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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 이름은 빠올로였다. 학년 초 이탈리아 유학 시절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달라는 자기소개를 한 뒤 학생들은 그의 실명을 잊은 채 지냈다. 빠올로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우리 딸은 꼭 실업계 고등학교를 보낼 거야. 이런 일반고 절대 안 보내.” ‘이런 일반고’는 무엇일까. 우리 학교는 지역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다. 어른들이 만든 규제를 의심 없이 순응했고 청소 시간에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영어 방송을 무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베토벤 가곡 (그대를 사랑해) 원곡을 암송하는 음악 수행평가를 치렀다. 이히 리베 디히 조 비 두미 암 아벤트 움트 안 모르겐. 40명이 조금 안되는 아이들이 한명씩 차례로 나와 노래를 불렀고 한명의 낙오 없이 외계어 같은 가사를 악착같이 외워왔다. 칭찬을 기다리던 착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빠올로가 물었다. “여기 이 노랫말 뜻 아는 사람 있어? 가사는 죄다 완벽하게 외워왔는데 왜 이게
[에세이] 순종 너머의 청춘과 성장, <바튼 아카데미>가 학교에 ‘갇힌’ 아이를 일으켜세우는 방식이 촉발한 기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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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는 자신이 처한 상실의 비탄을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고 드러내되 매일의 삶을 성실히 산다. 특히 메리의 슬픔은 클로즈업숏에서 대사 없이도 도드라진다. 배우로서 메리의 슬픔에 어떻게 접근해갔나.
= 살면서 메리와 같은 상실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메리가 자신의 방에서 대사 없이 퍼즐을 맞추는 장면을 찍을 땐 머릿속으로 메리의 독백 대사를 상상하며 연기했다. 내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카메라에 외현될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의 비탄은 ‘슬픔의 단계 이론’을 안내 삼아 구성해갔다. 나의 대사에서, 상대의 대사를 듣는 나의 리액션에서 슬픔의 다양한 층위가 드러나길 바랐다. 하지만 메리의 슬픔이 너무 극적이어선 안됐다. 그래서 감정의 다이얼을 끊임없이 조정하며 연기해갔다.
- 촬영 전 알렉산더 페인이 당신에게 시나리오 속 메리의 궤적이 여성으로서, 비백인으로서 납득이 가는지 수차례 질문했다고 들었다. 감독과의 대화가 메리의 캐릭터 조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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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국의 자매들에게 경의의 마음을, 배우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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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작품에 두 번째 출연한다. 공교롭게도 페인과 협업한 전작 <사이드웨이>의 마일스와 <바튼 아카데미>의 폴은 특정 분야에 해박한 싱글 교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혹시 페인 감독이 배우로서 당신의 어떤 매력에 주목하는지 물어본 적 있나.
= 감독들은 늘 내게 쉽게 좋아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한다. 아마 내가 곧잘 연기해냈기 때문에(웃음) 거듭해 까다로운 캐릭터를 계속 맡아달라는 섭외가 오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폴은 마일스에 비하면 괜찮은 남자 아닌가? 폴은 자기 연민도 덜하고 보통의 사람만큼 우울감을 느낀다.
- 페인 감독의 촬영 현장은 19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나.
= 큰 틀에선 달라지지 않았다. <사이드웨이> 이후 우린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그와의 촬영이 한결 수월해졌다. 형식적인 면에서 <바튼 아카데미>의 현장이 <사이드웨이>의 현장과 달라진 측면은 있다. 이번 영화의 촬영장엔 늘
[인터뷰] 진실한 태도가 전달되기를, 배우 폴 지어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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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반의 톤이나 숏의 구성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절의 할 애슈비나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휴먼드라마들을 떠오르게 한다. 1970년대 미국영화들이 당신의 영화 인생과 <바튼 아카데미>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 영화광 틴에이저로 1970년대를 살다가 1979년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땐 공기 중에 모든 명작들이 떠다니던 할리우드영화의 마지막 황금기였다. 그 영화들이 장편 극영화의 원형이라고 머릿속에 저절로 각인됐다. 70년대에 접했던 모든 영화들이 나를 감독으로 만들었고, 나는 당시 보았던 휴먼 코미디 장르의 영화를 지금껏 만들어왔다. <바튼 아카데미>는 구체적 과거가 배경인 나의 첫 시대극이다. 그래서 영화의 질감과 음향뿐 아니라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조형 그리고 영화의 제작 방식까지 70년대풍으로 만들어보려는 실험을 감행했다.
-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보스턴의 풍경도 70년대의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노력했을 듯한데.
= 미술감독과 로케이션 매니저 그
[인터뷰] 유머와 부조리 그리고 냉소주의가 담겨 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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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타티나 빅토르 에리세만큼은 아니지만 알렉산더 페인 또한 과작(寡作)의 감독이다. 단적인 예로 그는 <사이드웨이>(2004)로 오스카 각색상을 수상한 이후 차기작 <디센던트>(2011)로 또 한번 오스카 각색상을 받았는데 두 영화는 7년의 간격을 두고 탄생했다. 지금 전세계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바튼 아카데미>와 페인의 역대 연출작 중 가장 모호한 평을 들은 전작 <다운사이징>(2017) 사이에도 6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드문드문 영화를 만드는 페인이지만, 그의 영화는 언제 스크린을 찾아도 유사하게 반복되는 화소로 가득하다.
중년 백인 남성들의 수호자
로라 던이 루스로 분한 <시티즌 루스>(1996)를 제외하면, 알렉산더 페인은 한결같이 중장년 백인 남성이 주연인 영화를 만들어왔다. 평단과 관객 모두가 트레이시(리즈 위더스푼)의 맹활약을 이야기한 <일렉션>(1999)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특집] 위기, 걱정, 불안으로부터 길어올리는 아름다움의 순간들, 알렉산더 페인 감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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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으로 겨울 풍경과 상점이 늘어선 거리가 펼쳐지고, 스크린 위로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필름에 새겨진 스크래치 자국이 상하로 흐른다. 영사되는 화면에서 마주한 필름 노이즈의 물결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만이 볼 수 있는 장치다. 영화관에 걸린 흰 영사막을 경계로 두고 그 안과 밖을 구분지어본다. 그렇게 나눈 영화 속 세계와 영화관 객석에 각기 다른 현재의 시간이 있다. 혼선을 줄이기 위해 영화 속 시간은 ‘과거-현재’로, 객석의 시간은 ‘지금-현재’로 적는다. 1970년 겨울, 학교에 홀로 남은 유일한 학생인 앵거스 털리(도미닉 세사)가 고대문명을 가르치는 역사 선생 폴 허넘(폴 지어마티)과 함께 밤거리를 걸을 때, 이 장면 안에 두 사람이 길 위를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이 유의미해진다. 다른 모든 영화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영사되는 시간 동안에 지속되는 영원한 현재이므로 <바튼 아카데미>안의 시간과 그것을 목격하는 우리의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 마주치고 있다. 그뿐
[특집]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바튼 아카데미>가 주는 매혹은 어디에서 오는가, 현재라는 유적지를 배회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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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크리스마스 방학을 앞둔 명문 기숙 사립 바튼 아카데미. 교사 폴 허넘(폴 지어마티)은 학교에 남아 잔류 학생들을 관리할 생각에 심통이 나 있다. 잔류 학생들은 학기중과 별반 다르지 않은 깐깐함을 보이는 폴이 짜증나고 여전히 맛없는 급식을 내놓는 주방장 메리(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의 요리 실력도 불만이다. 그중 엄마의 피치 못할 권유로 바튼 아카데미에 남은 앵거스(도미닉 세사)는 다른 잔류 학생들이 학교를 끝내 탈출한 이후에도 강제로 남아 폴, 메리와 외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를 함께 보낸다.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 <디센던트> 등 삶의 의미를 상실한 남자들이 인생을 재건해보려는 휴먼 코미디를 만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6년 만의 연출작 <바튼 아카데미>가 2월21일 개봉한다. 지난해 8월 텔룰라이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바튼 아카데미>는 초청된 영화제마다 관객과 평론가의 열광을 이끌어냈고
[특집] 1970년 크리스마스 방학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 후보에 오른 <바튼 아카데미> 구석구석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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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FA 영화 같다’라는 말은 좋은 뜻일까? 관객들은 어디서 어떻게 ‘KAFA 영화 같다’란 느낌을 받는 것일까. 그렇게 느낄 만한 KAFA 영화들의 어떤 공통점이 있긴 한 것일까. 꼬리를 무는 의문을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KAFA 영화들엔 아주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KAFA 영화의 젊은 주인공들은 대개 빚을 지고 있다. 빚의 의미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가 어떠한 부채감에 시달리는 경향을 보인다.
<검은 소년>(2022)에서 주인공 훈(안지호)은 1990년대 후반을 살고 있다. 뉴스는 국가가 IMF에 빚을 지게 됐다고 연신 떠들고 훈의 부모는 ‘내가 너 때문에 어떻게 살았는데’라는 투로 아들에게 마음의 빚을 안긴다. <럭키 몬스터>(2019)와 <썬더버드>(2021), <그 겨울, 나는>(2021)의 30대 언저리 주인공들은 경제적 빚을 지고 있고 그것을 갚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
[기획] 답답한 현실, 더 답답한 영화, 최근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영화의 주제적 공통점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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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KAFA)는 신진 영화인들의 역량을 키우고 배출하는 요람으로 자리 잡아왔다. 봉준호, 허진호, 최동훈 감독 등을 배출했고 최근에도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와 같은 화제작을 내놓은 바 있다. 이렇듯 한국영화계의 큰 축을 담당하는 KAFA였지만 요즘은 좋은 얘기만 나오고 있진 않다. ‘어딘가 다 비슷하다’라거나 ‘KAFA 영화스러운’이란 볼멘소리가 들려온 지 꽤 됐다. 영화제 수상이나 흥행 성적, 졸업생들의 성과도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물론 이건 KAFA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계 전체가 어려운 탓에 자연스럽게 일어난 침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젊은 영화’를 상징해야 할 KAFA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징후는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에 <씨네21>에서는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의 현실을 살펴보기 앞서 KAFA 영화에 나타난 경향에 대한 내적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KAFA로 대표되는 영화인 육성 시스템의 문제를 살피기
[기획] KAFA 영화의 어떤 경향,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영화에 나타난 경향에 대한 내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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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중국 청춘영화 <우견니>가 개봉했다. <우견니>란 제목은 자연히 국내에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자)라는 팬덤까지 형성된 인기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떠올리게 했다. 찾아보니 영화 <상견니>는 지난해 이맘때쯤인 1월25일 개봉해 당시 36만명이라는 범상치 않은 관객수를 기록했다. 올해 같은 날에는 개봉 1주년을 기념하는 재개봉 이벤트도 있었다. <상견니>의 허광한은 <여름날 우리>의 허광한을 소환시켰다. <여름날 우리>는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한국영화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중국 청춘영화다. 2021년 개봉 당시엔 4만명이라는 미미한 수치를 남겼으나 2023년 재개봉 때 반응이 왔고 현재 누적 관객수는 41만명까지 뛰었다. <상견니>와 <여름날 우리>가 유의미한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깨달음과 밸런타인데이라는 시기는 국내에 개봉
[비평] 불가능을 탐하다, 중화권 청춘영화의 꾸준한 호응에 관한 짧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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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태어나 1970년에 첫 장편 데뷔작 <잃어버린 면사포>를 만들고 2002년에 60번째 영화 <아리랑>을 완성한 이후까지 한국영화사에 새겨진 이두용의 시간은 너무도 길고 깊다. 그 일부의 순간이라도 붙잡아보고자 이두용 감독의 활동이 담긴 몇개의 사진을 정리했다. 그는 언제나 ‘현업 영화감독’임을 자부했던 현재형의 창작자였다.
<씨네21> 875호 ‘박력과 쾌감, 이두용 감독전’
2012년 이두용 감독은 한국영상자료원의 이두용 특별전을 앞두고 <씨네21>과 만났다. 이두용 감독의 왼편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는 마치 <최후의 증인>에서 만끽했던 흑백의 콘트라스트를 보는 듯하다. 앞서 그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에서 본인을 “한물간 감독 이두용입니다”라고 소개하며 “시대별로 그 시대를 풍미하는 감독들은 따로 있다. 젊은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영화도 분명히 있다”라고 시대의 흐름을 겸허히 언급한 바
[특집] 영화에 대한 깨우침은 언제나 “바로 지금”, 사진으로 보는 이두용의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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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용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그의 전성시대를 함께 지냈던 동료들, 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후세대 감독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두용 감독의 시대를 겪지 못한 영화평론가, 연구자 세대의 생각을 살피는 일이다. 과연 그들은 이두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론은 없었다. 그들의 발상은 특별한 구심점 없이 산발적이었다. 박찬욱, 류승완 등의 후배 감독들처럼 이두용을 마냥 칭송하진 않았다. 한편으론 <최후의 증인>이 걸작이란 사실이나 이두용을 향한 연구 가치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이에 동시대 평론가, 연구자의 머리에 떠도는 이두용의 파편과 미해결의 질문들을 모아봤다. 결론을 정립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다만 영화의 미지를 파헤치는 일에 욕심이 있는 이라면 <최후의 증인>을 한국영화 100선 수준이 아니라 <하녀> <서편제> 정도의 걸작 반열에 올려야 한다는 당위, 이두용의 숨겨진 걸작에 광을 내 자랑하고 싶은
[특집] 정론은 없다, 2024년에 바라본 이두용 평론가, 연구자들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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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의 <화녀 ’82>와 함께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과 <피막>이 나로 하여금 한국에서 필름메이커가 되는 일에 용기를 내게 해주었어요.”(박찬욱 감독) 감독들의 감독이라 불러도 좋을 이두용 감독. 그의 영화로 청년기의 취향을 다듬거나 충무로의 영화 현장에서 짧지만 강렬한 접점을 형성했고, 훗날 이두용 영화의 번뜩이는 면면에 대해 소문내길 주저하지 않았던 감독들의 목소리를 새롭게 모았다. 회고와 추모, 잊히지 않는 한순간에 대한 담담하지만 깊은 애호의 말들이다.
강우석 감독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피막>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후배들은 깜짝 놀랐다. 액션영화, 오락영화도 곧잘 찍었지만 사실 그는 어떤 ‘칼’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진흥공사에서 <최후의 증인> 최종편집본 필름 상영을 본 이후에는 그에 대한 완전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단순히 선배 감독으로 기억되어서는 안된
[특집] 이두용을 기억하는 ‘최후의 증인’들, 감독들의 추모사, 잊히지 않는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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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용의 뛰어난 영화들은 무성영화의 장점과 통한다. 리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부의 감정 표현도 개의치 않은 채 직진 호흡으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그의 상당수 영화들은 잘 세공된 서사의 완급 조절과는 거리를 두지만 섬광 같은 순간들을 포함하고 있다. 압도적인 속도감의 시학으로 핵심을 포착하는 그의 영화의 이미지가 지닌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이두용의 대표작 <최후의 증인>
오늘날 이두용의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최후의 증인>은 한국영화의 암흑기였던 1970년대에 다수의 액션영화를 포함한 숱한 저예산 영화들과 외화 쿼터가 부상으로 주어지는 대종상 출품용 목적 영화들로 단련된 그의 스타일의 첫 개가였다. (하길종 평론집에는 대종상 작품상을 받은 이두용의 <경찰관>을 당시 내무부 장관이 관람 후 “이런 것이 진정한 영화다”라며 감읍했다는 에피소드가 언급된다.) 배우 하명중의 증언에 따르면 그와 이두용, 촬영감독 정일성이 4계절 내내 전국을 다니며 영화
[특집] <피막>과 <내시>를 돌아보며, 이두용 스타일이 거둔 이미지의 카리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