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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침, 저녁><귀환>은 마흔도 안 된 신인의 구식영화이다. 또한 은사자는 리도의 고급호텔에서 편하게 지내는 영화 관계자들이나 좋아할 만한 <연>에게 갔다. 이탈리아영화의 수상 제외를 뒤로 한다 하더라도 확실해진 사실은 ‘베네치아60’은 아무에게도 거슬리지 않는 전통적인 형식으로 포장된 ‘영화제용 영화’를 위한 것임이 분명해졌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탈리아 영화제작자인 피에트로 발세키 역시 “만일 칸의 프랑스 감독에게서라면 이런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불만을 토로했고 벨로키오 스스로도 “고립된 느낌이다. 아마도 나는 상에 어울리는 타입이 아닌 것 같다”며 자조어린 대답을 늘어놓았다.이런 희비의 쌍곡선 속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던 사람은 바로 기타노 다케시였다. 감독상을 수상한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평단의 고른 지지와 함께 올해로 2번째로 시행된 관객상인 ‘플라스틱사자상’(영화제를 방문한 관객으로부터 수거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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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를 출렁이게 한 3편의 화제작<참을 수 없는 사랑>베니스 = 백은하 lucie@hani.co.kr우연한 죽음이 가져온 파국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아모레스 페로스>를 함께 만들었던 작가, 스탭들과 함께 미국판 <아모레스 페로스>로 불러도 무방할 이야기방식으로 을 찍었다.“21그램… 5센트 다섯개, 벌새 한 마리, 초코바 하나, 어쩌면 영혼의 무게….” 사망 직후 인간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무게에서 제목을 딴 은 <아모레스 페로스>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두 번째 작품이자, 올해 39살의 멕시칸 감독의 첫 번째 할리우드 데뷔작이다.자동차 뒷좌석이 피로 물든다. <아모레스 페로스>와 달리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것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다. 누군가의 총에 맞고 피투성이가 된 폴(숀 펜)과 그런 그를 무릎에 눕히고 안타깝게 울부짖는 크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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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낳은 기괴한 에로틱 스릴러부르노 뒤몽 (29 palms)언제 브루노 뒤몽에게 전적인 지지가 쏟아진 적이 있었던가. 99년 두 번째 작품 <휴머니티>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까지 트리플로 거머쥐었을 때도 그의 영화는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걸작”이라는 평부터 “오만한 예술영화”라는 악평까지 극적인 찬반에 시달려야 했다. 4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영화 로 가는 길 역시 안전한 고속도로로 우회하진 않았다. 남자가 여자를 잔인하게 난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엽기적인 마지막 신이 끝나자 관객석에서 오랫동안 ‘우’ 하는 야유가 터져나왔고, <데일리뉴스>의 별점은 <이메지닝 아르헨티나> 덕에 겨우 바닥을 면했다.영어를 쓰는 한 남자와 불어를 쓰는 한 여자가 LA 29팜스의 모텔에 기거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사막 한복판의 돌 위에서, 돌 옆에서, 혹은 들판에서, 풀장에서 아무데서나, 언제든지, 미친 듯이, 사랑을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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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즐거움은 당신의 수상보다 아름답다.<커피와 담배>베니스 = 백은하 lucie@hani.co.kr니코틴과 카페인에 보내는 연서짐 자무시 <커피와 담배>(Coffee & Cigarettes)1986년 판 <만나서 이상하군요>로 시작하는 <커피와 담배>는 짧고 무의미해 보이는 커피타임을 응축된 삶 그 자체로 묘사한다.<데드맨>(1995)의 윌리엄 브레이크(조니 뎁)에게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혹시 담배 가진 것 있소?” 하룻밤을 보낸 여인도, 생명의 은인인 인디언 ‘노바디’도, 숲속에서 만난 암살자 무리들도 어김없이 담배를 찾는다. 그리고 “모든 영혼들이 생겨나고 다시 돌아가는 세계로” 가는 긴 여행을 앞두고 윌리엄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담배를 찾았어요….” 짐 자무시에게 담배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의 커피와 담배 혹은 그 사이를 떠도는 분위기와 수다에 대한 채집기 <커피와 담배>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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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원하는 게 없기 때문에 화를 내는가?”민병천 감독-김봉석 기자, 뒤늦게 도착한 블록버스터 <내츄럴시티>를 말하다그동안 튜브가 만든 ‘한국형 블록버스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튜브>는 모두 나쁜 평가를 받았다. 앙상한 이야기와 남발되는 특수효과는 번들거리기만 했지 관객의 머리와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환멸만이 남은 지금 뒤늦게 <내츄럴시티>가 도착했다. 사실 튜브에서 가장 먼저 기획에 들어간 블록버스터였지만,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서 막차를 탄 것이다. 몇번의 시사회를 통해서 도시의 전모를 드러낸 <내츄럴시티>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자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불호가 더 많았다. ‘비주얼은 뛰어나지만 이야기는 빈약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민병천 감독의 비주얼이 단순한 테크닉 이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내츄럴시티>의 유려한 영상이
민병천-김봉석,뒤늦게 도착한 <내츄럴시티>를 말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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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천 | 다큐는 지금도 해보고 싶다. 영상 분야에서 제일 자유롭고 매력적이다. 계산하에 영상을 만들어내지 않고, 순간적인 감흥은 너무 매력적이다.김봉석 | 뮤직비디오만의 특성은 뭐라고 생각하나.민병천 | 뮤직비디오는 자유롭다. 신인 때는 전혀 영화가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았었다. 영화는 어렵고 힘들고, 많은 사람들이 지배를 하는 매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츄럴시티>의 작업은 나한테 굉장히 자유로웠다. 뮤직비디오는 제작 프로세스도 자유롭고, 결과에서도 자유롭다. 감독만의 영상을 만들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들고 싶지만 일년에 한편 정도만 하면 좋겠다. 자주 하게 되면 타성에 젖는다. 화면을 예쁘게 하는 기법이 있기 때문에 그걸 자주 쓰게 되면 자신 안에 갇히게 되는 게 싫다.김봉석 | <유령> <고스트>, 둘 다 보긴 했지만, 가장 감독님다운 작품은 <내츄럴시티>라고 생각한다.민병천 | 나도 그렇다. <유령>은 지
민병천-김봉석,뒤늦게 도착한 <내츄럴시티>를 말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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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마녀 혹은 영화천재레니 리펜슈탈, 존경과 비난의 생을 마감하다김미숙/ 베를린 훔볼트대 영화학 박사·경기대 대우교수21세기가 시작된 지 불과 몇년 지났지만 20세기의 기나긴 시간은 어느새 과거의 역사로 반듯이 자리를 잡고 지난 100년간 일어난 무수한 일들은 이제 잊혀지거나 묻혀서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며 해결과제로 남아 있는 것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끼친 영향이고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되는 것이 가해자가 범한 죄의 행위이다. 비록 독일이 통일이 되고 유럽이 하나로 가고자 하지만 여전히 기록영화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를 단순한 역사의 기록으로서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상기하고자 하는 의미이기 때문일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독일의 영화감독이었던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의 죽음은 잊혀졌던 또는 잊혀지길 원했던 과거사에 대한 논쟁의 불씨를 다시금 불러일
레니 리펜슈탈, 존경과 비난의 생을 마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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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風流男女生活館(조선풍류남녀생활관)
본격 한국 코스튬드라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일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내면이라고? 내용이 문제지 형식이 무슨 대수냐고? 이 구구절절 옳은 가르침들을 한순간에 우스갯소리로 만드는 장르가 있으니 바로 코스튬드라마(costume drama)다. 시대극의 비슷한 말인 코스튬드라마는 구경거리의 장르다. 이 세계에서 외관과 치장은 고해성사만큼이나 진정하다. 옛 집과 거리가 노래를 부르고 사락거리는 옷자락이 메시지를 속삭이는 코스튬드라마에서 눈요기는 부록을 넘어서는 영화의 본론이다.
지나간 시대의 의식주를 연대를 명시하는 기호 정도로만 이용하는 시대극이 많았던 상황에서 10월 초 개봉하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기억할 만한 한국의 코스튬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침이 마르게 예찬하는 한국의 미가, 5천년 전통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정녕 저게 다일까?” 기존의 TV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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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色男女의 장롱을 열다
색으로 드러낸 우아한 화려함 - 복식
소박하고 단아한 것은 사대부의 옷이고 화사하면 화류계의 옷이라는 통념은 100% 맞는 것일까? 누구나 입에 올리는 한국의 선이란 무엇일까? 한국적 색채는 또 어떤 것일까?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옷을 짓는 작업(의상팀장 김희주)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시대극의 장롱을 다시 열어보고 먼지를 털어내는 것으로 첫 바늘땀을 떴다. 이재용 감독과 정구호 디자이너가 합의한 컨셉은 ‘우아한 화려함’. 장식없는 과묵한 디자인의 한복만 우아한 것으로 치는데, 돈으로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명품족이 조선 시대인들 없었겠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경박하지 않은 화려함, 장인정신이 깃든 고급스러운 화려함이라는 면에서 굳이 빗대자면 ‘베르사체보다 헤르메스’에 근접한 스타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영·정조 시대는 풍속도가 증언하듯이 여성의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통이 좁아진 시대였으며 몸매를 드러내는 게 유행이었다.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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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인 정씨
금욕의 푸른색
“남녀가 유별한데 발도 치지 않고 어찌 대면할 수 있겠느냐고 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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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을 하사받은 숙부인 정씨는 시집도 오기 전에 정혼자가 급사한 청상과부로 유행이나 치장과는 거리가 먼 여인이다. 사랑받지 못한 공허감을 사랑을 베풀어 채우려고 하는 그녀는 천주학에 이끌리며 봉사하지 않으면 독서와 수놓기로 소일하며 마음의 평화를 가꾼다. 물론, 천하의 능수능란한 유혹자 조원의 눈이 그녀에게 머물기 전의 이야기다. 숙부인의 테마색은 청아하고 금욕적인 푸른색이다. 몸에 붙이는 보석도, 광채나는 귀금속을 즐기는 조씨와 대조적으로 비취와 옥이다. 단정한 쪽머리를 유지하는데 흔히 사극에 쓰이는 일제 시대식의 칠보 비녀 대신 백동과 은을 쓴 비녀, 전문 장인이 옥을 덩어리째 깎아 이음새 없이 만든 비녀를 감상할 수 있다. 간결한 죽잠도 잘 살펴보면 끝의 섬세한 옥 장식을 볼 수 있다.⑤ 유행에 맞춰 일자 소매, 바짝 잘린 저고리를 맵시있게 입는 조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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快樂男女 담장을 넘다
조선 팔도 한옥의 세심한 콜라주 - 세트
“아흔아홉칸 집을 아예 지으면 안 될까요?”
처음 욕심은 그랬다. 팔도에 흩어져 있는 이름난 한옥을 둘러보았지만 카메라의 눈으로 뜯어보면 흡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월의 옹이와 생채기. 고풍스러운 멋은 있었으나 너무 낡고 보존 상태가 허술하여 현재 당당한 부호가 생활하는 저택에 걸맞은 위풍당당한 화려함은 스러진 지 오래였다.
논의 끝에 미술팀은 극중 드라마의 헤드쿼터 격인 유 대감 댁 안채 부용정(芙蓉亭)을 남양주 종합촬영소 실내에 건립하기로 했다(건축비 4억5천만원). 부용정과 더불어 영화의 50%가 이루어지는 조원의 별채, 숙부인의 우화당, 좌의정 대감 댁, 자근노미의 방 등 9개가량의 방 내부 세트도 지어졌다.
부용정의 설계는 코스튬드라마의 프로덕션디자인에 있어 고증과 창작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보여주는 일러스트레이션이라 할 만하다.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고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구상을 폐기하지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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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장식
공단으로 벽을 입힌 솔향기 나는 방
조선 후기 일부 계층이 누린 일상의 사치는 ‘생활의 질’에 집착하는 요즘 부유층이 무색할 정도로 한계를 몰랐다고 정구호 프로덕션디자이너는 말한다. 온돌을 깔 때에도 구들 위에 솔방울을 올리고 가열해서 흐르는 송진으로 공사를 마감했고 불을 땔 때마다 솔향기가 은은히 감돌게 했으며, 부유한 가정의 도배는 종이뿐 아니라 비단도 썼다. 바닥이야 재현할 도리가 없었지만 조씨 부인의 방 내벽에는 비단을 발랐다.② 가구는 방 주인의 성격에 어울리는 취향을 가정하고 골랐다. 제작은 명인으로 공인된 소목장, 자개장이 맡았고, 어느 방에 들어서나 어슷비슷한 고가구로 채워진 기존 사극과 달리 나무의 종류를 달리해 전통 목가구 안에 존재하는 차이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켰다. 서안부터 자그마한 경대까지 조씨 부인 방의 가구 일습은 자개를 박았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동물 문양에 흑칠한 자개 가구가 아니라 가느다랗고 날렵한 당초 문양에 옻칠을 한 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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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넘어, 자해의 미학을 넘어김기덕 신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글 남동철 namdong@hani.co.kr대부분의 관객에게 김기덕의 영화는 두렵다. 강간과 자해와 살인의 그 끔찍한 형상은 그의 영화에 대한 호오를 극단적으로 갈리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김기덕의 9번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김기덕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영화에는 관객을 경악하게 할 만한 잔혹한 이미지가 없다. 언 고등어와 낚싯바늘과 유릿조각이 생살을 파고들 때 들리던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잦아진 자리, 그곳에 300년 된 왕버드나무를 품에 안은 그림 같은 호수가 있고 그 호수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있었을 것 같은 작은 암자가 있다. 신선이 노닐 듯한 풍경, 김기덕 감독은 혹시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도착한 것은 아닐까? <봄 여름…>은 이 도원경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물끄러
김기덕 신작,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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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하면서 상승하는 작가 김기덕그렇다면 <봄 여름…>은 김기덕 영화의 새로운 경지인가? 당연한 의문이 생기지만 이런 질문에는 함정이 있다. <봄 여름…>을 특권화해 김기덕의 전작을 폄하하거나 김기덕의 전체 영화를 편의적으로 나누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구분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널리 알려진 대로 김기덕은 그때그때 형편이 닿는 대로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다. 아주 뛰어난 작품도 있고 다소 처지는 작품도 있지만 그는 자기식의 영화를 포기한 적이 없으며 데뷔작 <악어>부터 <해안선>까지 스타일과 세계관은 일관성을 지켜왔다. <봄 여름…> 또한 다르지 않다. 악명 높은 잔혹묘사가 없다고 해도 호수에 떠 있는 암자의 풍광만으로도 김기덕 영화의 표식은 선명히 드러난다. 김기덕 감독 자신은 <봄 여름…>을 ‘롱숏의 영화’라고 부른다. 전작들이 인물의 세부를 묘사하는 클로즈업의 영화 혹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그리는 풀숏의 영화
김기덕 신작,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