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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9일 동안의 여정을 끝마쳤다. 10월10일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 상영을 마지막으로 스크린을 거둔 이번 영화제는 예년과 달리 한달가량 앞당겨 치러졌다. 높고 화창한 가을 날씨의 엄호 아래 벌어진 이번 축제는 ‘해운대 원년’이라는 점에 시선이 모아졌다. 남포동에 자리했던 영화제 사무국이 수영만 요트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겨 게스트들의 행렬을 이끌었고, 해운대쪽 상영관도 10개관으로 늘어나 관객의 발길을 유혹했다. <인디펜던트>에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 로저 클락은 “지난해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해운대가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아름다운 해변과 밤마다 벌어지는 파티는 게스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는 말로 해변의 영화제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3년 만에 부활된 야외상영 큰 호응
날로 커져가는 부산영화제의 규모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영화제쪽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공식 게스트 규모만 5329명. 지난해 5318명과 비슷한 수준이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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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의 취미가 스포츠에 국한돼 있던 게 아니었다.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고 혼자서 사진책에 밑줄 그어가며 자습을 하던 그가 드디어 ‘작품’ 수준의 영상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스캔들-남녀조선상열지사>의 제작현장에 사진책과 더불어 라이카M6, 니콘F5 등을 들고 다니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주로 스탭들을 주인공 삼아 찍었지만 아름다운 풍경도 잊지 않았다. 그 순간들이 자연스레 <스캔들…>의 제작일지가 되었다. 고맙게도 배용준은 <씨네21>을 위해 사진 인화를 직접하고, 베스트라고 생각되는 컷들을 직접 골라(본인이 직접 고르지 않은 사진은 제작사에도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코멘터리를 달아주었다. 여기에 모처럼 새로운 사극을 만들어내기까지 어떤 험난한 여정을 거쳐왔는지 이유진 프로듀서가 따로 제작일지를 만들어주었다. 흑백사진은 모두 배용준의 작품이며, 컬러사진은 스틸기사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배용준의 <스캔들> 포토코멘터리
“앞
<스캔들> 제작기 [1] - 배용준의 포토코멘터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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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느니 담배요! 빠지느니 살이구나”
하지만, 역시 세상에 만만한 일은 하나도 없다. ‘하였더이다’, ‘아니겠소’ 등 대사들은 거의 외국어처럼 느껴질 정도이고 그 분량도 만만치 않다. 거기다가 이 조원이란 캐릭터의 느물거림은 상상초월. 달콤한 대사야 수도 없이 해봤고 눈물도 많이 흘려보았지만 입으로는 순정을 고백하며 돌아서서 야비한 미소를 날리는 이자의 경지는 쉽지가 않다. 말수 적은 이재용 감독님도 속으로는 걱정이 많은 눈치다. 아아∼ 끊었던 담배에 자동으로 손이 간다. 따로 다이어트를 안 해도 살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부러 살빼지 않아도 될 것을 그랬다. 양수리 종합촬영소 세트장에서 부용정 장면을 한참 찍던 두달 중 언제 찍힌 사진인지는 모르지만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부담감과 중압감을 담배 연기에 실어 날려보내고 싶었을까….
“요씬에서 감독님은 참으로 야릇하더이다”
요씬… 사극의 베드신을 부르기에는 참 재치있는 작명이다. 조원이 잠자리를 함께하
<스캔들> 제작기 [2] - 배용준의 포토코멘터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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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은 돈 그리고 관리아저씨들과의 투쟁이라오
1998년 겨울 “지금, 사극이라고 하셨소이까?”
추석시즌에 <정사> 개봉을 하고 딩가딩가 놀고 있을 때였다. 이재용 감독님과 다음 영화 아이템을 이야기하다가 감독님이 ‘사극’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허걱, 웬 사극? 그러나 우리만의 독특하고 스타일리시한 사극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감독님의 설명에 재미있는 도전일 것 같은 호기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제작환경에서 제작비가 많이 드는 시대극은 구체적으로 진행되기가 어려웠다. 이재용 감독님은 <순애보>를 준비하고, 가끔씩 만나 “우리 그 사극은 언제 하는 거야?” 농담 삼아 이야기하면서 내러티브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 18세기 프랑스 쇼데를로스 드 라클로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를 각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 지구반대편 조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안 일어났으리란 법은 없지 않을까?
<스캔들> 제작기 [3] - 이유진 프로듀서의 제작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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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돈이 둥둥 떠 있지요?”
이재용 감독, 정구호 미술감독, 임재영 기사님…. <정사>를 같이 할 때도 익히 겪었던 그들의 안목과 디테일을 누가 따라가랴. 게다가 김병일 촬영기사님도 ‘원칙’을 중요시하는 철저한 완벽주의자였다. 의상과 소품, 세트. 조명… . 무엇 하나 쉽게 되는 법이 없었다. 주·조연배우들의 의상을 일일이 손염색해서 평생 한복만 만들어오신 분이 손바느질로 하나씩 만들었다. 꽂이와 노리개 등 장신구도 박물관에서 거의 훔쳐오다시피 빌려오니 흠집 하나라도 나면 안 되고, 화각장, 자개장, 자수장을 비롯한 소품가구들은 ‘장인’들이 몇달에 걸쳐 만든 고가의 작품들이었다. 협찬은커녕 분위기는 거의 “너희들이 나의 장인정신과 예술세계를 알기나 해?”였다고나 할까….
1세트 500여평에 꽉 차도록 조씨 부인의 안채 ‘부용정’을 지었다. 연꽃이 떠 있는 연못에 누다리와 마당까지 있는 양반집을 짓고 나니 그럴듯했지만 그 넓은 규모의 세트를 조명하려니 어마어마
<스캔들> 제작기 [4] - 이유진 프로듀서의 제작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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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는 매년 60∼70편의 영화를 생산해왔다. 영화계에 돈이 넘치는 시기든 금융자본이 대거 철수하던 시기이든 제작편수의 변동폭은 크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투자가 많을 때 제작편수가 늘고 투자가 줄 때 제작편수가 주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영화는 자동차 찍어내듯 공장만 늘린다고 양산되는 것이 아닌 탓이다. 투입되는 자본과 생산되는 제품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공정은 시나리오를 만들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스탭을 구성하는 매우 수공업적인 공정이 끼어 있다. 골방에 틀어박혀 한 장면 한 장면을 써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의기투합하는 과정은 돈이 많아진다고 획기적으로 달라지기 힘든 일이다. 어떤 영화든 일정한 시간이 축적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10월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제작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새 영화들의 면면은 그 같은 시간의 결과물이다. 대부분 내년에 개봉할 예정인 이들 영화는 적게는 1∼2년, 많으면 5∼6년의 기다림 끝에 카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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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존재, 행복... 그건 다 오해야
<유혹의 기술> | 김대우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김대우라는 신인감독은 생소할는지 몰라도, ‘시나리오 작가 김대우’는 꽤나 익숙한 이름이다. <송어> <정사>부터 최근 개봉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까지, 그는 충무로 시나리오계에서 이미 안정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는 작가다. 그런 그가 ‘감독선언’을 했을 때 “백이면 백, 극렬하게 뜯어말렸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본 만화 중에 아들은 굉장히 열심히 살고, 아버지는 엉망으로 사는 부자이야기가 있다. 마지막쯤에 두 부자가 베란다에서 ‘남자는 늙으면 어떻게 봐도 다 똑같아 보여’라고 말하는데, 만화 가게에서 펑펑 울게 되었다. 싸한 느낌이랄까. 인생에서 결과는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감독으로 성공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루빨리 영화의 가까운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고 싶었다.” 결국 이 작가의 감독행은 흔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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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어둠 속에 빛을 밝혀라!
<안녕! 유에프오> | 김진민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김진민 감독은 지금까지 “저예산 조감독”으로 살아왔다. 전수일 감독의 독립장편영화 <내 안에 부는 바람>으로 영화인생을 시작한 그는 <세기말> <눈물> 등을 거치면서 혹독하게 단련됐고, 7년 세월을 칼만 갈았다.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감독이 되려 했지만, 하나도 멋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발을 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영 운이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관상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철수필름 공채에 합격한 첫걸음도 행운이었지만, 뜻이 맞는 친구 이해영과 이해준 작가를 만난 것도 천운이었다. <안녕! 유에프오>는 <품행제로>를 쓴 이 젊은 작가들과 김진민이 함께 방구석을 헤집으며 만들어낸 시나리오다.
이해영·해준 작가가 처음 썼던 <안녕! 유에프오>는 여피족이 등장하는 멜로영화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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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사이에서~ 사랑이 시작되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 | 배형준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이제는 정말 보기 힘든 시스템으로 감독된 거죠.”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배형준(37) 감독은 늦깎이로 첫 연출작을 맞이한 소감을 그렇게 말한다. 그는 1992년 <우연한 여행>에서 연출부 막내로 시작한 이후, <네온속으로 노을지다> <맨>을 거쳤다. 그리고는 지금은 ‘형, 아우’ 하는 한지승 감독 밑에서 오랫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다. 한지승 감독이 공동대표로 있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제작사 ‘시선’ 창립도 함께 도왔다.
배형준 감독은 원래 데뷔 준비작으로 자신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영진위 2002 하반기 시나리오 당선작 <비둘기 둥지로 날아든 뻐꾸기>를 우연히 보게 됐다. “내 거는 이거만큼 풀려면 시간이 훨씬 더 걸릴 것 같아서” 방향을 선회했다. “원래 코미디와 멜로를 지향”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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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고딩과 싸가지 대딩의 우격다짐<내사랑 싸가지> | 신동엽 감독-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글만 써왔다. 동명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내사랑 싸가지>로 데뷔하는 신동엽(27) 감독은 그동안 시나리오만 여러 편 작업했던 사람이다. <기막힌 사내들> 연출부로 일한 뒤 스물셋, 늦깎이로 군에 입대하면서, “남들보다 늦게 간다는 것부터 뒤진다는 생각에 뭐라도 하나 해놓고 가자”고 결심해 <동감>을 썼다. 제대 뒤 인터넷을 뒤져 다섯편 영화의 연출부 구인 소식을 알아냈다. “그쪽에서야 날 뽑는 거지만 내 딴엔 내가 고르는 거라서” 강제규필름 투자에 정초신 감독, 안재욱 주연이라는 영화 <비트겐슈타인> 연출부에 합류했다. “나름대로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5개월 만에 엎어졌다. “단추가 두칸 정도 어긋난 출발이었지만” 운좋게도 제작사가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느냐 해서 <유아독존> 시나리오를 썼다. 이후 <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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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추억을 찾아서<아홉살 인생> | 윤인호 감독-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마요네즈> 이후 윤인호 감독이 영화의 소재를 건져올린 건 번번이 소설에서였다.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계획들이긴 하지만, 윤인호 감독은 황석영의 단편 <몰개월의 새>, 신경숙의 중편 <그가 모르는 장소>의 각색작업을 거의 마친 상태다.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문인들이다. <마요네즈>를 좋게 봤다며 연락을 줘서 알게 된 김운경 작가와는 그새 네팔 여행까지 다녀왔고, 틈만 나면 장터 여행을 함께 가곤 한다. “나이 들어서 책을 열심히 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책에서 소재 찾고 작가들과 어울리고… 그렇게 되네요.” 황기성사단에서 <아홉살 인생>을 맡아달라며 윤인호 감독을 부른 것도 우연치곤 기막히다. 90년대 초반에 출간된 <아홉살 인생>은 10여년간 꾸준히 인기를 모았지만, 지난해 MBC의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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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그러진 ‘스위트홈’의 기억현대가족의 이면을 그린 또 하나의 공포영화 <아카시아> 그리고 감독 박기형가족은 괴물이다. <장화, 홍련>이나 처럼 박기형 감독의 신작 <아카시아>도 가족의 폐부에 기생하는 비극을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그려낸다. 화사한 꽃무늬로 단장한 집이 기괴한 사이코드라마의 무대가 됐듯, 단란한 가족을 위해 마련한 4인용 식탁에 죽은 아이들의 냉기가 자리하듯, 앙상했던 아카시아 나무가 꽃을 피울 때 그 속에선 죽음의 향기가 배어난다. 2003년의 가족호러 3부작라 불러도 좋을 세편 가운데 <아카시아>는 못지않게 불온한 영화다. “내 쉴 곳은 오직 집, 내 집뿐”이라고 노래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가족의 초상은 뒤틀리고 일그러진다. <아카시아>는 가족이 괴물이 된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는 영화다. <여고괴담>에서 우리의 학창 시절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들추어냈던 박기형은 이 영화에서 가족의 포근함 속에 깃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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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형 감독 인터뷰소통이 단절되는 순간이 바로 두려움의 시작“제발 호러 전문 감독이라고 쓰지 말아주세요. 다음엔 코미디 하고 싶어요.” 다소 의외지만 박기형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1996년 단편 <과대망상>에서 올해 <아카시아>까지 7년간 어두운 상상력에 짓눌렸던 탓이다. 어쩌면 <아카시아> 이후 한동안은 박기형의 공포영화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오랜 시간 공포영화를 고민했던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아카시아>는 <여고괴담>의 제목이 될 뻔했다고 들었다. 오래전부터 아카시아에 대한 공포영화적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다. 아카시아에 대한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다. 아카시아향이란 게 따로 방향제로 팔 만큼 향기롭고 꽃이 피면 예쁘고. 어릴 때 노래 있었잖나.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그런 식으로, 아련하고 예쁘고 추억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아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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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시인의 초상사망 40주년 시인 장 콕토의 ‘빛의 잉크’로 쓴 시(詩) 영화세계 조명홍성남 / 영화평론가장 콕토의 영화들 속에서 시인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그 어둠의 세계로부터 귀환하는 존재로 종종 그려진다. 그의 마지막 영화 <오르페의 유언>에서 콕토 자신이 연기한 시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이런 식의 부활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었는지 1963년 10월의 어느 날 콕토는 절친한 친구였던 가수 에디트 피아트에게 자신들의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 대해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우리의 의사들은 아는 게 없어. 우리가 죽고 난 걸 보고 나서야 우릴 되살려내려나봐.” 며칠 뒤 두 사람은 같은 날 몇 시간의 간격을 두고 차례로 이 세상을 떠났다. 물론 초현실적 혹은 몽상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콕토의 영화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에서도 발생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의 영화에서와 달리 죽음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무심하게 시간만 흘렀을 뿐인 것인데 바로 그렇게 지
영상시인 장 콕토 Jean Cocteau(1889~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