 스파이크가 보여준 포즈는 그냥 나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판보다 빨리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애니메이션계에 발을 들였다고 말하는 이 사람은,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역시 열정은 숨길 수 없는 것일까. 이른 아침 인터뷰에 몽롱한 상태였던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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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up on TV?시청자를 사로잡은 드라마의 새로운 경향8월 초순 싱가포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신제품 발표회가 열렸다. 며칠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한국, 타이, 대만, 필리핀, 싱가포르의 IT 기자 5명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이 자리에서 한국 기자는 엉뚱하게도 드라마에 대한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여름향기>가 방송되고 있다는데 어떠냐?”, “배우 △△△는 요즘 뭐하냐?”, “요즘 한국 드라마가 미국 드라마보다 훨씬 재밌는데 비결이 뭐냐?” 등등.한국 드라마는 휴대전화처럼 내수가 국제 경쟁력을 키운 대표적인 상품일 것이다. 드라마가 내수시장만을 겨냥해 만드는 시절은 벌써 지나갔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내수시장에서 규격화된 트렌디드라마가 퇴조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 변화가 무엇인지, 어디서 왜 생겨나는지 살펴봤다. - 편집자MBC 드라마국의 약진, 프로덕션 생산품의 추락<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 내 멋대로 찍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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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멋…> 이후 파편적인 캐릭터의 흔적은 ‘MBC표 드라마’에서 부쩍 잦아진다. <내 인생의 콩깍지>에서 박광현은 소유진과 10년 동안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박광현이 헤어진 연인 소유진을 우연히 만나 급히 지폐에 연락처를 받아놓았는데 그 돈을 백화점에서 써버렸다. 뒤늦게 백화점으로 달려가 그 돈을 찾느라 난리법석을 피우는데 엉뚱하게도 자길 도와주려 애쓰는 여직원과 눈이 맞아 샛길 연애를 시작한다. 정해진 운명을 향해 직선처럼 곧장 나아가지 않는 게 실제 인생이다. <눈사람>에서 조재현은 자기와 미묘한 관계에 빠져드는 처제를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완전히 외면하거나 푹 빠져드는 게 아니라 그 경계선에서 미묘하게 떨린다. 파편적인 인간은 파편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앞집 여자>의 변정수는 이를 극적으로 희화화한 경우다. 20%의 감정만 주고 20번째 만남에서 관계를 정리하는 능숙한 바람기와 아내와 주부의 기능을 분리해서 완벽하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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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사연이 가슴을 치고, 호쾌한 화면이 참으로 좋소강력한 추종자 거느린 퓨전 사극 <다모>내가 너에게 무엇이더냐. 첫 방영부터 ‘다모폐인’들을 만들어내며 마음을 울리고 있는 <조선 여형사 다모>는 무협사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처럼 아픈 질문을 쏟아내는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서얼로 태어난 한을 칼끝에 품은 좌포청 종사관 황보윤(이서진)과 자신이 관비라는 사실을 너무도 뼈아프게 깨우치고 있는 포도청 다모 채옥(하지원), 왠지 모를 살가움과 솔직함으로 채옥의 마음을 끄는 역모의 주역 장성백(김민준). 세 사람은 결코 맺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에게 무엇인지, 너는 나에게 무엇인지, 묻고 새기며 서로의 주위를 맴돌 뿐이다. 그리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간격 밑에는 십오년 세월과 정한이 묻혀 있다. 예쁜 사랑은 많았지만 가슴에 맺힌 사랑은 드물었던 TV드라마에서 이러한 감정의 깊이는 오래간만에 보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염두에 두지 않은, 진짜배기 오누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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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과 의상만 시대극이고 나머지는 현대물로 대체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 극본을 썼다는 작가의 의도는 하나하나 살아 있는 인물들을 볼 때 생생하게 읽힌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마음을 놓아버린 오랜 인연, 남매라는 사실을 모르는 두 남녀의 위태로운 연정은 2003년에 그대로 가져와도 공감을 부를만 하다.폐인들이 패를 이루니 <다모>도 힘을 받소<다모> 추종자들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요소는 대사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를 아프게 하지 마라.” “다시는 나 같은 인연 만나지 말아라.” “나는 너를 이미 베었다.” “그리 떠나면 형제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허망하겠느냐.” <다모> 한회가 끝날 때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는 이 명대사들은 써놓고 보면 문어체에 가깝다. 곰곰이 따져보면 전체 대본에선 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순간 마음을 치고 지나가는 대사를 기억하고, 몇번이고 곱씹으며 패러디한다. 문어체이기 때문에 더욱더 기억에 남을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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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TV에 뿌리내리다<앞집 여자>의 경쾌한 여성, 연약한 남성“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 길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이나 부딪칠 수 있는 게 사랑이야. 사고나는 데 유부남이, 할아버지가, 홀아비가 무슨 상관이 돼, 나면 나는 거지….”(노희경의 <거짓말>, 1998)하지만 가볍게 훈방조처되는 처녀·총각과 달리 유부남·유부녀의 교통사고는 공권력의 개입과 상관없이 어떻게든 처벌됐다. 드라마 안이든 밖이든 그게 현실이었다. 그 강팍한 조건을 에둘러가기 위해서 불륜이나 동성애 같은 ‘비정상적’ 사랑은 온 존재를 내던진, 심각한 그 무엇이어야 했다.“난 당신을 만지고 싶었던 게 아니야! 잠자리를 하자고 한 게 아니야! 사랑하자고 한 거야! 외로우니까, 위로하자고 한 것뿐이야!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면 이 힘든 세상 어떻게 살아.”(노희경의 <슬픈 유혹>, 1999)“10년만 지나면 우리 지금처럼 젊지 않어. 그때 누가 우리 곁을 지켜줄까? 남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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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처의 땅에서 깨어나라!의 스파이크 리, 흑인 ’감독’의 5색 스펙트럼“ 이 일을 하려는 것은 떳떳해지기 위해서예요. 사람들의 말에 신경쓰는 건 아니에요. 싫은 건 싫은 거니까. ”-- <걸 식스> 중에서 테레사 랜들의 대사#1 공간- 뉴욕 인 뉴욕세상에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이 전 우주인 그런 감독들이 있다. 그들에게 그 곳은, 그 말투, 그 사람들, 그 일상은 단순한 하나의 캐릭터나 에피소드를 지나 영화 그 자체와 맞먹는 전 우주적인 ‘의미’의 한 조각이다. 우리는 리틀 이탈리아 거리를 벗어난 스코시즈를 생각할 수 없으며, LA의 샌타모니카 해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우디 앨런이나 거꾸로 필라델피아 거리를 배회하는 폴 토머스 앤더슨을 상상할 수 없다. 특히 뉴욕의 경우, 스코시즈와 우디 앨런, 그리고 스파이크 리는 일종의 삼중 연주단으로 동부 감독들의 지형도에 삼각 꼭지점을 이룬다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알고 있는 사실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삼중 합주단의 맨 막내
<25시>의 스파이크 리,흑인 `감독`의 5색 스펙트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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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출- 스코시즈에 대한 흠모와 경쟁<똑바로 살아라>스파이크 리, 본명 셀튼 잭슨 리는 1957년 3월20일, 뉴욕이 아닌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그의 초창기 영화의 대부분의 영화음악을 맡았던 빌 리가 그의 아버지로, <모 베터 블루스>의 블릭처럼 재즈 뮤지션이었다. 문학 강사인 어머니 역시 그의 정신적 지주로, 애틀랜타 무어하우스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다음, 뉴욕대 영화과 대학원에서 입학하여 마틴 스코시즈의 사사를 받는다. 아마도 연출이라는 측면에서 스파이크 리에게 가장 많은 영감과 고통을 동시에 선사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스승인 마틴 스코시즈일 것이다. 금속성의 차가운 이기주의자에서 지상으로 추락하여 이제는 인간의 모습을 한 <모 베터 블루스>의 블릭은 역시 펄펄 끓어오르는 인간 백정에서 한 인간이 되었던 <분노의 주먹>과 <뉴욕 뉴욕>의 로버트 드 니로를 연상케 한다. 블릭의 가장 행복한 시절을 조악한 홈
<25시>의 스파이크 리,흑인 `감독`의 5색 스펙트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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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 주말 스크린에서도 해적은 시퍼런 칼을 휘두르고 흥분한 젊은이들은 분노의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여름의 망령은 그리 쉽게 물러나지 않을 태세지만 바람의 방향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바뀔 것이다. 거리의 유행처럼 남들과 발맞춰 따라잡기도 숨가쁜 영화들이 조금씩 기세를 꺾고, 작고 다채로운 영화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가을이다. 현재 9월 첫 주말부터 11월 마지막 주말까지 극장 진입을 계획하고 있는 영화는 모두 ?편. 한국영화로는 추석 흥행신화 재현을 노리는 <조폭 마누라2>, 시대극 장르의 폭을 더할 <황산벌>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김기덕 감독의 변신 소문이 나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박찬욱 감독식 액션을 예고하는 <올드 보이> 등 21편이 서로 다른 유혹의 기술을 선보인다. 외화로는 타란티노의 컴백작 <킬 빌>이 <올드 보이>와 무공을 겨루고 구로사와 기요시, 코언 형제,
미리 보는 가을 영화 72편 올가이드- 9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