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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영화는 어느 비평가보다 더 지적이다 ”김소영 교수, 영화학계의 살아있는 족보 토마스 엘새서를 만나다8월27일 폐막한 제4회 세네프영화제를 방문한 토마스 엘새서(60) 교수는, “당신이 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들려주십시오”라고 청하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인물 중 하나다. 우리에게 돌아올 대답은, 어쩌면 특정 학문의 발전사를 개괄하는 반 시간 넘는 강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어로 테이블에 마주앉은 김소영 영상원 교수가 즉석에서 붙여준 “살아 있는 영화학계 족보”라는 별명처럼, 토마스 엘새서는 1960, 70년대에 걸쳐 동세대 시네필들- 영화학과 신입생들의 필독서 목록에 줄줄이 이름이 발견되는- 과 더불어 영화학이라는 신생 학문의 터를 닦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이후 5세대에 이르는 제자를 길러낸 거인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해 교육받았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체류한 바 있는 ‘코스모폴리탄’ 엘새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의 영화/텔레비전 학과장으로서 왕성한
김소영-토마스 엘새서대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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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영화는 지적이다김소영__ 독일 영화사는 기본적으로 지크프리드 크라카우어와 당신의 대화로 쓰여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국가를 불문하고 근대성이 야기시키는 트라우마는 영화를 통해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 ????를 보자면 클로즈업과 같은 파편화로 이뤄진 영화장치는 바로 그것을 통해 근대성의 트라우마를 재현하고, 또 트라우마는 영화를 통해 그 형상을 찾는 미장아빔(거울 이미지)을 구성해온 것 같다.토마스 엘새서__ 트라우마에는 희생자의 상처도 있지만 가해자의 트라우마도 있다. 가해자 트라우마 영화의 전형적 모티브는 <람보> <포레스트 검프> <지옥의 묵시록>같은 ‘구조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원, 구조에 미국영화는 강박적으로 매달리는데 거기서 구조의 행위는 공격의 다른 형태다. 구조라는 명분으로 액션의 모티브를 고쳐 쓰는 것이다.김소영__ 한국영화는 강박적으로 희생자의 트라우마에 매달린다.토마스 엘새서__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구원자
김소영-토마스 엘새서대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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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영화제작백서<Show Me> 디지털 단편 프로젝트로 돌아온 임창재, 남기웅, 임필성 감독의 고군분투 제작기여정의 고됨을 길고 짧음으로 가를 순 없다. 장편을 만드는 것만큼 단편을 만드는 일도 녹록지 않으니까. 이건 초보뿐 아니라 베테랑에게도 해당된다. 실험영화를 만들어오다 지난해 <하얀방>으로 충무로 신고식을 치른 임창재 감독,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로 독립영화계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이어 장편 <우렁각시>를 만들었던 남기웅 감독, <소년기> <베이비> 등의 단편에서 일찌감치 재능을 폈고, 현재 장편 <남극일기>를 준비하고 있는 임필성 감독. 어쨌건 단편영화에 한동안 거리를 두고 있던 서로 다른 개성의 세 감독들도 올 여름 산통을 겪어야 했다.지난 8월26일 세네프영화제에서 상영된 옴니버스영화 <Show Me>는 세 감독이 낳은 자식인 셈이다. 세네
senef 3인의 못 말리는 제작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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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면, 싸움도 있고 카섹스도 있고~# 촬영현장은 온갖 종류의 기(氣)가 부딪히고, 뒤섞이는 곳이다. 지칠대로 지친 감독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드는 훼방꾼들의 돌발 행동과 캐릭터와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배우들의 성스러운 감정이 한데 뒤엉켜 묘한 긴장감을 생성해낸다. 현장은 끊임없이 분출하는 용암, 그 자체다.임필성 넋놓은 박해일, 넋 잃은 여고생 그리고 정신 나간 주정뱅이뭐라. 영진위쪽에 <튜브> 촬영 뒤, 남은 지하철 세트가 있다고? 임필성 감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실제 지하철을 옮겨타고 다니며 촬영하다보니 원하는 상황을 잡아내려면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한 스탭의 귀띔에 감독은 자칫 홀릴 뻔했다. 그러나 지하에서 빛이 쏟아져들어오는 외부로 나가는 순간을 찍기 위해 2호선 타고 같은 역을 2번씩이나 지나쳤던 강행군의 과실을 모두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정신을 다잡고 의자에 앉아 멍한 표정의 박해일을 찍고 있는데 이번엔
senef 3인의 못 말리는 제작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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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충무로를 바꿔라!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11인과의 조우<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바람난 가족> 등 올해 세인의 주목을 받은 영화들에는 얼핏 눈에 띄지 않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5편 모두 프로듀서가 여자라는 사실. <지구를 지켜라!>의 김선아, <살인의 추억>의 김무령, <장화, 홍련>의 김영, 의 안수현, <바람난 가족>의 심보경 등은 심재명, 오정완, 김미희 등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여성 제작자의 뒤를 잇고 있다.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의 안은미와 <거울속으로>의 김은영도 올해 충무로 데뷔작을 낸 프로듀서. <스캔들>의 이유진, <귀여워>의 이선미,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의 이유진(동명이인) 등 올해 하반기에 개봉할 영화 가운데도 여성프로듀서가 제작한 작품은 적지 않다
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김무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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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같은 회사 세우리라| 김선아 |1995년 <돈을 갖고 튀어라> | 1996년 <깡패수업> | 1997년 <모텔 선인장> | 1999년 <유령>2001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2001년 <봄날은 간다> | 2003년 <지구를 지켜라!>| 프로듀서의 길“운이 좋았다.” 여성 프로듀서 중에선 비교적 어린 축에 속하면서도 7편이라는 무시 못할 숫자의 필모그래피를 가진 김선아(33) 프로듀서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대학 시절 막연하게 영화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시네마테크 ‘영화공간 1895’에서 영화에 관한 이런저런 강좌를 듣고 있었다. 사무실이 마포에서 혜화동 구석으로 이사를 했을 때 그는 위층에 영화기획사가 입주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그 회사 직원들과 안면을 트게 됐다. 얼마 뒤 아예 취직을 하게 된 그 회사는 첫 기획작품인 <결혼 이야기>를
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김선아,류진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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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우렁찬 목소리| 신혜은 |1995년 <낮은 목소리> | 2000년 <숨결> | 2001년 <거류> | 2002년 <밀애>| 프로듀서의 길신혜은(37) 프로듀서는 ‘변방’에서 출발했다. 충무로에서 제작과 마케팅 실무를 배워 프로듀서 크레딧을 얻은 것이 아니라 독립영화, 그것도 다큐멘터리라는 생소한 영역을 태반으로 삼은 것이다. 서부영화와 무협영화에 매혹됐던 유년 시절을 거쳐, 대학 시절 “비디오 대여점에서 VTR까지 빌려 하루 10편씩 잠 안 자고 먹어치울”정도의 광이었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창작에 대한 동경은 창작자에 대한 경외로 그리고 창작은 자신의 능력 밖이라는 체념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졸업 뒤 곧바로 영화판에 덤비지 않고, 문화 관련 잡지 기자, 광고기획사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면서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만 만족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1991년, 변영주 감독을 만나 다큐멘터리 제작일을 시작한 건 삶의
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신혜은,심보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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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팔고 싶다| 안수현 |2003년| 프로듀서의 길역사를 전공하기는 했지만 많은 80년대 학번이 그랬듯 안수현(33)씨도 “역사 자체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더 집중했다. 운동권으로 3학년까지 지내다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됐다. 휴학을 하고 “도대체 뭐 하며 먹고 살아야 하나”를 화두처럼 안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복학해서는 취업이 아니라 졸업을 위해 밀린 학점 따기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학교 근처에 있던 신씨네의 공채 공고를 봤다. ‘시네키드’는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니 처음으로 거짓말하고 돈을 훔쳤던 게 영화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극장에서 보고 기절할 뻔했다. 화면의 사이즈와 컬러에 압도당해서.” 그뒤로 틈만 나면 “어두컴컴하고 큰 극장에서 빛으로 영사되는 순간의 쾌감”을 찾아 극장에 드나들었다. 옆집 중학생 언니의 교복을 빌려 입고 육성회비를 입장료로 바꿔치기 하면서. 그 기억을 가지고 영화사에 들어갔는데, 영화에 대
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안수현,오은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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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빛깔의 작품을 쏴라| 이선미 |2001년 <와니와 준하> | 2003년 <귀여워>| 프로듀서의 길이선미(34) 프로듀서에겐 일보 후퇴가 결과적으로는 이보 전진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 1996년 그가 운동 성향이 짙었던 영화제작소 청년을 나와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제작부에 결합한 것은 청년의 전략적 ‘투입’도 아니었고 개인적 ‘전향’도 아니었다. 단지 “재미있을 것 같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선배,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청년을 만든 91년 이후 정신없이 활동해온 데 따른 피로가 쌓인 것뿐이었다. “그땐 좀 지쳤던 것 같다.” 막연히 장선우 감독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연출부를 희망했으나 이미 자리는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제작부 일이 현재까지 이어질 줄은 당시 이선미 PD는 꿈도 꾸지 못했다.<나쁜 영화>의 시스템이 좋았던 것은 연출부와 제작부의 구분이
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이선미,이유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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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만 좇는다고 해피할까| 이유진 |2000년 <오! 수정> | 2003년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프로듀서의 길영화계에서 동명이인을 발견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유진이라는 이름의 여성프로듀서가 둘 있다는 사실은 다소 신기하다. 여성프로듀서가 많아진 걸 입증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오! 수정>의 프로듀서 이유진(35)씨는 96년 명보극장 기획실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광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대학에서 영화동아리 활동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극장 업무를 맡게 됐다. 개관부터 프로그램 섭외까지 관련된 여러 일을 했지만 “극장이 안정되면서는 커피타는 일만 하게 돼서” 1년 뒤 극장을 나와 곧장 기획시대를 찾아갔다. 당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준비 중이던 기획시대는 월급은 극장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지만 비로소 영화를 하고 있다는 들뜬 느낌을 심어준 곳. “<아름다운 전태일>을 하면서 많이 배운
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이유진,현경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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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거장들과 함께 소생의 길로제6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현지보고베니스=백은하 lucie@hani.co.kr잠시 붙인 눈을 떴을 때, 베니스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을 향해 날아가던 파리발 경비행기 속에서는 조용한 탄식들이 흘러나왔다. 몇백 마일 상공에서 바라본 물 위의 도시는 꼬불꼬불한 수로를 따라 도시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거대한 놀이동산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면인지 지면인지 모를 땅으로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검게 물든 바다 위에 띄워진 보트 위로 몸을 옮기니 잔잔해만 보이던 베니스의 파도가 얼굴을 때린다. 그러나 8월의 마지막 주, 베니스가 출렁거리는 것은 파도 때문만은 아니다.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와 휘장들, 기차역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까지, 사람으로 친다면 인생의 수많은 파고를 넘겨낸 이 환갑의 영화제는 어느 때보다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회춘의 중심, 모리츠 위원장올해로 예순개의 촛불을 밝힌 이 영화제는 파티 케이크를 자르는 첫 번째
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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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동네주민, 언론인 그리고 스타들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브뤼노 뒤몽의8월27일 현지시각 저녁 7시30분, 개막식이 열리는 팔라초 델 치네마 앞은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과 자전거를 몰고 온 동네주민, ID카드를 목에 두른 언론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올해 개막식장 앞은 붉은 카펫 대신 나무로 만들어진 ‘파도’(The wave)라고 이름 붙여진 조형물로 장식되었다. 60회 베니스영화제 역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단단한 주단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한 이 ‘파도’는 지난해 개막식장 앞을 나누면서 원성을 샀던 높은 연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 설치되었다. 지역 행정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말하자면 ‘관내예술가’인 카를로 카파이에 의해 설계된 연단은 영화제 3주 전부터 대규모 공사에 들어가 개막식 아침이 돼서야 완성이 되었다. 하델른은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몇번이고 연단의 끝과 끝을 오가면서 새로운 연단을 시험했지만 정작 귀빈들은 그다
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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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팽창보다 균형있는 수상을로카르노만의 특색 잃고 사회성 짙은 작품에 편중, 대상작은 논란 여지 남겨로카르노=글 임안자/ 해외특별기고가·사진 정한석1920년대 유럽 예술인들은 로카르노를 유토피아의 도시로 불렀다. 그리고 1947년 이곳에 영화제가 들어서면서부터 유토피아의 꿈은 영화예술과 조우하고는 오늘의 이름난 국제적 영화제로 성장해왔다. 이런 오랜 문화의 전통을 배경으로 한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가 8월6일 저녁 대형 야외상영장인 피아차 그란데에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1953년작 뮤지컬코미디 <더 밴드 웨건>(The Band Wagon)으로 차분히 막을 올렸다. 이날은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7500석의 광장이 관객으로 꽉 찼고, 이곳에서 열흘 동안 매일밤 새벽 두세시까지 영화축제가 계속됐다.56회 행사의 특징을 말하자면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커진 프로그램과 혼란스럽도록 여러 갈래로 갈라진 부문이었다. 듣자니 2003년 영화제에 참가신청을 요구한 영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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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세상도 영화제도… 선명한 것은 없구나김기덕 감독과 동행한 정한석 기자의 로카르노 다이어리현지 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김기덕(사진 맨 왼쪽) 감독.로카르노=글·사진 정한석 mapping@hani.co.kr나쁜 남자 혹은 선승과 함께8월12일, 로카르노의 여행길에 과거의 나쁜 남자, 혹은 지금의 선승을 만나다. 10여 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 환승 비행편을 기다리던 중 김기덕 감독은 대뜸 영화제의 상 얘기를 꺼낸다. “영화상영만 딱 하고 바로 오면 좋죠. 하지만 사정상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폐막식까지 있는 거예요. 사실, 나는 내가 영화제에서 상 못 탈 거라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전문적으로 영화를 보는 비평가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취향이 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거기 때문에….” 이번 영화제 참석에 대한 사연에서부터, 지금의 사회분위기, 영화철학, 자신을 해석하는 한국 영화비평 담론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현재 쓰고 있는 시나리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