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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영화 본상
-황금곰상(최우수 영화상)
야스밀라 즈바니치의 <그르바비차>(Grbavica)
-은곰상(심사위원 그랑프리)
페르닐레 피셔 크리스텐센의 <엔 소프>(En Soap), 자파르 파나히의 <오프사이드>(Offside)
-은곰상(최우수 감독상)
<관타나모로 가는 길>(The Road To Guantanamo)의 마이클 원터보텀
-은곰상(최우수 여우주연상)
<레퀴엠>(Requiem)의 산드라 횔러
-은곰상(최우수 남우주연상)
<소립자들>(The Elementary Particles)의 모리츠 브라입트로
-은곰상(예술공헌상)
<자유의지>(The Free Will)의 주연배우, 공동 각본가, 공동 제작자로서의 율겐 보겔
-은곰상(최우수 영화음악상)
<이사벨라>(Isabella)의 피터 캄
-알프레드 바우어상(베를린영화제 창설자 기념상)
로드리고 모레노의 <엘 쿠스토디오>(El Custod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5] - 수상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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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 일렁인 작은 물결들
베를린영화제는 칸이나 베니스와는 달리 기자로서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찾아가야 더욱 흥미로울 영화제다. 경쟁 부문과 비경쟁 부문에 섞여 있는 함량미달의 작품들을 보느라 회고전, 포럼 부문과 특별상영 부문의 성찬을 놓쳐야 했던 각국 기자들의 한숨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왔으니 말이다. 오드리 헵번부터 더글러스 서커까지, 가슴이 떨리는 클래식들이 모여 있는 회고전은 경쟁 부문 못지않은 매진 사태를 불러일으켰지만, 특히 올해 베를린의 진짜 재미는 ‘테디 20주년 회고전’, 아동영화 부문인 ‘킨더필름’과 포럼 부문이었다.
테디 어워드와 베를린의 퀴어 시네마
데카당스한 기운을 지닌 진짜 베를린을 보기 위해서는 언더그라운드(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베를린을 진짜로 맘껏 즐기다 간 이들은 테디의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게이-레즈비언 시상식인 테디상이 20주년을 맞아 기념파티 밎 각종 부대행사를 화끈하게 준비해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4] - 한국영화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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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이란산 뜨거운 감자
<관타나모로 가는 길>이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초반에 이어 후반기 베를린영화제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경쟁 부문에 참가한 두편의 이란영화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파르 파나히와 라피 피츠에게도 이란의 정치 상황과 검열 문제에 대한 서구 기자들의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졌는데, 두 감독이 비슷한 대답을 들려준 것은 주목할 만하다. 파나히는 “나는 정치적이지 않고 다만 사회적일 뿐이다. 특정한 정치적 방향을 따르는 영화는 만들지 않는다. 물론 나도 정치적 의견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사회 내부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답했으며, 피츠는 “나는 국가와 세계보다는 인간의 상태(Human Condition)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서구 기자들은 두명의 감독이 정치적인 논쟁거리를 덥석 물어주기를 바랐을 테지만, 파나히와 피츠는 이란도 심장이 박동하고 피가 흐르는 인간의 땅임을 보여주는 두편의 영화로 현자의 대답을 들려준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3] - 이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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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영화에 봄이 오는가
“독일영화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새로운 물결이라도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프리 윌>로 예술공헌상을 받은 율겐 보겔은 한 유럽 기자가 흥분한 어조로 던진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새로운 물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3편의 독일영화가 은곰상을 받았고, 현재 독일영화가 정말 좋은 시간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제외하면 화제작이 드물었던 올해 경쟁 부문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4편의 독일영화였다. 특히 영화제 후반을 장식한 <갈망>(Longing/Senchct)과 <레퀴엠>은 황금곰상의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며 평단의 호평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레퀴엠>(Requiem) 감독 한스 크리스챤 슈미트/ 출연 산드라 휼러, 부르가트 클라우스너
지난 2002년 <불빛>(In Lichter)으로 베를린의 레드카펫을 밟았던 한스-크리스챤 슈미트가 엑소시즘(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2] - 독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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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선택은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모든 영화제의 선택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게 마련이다.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심사위원들은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작품들 중에서도 간접적으로 돌아 말하지 않고, 가장 심플하고 직접적으로 이런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고른 모양”이라는 <디 벨트>의 말처럼, 세상에 대해 명쾌하게 발언하는 영화들에 상을 안기며 열흘간의 축제를 마무리했다. 제56회 베를린영화제의 수상 결과를 점검하고, 후반기 화제작들을 한데 모았다.
영화제가 딱 8일째 되는 날, <버라이어티>가 발간하는 데일리 매거진은 “베스트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사실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화끈하게 영화제를 달아오르게 만든 영화가 드물기는 했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닉 제임스는 “베를린영화제가 잘해왔던 막판 뒤집기 전술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2년 전에도 모두가 실망스러운 경쟁부문이라고 불평이 대단했는데 막판에 &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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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 Rule). ‘(지배할 대상을) 서로 쪼개고 분열시켜 통치하라’ 뭐 이런 뜻의 식민 지배 전략이라고 소싯적에 배운 것 같은데 요즘 한창 불붙고 있는 스크린쿼터 공방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른 말이다. ‘자유무역의 질서에 반하는’ 한국영화 보호 장치의 존속·축소를 두고 하늘의 별들이 연일 거리로 나서고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을 보니 한국영화가 진정 사회적 화두로 성장하긴 성장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이 처음도 아닌 이 ‘뜨거운 감자’를 두고 조금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사안의 본질적인 쟁점이 마치 영화인 대 영화인 혹은 영화인 대 정치(행정)인 사이에 있는 것처럼 분위기가 조장되는 것이다. TV 토론이나 시사 프로그램, 신문이나 잡지의 내용도 천편일률적으로 정지영 감독이나 유지나 교수 대 조희문 교수(흐흐흐), 가끔씩 문광부 영상진흥과장 납시고 그 주변에 훈수 두는 변호사나 명사 한둘이 끼어드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끼리 치고받는 가운데 영
스크린쿼터 투쟁, 다섯가지 시선 [5] - 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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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 싸움에서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돌팔매질 때문이다. 돌팔매질이 없었다면 다윗은 여지없이 죽음을 당했을 터이다. 용맹스런 다윗도 돌팔매질에 자신감이 없었다면 전투에 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그 싸움에 대해 불공평한 싸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크린쿼터도 마찬가지다. 이미 365일 중 146일뿐이다. 40%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세계 영화산업의 90%를 장악하고 있고, 한국영화에 스크린쿼터로 내준 40%를 뺀 60%를 거의 독식하고 있다. 이미 많이 먹고 있는데 더 먹겠다는 거다. 거식증 환자가 아니라 독식증 환자의 횡포다.
미국의 부라린 눈에 제풀에 겁먹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미 투자협정으로 잃는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는 경제동물적 계산이 앞섰기 때문일까, 정부는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스스로 스크린쿼터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창동 감독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기용하는 파격을 감행하기도 했던 정부는 우리 문화와 문화적
스크린쿼터 투쟁, 다섯가지 시선 [4] -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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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크린쿼터 관련 법 개정에 대한 소식이 프랑스 언론에 알려졌을 때,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영화전문 주간지 <르 필름 프랑세>(Le Film Francais)만이 “한국영화가 마지막 영광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다소 조심성 없는 짤막한 기사를 실었을 뿐이다. 물론 신문의 페이지 수를 늘릴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 지금 프랑스는 법적, 정치적으로 심각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기도 하다. 우선 프랑스 언론이 침묵을 지키는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 국민들이 스크린쿼터의 생존을 ‘핫이슈’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침묵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 더군다나 그간 프랑스 언론이 얼마나 여러 번 스크린쿼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수 투쟁에 대해 보도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런 침묵은 놀랍기 그지없다. 이번 침묵은 지역적으로 먼 곳의 소식에 대한 관심의 부족 이외에도 인기를 얻고 있으면서 예측불허인 한국영화 앞에서 당황스
스크린쿼터 투쟁, 다섯가지 시선 [3] - 아드리앙 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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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피범벅 혁명’이라고 <버라이어티>가 불렀던 사건이 있다. 2001년에서 2002년 사이 소니(컬럼비아트라이스타)와 유니버설, 이십세기 폭스사 그리고 워너브러더스의 국제 배급 담당 책임자들을 미국 국내 배급과 마케팅 책임자들로 바꾸어버린 사건을 두고 벌인 호들갑이었다. 세계화의 결과 국내와 국제 배급망의 연결고리가 긴밀해지면서 벌어졌던 일로, 국내와 해외 배급, 마케팅 양자 모두를 동일한 사람들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배급 라인의 책임자들이 바뀐 사건을 두고 피범벅 혁명이라고 할 만큼 배급은 미국 영화계의 치명적 무기로 기능한다. 배급과 정책을 영화산업의 중심부에 놓은 것은 할리우드를 오늘에 이르게 한 주요한 전략이었다.
미국 정부와 1946년에 세워진 MPEAA(The Foreign Department of 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가 공모해 할리우드는 전세계로 지배를 확대하게 된다. 이러한 할리우드가 내뿜는 세계 배
스크린쿼터 투쟁, 다섯가지 시선 [2] -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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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 <손님은 왕이다> 준비에 들어가다
# 사채업자: 따님 병원비가 급하다 그래서 가져간 거 아니오? 그래서 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드린 거구… (후략) 김양길: 갚을게. 꼭 갚는다구. 이번에 영화사에서 나 주인공으로 박아놓고 준비하는 영화가 있어. 그거 계약만 하면 말이야. 아, 진짜야. 이번엔 주인공이라니까. 그 출연료 나오면 바로 갚을게. …(중략)사채업자: 짤러! (영화 <손님은 왕이다> 중에서)
실상은 달랐다. 2004년 2월, 오기현은 7년 동안의 타지 생활을 끝내고 귀국했고, 곧바로 대학로에 있던 명계남의 이스트필름을 찾았다. ‘장밋빛 미래’는 없었다. 가는 날이 이삿날이었을 뿐. 명계남은 월세 내기가 버거워서 조우필름과 살림을 합한다고 했다. 여의도에 있는 조우필름을 찾았을 때, 그는 또 한번 놀랐다. 제작사 대표가 순돌이 아빠처럼 직접 전기 배선공사를 하고 있어서였다. “조종국 대표를 처음 봤을 때 한국전력 직원인 줄 알았다.”
<손님은 왕이다> 뒷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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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서면 영화에 폐 끼치는 것 아닌가?’ 지난 2월12일, 대학로에서 만난 명계남은 내색은 안 해도 그런 눈치였다. 연극 <콘트라베이스>에 온 신경을 쓰면서도,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손님은 왕이다>에 대한 이런저런 뒷말들이 적잖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지극히 일부이긴 하나, 네티즌들 중엔 <손님은 왕이다>가 명계남 본인이 주연배우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얼토당토않는 이야기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하니, 출연한 배우로서 어찌 민감하지 않을 것인가. 공연을 보러 나선 오기현 감독 또한 “별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손가락만 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면서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오기현 감독이 충무로에 발딛기까지 가장 큰 도움을 준 이는 배우 명계남이 분명하지만, 자신을 소재로 쓰여진 <손님은 왕이다>에 김양길로 출연하기까지 명계남이 얼마나 숙고를 거듭했는지는. 무대를 넘어선 배우와 관객으로, 나이를 넘어선 선배와
<손님은 왕이다> 뒷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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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축소를 둘러싸고 정부와 영화계가 마찰을 빚고 있다. 여론을 끌어모으기 위해 양쪽 모두 총력전이다. 정부는 스크린쿼터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양보되어야 한다고 하고,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없이 국가의 미래는 없다고 맞선다. 한쪽은 기세를 잡은 싸움을 물릴 수 없고, 또 한쪽은 이번에 지면 앞으로 싸움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씨네21>은 지난 특집 기사(539호)에서 양쪽의 입장을 제시하되 ‘스크린쿼터 축소 불가’라는 영화계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실었다. 정부의 뒤통수 치기 전술이 지나치게 ‘더티’했고, 이를 전후로 영화계에 대한 일방적인 난타가 자행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일방적인 응원만 할 순 없는 일이다. 지루한 응원은 때론 해가 된다. 정부 혹은 영화계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지 않되 사회적인 이슈에 민감한 더듬이를 갖고 있는 다섯 필자들에게 쿼터 논쟁에 대한 글을 부탁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 실린 짧은 글들은 어떻게 복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
스크린쿼터 투쟁, 다섯가지 시선 [1] -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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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카우보이 영화나 만들걸”
“프랑스 기자들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답변이 애초에 불가능하도록 과장된 수사학으로 가득한 논평만 던진다. 일본 기자들은 순진하다. 영국 기자들은 지적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적이라는 사실에 너무도 심취한 나머지 자신들의 지성을 망치고 만다. 동유럽 기자들은 철학적이거나 정말 멍청하다. 남미 기자들은 동유럽 기자들과 같다. 독일 기자들은 무개성하다. 미국 기자들은 게으르다. 특별히 나쁜 건 아니지만 정말 게으르다.” 루카스 무디손 감독은 신작 <컨테이너>의 보도자료에 세상의 기자들에 대한 쓴소리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부끄럽지만 사실일는지도 모른다. 사실 국제영화제의 기자회견장은 1시간여 동안 겨우 대여섯개의 좋은 질문과 답변을 건질 수 있을 뿐, 게스트와 동료 기자들의 어안이 벙벙하게 하는 질문들이 쉴새없이 터져나온다(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관계로 기회를 놓친 동료 기자들의 원망 섞인 야유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우문현답들도 분명히
제56회 베를린영화제 중간결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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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와 정치: 인간의 은밀한 상처를 들여다보다
인간의 은밀한 상처를 들여다보며 논의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영화들의 공통점은 보는 것이 한없이 불편하다는 사실이다. 감독은 캐릭터의 폐부를 도려내어 관객에게 던지고, 관객은 그것을 받아서 삼켜야만 한다. 올해 베를린은 다만 거대한 정치적 현안을 다루는 작품들 외에 개인적인 고뇌로부터 정치적 발언을 끄집어내는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덴마크영화 <엔 소프>는 소프 오페라 방식을 차용한 장르적 실험을 바탕으로 윗집 여자와 아래층 트랜스젠더의 기묘한 우정을 그려냈다. 데뷔감독인 페킬레 피셔 크리스텐센은 마치 도그마영화처럼 찍은 이 작품을 통해 섹슈얼리티의 모호함이라는 주제를 잘 버무려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두 작품은 완벽하게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편은 한 인간으로서 연쇄강간범의 초상을 그리는 작품이고, 다른 한편은 연쇄강간의 씨앗을 키우는 어머니의 가슴저린 고백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인간에 대한 속죄와
제56회 베를린영화제 중간결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