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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독립영화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인디포럼’이 처음 관객을 만난 것이 1996년 5월. 공교롭게도 이 시기를 전후한 몇년간은 독립영화계와 검열당국의 지루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레드헌트>와 <세발 까마귀> 등의 영화와 퀴어영화제, 인권영화제 등 수많은 독립영화제들이 사전심의를 거부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도전과 실험정신, 그리고 소수문화를 향한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독립영화가 지닌 건강한 정치성의 당연한 결과였다. 이는 다시 개별 독립영화들로 연결됐고, 주류영화와는 다른 새로움을 원했던 관객은 독립영화제로 모여들었다. 개인적인 에세이가 주를 이루는 외국과 달리, 첨예한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을 본연의 의무로 여겼던 한국의 독립큐멘터리들은 영화제를 통해 더욱 큰 사회적 파장을 그렸다. 더 많은 대중들이 독립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상업영화 감독에 버금가는 인
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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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얘기? 인간에 대한 얘기!
윤종찬 | 편집은 어땠는가. 단편영화는 내 돈 들여 찍는 거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장편영화는 주변에서 말들이 많지 않나.
임필성 | 다행히 싸이더스는 그런 점에서 감독들을 덜 괴롭히는 회사다. 차승재 대표가 요구한 건 딱 하나, 두 시간 내로만 끊으라는 거였다. 가장 논란이 됐던 장면은 민재의 꿈이었다. 마지막 오로라가 나타나기 전에 민재가 쓰러지면서 꿈을 꾸는데, 사라진 대원들이 서울의 공원 비슷한 장소에 모여 있다. 출발하기 전인 듯도 하고, 이미 죽은 사람들인 듯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애착이 강했다. 민재가 처한 가장 최악의 순간에 따뜻한 서울이 나오는 거다. 충격적인 아우라가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엔 최도형 대장이 안 나온다. 관객이 민재와 최도형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갑자기 스토리를 까먹을 것 같았다. 그 장면 말고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특
<남극일기>를 말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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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면 투쟁해야 한다"
며칠 전 독감에 걸렸다는 임필성 감독은 병원에 들렀다가 오느라 조금 늦겠다고 전해왔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윤종찬 감독은 아직도 후반작업 중인 <청연>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충무로 4대 재앙이라고 들어보셨어요?”라고 농담처럼 물었다. 제작비가 엄청나고, 촬영을 참 오래했고, 결과를 장담 못하는 영화 네편. 윤종찬 감독은 <남극일기>와 <청연>이 그중 두편이었다고 했다. 어쩌면 지루한 마라톤 코스를 함께 뛰어온 동료가 앞질러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 아닐까. 그러나 편집 중인데도 시간을 내준 윤종찬 감독은, 미안해하며 감기약을 먹는 후배를 맞아 이해와 공감 섞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담 도중 임필성 감독은 가끔 “<소름>도 그렇지만…”, “<청연>도 비슷할 텐데…”라는 말로 답을 시작하곤 했다. 이성과 논리를 무색하게 하는 직관, 이유를 묻는 행위 자체가 의미없는
<남극일기>를 말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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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게서 딜레마를 배웠죠”
이성욱 | 우선 <친절한 금자씨>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박찬욱 | 현재 편집까지 끝난 상태입니다. 오늘은 사운드에 대해서 처음으로 상의를 했습니다. CG나 디지털 색보정이라든가 그런 종류의 후반작업도 남아 있죠. 이 영화가 어떤 영화가 될지…. 확실한 것은 <복수는 나의 것>과도 다르고, <올드보이>와도 다르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세편 중에서 제일 이상한 영화…. (웃음) 그것도 확실해요. 이영애씨가 하는 행동이나 표정이나 말투나 이런 것이 무슨 생각으로 저러고 다니는지 잘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영화가 한 3분의 2쯤 갔을 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탁 수정하는 순간이 나와요. 갑자기 궤도수정을 하기 때문에 당황하게 될 거예요. 그것이 뭐 매력이라면 매력일 테고. 만약 그것이 실패하면 영화에 그동안 적응해온 관객은 굉장히 당황하고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다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
영화인 7인 특강 [4] - 문소리·박찬욱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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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내 종교이자 남자친구, 무서운 선생님”
“오늘 강연 제목이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캐릭터’인 걸 보면, 저를 다양한 장르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 배우로 평가하신 것 같아요. 소재나 형식에 반복적인 요소가 있고, 그런 것들로 분류될 수 있는 게 장르일 텐데, 제가 출연한 영화 대부분이 장르에 맞추기 어려운 영화들이었어요. 왜 장르와 손 잡고 일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제가 인형 같은 외모가 아니라 사람 같은 외모를 가진 관계로 장르영화와 친해질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장르영화 배우들은 데뷔부터 정해진 타입이 있잖아요. 김지미씨는 모던 여성, 최은희씨는 고전 여성, 장미희씨는 지적인 여성, 그리고 문근영양은 국민 동생, 이런 식으로요. 저는 <오아시스>를 통해서 모든 이미지를 깨버렸다고 생각해요. 6월에 들어가는 것도 비장르영화인데, 그런 인연은 제 관심이 거기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도쿄 필름엑스에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아시아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영화인 7인 특강 [3] - 문소리·박찬욱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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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문소리의 연기론, 친절한 박찬욱의 연출론
5월16일 저녁, 문소리가 연세대 위당관 지하 1층 강의실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흰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 차림, 정갈하게 쪽진 머리의 ‘매력적인 여교수’ 스타일로 등장한 문소리의 미모를 재발견한 기쁨과 반가움이었으리라.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강의는 무슨. 우리 담소나 나누죠”라며 친근하게 운을 띄운 문소리는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캐릭터’라는 특강 테마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와 연기에 대해 솔직하고 속 깊은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놓았다. 대담자인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진행자인 <씨네21> 이성욱 기자, 그리고 관객의 질문에 진심과 성의와 재치로 답변하는 모습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압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강이 끝나자마자 절반 가까운 수강자들이, 그것도 적지 않은 연배의 그들이 사인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악수를 하기 위해
영화인 7인 특강 [2] - 문소리·박찬욱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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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못한 거, 답답한 거, 좋아
이 | 왜 감독 역할에 나를, 또 거짓말하는 발레리나로 심은하씨를 캐스팅했는지 궁금하다.
변 | 스케줄이 비는 배우가 둘밖에 없어서. (웃음) 캐스팅할 때 제일 중요한 기준은 영화감독처럼 보이지 않는 배우, 영화감독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배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형성들, 규정들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으니까. 영화감독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껴야 하고 담배도 피워야 되고 하는 식의. 하지만 나를 포함해 어떤 감독이라도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이정재씨도 배우를 하지 않고 연출부에 들어갔으면 감독이 됐을수도 있다. 그랬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하는 게 중요했다. 이정재씨의 출연작들을 구해 보고, 같이 작업했던 감독들 만나서 얘기 듣고, 또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확실한 캐릭터가 그려졌다. 그렇다면 극중의 은석 이야기도 어디까지 가야 효과적이겠구나 하는 감도 잡혔다. 왜 이렇게 답답하게 그려놨을까 생각할지도 모르지
변혁 vs 이정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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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픽션, 경계의 영화 <인터뷰>
<인터뷰>는 멜로드라마이되 멜로드라마가 아니고, 다큐멘터리이되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픽션이되 픽션이 아니고,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이되 또한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변혁 감독의 <인터뷰>는 하나로 매듭지어 버리기 곤란하게 풍성한 결을 지닌 영화다. 그리고 그 결 사이사이에는 카메라란 영화란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깔려 있다. 변혁 감독은 또, 심은하 이정재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으면서도 스크린에서 그들의 스펙터클을 지워냈다. 이것만으로도 주류영화에서는 파격적인 실험이라고 할 만하다. <인터뷰>는 따라서, 배우 이정재에게도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극중 감독 이정재가 실제 감독 변혁을 인터뷰했다. 극중 감독은 성실히 물었고, 실제 감독은 골똘히 대답했다. 그들은 인터뷰를 나누며 <인터뷰>에서 이런 생각거리들을 길
변혁 vs 이정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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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상
댄 징크스·브루스 코헨 <아메리칸 뷰티>
댄 징크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앨런 볼의 <아메리칸 뷰티>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섹스와 마약, 호모 포비아, 협박과 부정, 도시의 가족 붕괴를 다룬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한가운데 “세상에는 아름다운 게 너무 많아서 가슴이 벅차다”고 말하는 소년 리키가 있었다. 그리고 관객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샘 멘데스, 이 시나리오를 받아들이고, 세계 각지의 관객을 감동시킬 만한 영화로 아름답게 영상화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
브루스 코헨/ 케빈 스페이시, 정말 고맙다. 누구와도 비교 못할 연기를 보여준 아네트 베닝, 그리고 우리 배우, 스탭 모두에게 감사하다. 당신들 모두 대단했다. 이 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 2년 전 이 시나리오를 모두 내쳤지만, 드림웍스는 받아들였다. 글렌 윌리엄스, 스티븐 스필버그, 드림웍스 직원들에겐 아무리 감사의 말을 전해도 부족할 것이다
제72회 아카데미상 [2] - 수상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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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적 아름다움은 오래 지속된다
“뷰티-풀(beauty-full) 나이트.” 새 천년을 맞은 오스카의 선택을 한마디로 요약한 미국 현지 언론의 평대로,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아메리칸 뷰티>로 가득한’ 밤이었다. 현지시각으로 3월26일 저녁, LA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아메리칸 뷰티>는 후보에 오른 8개 부문 가운데 5개 부문을 수상했다. 트로피 숫자만 따지자면 지난해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7개에 못 미치고, 재작년 <타이타닉>의 11개에는 절반도 안 되지만,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까지 노른자위를 휩쓸었다는 점에서는 남부러울 게 없는 성적이다. 수상부문이 주요부문들이라 후반부에 몰리는 바람에 3시간 가까이 박수치기에 바빴던 <아메리칸 뷰티>의 배우와 제작진들은, 촬영상을 필두로 작품상에 이르기까지 아카데미의 하이라이트를 거의 독식했다.
익숙한 소재, 예측된 결과
남우
제72회 아카데미상 [1] - 수상작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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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의 기질에서 처연한 미학이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평전>
<반칙왕> 크랭크인 전날, 연출부 제작부와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가방을 추렸다.
아무 생각없이 가방을 싸다가 “근데 가방을 왜 싸지?” 했다.
지방도 아니고 숙박하는 것도 아닌데. 싸다말고 가방을 골똘히 쳐다보니까 가방이 날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쌀 거야? 말 거야? 이 변덕아.”
그러다 이왕 싸기 시작한거 간편하게 시나리오랑 콘티만이라도 넣어 가기로 했다가…. 2분도 지나기 전에 이것저것 다시 집어넣기 시작했다.
C.D를 넣다 꺼냈다, 긴팔 재킷을 넣다 뺐다 갈팡질팡이었다. 매사 이렇다.
시나리오와 콘티마저도 넣다 꺼냈다 하는데 유독 가방 안쪽 한구석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차 뒷자리에 자리잡은 아이들처럼 딱 버티고 있는 두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과 <체 게바라&g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9] - <체 게바라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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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낮은 목소리2> 제작노트
‘다큐멘터리는 영화의 심장이다’ 라는 말이 있다. 영화사는 다큐멘터리로부터 시작되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도 진실을 찾는 카메라의 역할을 다큐멘터리는 훌륭히 수행해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동안 다큐멘터리 문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획일화된 이른바 문화영화나 TV다큐멘터리만을 볼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의미의 극장용 다큐멘터리는 아예 그 전통이 부재했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문화의 부재는 한국영화문화의 폐쇄성을 드러내는 아주 전형적인 예이다.
그런데, 90년대부터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길을 찾는 것이 아닌) 제작집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푸른영상이나 보임이 바로 그러한 집단으로, 그들은 사막에 싹을 틔우는 것과도 같은 무모한 그러나 의미있는 작업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최근에 변영주 감독은 만 7년여에 걸친 기나긴 하나의 여정을 마무리지었다.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8] - <낮은 목소리2> 제작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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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작가를 만나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
히치콕(1899∼1980)은 이제 신화다. 살찐 이중턱 위로 삐죽 나온 아랫입술과 불룩 나온 배가 그려내는 특유의 실루엣으로 한눈에 그임을 알아보게 하는 이 감독이 영화사에서 거의 신격화된 존재임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바로 지난해 전세계 영화계가 이 거장의 탄생 100주년을 ‘경건하게’ 기념한 ‘사건’이다. 세계의 영화인들은 20세기, 즉 영화의 세기를 히치콕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고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함으로써 보낸 것이다. 영화탄생 100주년과 맞먹을 정도로 자신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인이 도대체 또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 히치콕은 중고등학생 시절 텔레비전의 흑백 브라운관을 통해 다가왔다. 당시 나는 앨프리드 히치콕이란 이름을 ‘서스펜스의 거장’ 정도로 알고 있었다. 여기에 그가 자기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한번씩 얼굴을 내미는 독특한 감독이며, 한 장면 한 장면 손수 스토리보드를 그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7] - <히치콕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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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현장에서 생긴 일
시드니 루멧의 <영화 만들기>
연극의 유산과 텔레비전의 현장성을 잘 결합시킨 시드니 루멧의 영화를 개인적으로 퍽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은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 못 된다. 주목할 만한 데뷔작 <12인의 노한 사나이>나 <전당포> 같은 고전이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았을뿐더러, 명작 <네트워크>도 비디오숍에서 금방 찾기 힘들다. 이런 국내 사정을 고려하면 시드니 루멧이 자신의 영화제작과정을 토대로 쓴 <영화 만들기>는 얼핏 흥미가 덜할 수도 있다. 오히려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교과서적으로 충실히 풀이한 다른 이론서가 도움이 클지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영화 만들기>를 추천하는 것은 이 책이 먼저 연출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서이면서도 동시에 영화에 이론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시드니 루멧은 거장답게 자신의 특수한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6] - <영화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