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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5일, 남산 드라마센터 5층 연습실. 말 많은 도둑과 “돈 훔칠 의지를 꺾어버리는” 여자의 숨가쁜 대화가 진행 중이다. 듣고 있자면 도둑은 도둑 같지가 않고, 여자는 피해자 같지가 않다. “이건 완전히 손만 묶여 있지 실권은 지가 다 장악하고 있네. 이거 어디 도둑질할 맛이 나야 뭘 해먹지. 뭐? 비상금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아 예, 어디다 꼬불쳐놨는지도 가르쳐주지 왜?” “아닌 게 아니라 저 책장 맨 오른쪽 백과사전에 있어요.” 장진 감독이 다시 본업인 무대로 돌아와 연출하는 <서툰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자기일마저 서툰사람들의 하룻밤 만남을 포착한 연극이다. 한동안 그의 영화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덕배, 화이와 재회하는 자리이자 장진 감독이 군대 시절 쓴 극본을 10여년 만에 다시 만져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공연이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탓인지 장진 감독의 마음은 타들어가는 듯했다. 덕배와 화이를 맡은 강성진과 장영남의 연기를 지적하는 말이 꽤나 가열차다. “
[연극열전2] 영화계 품에 안은 <연극열전2> 그 막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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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극의 대출장부에 기록된 가장 큰 채무자일 것이다. 사진을 이어붙여 탄생한 영화를 연극이 중간극의 형태로 품는 동안 영화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배우의 연기를 만들어내는 법을 배웠다. 아마도 충무로와 대학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1990년대 후반 극단 차이무가 송강호를, 한양레퍼토리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충무로에 안겼으며 명계남, 최종원, 권해효 등의 연극계 스타들은 한때 한국영화에 불어닥친 조연배우들의 전성기를 일구어냈다. 배우뿐만이 아니다. 장진이나 김지운 같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무장하여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도왔던 감독들 역시 연극을 기반으로 성장한 작가들이었다.
하지만 대학로로 대표되는 한국의 연극은 영화에 자양분을 내주고 말았을 뿐, 한번도 빚독촉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 연극의 침체가 그렇게 무사안일한 재정관리 때문만인 것은 아니지만, 돌아온다는 기약없이 떠난 연극계의 인재들이 다시 대학로를 찾지 않은 것은 분명 큰 영향을
[연극열전2] 충무로, 대학로를 향해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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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신념과 스타 산업의 위험한 모순
조지 클루니의 아버지는 알려진 것처럼 오랜 방송인 닉 클루니다. “가족 중에 언론인이 있거나 당신 자신이 언론인이면 알 것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것에서 멀어지기는 어렵다.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에 대해 언제나 얘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어릴 때부터 이런 정치적 건전함과 추진력을 배웠다는 뜻이지만, 자본에 구속된 쇼비즈니스의 생리는 그 안에 속한 어떤 사람에게도 신념과 삶의 순결한 일치를 장담해주지 못한다. 호주 일간지 <선 헤럴드>는 지난 가을, ‘조지, 그의 양심과 대면하다’(George Faces up to His Conscience)라는 제목을 걸고 할리우드 좌파스타 조지 클루니의 여러 가지 모순을 ‘고발했다’. 2005년 클루니가 보노, 겔도프와 함께 G8 정상회담장에 찾아가 아프리카 난민 구호와 제3세계 부채 탕감을 호소하기 몇 시간 전, 그가 브래드 피트를 포함한 투자자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라스
[조지 클루니] 신념 있는 섹시스타의 정치적 행보를 돌아보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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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6월의 어느 오후 <LA타임스>의 한 기자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기자가 “여보세요”하니 전화기 너머에서 “난 조지 클루니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LA타임스> 6월19일자를 통해 보도된 이 기사에 따르면 조지 클루니는 기자에게 “두 가지 주제를 갖고 논해봤으면 한다”며 수단 다르푸르 인종 학살과 민주당 상원의원 배럭 오바마에 대한 자기 견해를 쏟기 시작했다. 배럭 오바마는 현재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차기 미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흑인 정치가다. 유권자 참여를 바탕으로 ‘워싱턴식 정치’의 개혁을 역설하는 그는 클루니에겐 우상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조지 클루니는 다르푸르 인종 청소의 비극에 관해 말했다. “이건 절대적으로 절박한 일이고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을 해야 한다. 이미 45만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한단 말인가?”
조지 클루니가 <LA타임스>에 전화해 열변을 토할 그 당시,
[조지 클루니] 신념 있는 섹시스타의 정치적 행보를 돌아보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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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그가 수위를 차지한 각종 설문조사 내용을 공개해보는 것이다. <피플> 선정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1996),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자’ 1위(1997, 2006), ‘50명의 독신남’(2002), ‘결혼상대로 가장 바람직한 독신남’ 1위(2001), ‘옷을 가장 잘 입는 TV스타’(1997), 영국 TV채널 <FX> 선정 ‘짓궂은(naughty) 40대’ 설문조사 중 가장 섹시한 남자 연예인 1위(2004), 미국 케이블 음악채널 <VH1> 선정 ‘100명의 핫한 핫스타들’ 16위 등등. 조지 클루니는 여성패션지 <보그>의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남자였고(그 뒤를 이은 건 리처드 기어밖에 없었다) 두말할 필요없이 모든 여성들이 연애와 결혼의 대상으로 선망해온 남자다. 은은한 조명이 감도는 거실에서 차가운 마가리타 한잔을 쥐고, 실크 셔츠 차림에 낮은 음색으로 아름다운
[조지 클루니] 쿨한 스타의 뜨거운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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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편의 놀라운 성공 이후 <쏘우>는 매년 할로윈 시즌에 새 시리즈를 내놓으며, 올해로 4년 연속 할로윈 시즌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더 많은 희생자와 더 잔혹한 방법이라는 할리우드 시리즈물의 규칙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전편의 내용을 교묘히 발전시켜 충성스러운 고정팬층을 확보한 <쏘우> 시리즈는 지금 할리우드의 어떤 시리즈보다도 성공한 시리즈의 하나로 인식된다. 과도한 신체 훼손과 피칠갑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가 어떻게 대중의 열광을 살 수 있었는지 <익스트림 무비>의 김종철 편집장이 그 피바다 현장을 다시 돌아봤다.
피칠갑의 고문쇼, 공포영화의 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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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은 왜 출연했을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은 영화의 초반부 방 안에 앉아 노트에 글을 쓰고 있는 알렉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던 토미 아저씨로 출연했다. 이때 설명되지 않지만 여기는 토미 아저씨의 집이다. 세트장에 있던 이들 모두가 토미 아저씨 역은 그가 적격이라고 추천했다는 후문. 구스 반 산트는 이 인물에 관해 뉴욕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 “해안가에 집을 갖고 있는 게이 아저씨”라고 표현했다는데, 이혼하려는 알렉스의 아버지가 거기 머무른다? 그럼 혹시 혈연관계인 토미 ’삼촌’이 아니라 아버지의 연인 토미 ’아저씨’는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한 평자는 “<파라노이드 파크>의 숨은 의미를 게이 입회식으로 읽었다”고도 말한다. 구스 반 산트의 다음 영화는 70년대 게이 정치인 하비 밀크의 이야기다(한 가지 더. 어디에서도 확인된 바는 없지만, 알렉스와 메이시가 카페에서 커피를 살 때 뒤편
<파라노이드 파크>에 대한 사소한 진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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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의 신작 <파라노이드 파크>가 개봉한다. 2000년대 접어들어 <게리>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로 신기에 가까운 영화언어를 새로 창조해냈던 그가 마치 이 영화들에 대한 후기를 쓰듯 <파라노이드 파크>를 만들었다. 어쩌면 구스 반 산트가 다시 메인스트림으로 돌아갈 경우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를 미궁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가득하다. 한 소년의 성장기에 갑자기 들어선 거대한 무엇으로서의 그 공원,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도 잠시 호흡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구스 반 산트가 걸어온 길은 좀 유별나다. 개인적인 성격이나 풍모, 하는 행동이 괴짜여서가 아니라 그가 선택해온 영화적 행보가 독특하다. <파라노이드 파크>의 원작자 블레이크 넬슨은 말하기를 “(내 고향) 포틀랜드 사람들은 명석하지만 이상하다”고 했는데, 역시 포틀랜드를 오래도록 안식처 삼아 영화를 만들고 있는 구스 반 산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명석하고
<파라노이드 파크> 혁신적 영화언어로 축조된 해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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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의 기적> <오빠의 불기둥> <욕정의 웨딩드레스>를 연출한 이필립 감독은 공자관 감독의 ‘사수’이자 ‘스승’이다. 에로비디오 시장이 한창 호황이던 시절, 두 사람은 감독과 조감독으로 한팀이 되어 <새됐어> <바다속의 자전거> <동거> 등 여러 히트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출현으로 인한 비디오 시장의 몰락으로 그들의 호시절도 막을 내렸다. 클릭영화사를 나와 유호프로덕션을 거쳐 성인화보영상 등을 찍던 이필립 감독은 현재 모 케이블 채널에서 재연프로그램을 연출 중이며, 공자관 감독은 자신이 에로영화업계에 몸담았던 시절을 소재로 <색화동>을 만들었다. 2시간 동안 이루어진 대화 도중 그들은 그때를 회상하기도 했고, 지금의 상황을 아쉬워했으며 언제 올지 모르는 또 다른 에로영화의 호시절을 기약하기도 했다.
공자관: 얼마 전에 시사할 때 연락드렸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이
[감독 vs 감독] <색화동> 공자관 감독, 스승 이필립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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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는 영화의 학교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신데렐라>의 봉만대 감독이 일본 핑크영화의 거장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을 만났다. 300만엔이 넘지 않는 예산으로 3~4일 만에 영화를 만들어냈던 80년대 일본 핑크영화의 현장을 관통해온 다카하시 감독은 1972년 <부녀폭행탈주범>으로 감독 데뷔, 현재까지 연출한 영화가 80편이 넘는다. 핑크영화의 걸작 중 한편인 <당한 여자>가 나온 1981년에는 연출한 작품이 무려 17편. 1984년엔 이시이 소고 감독의 <역분사 가족>을 프로듀서했으며, 1982년 <타투 아리>부터는 핑크가 아닌 일반 영화도 만들고 있다. <도쿄 섹스피아> <모모> 등 에로영화를 시작으로 충무로에 들어와 작업하고 있는 봉만대 감독의 이력이 다카하시 감독의 여정과 겹친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실험을 추구해온 다카하시 감독과 베드신 사이의 스토리를 고민해온 봉만대 감독. 핑크
[감독 vs 감독] 봉만대 감독, <당한 여자>의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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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와 안개의 집>의 바딤 페렐먼 감독이 충무로국제영화제를 찾은 것은 신작인 <인 블룸>이 상영작으로 선정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곧 리메이크할 한국영화 <파이란>의 주역들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이뤄졌다. 그는 10월29일 “우리 모두의 보물 같은 배우”라는 최민식을 만나 소주를 거나하게 들이켰고, 다음날에는 <파이란>을 연출한 송해성 감독도 만났다. 송해성 감독은 새 영화 <멜로스>(가제)를 준비하고 있는데다 갑작스러운 허리의 통증까지 발병했지만 자신의 영화를 리메이크하겠다는 할리우드 감독이 신기하면서도 기특했고, 최민식까지 “꼭 만나보라”고 권유했던 터라 이 자리에 참석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어색해할 사이도 없이 상대에게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송해성: (최)민식이 형과 통화했는데, 오늘 바딤 감독을 만난다고 했더니 ‘어제 자리가 너무 좋았다’면서 ‘바딤 감독님이
[감독 vs 감독] 송해성 감독, <파이란> 리메이크하는 바딤 페렐먼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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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의 김현석 감독과 <타짜>의 최동훈 감독은 과거 같은 방에 죽치고 앉아 시나리오 심사를 함께했던 인연으로 이렇게 다시 만났다. 김현석 감독은 모범적으로 12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났고, 반면 최동훈 감독은 밤새 일하다 아침 7시에 잠드는 타입이라 특별히 오래도록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시나리오 쓰는 사람’이라는 묘한 동질감이 컸다. 더불어 두 사람은 충무로에 꽤 드문 장르영화의 쾌감과 기발하고 참신한 화법을 좇는 패기 넘치는 젊은 감독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나리오에 대한 얘기로 입을 열었다.
최동훈: 나는 지금도 내가 시나리오작가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김현석 감독이 늘 부러웠다. 소재를 발굴하는 솜씨도 좋고, 무엇보다 옛날에 썼던 시나리오들을 다 팔지 않았나. 난 당시 썼던 두 작품 다 안 팔렸다. 정말 부럽다. (웃음)
김현석: 1993년에 카투사로 군대에 가게 됐는데 당시 영화진흥공사와 스포츠서울이 같이 하는 공
[감독 vs 감독] 최동훈 감독, <스카우트>의 김현석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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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 영화계의 젊고 잘나가는 감독들이 ‘패거리’를 만든다는 비난성 소문이 돈 적이 있다. 작품성이나 흥행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둔 이들 감독들이 자기들끼리만 계속 잘나가기 위해 작당을 한다든가, 아무튼 당시 충무로의 민심은 흉흉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그들의 ‘패거리’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얼마나 서로 잘난 척을 하려나, 지켜보고 있는데 분위기는 소문과 딴판이었다. 그들은 자신과 상대방의 영화, 그리고 영화사의 걸작 또는 최근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영화에 관해 한도 끝도 없는 수다만 떨고 있었다. 그것도 룸살롱 같은 곳도 아닌 커피숍에서 공짜로 리필되는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그들은 마음이 맞고 이야기가 통하며 관심이 비슷해서 자주 어울렸던 것이지 무슨 작당을 꾀한 건 아니었다.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알고 노처녀 마음은 노총각이 알듯, 결국 감독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아마도 다른 감독일 것이다. 새롭고 신기하며, 재밌고 인정받을 수 있는, 그리고 흥행도 잘되는 영화를
[감독 vs 감독] 감독,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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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브리티, 미디어, 대중의 삼각 공생
<뉴욕타임스>는 힐튼의 출소를 다룬 2007년 6월28일자 기사에서 이런 말을 썼다. “패리스 힐튼 현상에 관한 기이한 소급효과(counter-effect)가 하나 있다. 엉터리이기만 한 그녀의 명성이 확인시켜주는 것은 그 바보 같은 명성을 더럽히려고 하는 사람이 더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어 바버라 월터스가 <뉴욕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신디 애덤스에게 했던 말을 인용했다. “나는 패리스 힐튼을 정식으로 인터뷰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그 모든 것이 내 밑바닥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패리스 힐튼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 더욱 더러워질 것이다. 패리스 힐튼은 파파라치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해보일 만큼 관심받는 게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여자다. 그런 그녀가 어디선가 또 멍청한 짓을 하면 틀림없이 미디어는 그쪽에 몰리고 대중이 그 뒤를 좇는다. 미디어 노출증을 의심받기
21세기 쇼비즈니스의 새로운 모델 패리스 힐튼, 그녀는 누구인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