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오랫동안 홍콩 액션영화는 명백한 오리지널리티를 소유한 장인이자 동시에 다양한 조롱과 무시의 대상이었다. 산업으로서의 홍콩영화가 소강상태에 접어들 무렵, <와호장룡>과 <킬 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홍콩 액션영화를 향한 애정을 고백했다. <와호장룡>은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무협소설 속 진부한 문구를 현실화했다. ‘홍콩영화=이소룡과 성룡의 B급 쿵후영화’라고 생각했던 미국과 유럽의 관객은 그 철학적인 액션 시퀀스들에 열광했지만, 리안은 사실 오랫동안 잊혀졌던 홍콩 무협의 기품을 되살린 것이다. 이미 1960년대 후반 호금전의 영화에는 대나무숲을 수직 활강하는 무사와 속세의 무게를 벗고 경공술을 구사하는 고승이 일상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용(장쯔이)과 수련(양자경)이 지붕과 돌담을 타고 넘다가 몇번의 합을 주고받는 추격신의 뛰어남은 유려한 액션 안무에 있지 않다. 끊임없이 날아오르려는 용과 그를 끌어내리려는 수련의 시도는 둘의 캐릭터를 보
[액션영화 명장면] 홍콩 무협의 기품, 되살리거나 낄낄대거나
-
우리의 말초적인 감각에 가장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영화 장르가 바로 액션이다.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금세 심드렁해지고,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그러나 하늘 안에 새로운 게 어디 있나. 모방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키고 또 하나의 국면을 만들어내는 액션영화의 계보는 언제나 복잡하고, 뿌리없는 창조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부담없이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선배와 동료를 모방하며 경의를 표하는 액션영화의 어떤 경향은 유쾌하고 거리낌없다. 그처럼 안하무인에 유아독존하는 마음으로 21세기의 액션 명장면을 꼽아봤다. 아무리 흠을 잡으려야 찾을 수 없는 걸작도 있고, 액션 말고는 뭘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쾌감만큼은 보기 드물게 거침없는 졸작도 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대체 언제’라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각기 이 시대 액션의 어떤 경향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목록이 되었으면 한다. 리스트가 불만인 많은 분들은 개인적인 목록을
[액션영화 명장면] 당신이 상상했던 그 이상의 액션
-
<M>은 이명세가 꾸는 꿈이다. 꿈답게 여러 가지가 자유롭게 출입한다. <형사>의 연장선에 있는 표현들이 즐비하며 여기 종종 과거의 작품과 주인공이 불려온 듯한 인상도 있다. 꿈과 기억이라는 소재를 따라 시간과 무의식의 문제가 개입하며, 고집스런 실험의 폭이 넓어지면서 어느 전작보다 현란해 보인다. 이명세 감독 본인은 이 현란함이 곧 혼돈이며 그 혼돈은 의도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혹은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것을 영화가 담고 있기에 혼돈스럽게 보이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해몽의 몫은 보는 사람에게 남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첫 상영이 끝난 다음날,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라운지에서 그의 해몽을 먼저 들었다.
-반응들이 어떤가
=토론토영화제 상영 때도 그랬지만, 여성과 남성의 반응이 다른 것 같다. 남성들은 지적인 싸움을 하는 건지 더 못 받아들이는 것 같다. 여성들은 그냥 감정대로 간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영
“관객도 혼란에 빠지길 원했다”
-
꿈의 미로 혹은 기억의 서커스, <M>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첫선을 보였다. <형사 Duelist>에 이은 영화와 사랑에 대한 이명세식 꿈꾸기다. 전작보다 더 현란한 시청각적 요소의 실험이 넘실대고 있어 때로 이 꿈과 기억의 한복판에서 관객은 망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꿈에도 구조가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럼 우리에게도 <M>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해몽도 하나쯤 필요하지 않을까? 제작과정에서 두드러진 다섯 가지 항목으로 <M>을 풀이해본다.
1. 스토리 또는 플롯
<M>의 이야기 작법은 미로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야기가 복잡한 게 아니라 단순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이 현란하다. 남녀의 애달픈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지만 영화는 선형적인 단계로 설명하길 거부한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는 “감정을 열어놓고 보아야” 하는 영화다. 한권의 인기 소설을 발표한 젊은 작가 한민우(강동원)는 누군가가 자신을
꿈의 미로를 여행하는 관객을 위한 안내서
-
-
미드가 점거한 광대한 영토만큼이나 그 대지를 밝히는 별들의 수는 적지 않다. 뜨거운 스타덤과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아직 많은 발길이 닿지 않은 길을 탐색해본다면, 그곳에서 독특하고 매력적인 얼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폭발적이라고 할 만한 인기의 방석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당신의 심장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한 마력을 잠재한 배우들. 미드의 성찬을 한층 풍부하게 음미하게 해주는 숨겨진 얼굴들을 찾아보았다.
완소 악당이란 바로 이런 것
<프리즌 브레이크>의 티백, 로버트 니퍼
살인자, 소아강간범, 인종차별주의자. 그는 반론의 여지없이 혐오스러운 인간의 전형이다. 그러나 가능한 독소들을 모두 배합한 듯한 그 화합물은 놀랍게도,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인 악취를 내뿜는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티백’은 캐릭터의 악행을 향한 미움과 적의를 더욱 커다란 애정의 블랙홀로 빨아들이는 치명적인 악당이다. “바로 주인공에게 처치당해 사라질 악역을 연기할
[미드의 배우들] 빛 속에 숨은 별들
-
필생의 배역은,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행운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열풍 속에 ‘필생의 배역’을 만나 인기를 누리는 미드의 배우 7명을 소개한다. 드라마의 인기가 오롯이 배우에 기대 있다고 하기엔 비약이 있지만, 이들 없이는 드라마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배우들이 누리는 지금의 명성 뒤에는 1%의 행운을 만나게 한 99%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미스 어글리: <어글리 베티> 아메리카 페레라
‘못생긴 베티’는 45분간의 분장으로 태어난다. 제작진이 스타일리시하다고 입을 모으는 아메리카 페레라가 가짜 눈썹과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파란 고무줄로 묶인 교정기를 물면, 사랑스러운 못난이 <어글리 베티>가 완성된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1400만 시청자를 사로잡음과 동시에 인터넷에 시청소감이 빗발치는 현상을 낳은 <어글리 베티>는 코미디지만 생생한 현실감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예쁜 얼굴에 주근깨 몇개를 그리는
[미드의 배우들] 드라마의 자궁에서 태어난 스타들
-
1990년대의 TV스타 조지 클루니와 짐 캐리는 <ER>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할리우드에 입성, 영화인으로 완벽하게 환생했다. 21세기 ‘미드’의 전성시대에서는 그 반대 공식이 더 유효하다. 시시한 영화배우에서 하루아침에 스타로 돌변한 <위기의 주부들>의 테리 해처, 드라마 두편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 <데미지> <쉴드>의 왕성하고 우아한 노년 글렌 클로즈, 여성적 욕망의 아름다운 초상 홀리 헌터의 첫 TV드라마 <세이빙 더 그레이스>의 소식까지 담지 못하는 게 아쉽다. 현재 미국 TV시장에서 가장 열렬한 대접을 받고 있는 영화배우 6인의 제8의 전성기 스토리.
드라마의 품에 안긴 할리우드의 탕아들
<24>의 키퍼 서덜런드 & <두 남자와 1/2>의 찰리 신
키퍼 서덜런드와 찰리 신은 이른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브랫팩’ 멤버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코
[미드의 배우들] 내 인생 제8의 전성기는 TV에서 시작됐다
-
지난 9월16일 케이블 채널 ‘캐치온’은 미국의 에미상 시상식을 국내에 생중계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생기는 법. 이른바 ‘미드광’층이 두텁게 형성된 국내에서 에미상 시상식은 이제 더이상 무관심의 영역이 아니게 된 것이다. 미국 TV시리즈가 새로운 중흥기를 맞으면서 스타덤의 시장 또한 커졌다. 현재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미국 TV드라마 스타들을 한데 모아보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드라마로 커리어 재기에 성공한 은막스타 <24>의 키퍼 서덜런드부터 올해 에미상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핫스타 <어글리 뷰티>의 아메리카 페라라, 그리고 향후 몇년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원 트리 힐>의 채드 마이클 머레이까지 초호화 라인업으로 TV스타 17명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영화와 TV는 결국에 가장 가깝고 긴밀한 교류가 가능한 두 영역이다. 오늘의 안방극장 스타가 내일의 은막스타로, 오늘의 은막스타가 내일의 안방극장 스타로 변해 있을지 그
[미드의 배우들] 그리고 TV는 배우를 재발견했다
-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의 박진표 감독이 허진호 감독을 만났다. 박진표 감독은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1998년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다. 이 영화를 “스무번도 넘게” 보면서 영화감독이 되기를 희망했던 박진표 감독은 데뷔작 <죽어도 좋아!>를 갖고 2002년 부산영화제를 찾았고, 이때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허진호 감독과 대면했다. 서로의 영화에 대한 호감에서 출발한 이 세살 터울 두 남자의 관계는 이내 형-동생이 됐고, 짬이 날 때마다 영화와 삶, 그리고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소곤거리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렇게 마음이 통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수백명과 인터뷰를 했던 박진표 감독의 경력 덕인지, 좀처럼 자신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않던 허진호 감독은 한 장면을 만든 배경에서부터 깊은 고민까지 이야기해줬다.
박진표 어제 형 영화 잘 봤어요.
[박진표-허진호 대담] 도대체 왜 행복일까?
-
잠깐 혼란이 왔다. 너무 쉽다. 너무 단순하다. 천사표 여자가 아픈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고 병을 고친 그 남자는 결국 그 여자를 배신하고 떠난다.
사랑은 그렇게 씁쓸하고 경박하며 부질없는 것이다.
그게 다인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단순히 그게 다인가?
비현실적이다 싶을 만큼 착한 여자의 캐릭터에 극단적인 선악구도에 약초 캐는 날 하필이면 비가 오는 손쉬운 설정하며…. 전형적이며 통속적인 멜로의 문법을 당혹스러울 만큼 노골적으로 차용한 이유가 뭘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허진호 감독이. 감독 자신의 최고 장점인 탁월한 심리묘사와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대사의 힘만으로 황정민과 임수정이라는 두 거목의 발군의 연기력만으로 그 당혹스러움이, 그 진부함이 커버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뭔가 더 있을 것 같았다. 감독조차도 ‘통속적인 멜로’를 하고 싶었다고 배수의 진을 쳤지만, 관객이 찾아내주길 바라는 뭔가가 분명히 더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선 엔딩 크레
<행복> 에세이 3. 은희만의 소박한 행복
-
어쨌거나, 허진호 감독은 줄곧 남녀간의 사랑을 탐구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전작들과는 좀 결이 다르다. 간이 굳어가는 남자와 폐에 고름이 잡히는 여자가 요양원에서 만나 빈집에서 함께 산다. 거기에 대고 ‘행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잃을 게 목숨밖에 없는 삶의 막장에서 동병상련의 연대로 만난 두 남녀의 사랑은 투명한 단순성 때문에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생활 속에서 행복을 유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론 아닐 게다. 이 영화의 전언이 ‘소박한 일상 속에 행복이 있다’는 따위의 김빠진 설교는.
실제로 두 남녀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지 못한다. 병세가 호전된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병이 악화돼 죽음을 맞는다. 남자는 다시 그들이 만났던 ‘희망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조강지처 버린 자는 벌 받는다’는 신파극 같다. 혹자는 70년대 호스티스영화를 요양원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것 같다고 한다. 설마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것이 이건 아닐 테지.
<행복> 에세이 2. 은희는 사랑을 알지 모른다
-
연애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갖고 감정을 발전시켜나가는 부분이다. 농담과 배려, 시치미, 오해 등 앙증맞은 톱니들이 돌아가는 소리와, 정념의 낙차가 만들어내는 그래프 곡선만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까 싶다. 연애 이야기에서 더 흥미로운 지점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합일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공간이 최초로 찢어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연애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을 통해 사랑의 충만감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찢어짐의 순간을 매번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두 사람의 연애를 지지하는 만큼 두 사람의 이별을 갈망한다.
나는 영수(황정민)가 은희(임수정)에게 “너 밥 천천히 먹는 거 안 지겹니? 난 지겨운데”라고 묻는 순간이 좋았다. 둘 중 한 사람만의 건강이 호전되자, 다른 한 사람이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가 좋았다. 그것은 내가 어느 소설의 문장, ‘아름다우면서 진실한 것
<행복> 에세이 1. 진실을 견디려는 질주
-
허진호 감독이 네 번째 사랑영화 <행복>을 들고 다시 가을로 찾아왔다. <행복>은 그의 전작들처럼, 살포시 만난 남자와 여자가 조곤조곤 사랑을 나누다가 이내 뒤돌아서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치밀한 사실주의 화법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행복>은 허진호 감독의 말마따나 “좀더 다가가려 했고, 친절해지려 했다”는 점에서 앞의 세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전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가을날의 싸한 새벽 공기를 녹이는 손난로만큼의 열기가 가슴속으로 치미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평소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즐겨왔던 영화계 바깥의 세명의 필자가 <행복>에 대한 감상을 전해왔다. 그리고 <행복>에서 미묘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감지한 박진표 감독이 허진호 감독을 만나 영화 안과 바깥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스포일러 경고: <행복>에 관한 세 사람의 에세이에는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애타게, <행복>을 찾아서
-
40여년 동안 나온 수백편 중에서 필청 음반이나 베스트 음반, 혹은 대표 음반을 한정된 지면에 꼽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게다가 너무도 많은 수작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더. 용서를 빈다.
<황야의 무법자> Per un Pugno di Dollari: A Fistful of Dollars (1964)
매끈하고 풍성한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 대신, 독특한 악기를 선택하고 일상의 소리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킨 첫 음반. 이때부터 지금까지 엔니오 모리코네는 사람의 (목)소리를 길어올리는 재능과 기억을 사로잡는 멜로디 감각을 지속시켜왔다. 첫곡 <Titoli>는 그 유명한 휘파람 소리로 시작하여 알레산드로니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전기기타와 휘파람 협연, “We can fight”라고 내뱉는 원시적이고 조야한 남성 보컬, 그리고 채찍소리, 종소리, 말 달리는 듯한 사운드, 고음역의 피콜로 음향 등이 어우러진다. <Them
[엔니오 모리코네]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부터 낭만적인 휘파람 소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