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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타고 돌아온 정열의 에스메랄다<병사는 죽어서 말한다>에서 <고독이 몸부림칠 때>까지, 선우용녀I’m back_ 평범하고 솔직한 가정의 거실로단정한 머리에 굵직한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 화사한 오렌지빛 투피스 차림을 한 선우용녀는, TV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고상한 아줌마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이 익숙한 스타일은, 바꿔 말하면 ‘중년연기자’라는 용어의 실제적 정의이고 선우용녀에 대한 우리 세대의 첫 기억이다. 엄마의 위치에 대한 딸의 첫 기억이 ‘여보’, ‘아무개 엄마’ 혹은 ‘아줌마’이듯이. 그래서 <순풍 산부인과>의 오 박사 부인 ‘용녀’로 시작되는 두 번째 기억은 중요하다. 여기서 그가 보여줬던 이른바 ‘망가진 아줌마’ 캐릭터는, 기존 드라마의 그것으로부터 90도 이상 틀어져 있으면서도 선남선녀 청춘배우들이 홍보용 멘트처럼 “저 망가졌어요”라고 말하는 것과도 달랐다. “의사, 판사 부인은 어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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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 살인의 현장으로 돌아온 영화청년<영자의 전성시대>부터 <살인의 추억>까지, 배우 송재호I’m Back_ 사막의 모래바람을 타고2000년 7월 송재호(61)씨는 김성수 감독의 전화를 받았다. 8월부터 중국에서 촬영할 영화 <무사>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 무렵 그는 아직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막내아들이 28살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죽고 한동안은 기억력을 잃어버렸다. 두줄짜리 대사를 외우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해 6월20일부터 세실극장에서 모노드라마를 했는데 그걸 하면서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 그 연극이 끝나기 직전 <무사>에 출연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고. 딱 필요한 시점에 다시 영화를 만난 셈이다.” 아들의 죽음과 영화의 부름은 묘하게 엇갈렸다. 아들의 유해를 평소 아들이 수상스키를 즐겨 타던 미사리 근처 한강에 뿌린 그는 양수리 종합촬영소를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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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버린 미국, 할리우드와 TV는 어떻게 광기를 실어나르나
최근에 연달아 개봉한 <미녀 삼총사> <헐크> <컨페션>, 그리고 올해 초에 선보였던 <캐치 미 이프 유 캔>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섹시한 언니들을 내세워 소프트포르노의 쾌락을 노린 <미녀 삼총사>,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위반하면서까지 초록 괴물의 슬픔에 집착한 <헐크>, 미디어와 정치의 착란상을 요지경 속으로 묶어낸 <컨페션>, 유려한 솜씨를 가진 사기꾼이 날 잡아보라며 활개치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미국영화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외견상 아무런 닮은 점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한석 기자는 이들이 ’미국’영화라는 바로 그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네편의 영화가 TV시리즈나 TV쇼를 통해 먼저 유명해진 다음 영화화됐거나 영화의 소재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대중문화 상품의 대대적인 인기는 그 사회의
할리우드 속 TV,미국의 분열을 말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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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포커스>를 <컨페션>과 연이어 말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텔레비전의 아이콘에 미국이라는 이름을 덧입혀 이중적인 잣대를 재보는 영화들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텔레비전 쇼의 주인공들이 그 대부분이다. <시네아스트>가 “<호건스 히어로>가 역사적 외설로 공격받았다면, 척 배리스의 플릭 쇼는 문화적 역병으로 경멸받았다”고 두편의 쇼에 대해 비교분석을 할지언정 두편 모두 인기를 얻었다. 대중은, 미국은, 여기에, 이들에게, 광분했다. 대신 그 주인공들이 미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부연하자면, 텔레비전 쇼의 주인공들을 불러들이는 영화에는 다른 이유의 한축이 있다. 텔레비전 ‘쇼’ 자체를 부정하고, 쇼 비즈니스 산업으로서의 텔레비전을 비판하는 영화들이 있다. <트루먼 쇼>는 텔레비전의 기획된 세트장 안에 갇혀 일생 동안 양육된 남자를 주인공으로 텔레비전의 관음증에 비판의 칼날을 세웠고, <퀴즈쇼>는 조작으로
할리우드 속 TV,미국의 분열을 말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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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섹스를 즐기는 바람난 여자들이 온다
역사와 삶이 일관된 의미나 방향을 갖고 있다는 믿음에 소극적인 시대이지만, 그래도 만약 한국 영화사를 굳이 한줄로 꿰어보자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것은 영화 속 여성들의 모습이다. 남성감독들의 시선을 통해 빚어지고 남성주인공들의 고뇌와 욕망에 따라 부침하면서도, 그녀들은 지금 여기 내 삶의 기원을 서글프게, 때로는 매혹적으로 재구성해준다.
근대 이후, 그러니까 영화 속에 삶이 기록되기 시작한 이후, 여성이 문제적 존재로 되는 것은 늘 육체로부터 비롯되었다. 지적이고 도전적인 신여성의 삶을 살았던 초창기 여배우 복혜숙은 영화 속에 종아리가 노출되고 남자배우와 대낮에 손을 잡는 장면 때문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비너스다방의 마담으로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고 일제 당국에 보내는, 말하자면 육체의 욕망을 공인하라는 정치적 청원서에 서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유혹과 봉쇄를 동시에 뜻하는 한복 아래로 그 아름다운 육체를 감추고 있던 최은희
바람난 여자들이 온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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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싱글? No, 쿨한 싱글!
섹스를 제대로 알게 되서 쿨해지는 걸까, 쿨해서 섹스를 잘하는 걸까
여성의 섹스에 대한 온전한 성찰은 5년 전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처음 제기됐고, 할 만한 말을 죄다 해버렸다. 이 기념비적 작품에서 연(진희경)은 가장 ‘쿨’하지 못한 캐릭터여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연은 섹스를 사랑과 분리하지 않으며 당연히 결혼과도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작 그가 섹스를 할 때면 불감증이다 못해 고통스러워한다. 그랬던 그가 비로소 오르가슴에 오른 순간은 그의 꿈이었던 ‘가야금 연주론’(남자를 가야금처럼 눕혀놓고 애무와 삽입의 타이밍과 방식을 주도적으로 펼치는 것)을 실행할 때였으며, 그 시기는 결혼을 전제로 집착했던 남자(조재현)와의 관계에서 ‘쿨’해졌을 때다. <밀애>의 미흔은 쿨해지면서 섹스를 즐기게 된 연의 경우와 반대다. 미흔은 윗집 남자에게 어떤 매력을 느꼈다는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은 채 그가 제안한
바람난 여자들이 온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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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병든 게 변명이 되니?
나는 이 여자가 싫다 -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주일매
박은주/ <한국일보> 기자
(얼굴 모자이크 처리, 음성 변조) “처음엔 그 여자가 저를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육관에서 결혼한다는 게 제 스타일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참았죠. 그런데 그 여자, 죽을 병에 걸리고도 아무 말도 없이 저랑 결혼을 하려고 했다니 말이 됩니까? 부모님은 그날 충격을 받고 아직도 매일 아침 공복에 우황청심원을 두알씩 복용하고 계십니다. 이거 결혼사기 아닙니까?”
“일매는 지가 지키겠심더.” 여자친구에게 손끝 하나 안 대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는 손태일(차태현)이나, “니만 믿는다”는 선생 영달(유동근)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육체와 정신의 합일점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설교하거나 ‘가부장적 틀을 온존시키려는 구시대적 인물’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일종의 낭비다. 이른바 ‘대박’영화, 혹은 멜로영화에서 제대로 여성성
바람난 여자들이 온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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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속물기지배, 꼭 끌어안아주고 싶은
나는 이 여자가 좋다 - <고양이를 부탁해>의 혜주
김은형/ <한겨레> 기자
그녀는(솔직히 그년은) 밥맛이다. 약속에 늦은 주제에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다짜고짜 “너 이거 집에서 한 거지?” D.I.Y. 방식으로 공들여 물들인 머리꼭지에 재를 뿌리고, 보태주는 것도 없으면서 “유학은 아무나 가니? 돈이 있어야 가지” 염장을 지른다. 게다가 또래의 회사 동료들에게는 만날 튕기면서 상사에게 생글거리는 꼴이라니….
뒷담화는 지금도 나의 특장이기는 하지만 스무살 무렵 혜주를 만났다면 나는 허구한 날 다른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과 모여 혜주의 ‘뒷담화’를 ‘깠을’ 거다. “쟤 진짜 재수없지 않냐?” “그렇게 잘나서 얼마나 잘되나 보자.” 그러고는 혜주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나 또한 ‘티나지 않게’ 개발에 땀나듯 종종거리고 살았겠지.
그러나 서른살 무렵 우리는 ‘본의 아니게’ 친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부가가치 인생
바람난 여자들이 온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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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열흘을 위한 불면의 5일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지금 중반에 접어들었다. 관객(독자)의 최대 관심은 무슨 영화를 볼까 하는 선택의 문제일 것이고, 본 영화들과 볼 영화들로 화제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개막 5일 전부터 개막 직전까지의 그 시간을 다시 헤아려보기로 한다. 객석과 스크린 사이의 충만한 교감의 시간이 아니라, 텅 빈 극장과 그 바깥에서의 분주함으로 이분되어 있는 노동의 시간에 대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을 들락거리며 같이 걸어본 개막 직전 5일간의 동행기. - 편집자Prologue장철의 황홀경에 넋이 나가고, <문 차일드>의 발칙함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영화의 신선이 되어 있을 여러분들에게 제시하는 영화제 개막 전 사무국 풍경으로의 ‘플래시백’. 190여개의 판타지를 위해 1분 1초도 쉬지 않고 땀흘려 준비하는 현장, 거기에 그들이 있었다. 축제는, 기어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자막 삼매경에 빠져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자막 요
2003 부천 판타스틱영화제가 개막하기까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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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깜찍한 얼굴 속에 누가 들어있는 걸까.사람인데 사람이 아니예요_둘리와 공실이세탁소에 갔던 둘리와 공실이가 개막식 전날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개막식 때는 게스트들을 맞이하는 호스트 중 일원으로, 패밀리 섹션 상영기간 동안에는 행사장 내외곽을 돌며 어린이들의 상상을 넓혀줄 친구로, 둘리와 공실이는 여러모로 이번 영화제의 일꾼이다. 그런데 이 둘리와 공실이에게는 몇 가지 철칙과 어려움이 있다. 그러니까 그 안에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해야 한다. 홍보팀 윤동희씨의 진땀나는 경험담 몇 가지. 둘리 인형과 함께 인근 거리홍보에 나섰을 때 등 지퍼가 열린 걸 본 아이들. “저거 사람이죠?” 놀란 윤동희씨. “아니야~, 사람 아니야.” 또는 “안녕!”이라고 예쁜 목소리로 인사해야 하기 때문에 공실이(둘리의 여자친구) 안에는 여자요원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부천영화제 팀원들의 운동회 때 잠시 출연했던 공실이, 그 인형을 입고 있던 남학생은 짜증
2003 부천 판타스틱영화제가 개막하기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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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아직도 협객의 피가 흐른다‘홍콩영화의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쇼 브러더스 회고전을 준비한 부천영화제는 그 전설의 아름다운 핵심 정패패를 초대했다. 정패패는 회고전 중 두편 <대취협>과 <금연자>에서 모두 금연자를 연기한 배우. 그녀는 대조적인 스타일을 확립한 호금전과 장철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영감은 초월적이거나 뜨거운 무협의 기운으로 다시 바다 건너 소년들의 심금을 울렸다. 전설을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긴장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떨리는 마음으로 도착한 서울 외곽 메이필드호텔. 옛 영화처럼 수목이 무성한 정원을 앞에 두고 걸어나온 정패패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와 자신이 함께한 감독의 기억을 들려주었다. - 편집자정패패는 1960년대 ‘무협영화의 여왕’(武俠影后)이라고 불렸던 배우다. 끝부분이 제비 날개처럼 날카로운 비수 두 자루를 휘두르는 여검객 금연자(金燕子)로 기억을 남긴 정패패는, 홍콩 무협영화의 양대 산맥이었던 호금전과 장철 두 감독 모두
부천영화제에서 무협영후 정패패(鄭佩佩)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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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7월20일 23시30분.
그날, 그 시각, 그는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진정한 용이 되었다. 5년 뒤 미리 찍어둔 격투장면을 활용한 <사망유희>가 나왔고, 미망인 린다 리가 쓴 <Bruce Lee, the man only I knew>를 기초로 전기영화 <드래곤>(감독 롭 코언, 출연 제이슨 스콧 리)이 만들어졌다. 기묘한 괴조음을 내던 이소룡의 모습이 그대로 뇌리 속에 남아 있는 동안, 30년이 흘렀다. 이제 할리우드에서는 성룡과 이연걸이 활약하고 있고, 액션영화는 홍콩 출신 무술감독들이 만들어낸 마셜 아트가 휩쓸고 있다. 과거 이소룡이 염원했던, 첫발을 내디뎠지만 돌연한 죽음으로 무너졌던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 무술의 위대한 계승자, 가장 위대한 중국인
이소룡이 영화와 무술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이소룡은 기준을 세워놓았다. 이소룡이 마셜 아트에 끼친 공헌은 로큰롤에서 엘비스, 농구에서 마이클
사망 30주년, 이소룡 다시 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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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권도에는 동양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절권도가 단지 실용적인 무술만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절권도가 특공 무술과 다른 것은, 그 안에 동양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에게 쿵후를 가르치던 이소룡은 자신의 무술이 동양 문화의 일부이며, 정신적인 고양을 꾀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것은 민족적 자긍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소룡 이전까지 중국인, 동양인의 캐릭터는 요리사나 철도노동자에 불과했다.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표식이 곳곳에 걸려 있을 정도였다. 이소룡은 인종차별의 중심지에서, 자신의 육체를 이용하여 동양인의 스테레오 타입을 깨부쉈다.
배우가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 ‘나는 첫째로 무도가이고 싶고, 둘째로 배우이고 싶다’라고 말한 이소룡은 할리우드 진출을 꾀했다. 무술 시범을 통하여 할리우드 인사들과 가까워진 이소룡은 <배트맨>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윌리엄 도저를 만나게 되고, <그린 호네트>에 출연한다. 카
사망 30주년, 이소룡 다시 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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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삶에 매혹된 유려한 시네아스트의 세계일본의 3대 감독이자 롱테이크의 대가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 14편이 부산을 찾는다. 7월19일부터 8월3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리는 ‘미조구치 회고전’은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 유려한 미장센과 감성적인 미조구치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문의: 051-742-5377, www.piff.org/cinema). - 편집자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kr미조구치 겐지라는 일본의 영화감독에 대한 관념을 그려볼 때, 우리는 그가 그와 함께 일본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다른 두 감독, 즉 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즈 야스지로라는 스펙트럼의 양 극단 가운데의 어떤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볼 수가 있다. 서구적-일본적(미학과 가치관), 역동적-관조적(스타일) 등의 레이블을 붙일 수 있는 구로사와-오즈의 스펙트럼에서 미조구치를 그 중간자적인 존재로 간주할 측면이 확실히 있긴 하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미지의 거장 미조구치 겐지를 만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