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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어떤 면에서 불편하다.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오락물은 그 시기의 다양한 사회계층간 갈등을 이야기 속에 끌어오면서도 그것들을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헤어스프레이>는 복종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주인공 소녀의 시원한 오프닝 넘버로 시작해 올 캐스트가 모인 화끈한 엔딩 넘버로 마무리지어질 때까지 뮤지컬영화 <헤어스프레이>는 빌보드 차트 1위를 12주간 휩쓸 만한 넘버원 팝송들의 향연이다. 시퀀스가 바뀔 때마다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에 두귀가 사로잡히고 촌철살인 노랫말에 마음이 빼앗긴다. 애덤 솅크먼은 이 영화를 1988년 존 워터스의 동명영화와 200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부터 리메이크하면서 다소 올드한 스타일로 버무려 관객들에게 옛 뮤지컬영화들에 대한 향수마저 느끼게 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퍼니 걸> 등에서 영감을
<헤어스프레이> 특별한 SHOW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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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쩌자고 만났을까. 한때 사랑했던 두 남녀의 후회는 강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그를 선택했던 나는 내가 아니었고, 내가 선택했던 그는 그가 아니었다. 한지승 감독의 신작인 <싸움>은 이들의 후회를 가열찬 육박전으로 묘사하는 영화다. 제목이 뜻하는 싸움은 진짜 싸움이다. 가늘지만 질긴 인연의 끈만 남은 두 남녀 사이에서는 주먹이 오가고 피가 튀긴다. 하지만 본질상 이들의 주먹다짐은 여느 연인들의 스킨십과 다를 바 없다. 아침시간대의 주부대상 토크쇼에서 말하듯 “사랑하니까 싸우는 것”이라는 체념이 아니다. 그들은 싸우면서 더 후회하고, 더 사랑한다.
그런데 이런 격렬한 싸움의 주인공이 설경구와 김태희다. 캐스팅 소식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말하자면 그들은 서로 너무나 다른 고지를 바라보던 배우들이었다. 10살이 넘는 나이 차이는 그렇다고 쳐도 매번 극한의 에너지를 분출하던 설경구와 미모로 자체발광하던 김태희의 싸움은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설경구 역시 자
[설경구, 김태희] 부조화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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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감독이 연극 연출을 한다는 게 낯설었다. <연극열전2>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올해가 충무로에 온 지 10년째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B급이고 이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내가 배우를 관찰하지 못하는 관성이 있는 것 같더라. 보통 감독은 동사로 이야기하고 배우들은 형용사로 반응하는데, 내가 먼저 형용사로 표현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와 좀더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겠더라. 그래서 평소 연극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조)재현씨가 좋은 기회를 준 것이다.
-<늘근도둑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보았던 여러 작품들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연극이다.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는 나의 행복을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영화는 관객의 행복을 염두에 둬야 하는 작업이더라. <늘근도둑이야기>는 만드는 사람들도 행복하지만 관객도 행복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관객으로서 작품을 대하는
[연극열전2] <늘근도둑이야기> 연출자 김지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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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연극열전> 이후 3년 만에 연출하는 연극이다.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
=아무래도 상업적 부담감이 영화보다는 덜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무시 못할 고민이 많다. 하지만 평소 무대 밖에서 친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게 즐겁다. (강)성진씨는 평소 야구장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고, 김원효 선배나 이상훈씨는 10년 전부터 함께 으샤으샤했던 분들이다. 지금 와서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게 나로서도 뿌듯하게 느껴진다.
-유화이를 한채영과 장영남이 더블캐스팅으로 연기한다. 한채영은 어떤 계기로 캐스팅했나.
=채영씨는 예전부터 친한 사이였고, 언젠가는 함께해보자고 이야기했었다. 물론 나도 연극에서 채영씨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본인이 가진 부담을 연출 입장에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 연극은 해본 적이 없지만, 주인공을 해본 배우로서 갖고 있는 책임감은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연습 때 하지 못한 것들까지 보여줄 것이다.
-<서툰사람들>
[연극열전2] <서툰사람들> 연출자 장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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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5일, 남산 드라마센터 5층 연습실. 말 많은 도둑과 “돈 훔칠 의지를 꺾어버리는” 여자의 숨가쁜 대화가 진행 중이다. 듣고 있자면 도둑은 도둑 같지가 않고, 여자는 피해자 같지가 않다. “이건 완전히 손만 묶여 있지 실권은 지가 다 장악하고 있네. 이거 어디 도둑질할 맛이 나야 뭘 해먹지. 뭐? 비상금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아 예, 어디다 꼬불쳐놨는지도 가르쳐주지 왜?” “아닌 게 아니라 저 책장 맨 오른쪽 백과사전에 있어요.” 장진 감독이 다시 본업인 무대로 돌아와 연출하는 <서툰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자기일마저 서툰사람들의 하룻밤 만남을 포착한 연극이다. 한동안 그의 영화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덕배, 화이와 재회하는 자리이자 장진 감독이 군대 시절 쓴 극본을 10여년 만에 다시 만져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공연이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탓인지 장진 감독의 마음은 타들어가는 듯했다. 덕배와 화이를 맡은 강성진과 장영남의 연기를 지적하는 말이 꽤나 가열차다. “
[연극열전2] 영화계 품에 안은 <연극열전2> 그 막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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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극의 대출장부에 기록된 가장 큰 채무자일 것이다. 사진을 이어붙여 탄생한 영화를 연극이 중간극의 형태로 품는 동안 영화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배우의 연기를 만들어내는 법을 배웠다. 아마도 충무로와 대학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1990년대 후반 극단 차이무가 송강호를, 한양레퍼토리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충무로에 안겼으며 명계남, 최종원, 권해효 등의 연극계 스타들은 한때 한국영화에 불어닥친 조연배우들의 전성기를 일구어냈다. 배우뿐만이 아니다. 장진이나 김지운 같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무장하여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도왔던 감독들 역시 연극을 기반으로 성장한 작가들이었다.
하지만 대학로로 대표되는 한국의 연극은 영화에 자양분을 내주고 말았을 뿐, 한번도 빚독촉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 연극의 침체가 그렇게 무사안일한 재정관리 때문만인 것은 아니지만, 돌아온다는 기약없이 떠난 연극계의 인재들이 다시 대학로를 찾지 않은 것은 분명 큰 영향을
[연극열전2] 충무로, 대학로를 향해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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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신념과 스타 산업의 위험한 모순
조지 클루니의 아버지는 알려진 것처럼 오랜 방송인 닉 클루니다. “가족 중에 언론인이 있거나 당신 자신이 언론인이면 알 것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것에서 멀어지기는 어렵다.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에 대해 언제나 얘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어릴 때부터 이런 정치적 건전함과 추진력을 배웠다는 뜻이지만, 자본에 구속된 쇼비즈니스의 생리는 그 안에 속한 어떤 사람에게도 신념과 삶의 순결한 일치를 장담해주지 못한다. 호주 일간지 <선 헤럴드>는 지난 가을, ‘조지, 그의 양심과 대면하다’(George Faces up to His Conscience)라는 제목을 걸고 할리우드 좌파스타 조지 클루니의 여러 가지 모순을 ‘고발했다’. 2005년 클루니가 보노, 겔도프와 함께 G8 정상회담장에 찾아가 아프리카 난민 구호와 제3세계 부채 탕감을 호소하기 몇 시간 전, 그가 브래드 피트를 포함한 투자자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라스
[조지 클루니] 신념 있는 섹시스타의 정치적 행보를 돌아보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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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6월의 어느 오후 <LA타임스>의 한 기자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기자가 “여보세요”하니 전화기 너머에서 “난 조지 클루니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LA타임스> 6월19일자를 통해 보도된 이 기사에 따르면 조지 클루니는 기자에게 “두 가지 주제를 갖고 논해봤으면 한다”며 수단 다르푸르 인종 학살과 민주당 상원의원 배럭 오바마에 대한 자기 견해를 쏟기 시작했다. 배럭 오바마는 현재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차기 미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흑인 정치가다. 유권자 참여를 바탕으로 ‘워싱턴식 정치’의 개혁을 역설하는 그는 클루니에겐 우상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조지 클루니는 다르푸르 인종 청소의 비극에 관해 말했다. “이건 절대적으로 절박한 일이고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을 해야 한다. 이미 45만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한단 말인가?”
조지 클루니가 <LA타임스>에 전화해 열변을 토할 그 당시,
[조지 클루니] 신념 있는 섹시스타의 정치적 행보를 돌아보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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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그가 수위를 차지한 각종 설문조사 내용을 공개해보는 것이다. <피플> 선정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1996),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자’ 1위(1997, 2006), ‘50명의 독신남’(2002), ‘결혼상대로 가장 바람직한 독신남’ 1위(2001), ‘옷을 가장 잘 입는 TV스타’(1997), 영국 TV채널 <FX> 선정 ‘짓궂은(naughty) 40대’ 설문조사 중 가장 섹시한 남자 연예인 1위(2004), 미국 케이블 음악채널 <VH1> 선정 ‘100명의 핫한 핫스타들’ 16위 등등. 조지 클루니는 여성패션지 <보그>의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남자였고(그 뒤를 이은 건 리처드 기어밖에 없었다) 두말할 필요없이 모든 여성들이 연애와 결혼의 대상으로 선망해온 남자다. 은은한 조명이 감도는 거실에서 차가운 마가리타 한잔을 쥐고, 실크 셔츠 차림에 낮은 음색으로 아름다운
[조지 클루니] 쿨한 스타의 뜨거운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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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편의 놀라운 성공 이후 <쏘우>는 매년 할로윈 시즌에 새 시리즈를 내놓으며, 올해로 4년 연속 할로윈 시즌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더 많은 희생자와 더 잔혹한 방법이라는 할리우드 시리즈물의 규칙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전편의 내용을 교묘히 발전시켜 충성스러운 고정팬층을 확보한 <쏘우> 시리즈는 지금 할리우드의 어떤 시리즈보다도 성공한 시리즈의 하나로 인식된다. 과도한 신체 훼손과 피칠갑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가 어떻게 대중의 열광을 살 수 있었는지 <익스트림 무비>의 김종철 편집장이 그 피바다 현장을 다시 돌아봤다.
피칠갑의 고문쇼, 공포영화의 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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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은 왜 출연했을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은 영화의 초반부 방 안에 앉아 노트에 글을 쓰고 있는 알렉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던 토미 아저씨로 출연했다. 이때 설명되지 않지만 여기는 토미 아저씨의 집이다. 세트장에 있던 이들 모두가 토미 아저씨 역은 그가 적격이라고 추천했다는 후문. 구스 반 산트는 이 인물에 관해 뉴욕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 “해안가에 집을 갖고 있는 게이 아저씨”라고 표현했다는데, 이혼하려는 알렉스의 아버지가 거기 머무른다? 그럼 혹시 혈연관계인 토미 ’삼촌’이 아니라 아버지의 연인 토미 ’아저씨’는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한 평자는 “<파라노이드 파크>의 숨은 의미를 게이 입회식으로 읽었다”고도 말한다. 구스 반 산트의 다음 영화는 70년대 게이 정치인 하비 밀크의 이야기다(한 가지 더. 어디에서도 확인된 바는 없지만, 알렉스와 메이시가 카페에서 커피를 살 때 뒤편
<파라노이드 파크>에 대한 사소한 진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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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의 신작 <파라노이드 파크>가 개봉한다. 2000년대 접어들어 <게리>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로 신기에 가까운 영화언어를 새로 창조해냈던 그가 마치 이 영화들에 대한 후기를 쓰듯 <파라노이드 파크>를 만들었다. 어쩌면 구스 반 산트가 다시 메인스트림으로 돌아갈 경우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를 미궁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가득하다. 한 소년의 성장기에 갑자기 들어선 거대한 무엇으로서의 그 공원,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도 잠시 호흡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구스 반 산트가 걸어온 길은 좀 유별나다. 개인적인 성격이나 풍모, 하는 행동이 괴짜여서가 아니라 그가 선택해온 영화적 행보가 독특하다. <파라노이드 파크>의 원작자 블레이크 넬슨은 말하기를 “(내 고향) 포틀랜드 사람들은 명석하지만 이상하다”고 했는데, 역시 포틀랜드를 오래도록 안식처 삼아 영화를 만들고 있는 구스 반 산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명석하고
<파라노이드 파크> 혁신적 영화언어로 축조된 해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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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의 기적> <오빠의 불기둥> <욕정의 웨딩드레스>를 연출한 이필립 감독은 공자관 감독의 ‘사수’이자 ‘스승’이다. 에로비디오 시장이 한창 호황이던 시절, 두 사람은 감독과 조감독으로 한팀이 되어 <새됐어> <바다속의 자전거> <동거> 등 여러 히트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출현으로 인한 비디오 시장의 몰락으로 그들의 호시절도 막을 내렸다. 클릭영화사를 나와 유호프로덕션을 거쳐 성인화보영상 등을 찍던 이필립 감독은 현재 모 케이블 채널에서 재연프로그램을 연출 중이며, 공자관 감독은 자신이 에로영화업계에 몸담았던 시절을 소재로 <색화동>을 만들었다. 2시간 동안 이루어진 대화 도중 그들은 그때를 회상하기도 했고, 지금의 상황을 아쉬워했으며 언제 올지 모르는 또 다른 에로영화의 호시절을 기약하기도 했다.
공자관: 얼마 전에 시사할 때 연락드렸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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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vs 감독] <색화동> 공자관 감독, 스승 이필립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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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는 영화의 학교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신데렐라>의 봉만대 감독이 일본 핑크영화의 거장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을 만났다. 300만엔이 넘지 않는 예산으로 3~4일 만에 영화를 만들어냈던 80년대 일본 핑크영화의 현장을 관통해온 다카하시 감독은 1972년 <부녀폭행탈주범>으로 감독 데뷔, 현재까지 연출한 영화가 80편이 넘는다. 핑크영화의 걸작 중 한편인 <당한 여자>가 나온 1981년에는 연출한 작품이 무려 17편. 1984년엔 이시이 소고 감독의 <역분사 가족>을 프로듀서했으며, 1982년 <타투 아리>부터는 핑크가 아닌 일반 영화도 만들고 있다. <도쿄 섹스피아> <모모> 등 에로영화를 시작으로 충무로에 들어와 작업하고 있는 봉만대 감독의 이력이 다카하시 감독의 여정과 겹친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실험을 추구해온 다카하시 감독과 베드신 사이의 스토리를 고민해온 봉만대 감독. 핑크
[감독 vs 감독] 봉만대 감독, <당한 여자>의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