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의 요리, <카모메 식당>
콱 베어먹고 싶은 오니기리
카모메 식당의 주인 사치에는 “왜 메인 메뉴를 오니기리로 했냐”는 미도리의 물음에 답한다. “오니기리(주먹밥)는 일본인의 솔푸드(Soulfood)니까요. 1년에 2번 운동회랑 소풍 때 아버지가 오니기리를 만들어주셨죠. 오니기리는 자기가 직접 만드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게 더 맛있다고 하시면서요. 사실 다른 아이들의 벤토에 들어가던 계란부침이나 소시지는 없었어요. 연어, 매실, 가다랑어. 딱 세 종류의 오니기리밖에 없었거든요. 크기도 크고 모양도 별로였고. 근데 그게 또 아주 맛있더라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카모메 식당>의 오니기리가 인생의 철학이 담긴 음식이어서 ‘올해의 요리’로 선정하는 건 아니다. 진짜 이유? 혀에 고인 침이 쇄골까지 흘러내리도록 맛나 보인다는 것. 심플 이즈 베스트.
올해의 뮤직비디오, <M>
몽롱한 꿈속의 이미지
특별히 영화에 대한 공과를 논하자는 것은
2007년을 빛낸 올해의 장면들 ②
-
올해의 대사, <트랜스포머>
“나는 옵티머스 프라임이다!”
<트랜스포머>는 국내 박스오피스 역사를 트랜스폼(Transform)했다. 개봉 5일 만에 200만명 돌파. 11일 만에 400만명 돌파. 17일 만에 500만명 돌파. 결국 영화는 21일 만에 600만명을 돌파하며 수입영화 흥행의 상한선이라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596만명을 격파했고, 737만명이라는 무시무시한 최종 관객 수를 기록하며 수입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의 지위를 쟁취했다. <트랜스포머>는 디지털 특수효과가 창조한 규모의 법칙을 카피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완벽하게 무력화하는 할리우드의 무기다. “나는 옵티머스 프라임이다!”라는 간결한 기계로봇의 통성명은 “그레타 가르보가 말한다”던 옛 할리우드 유성영화의 광고문구와도 비견할 만하다. 이제 영화가, 아니, 할리우드가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기술만 카피하려는 뱁새들은 이무기에게 먹힐 뿐이(었)다.
올해의 데우스 엑
2007년을 빛낸 올해의 장면들 ①
-
여기 24개의 장면으로 만들어진 2007년 지도가 있습니다. 선정 이유를 알려드리죠. 어떤 장면은 진실로 기억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명장면이기 때문에 선정했습니다. 어떤 장면은 작정하고 놀려보려는 엉큼한 마음으로 선정했다는 걸 인정합니다. 또 어떤 장면은, 그저 짝수를 맞추기 위해서 들어갔습니다. 조금만 더 진지한 자세로 설명해볼까요. 전도연과 이명박의 사진은 2007년 한국 영화계의 엇갈린 영광의 상징입니다. <디 워>와 <트랜스포머>의 장면들은 한국과 할리우드의 SFX블록버스터의 현재에 대한 증언입니다. <색, 계>와 <300>과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의 장면들은 영화가 전시하는 육체의 쾌락이 소화되는 전혀 다른 세 가지 방식입니다. <씨네21>이 여기 선정한 장면들은 2007년의 모든 것에 대한 가장 공정한 지도는 아닐 겁니다. 오히려 이것은 공정해지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올해의 장면] 이 장면에 박수를 보낸다!
-
블로그 주소:
“<씨네21> 블로그 같기도 하고, <한겨레21> 블로그 같기도 하고.” 이 아리송한 말은 ‘굿모닝 대디 굿나잇 마미’ 블로거인 김신식씨의 자평이다. 그는 현재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취업준비생이다. 그만큼 그의 블로그에는 영화 얘기 외에도 정치, 사회를 포함해 TV와 광고 등 여러 대중문화의 갈래들을 아우르는 글들이 많다. 삼성 애니콜의 새로운 광고를 보고 ‘애니밴드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6년 만에 돌아온 박진영에게 ‘정치적 딴따라’라고 말하는 그의 글들은 물론 스펙트럼도 넓지만 글의 수준도 상당하다. 몇달 전 노현정과 김옥빈에 대해 쓴 글은 열띤 논쟁을 끌어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씨네21>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코너를 웹상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씨네21> 블로그 섹션에서 그의 블로그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그러한 점에 기인한 바 크다. 그 역시 다른 블로거들처럼 시작은 소
[씨네블로거 BEST4] 영화를 읽는 사회과학적 시선
-
-
블로그 주소:
2046slacker 블로그의 초기 화면은 이제는 사라진 영화 월간지 <KINO>다. “실제로 아직도 <KINO>를 기다리는 독자이기도 하다”는 그는 과거 매달 독자엽서를 꼬박꼬박 써서 보내던 성실한 독자였다. 이후 <KINO>는 생명을 다했고 더이상 학생이 아니었던 그는 이른바 ‘사회인’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일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3개월여 만에 그만두게 되면서 2005년 4월 처음으로 <씨네21> 블로그를 만들게 됐다. <인 디스 월드>에 대한 글이 메인에 걸리면서 긴 인연이 시작됐고, 당시 어려운 일이 겹쳤던 그는 블로깅을 하면서 차차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블로거 누구나 그렇듯 별다른 이유없이 글이 뜸해졌고, 이후 모 영화잡지에 실린 <천년학>(과 임권택 감독을 ‘씹는’) 기사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홧김에’ 재가입한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의 블로그는
[씨네블로거 BEST4] 핫한 미드 정보부터 전문적인 영화평론까지
-
블로그 주소:
<씨네21> 블로그 섹션에서 홍콩영화에 관한 한 최고의 블로그다. 주인장인 김영진씨는 이미 올해 초 <씨네21>의 ‘홍콩영화는 죽지 않았다’는 제하의 특집(597호)에 ‘홍콩영화 열혈 마니아’라는 이름으로 ‘영원한 열혈남아의 도시’라는 장문의 글을 쓴 필자이기도 하다. “내 공간을 버려두기 싫어서” 글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내가 읽고 싶어하는 홍콩영화 관련 글들, 그리고 궁금한 중화권 소식을 그 어떤 매체에서도 다뤄주지 않는다. 이제 홍콩영화는 그저 과거형에 지나지 않아서인지 신작에 관한 자세한 분석글은 고사하고, 대부분 소설 수준의 가십성 기사는 오기투성이일 만큼 현재의 홍콩영화에 대해 무관심하다보니 홍콩영화 관련 포스팅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다는 어떤 의무감이 생겨버렸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영진씨가 블로그에 매진하게 된 것은 2002년 두기봉 감독의 <미션>(1999)을 접하고서다. 당시 불현듯 개설한 인터넷 카페가 여기 &l
[씨네블로거 BEST4] 기성 언론도 못 당해낼 깊이있는 홍콩영화 정보
-
블로그 주소:
부동의 1위. 물론 이런 표현이 적절하진 않겠지만 <씨네21> 블로그 섹션에서 다카이 오사무가 운영하는 ‘한 일본사람 눈으로 보는 일본영화’는 최고 인기 블로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카이 오사무(高井修)라는 이름의 한자어를 그대로 한국 이름으로 쓰고 있는 그의 블로그는 일본영화와 연예계에 대한 최신 정보는 물론, 일본어가 유창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히 접근하기 힘든 흥미로운 인터뷰들도 손수 번역해 올려주시니 그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블로그다. 그는 프리랜서 필자로서도 명성이 높은데, TV웹진 <매거진t>에 연재하고 있는 ‘나는 오사카의 TV오타쿠’는 수많은 고정팬들을 거느린 인기 코너다.
고정수씨가 처음 <씨네21>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 처음으로 인터넷을 시작하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 이전에 <쉬리>(1998)를 통해 한국영화에 눈뜨고, 곧장 재일 한국인이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에 가서 한국영화
[씨네블로거 BEST4] 인터넷에 한·일영화의 오작교를 놓는다
-
무척 궁금했다. 물론 블로그의 세계란 것이 익명성의 공간이지만 그들이 허락만 해준다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여느 평론가나 전문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감탄하게 만드는 필력도 궁금했고, 그 어디서도 접하기 힘든 정보들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그들이 고맙기도 했다. 이들은 <씨네21> 홈페이지의 블로그 섹션에서 이미 인기 필자로 이름난 블로거들이다. <쉬리>를 시작으로 한국영화에 빠져 영화 블로그를 시작한 ‘한 일본사람’부터, 홍콩영화에 관해서라면 홍콩을 수시로 찾는 것은 물론 전국의 각 국제영화제들을 낱낱이 섭렵해야 직성이 풀리는 열혈 홍콩마니아, 이제는 사라진 영화지 <KINO>의 부활을 언제나 믿으며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계속 나누고 싶다는 영화청년,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이제는 어느덧 자유기고가의 길을 걷게 돼 기쁘다는 한 대학 졸업반생에 이르기까지 <씨네21>이 그들과의 만남을 간절히 요청했다.
[씨네블로거 BEST4] 기자보다 정확하게, 평론가보다 깊이있게
-
트레이시 역의 니키 블론스키
낭랑 18세 소녀의 무한 도전
<헤어스프레이>가 낳은 최고의 스타. 147cm에 불과한 단신에, ‘XXXL’ 사이즈를 입는 몸으로 할리우드 메이저 뮤지컬영화의 주연을 꿰찬 18살의 당찬 소녀다. 5살 때부터 노래를 시작한 블론스키는 재학 중인 고등학교에서 <레 미제라블> <스위니 토드> <키스 미 케이트> 등 여러 무대의 연기 경험을 쌓았다. 전문적인 경험도 쌓고자 수많은 오디션에 지원해서 매번 낙방했다. 3년 전 브로드웨이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오디션도 그중 하나다. 당연히 트레이시 역. 자신의 15살 생일 기념으로 공연을 보고 반해서 오디션에 지원했던 블론스키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낙방했다.
블론스키를 캐스팅한 애덤 솅크먼 감독은 “그녀가 처음 현장에 나타났을 때 그저 말을 잃을 만큼 근사했다”고 다소 호들갑스러운 호평을 했다. “노래를 하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퍼니 걸>의
<헤어스프레이>의 배우 4인을 소개합니다
-
영화 <헤어스프레이>(2007)가 미국 개봉을 앞둔 지난 7월 초, 한 네티즌이 영화를 보이콧하고 나섰다. 보이콧을 주장한 인물은 케빈 나프. 워싱턴DC 및 볼티모어 지역의 게이 커뮤니티를 위한 온라인 뉴스사이트 <워싱턴 블레이드>(The Washington Blade)의 필자로 알려진 그는 <헤어스프레이>의 출연자인 존 트래볼타의 종교를 근거로 보이콧을 주장했다. 그는 존 트래볼타가 믿는 사이언톨로지교가 “대놓고 동성애 혐오증을 표방하는 종교”이고 트래볼타가 <헤어스프레이>의 호모섹슈얼리티적 성격을 “치유”하기 위한 워크숍을 후원했다더라는 루머를 덧붙였다. <헤어스프레이>의 감독 애덤 솅크먼은 이를 알고 벌컥 화를 냈다(솅크먼은 게이다). 그는 <LA타임스>에 말했다. “존 트래볼타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게이들과 친근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사이언톨로지든 뭐든 어떤 종교도 우리 현장에 들이밀지 않았다.
춤추고 싶은 뮤지컬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뮤지컬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어떤 면에서 불편하다.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오락물은 그 시기의 다양한 사회계층간 갈등을 이야기 속에 끌어오면서도 그것들을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헤어스프레이>는 복종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주인공 소녀의 시원한 오프닝 넘버로 시작해 올 캐스트가 모인 화끈한 엔딩 넘버로 마무리지어질 때까지 뮤지컬영화 <헤어스프레이>는 빌보드 차트 1위를 12주간 휩쓸 만한 넘버원 팝송들의 향연이다. 시퀀스가 바뀔 때마다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에 두귀가 사로잡히고 촌철살인 노랫말에 마음이 빼앗긴다. 애덤 솅크먼은 이 영화를 1988년 존 워터스의 동명영화와 200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부터 리메이크하면서 다소 올드한 스타일로 버무려 관객들에게 옛 뮤지컬영화들에 대한 향수마저 느끼게 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퍼니 걸> 등에서 영감을
<헤어스프레이> 특별한 SHOW가 온다!
-
우리가 어쩌자고 만났을까. 한때 사랑했던 두 남녀의 후회는 강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그를 선택했던 나는 내가 아니었고, 내가 선택했던 그는 그가 아니었다. 한지승 감독의 신작인 <싸움>은 이들의 후회를 가열찬 육박전으로 묘사하는 영화다. 제목이 뜻하는 싸움은 진짜 싸움이다. 가늘지만 질긴 인연의 끈만 남은 두 남녀 사이에서는 주먹이 오가고 피가 튀긴다. 하지만 본질상 이들의 주먹다짐은 여느 연인들의 스킨십과 다를 바 없다. 아침시간대의 주부대상 토크쇼에서 말하듯 “사랑하니까 싸우는 것”이라는 체념이 아니다. 그들은 싸우면서 더 후회하고, 더 사랑한다.
그런데 이런 격렬한 싸움의 주인공이 설경구와 김태희다. 캐스팅 소식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말하자면 그들은 서로 너무나 다른 고지를 바라보던 배우들이었다. 10살이 넘는 나이 차이는 그렇다고 쳐도 매번 극한의 에너지를 분출하던 설경구와 미모로 자체발광하던 김태희의 싸움은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설경구 역시 자
[설경구, 김태희] 부조화의 조화
-
-김지훈 감독이 연극 연출을 한다는 게 낯설었다. <연극열전2>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올해가 충무로에 온 지 10년째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B급이고 이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내가 배우를 관찰하지 못하는 관성이 있는 것 같더라. 보통 감독은 동사로 이야기하고 배우들은 형용사로 반응하는데, 내가 먼저 형용사로 표현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와 좀더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겠더라. 그래서 평소 연극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조)재현씨가 좋은 기회를 준 것이다.
-<늘근도둑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보았던 여러 작품들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연극이다.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는 나의 행복을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영화는 관객의 행복을 염두에 둬야 하는 작업이더라. <늘근도둑이야기>는 만드는 사람들도 행복하지만 관객도 행복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관객으로서 작품을 대하는
[연극열전2] <늘근도둑이야기> 연출자 김지훈 감독
-
-2004년 <연극열전> 이후 3년 만에 연출하는 연극이다.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
=아무래도 상업적 부담감이 영화보다는 덜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무시 못할 고민이 많다. 하지만 평소 무대 밖에서 친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게 즐겁다. (강)성진씨는 평소 야구장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고, 김원효 선배나 이상훈씨는 10년 전부터 함께 으샤으샤했던 분들이다. 지금 와서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게 나로서도 뿌듯하게 느껴진다.
-유화이를 한채영과 장영남이 더블캐스팅으로 연기한다. 한채영은 어떤 계기로 캐스팅했나.
=채영씨는 예전부터 친한 사이였고, 언젠가는 함께해보자고 이야기했었다. 물론 나도 연극에서 채영씨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본인이 가진 부담을 연출 입장에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 연극은 해본 적이 없지만, 주인공을 해본 배우로서 갖고 있는 책임감은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연습 때 하지 못한 것들까지 보여줄 것이다.
-<서툰사람들>
[연극열전2] <서툰사람들> 연출자 장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