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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1] <해운대>의 1천만 관객 동원과 그 의미
이동진: <해운대>부터 얘기해보자. 1천만 영화는 거대한 사회적 현상과 결합하여 생기는 특수한 경우라 지적되어왔다. 앞의 네편의 1천만 영화는 말하자면 ‘사회적 신드롬’ 속에 1천만명을 넘었다. <해운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이한 사례로 보인다. 이 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산업의 장르화, 분업화, 산업화가 어떤 특정한 지점에 도달했다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재난영화를 관객의 일정한 볼거리로 만들었다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허문영: <해운대>의 경우 할리우드식 하이 컨셉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 생각에는 이 영화와 비교하기 좋은 영화는 앞선 네편의 1천만 영화보다 지금으로부터 딱 십년 전에 만들어진 <쉬리>가 아닌가 싶다. <쉬리>의 성공은 비로소 한국영화를 산업화 단계로 접어들게 했다. 그런데
한국적, 작가적, 장르영화에 미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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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가 1천만 고지를 넘은 다섯 번째 한국영화가 됐다. 뒤늦게 발동이 걸렸지만 <국가대표>도 여유롭게 700만명을 넘을 것이다. 오랜만에 한국 대중영화에 찾아든 산업적 빛이다. 한국 대중영화는 이제 보릿고개를 넘긴 것인가. <씨네21>이 1천만이라는 숫자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숫자가 제기하는 질문을 피해가지는 않으려고 한다. 먼저, 지금 한국 대중영화의 흐름과 좌표를 제시하는 간략한 글을 읽는 것으로 워밍업을 해보자. 그 다음 오랜 기간 동안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해온 김영진, 이동진, 허문영의 대담에서 본격적이고 세밀하고 실질적인 진단과 모색을 접할 수 있다. 한편 한국영화에 늘 지대한 관심과 성실한 안목을 가져온 달시 파켓이 글을 기고한다. 이렇게 하여 안과 밖에서 보는 관점의 시너지가 있을 것이다. 덧붙여, 지금 충무로가 애지중지하는 충무로 대박 키워드도 함께 소개한다.
전형성의 안온함에 젖지 말라
동시대 정서 겨냥한 컨셉 영화가
1천만 관객이 봤습니다…만 이대로 괜찮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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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과 함께 드라마를 하고 영화를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사랑하고 함께 작품을 하려고 했던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짙은 아쉬움이 배어 있는 그 기억 속에서 장진영의 지난 얼굴을 더듬어본다.
<싱글즈> 노혜영 작가
“자기, 친구 삼고 싶다!” 스타 여배우가 어린 새내기 작가를 놀리는 거라 생각했다. 한편, 화통하게 웃는 언니 모습에, 이 사람 외로워 보인다, 라고도 생각했다. 짱언니, 언니가 먼 길을 떠났다는 믿을 수 없는 비보를 들었을 때 난 축하인사를 듣던 참이었다. 결혼을 5일 앞둔 신부로서, 나 혼자 행복해해서 너무 미안하다. 그래도 언니 곁에 사랑하는 분이 있으셔서,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면서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울지 않으려고 결심해서. 나 역시 암으로 아버지를 여읜 지 4개월…. 앞으로 암환자가 등장하는 시나리오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싱글즈2>는 안 나오냐는 우스개 얘기를 들었을 때, 나의 분신이었던 ‘나난’
[추모 장진영] 우리의 나난은 영원히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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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 <청연>의 장진영이 세상을 떴다. 지난해 가을 갑작스럽게 위암 판정을 받은 이후 투병생활을 해온 장진영은 드물게 소식을 접할 수만 있었을 뿐, TV드라마 <로비스트>를 끝으로 공식적인 연예계 활동을 접었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 동안 장진영은 우리의 기억 속에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건강이 호전되리라는 모두의 바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하지만 지난 9월1일 장진영은 헌 책방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차가운 요플레를 좋아하고, <산타루치아>를 좋아하던 <국화꽃향기>의 ‘희재’처럼, 밀려 있던 시나리오들을 어느 것 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떠나갔다. 아직은 더 보여줄 것이 많던 배우였기에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고인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다시 <국화꽃향기>를 봤다. 위암으로 인한 투병, 한 남자를 떠나간 짧은 결혼생활이라는 점에서 현실과 지나치게 겹치는 영화라 보는 내내 너무 불편했다. 영
[추모 장진영] 당신, 더 오래 보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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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러버> Spread
데이비드 매킨지 감독의 로맨틱코미디다. 의외의 조합처럼 보이지만 사실 <할람포>와 <영 아담>도 로망스에서 시작한 드라마였다. 곧게 뻗지 못한 욕망이 음침한 그늘을 만들었고 인물들은 그 안에서 소동했다. 패트릭 맥그래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어사일럼>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릴러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영화는 일상의 구멍으로 사람들을 밀어넣고 그들의 솔직한 욕망을 지켜봤다. 가장 온건하게 변하긴 했겠지만 <S러버> 역시 데이비드 매킨지의 특색이 묻어나는 영화다. 주인공 니키(애시튼 커처)는 스타일리시하고 섹시하며, 관능적이고 은밀한 남자. 솔직한 욕망과 대범한 생활의 주인공이다. 변호사인 사만다(앤 헤이시)와 동거 생활을 하면서도 자유로운 연애를 포기하지 않는다. 양지에 나온 데이비드 매킨지의 인물 같다. 하지만 사건은 새로운 여자의 등장이다. 바에서 일하는 평범한 여자 헤더(마가리타 레비에바)는 니키의
내숭 9단과 마초 9단이 만났네… 개봉 대기중인 로맨틱코미디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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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라 불럭의 신작 <프로포즈>를 본 관객은 대부분 여행 끝에 자기 집에 돌아온 것과 같은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도입부에 나오는 주인공의 ‘마녀’ 캐릭터 묘사를 제외하면 <프로포즈>는 전형적인 샌드라 불럭식 로맨틱코미디다. 불필요한 애교를 떨지 않고 친근하고 단순하며 귀엽다. 불럭은 결코 연기폭이 좁은 배우가 아니고 출연한 작품들의 장르 역시 호러에서 아카데미표 드라마까지 넓게 펼쳐졌지만 대부분 관객은 이른바 ‘샌드라 불럭’표 영화가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주로 평범하고 감정이입하기 쉬운 주인공을 내세운 여성 주도 영화로, 여성간의 연대를 다룬 멜로드라마이거나 로맨틱코미디다. 여기서 ‘불럭 영화’가 로맨틱코미디에 제한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자. 불럭에게 로맨틱코미디는 불럭식 연기를 표출할 수 있는 익숙한 공간 중 하나다. 이 경우 로맨스 자체보다 이런 환경에서 불럭식 캐릭터의 주체성과 평등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불럭보다 몇년 전에 미국
여신들에겐 현실감각이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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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로맨틱코미디 스무편을 뽑았다. 다만 1977년 <애니홀> 이후를 기점으로 잡은 ‘현대적 로맨틱코미디’에만 리스트를 한정했다. <해롤드와 모드>(1971), <모퉁이 서점>(1940),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무엇보다도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 같은 훌륭한 클래식 로맨틱코미디들을 제외하는 게 가슴 아프긴 하다. 하지만 클래식 로맨틱코미디와 현대적 로맨틱코미디는 어느 정도 다른 장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1.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My Best Friend’s Wedding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유독 국내에서만은 비평적으로 응당 받아야 할 찬사를 충분히 받지 못한 편이다. ‘줄리아 로버츠의 로맨틱코미디’에 대한 편견으로 이 영화를 놓친 관객이라면 다시 한번 DVD를 감아볼 필요가 있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매력은 장르의 관습 속에 머물
<씨네21>이 선정한 현대적 로맨틱코미디 베스트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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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코미디의 내용이 다 똑같다고? ‘결국 사랑에 빠져 결혼(혹은 그 비스무리한 것)에 골인한다’는 이야기의 뼈대 자체가 똑같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연애담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듯이 로맨틱코미디의 세계도 여러 가지 서브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프로포즈>처럼 여러 유형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는 영화들도 있다.
1. 마님 개과천선형
<환상의 커플>(1987), <노팅힐>(1999), <프로포즈>(2009)
도도한 마님이 하찮은 남자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이 유형. 여기서 마님은 영화배우(<노팅힐>), 갑부(<환상의 커플>), 여자 상사(<프로포즈>) 등 다양하다. 이 유형은 생각만큼 자주 영화화되지는 않는다. 도도한 마님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할 관객이 적기 때문일까. <프로포즈>는 아래 설명할 ‘적과의 동침형’과 ‘귀향 온고지신형’을 모두 참고한 작품이다. 좀더 모
<프로포즈>는 적과의 동침형? 로맨틱코미디의 여섯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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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블록버스터의 숨결이 사그라지자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공습이 시작됐다. 샌드라 불럭의 <프로포즈>와 캐서린 헤이글의 <어글리 트루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프로포즈>는 북미에서 어마어마한 흥행성적을 올리며 꺼져가던 샌드라 불럭의 경력을 되살려냈다. 캐서린 헤이글의 <어글리 트루스> 역시 북미에서 1억달러에 가까운 예상 밖의 흥행성적을 기록 중이다. 지난 20여년간 전성기를 맞이한 뒤 점점 장르의 관습 속에서 헛발질을 계속하던 이 서브 장르가 되살아난 것일까, 혹은 죽기 전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것일까. 분명한 건 지금이 바로 80년대 시작된 현대적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를 정리할 시간이라는 거다.
로맨틱코미디는 어떤 장르이며 어떻게 진화해왔나
로맨틱코미디는 우리의 실제 연애생활에 해악을 끼칠까요? 2009년 1월자 영국 신문 <데일리 메일>의 “노팅힐 효과”라는 기사에 따르면 “그렇다!”고 합니다. 영국의 몇몇 대학교
사랑의 환상을 공유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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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선 감독의 신작 <이태원 살인사건>은 조심스러운 영화다. 한 남자가 무참히 살해됐고 2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꼽혔지만, 누구도 처벌받지 않은 실제 사건이 소재다. 죽은 이들의 가족은 여전히 분노한다. 게다가 영구미제가 아니라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종결된 사건이다. 그러니 화성연쇄살인사건처럼 살인의 추억을 공공연히 되새길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꽤 잘 아는 사건인 까닭에 더 조심스러울 것이다. 1997년 4월의 어느 날 밤, 그가 이태원의 어디서 살해됐는지, 심지어 지금은 그곳에 무엇이 생겼는지도 알고 있다. 영화에 대해 말하기 전에,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화와 영화 사이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상호명과 함께 불리던 이 사건은 흔히 동두천 윤금이씨 살인사건과 효순이 미선이 사건과 함께 한-미 관계의 갈등을 촉발시킨 3대 사건으로 불린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선택&
<이태원 살인사건> 조심조심, 한-미 관계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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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재견>을 공개한 허우샤오시엔은 이렇게 말했다. “<호남호녀>의 잭 카오, 임강, 애니 시즈카의 어울림 그 자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세 사람의 움직임 자체를 영화로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이 세 사람 중 한명인 임강을 심사위원으로 초대했다. 임강은 <희몽인생>으로 허우샤오시엔과 첫 만남을 가진 배우이자, <남국재견>과 <밀레니엄 맘보>의 영화음악을 맡았던 뮤지션이다. 또한 지아장커의 <세계> <스틸 라이프> <무용> <24시티>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허우샤오시엔과 지아장커가 동시에 음악과 연기를 제의하는 남자 임강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제천의 청풍호반을 찾아 그의 음악세계, 그리고 두 감독과의 만남에 대해 물었다.
“가을을 상상해보게. 언덕 위에 큰 나무가 한 그루 있어. 바람이 불고 무수
허우샤오시엔과 지아장커의 음악적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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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감독, 안느 퐁텐
<코코 샤넬>의 감독 안느 퐁텐은 1980년대 배우로 영화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인물이다. 그녀는 1993년 <사랑 이야기는 나쁘게 끝난다… 일반적으로>(Les histoires d’amour finissent mal… en general)로 감독 데뷔했고 이후 97년작 <드라이클리닝>(Nettoyage a sec)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나는 패션보다는 독특한 샤넬의 캐릭터에 흥미가 있었다. 그녀가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점에 감동을 받았다. 프랑스 시골 출신의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했지만 특별한 개성을 지닌 이 소녀는 여성들이 죄수처럼 행동과 복장에 제약을 받고 살아가던 시대와 사회를 앞서가는 존재가 되었다. 침실 벽에 젊은 샤넬의 사진을 붙여놓은 적도 있지만 그녀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Enterprise 사업
오늘날 샤넬(정식 명칭으로는 ‘샤넬
<코코 샤넬> 관람 가이드 A to Z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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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백화점의 명품관 1층 쇼윈도는 샤넬이 장식한다. 샤넬의 유명한 트위드 재킷을 입은 마네킹들이 샤넬의 저명한 퀼팅백을 들고 몸을 30도로 뒤튼 채 여성들의 혼을 빼놓는다. 그러니까 이런거다. 영화광인 당신에게 샤넬이라는 이름은 손바닥만한 가방을 기백여만원에 팔아먹는 사치스러운 명품 기업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번 가정해보자. 만약 코코 샤넬이 옷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요즘 여자들 인생 꽤나 갑갑했을 거다. 샤넬은 여성들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땅에 질질 끌리는 드레스의 밑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어깨에 메는 숄더백을 처음으로 디자인했다. 장례식에나 입고 가던 검은색을 가장 세련된 색으로 탈바꿈시켰다. 현대 여성들이 입는 실용적인 현대 의복은 코코 샤넬이라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로부터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다. 패션 역사의 장 뤽 고다르 ‘코코 샤넬’과 영화 <코코 샤넬>을 A부터 Z까지 풀어보자. <GQ KOREA> 패션 디렉터 강지영의 글은 길잡이
<코코 샤넬> 관람 가이드 A to Z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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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얜 너무 예쁘잖아.”처음 김소영 감독은 초등학교를 돌며 오디션을 본 김희연이 마뜩치 않았다. 이런 예쁜 얼굴이라니 과연 영화의 깊이가 살 수 있을까. 리얼한 영화를 찍고 싶은 감독에게 희연(10)의 얼굴은 너무 예뻤다. 동생 빈 역의 김성희(8)는 반대로 느낌이 왔다. 보육원에서 보낸 두 장의 사진 중 감독의 마음을 끈 것은 해맑은 프로필 사진이 아니라, 아이들 속에 있지만 그늘진 표정의 성희였다. ‘예쁜’ 희연이도 괜찮겠다는 주변의 말을 조언삼아, 또 ‘그늘진’ 성희의 얼굴이 걱정스럽다는 충고를 무시한 채 촬영을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카메라를 가까이하자 희연은 그 예쁨을 잊어버릴 정도로 엄마 잃은 진의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해 냈고, 천진무구한 표정 뒤에 감춰진 그늘로 성희는 화면을 압도했다. 총 29일간의 촬영, 영화 속 진과 빈이 이곳저곳 거처를 옮기며 지쳐가던 장면을 찍을 때쯤, 아이들도 오랜 촬영에 지쳐갔다. 자연인인 아이들과 영화 속 아이들의 심리상태가 겹쳐지면
[김희연, 김성희] 예쁜 얼굴 뒤에 감춰진 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