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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종합촬영소 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면 이명세 감독의 <형사> 촬영장이 나오고, 그 촬영장도 지나쳐 언덕배기로 올라가면 운당이라는 곳이 나온다. 조선시대 여관 같은 모습이다. 마당 위에서 누군가 하늘로 번쩍 뛰어올랐다가 가라앉는 게 밖에서도 보인다. 비 그친 뒤 쨍쨍한 하늘을 시원스레 날아오르는 저이는 누군가. 와이어를 달기는 했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줄 위에 앉았다가 훌쩍 뛰어올라 공중에서 방향을 전환하는(허공재비) 감우성의 재주, 보통은 아니다.
그럼 그렇지. 감우성이 줄에 쓸려 타들어간, 조금 과장을 하자면 너덜너덜해진 손바닥을 보여준다. 자칫 잘못하면 살점이 나가니 살얼음 걷듯 조심해야 하는 게 어름 아닌가. “중요 부위는 보호대를 했지만 보호대 범위를 더 넓혀야겠어요.”(감우성) 줄을 잘못 타면 삽시간에 중요 부위가 그 기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게 권 선생의 설명이다. 참 무서운 얘기 아닌가, 남자들로서는.
6월1일 첫 촬영을 위한 테스트 촬영인지라 크
<왕의 남자> 감우성, 광대만들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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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 세트장에서 촬영 중인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는 광대를 위한 영화다. 연산군 시대를 웃음으로 누빈 광대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은 줄타기부터 접시돌리기까지 재주도 비상했지만, 그 못지않게 정치판을 우스개의 소재로 과감하게 끌어들이면서 저잣거리의 놀이마당을 격상시켰다. 그걸 알아본 이는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정진영)이다. 당쟁에 염증이 난 연산군, 왕마저 놀릴 줄 아는 광대의 자유가 부럽다. 그러나 광대를 궁으로 끌어들인 것에 중신들이 격분하고, 장녹수(강성연)가 광대를 질투하면서 광대들의 운명에 광풍이 몰아친다.
<왕의 남자>는 <황산벌>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뒤를 잇는 사극이지만 이들 사극보다 품이 더 많이 든다. 바로 배우를 광대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역비리로 장생 역의 장혁이 물러나면서 공동제작사인 이글픽처스와 씨네월드는 근심이 더 많아졌다. 대안은 도회적인 분위기의 감우성이었다. 감우성은 왜
<왕의 남자> 감우성, 광대만들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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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우정, 가난하지만 진실한
<친구와 하모니카>는 노숙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더 정확히는 노숙자들 곁에서 그의 친구가 바라본 풍경이다. 1998년 겨울 우연히 가락시장역에서 만난 노숙자 하늘이와 김우현 PD는 친구가 되기로 약속한다. 김 PD는 하늘이와 함께 다니다가 노숙자도 아니면서 하늘이 곁을 맴도는 두환, 한때는 노숙자들의 만능해결사에서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한 석현과 마주친다.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심리적 무게는 헤비급 권투선수가 날리는 혼신의 주먹처럼 가슴을 두드린다. 2000년 5월 처음 방영된 <인간극장>과 무관하게 <친구와 하모니카>는 1998년부터 촬영이 시작됐다. 이 작품은 <인간극장>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태도를 본능적으로 드러낸다. 이를테면 촬영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는 김 PD에게 약간의 어색함을 표한다. 그러자 김 PD는 즉시 카메라를 거두고 그와 헤어진다. 그리고
충무로 소재 공장 <인간극장> [5] - 인간극장 원작 영화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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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꽃보다 아름다운 청년의 이야기
엄기봉씨는 시쳇말로 좀 모자란 사람이다. 어릴 때 앓은 열병으로 정신지체 1급 장애자가 된 그의 나이는 마흔살이지만, 정신연령은 여섯살에 머물러 있다. 그런 기봉씨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80살의 어머니다. 거동이 불편하고 귀가 어두운 노모를 위해 그는 아침이면 밥상을 차리고, 세숫물을 데워놓고, 화장실 가는 길의 눈을 치운다. 잔칫집에 불려가도 배를 곯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기봉씨는 주인댁이 싸준 음식이 식을까봐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간다.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어려운 처지지만 기봉씨는 봄이면 쑥을 캐서 내다 팔고, 가끔씩 생기는 동네 허드렛일을 챙기며 어머니와의 단란한 삶을 꾸려나간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기봉씨는 어머니를 위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것은 마라톤이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 하나만큼은 자신있었던 그는 “신발이 닳을까 아까워” 맨발로 동네를 달렸고, 결국 면에서 주최한 마라톤대회에서 3등을
충무로 소재 공장 <인간극장> [4] - 인간극장 원작 영화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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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겨울, 중국 충칭(重慶)의 축구 경기장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상 최초로 중국 FA컵 결승전에 진출한 프로축구팀 ‘충칭 리판’을 응원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4만여명의 관중은 연신 “이장수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목놓아 외치고 있다. 열악한 사정 때문에 스타 선수 한명 없지만, 관중은 그들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다. 그들에게는 ‘충칭의 별’이라 불리는 이장수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말로 믿기 힘든 일이 더러 일어난다. 이장수 감독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3200만 충칭 시민 중 1천만명이 이장수 감독의 팬클럽 회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충칭 최고의 스타다. 길거리에 나서면 사인 공세 때문에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여학생과 아줌마와 아저씨와 소년,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그의 팬들은 “이장수 감독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해 시즌 초, 어처구니없는 편파 판정에 시달리던 그가 감독직을 사퇴
충무로 소재 공장 <인간극장> [3] - 인간극장 원작 영화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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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을 보는 시청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어디서 매주 저런 사람들을 찾아낼까?’ 국정원과 FBI의 도움이라도 받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니면 자료조사원이 1천명쯤 되는 것인가 하는 망상을 휴먼다큐 <인간극장>은 품도록 만든다. <인간극장>의 외주제작사 리스프로와 제3비전의 기획과정을 듣노라면 이 사람들에게 이산가족 찾기를 시키면 절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의문은 ‘어떻게 매번 격렬한 감정의 순간을 포착할까’ 하는 것이다. 그 비밀은 오로지 “인간적인 밀착마크”다. <인간극장>을 세상에 낳은 사람들과 5년 반 동안 매주 그들이 우리와 숨쉬도록 만든 장본인들에게 듣는 <인간극장>의 리얼 제작스토리.
<인간극장>의 탄생
<인간극장>이 움트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겨울이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어느 날,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동아방송대학 기숙사에 세 사람이 모였다.
충무로 소재 공장 <인간극장> [2] - 인간극장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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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혼원정기> <꽃피는 봄이 오면> <엄마> <말아톤> <거칠마루>, 이들의 공통점은 KBS2에서 방송되고 있는 <인간극장>을 원작으로 삼거나 영향을 받은 영화라는 점이다. 또 <맨발의 기봉씨> <친구와 하모니카> <충칭의 별 이장수> 등이 <인간극장>을 바탕 삼아 촬영 중이거나 기획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 영화는 지난해 후반부터 올해 사이에 개봉됐거나 내년 중 개봉을 목표로 한다. <인간극장>은 최근 들어 가장 각광받는 충무로의 ‘소재 공급원’인 것이다. 한국 영화계는 왜, 그리고 어떻게, <인간극장>에 매료됐는가.
<인간극장>을 소재로 만들어진 첫 영화는 지난해 추석에 개봉한 <꽃피는 봄이 오면>이다. 2001년 5월과 2002년 3월 방송된 <건빵선생님의 약속>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중
충무로 소재 공장 <인간극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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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작 <이클립스>의 실패, 자존심은 구겨지고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라이트 하우스라는 영화사를 차렸고, <이클립스>라는 제목의 카지노 딜러와 마약 수사관의 사랑 이야기를 창립작으로 택했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제작지원을 받기도 했고, 당시 명필름에서 프리 프로덕션 비용을 감당해줬다. 그러기를 2년. “욕심이 생기더라. 영화의 스케일이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점점 커졌다.” 프로듀서를 맡기로 했던 친구와 시나리오를 함께 썼지만, 정작 결과물은 자신이 봐도 신통치 않았다. 투자를 하기로 했던 곳에서도 시나리오를 보고서 곤란하다며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동료들과의 반목도 생겼고, 더이상 민폐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회사를 접었고, 동료들은 떠났고, 빚만 남았다. 은행과 카드회사에서는 빚 독촉 전화가 하루에도 몇 십번씩 쏟아졌다. “자존심이라는 게 아주 못된 놈이다. 나를 새카맣게 태우더라고.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건데, 꿀리지 않겠다는
<연애>의 오석근 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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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근 감독은 세 번째 영화 <연애>를 만들기까지, 지난 몇년을 털어놓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두달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한국영화 7편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 때도 그는 “그냥 세상 공부했다”는 모호한 답변만 흘렸을 뿐이다. 12월9일, <연애> 개봉을 앞두고 오석근 감독의 터전인 부산을 찾았다. <연애>는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30대 주부 어진이 주인공이지만, 영화 속 그녀를 둘러싼 지옥 같은 세상이 허구의 고통 같진 않아서다. 자갈치시장 꼼장어집에 앉아 쓴 소주 없이는 듣기 어려운 과거사를 묻고 또 캐물었다. 혼자서 목구멍으로 넘긴 시원소주는 2차로 택한 선술집까지 합해 족히 5병은 돼 보였지만, 불편한 과거의 시간들은 자신의 취중언이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그의 신중함 때문에 느리게 토해져 나왔다.
“누구라꼬?” 영화감독이라고 일러줘도, 좀처럼 믿지 않는 눈치다. 어디 부산 자갈치 아지매들뿐일까. 오석
<연애>의 오석근 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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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아테네 청년들에게 가르쳤지만, 실은 가까운 이의 죽음은 가장 강렬한 철학의 연습장이다. 시월의 마지막 전날 오병철 감독은 우리에게 그런 선물을 주고 갔다. 그의 급작스런 죽음은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공부를 한 인연으로 간간이 만나 영화와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1기 동기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친지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외로이 투병하다 간 것도 매우 그다운 선택이다. 그래서 더욱 서운하고 슬퍼진 우리는 시월의 마지막 날 그의 빈소와 화장장을 지켰으리라. 인간은 고결하게 살 권리만 있는 게 아니라 고결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타르코프스키의 말이 오 감독 특유의 진지한 영정사진을 보며 불현듯 헤아려진다.
올해 봄 영화아카데미 동기 감독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성국극 영화작업을 진솔하게 말하던 그의 모습, 봄날 꽃잔치가 벌어지던 동국대 극장에서 ‘에코가무’ 생태환경주의 콘서트에 참석하고, 그 감회와 여성국극 영화건을 담은 그의 이메일이
[추모기획] 고 오병철 감독을 향한 유지나의 추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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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이 영화를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보면서 나라면 저 부분에서 많은 것을 소진했을 텐데 훌쩍 생략한 부분도 눈에 띄고, 또 슬쩍 건너갈 수 있는 부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장면을 동규의 꿈, 그러니까 판타지로 시작한 이유가 뭔가.
안슬기/ 시작 부분에서 동규가 왜 집을 나왔는지를 설명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동규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게 싫었다. 한번에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거다. 그리고 그 첫 장면과 영화 중간 두번에 걸쳐 반복되는 복수장면은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벗어나더라도 다른 장르로 느껴졌으면 했다.
노동석/ 동규가 영화 속에서 고2라는 설정인데, 그 나이는 원래 성에 대해서도 민감한 나이 아닌가. 하지만 시내와 동거를 시작하는 부분에선 그런 묘사가 전혀 없더라.
안슬기/ 고2 남자애들은 자기들끼리 있으면 그런 얘기뿐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가만히 보면 초등학생처럼
안슬기 감독 vs 노동석 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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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25일. 현재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근무 중인 안슬기 감독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로부터 1년 전. 그가 출연한 첫 장편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했다. 지난해 12월3일 개봉한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이 바로 그 작품. 노동석 감독과 안슬기 감독은 사실 6년 동안 관계를 지속해온 사이로, 안슬기 감독은 그 영화에서 사채업자로 출연하여 능청스런 연기를 선보였다. 처음엔 조교와 학생이었고, 그뒤로 오랫동안 언제나 믿을 만한 선배요 후배였으며, 지금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된 이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둘은 같은 한겨레 문화센터 영화제작학교 수강생 출신에, 수료 이후에도 끝없이 단편 작업을 이어나갔으며, 결국은 각종 사전제작지원금에 사비를 보태 디지털 장편을 완성하고 끝내 개봉까지 성사시켰다. 주류영화와 구별되는 감식안으로 쉽게 영화화되지 않았던 인물과 상황을 자신의 영화 속에 담아냈다는 것 역시
안슬기 감독 vs 노동석 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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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맹순이, 금순이… 바야흐로 여배우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지금 충무로는 연기력 탄탄한 30대 여배우를 기준으로 재편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얼굴 마담’이 아니라, 연기에 올인하는 여배우들이 손가락에 꼽기 모자랄 정도가 되었다. 이제 할리우드의 내로라 하는 여배우들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충무로 여배우들의 힘은 강력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충무로 대 할리우드, 여배우 대격돌! 그녀들의 성향과 연기 스타일, 과연 얼마나 비슷할까?
1. 친근한 삼순이 <르네 젤위거 - 김선아>
뚱뚱하고 엉뚱하며 때론 바니걸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과감한 패션 센스까지 자랑했던 브리짓 존스. 르네 젤위거는 브리짓이 되기 위해 몸무게를 48kg에서 63kg까지 늘리는 저력을 발휘했더랬다. 통통한 볼살과 살짝 오므린 듯 튀어나온 입술은 그녀의 강력한 트레이드마크였다. 하지만 그녀는 노련한 배우답게 우리의 기대를 기분좋게 배반<?>했다. 못 말리는
닮은 꼴 여배우 대전! 충무로 VS 할리우드 여배우 비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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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영화로 만들자고 결심했던 프로듀서 데이비드 헤이맨은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도니 브래스코>의 마이크 뉴웰이 이상적인 감독이 돼줄 거라고 믿었다. “뉴웰은 영국인이고 여러 가지 장르에 능숙하며 예술적인 감독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었던 뉴웰은 판타지의 세계와 그것을 구축하기 위한 특수효과에 겁을 먹었고, 최고의 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짙었던 프로젝트를 거절했다. 5년이 지났다. 거대한 세트와 특수효과팀이 자리를 잡고 있는 호그와트 터에 몸만 들어온 뉴웰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드라마와 감정과 연기를 매만지는 감각으로 살아남았다.
그가 고치고 싶었던 건 영국 기숙학교의 풍경이었다. “나는 영국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녔다. 크리스 콜럼버스는 어린 시절을 이상적으로 그렸고 적절한 처신이기도 했지만, 해리와 아이들은 이제 나이를 먹었다. 그 무렵 아이들은 몸싸움도 하고 비열하기도 하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미리보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