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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의 연출자인 고동선 PD의 드라마는 하나같이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달콤한 스파이>는 민생치안의 선봉장이 되고 싶지만, 의욕만 앞서는 여순경이 주인공이었고, <메리대구 공방전>은 철없는 백수 청춘들이 연대하는 이야기였다. 그는 “일종의 세계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2%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자신이 부족한 걸 모르고 완벽하다고만 생각하는 인물들이라서 웃음도 있고 비극도 드러낼 수 있는 것 같다. (웃음)” 연이은 촬영 스케줄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내조의 여왕>에 대해서 물었다.
- <내조의 여왕>은 어떻게 기획된 작품인가.
= 박지은 작가가 미리 쓴 4회분의 대본이 있었다. 이야기의 사이즈가 아기자기해서 좋더라.
원래 이야기는 온달왕자와 평강공주의 구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논의를 하면서 결국 남자의 사회생활에 여자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여자의 행복에 남자는 어떤
<내조의 여왕> 뗏목 타고 파도 헤치는 부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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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혹>이 뚫고 <꽃보다 남자>가 지나간 막장드라마의 터널에 이제 출구가 보이는 걸까. 제목만 듣고 뻔한 아줌마 드라마인 줄 알았던 <내조의 여왕>이 유쾌한 웃음과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시청률은 방송 때마다 경신되고, 최철호와 윤상현 등 배우들의 연기도 호평을 받는 중이다. <내조의 여왕>의 종영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최근 4부를 연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이 웃고 울며 사는 모습들을 가까이서 살펴보고 싶었다. 험난한 세상을 강한 비위로 돌파하는 천지애, 그런 아내 덕분에 요즘 한창 기가 살고 있는 온달수, 천지애와 결혼한 달수를 부러워하며 점점 망가지는 한준혁, 그리고 그런 준혁과 전면전을 시작하는 양봉순의 이야기는 이제 어떻게 흘러갈까. <내조의 여왕> 10회가 방영된 지 3일 뒤, 11회와 12회를 촬영 중인 <내조의 여왕> 현장을 찾았다.
<내조의 여왕>을 보다가 지독한 농담
<내조의 여왕> 험난한 세상, 비위로 돌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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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가 돌아왔다.
스리랑카영화는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보고.
폴란드 거장의 강펀치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회고전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안나와의 하룻밤>(2008)은 어떤 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다름 아니라 그 영화의 크레딧에는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란 이름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페르디두르카>(1991) 이후 17년의 긴 시간 동안 자기 이름을 건 영화를 만들진 않았지만 그의 예전 영화들을 봐왔던 이들은 그것들이 남긴 짙은 잔상을 아직 잊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는 그처럼 오랜만에 감독의 자리로 돌아온 폴란드의 거장을 아주 시기적절하게도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골랐다.
스콜리모프스키라고 하면 크지슈토프 자누시와 함께 전후 폴란드영화의 부흥을 이끈 이른바 ‘폴란드 유파’(Polish School) 이후 세대로서 폴란드영화의 새로운 재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4. 귀환과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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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의 슬로건 중 하나인 대안적 기운이 살아 숨쉰다.
무엇을 두려워할까.
당신이 새로운 영화를 찾는다면 꼭 들러야 할 곳.
<음지> Umbracle
감독 페레 포르타베야 | 스페인 | 1972년 | 85분 | 35mm | 흑백
박제된 동물들이 진열된 박물관. 배경음이라곤 무슨 음절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부다. 높아졌다 낮아지는 그 소리는 완고하리만큼 메마른 화면에 공포감를 더한다.
분절된 에피소드들로 이뤄진 <음지>는 간혹 접점을 찾기 힘든 영상과 사운드를 이어붙이는데,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건 기묘한 긴장감이다. 전화벨 소리와 같은 의미불명의 사운드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담배를 피우거나 난데없이 일군의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남자, 기차 안에서 은근히 서로를 의식하던 남녀의 영상이 펼쳐지고, 곧 영상과 사운드가 일치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 1970년대 스페인영화계를 지배한 검열 코드를 설명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 에드거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3. 실험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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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패기 넘치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면 이 영화들을 먼저 주목하시기를.
신인들의 국제경쟁부문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들.
<도쿄 랑데부> Tokyo Rendezvous
감독 이케다 치히로 | 일본 | 2008년 | 104분 | 35mm | 컬러
최근 일본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아버지의 부재’다. 가정의 부재로 아이들이 혼자 자란다거나(<새드 배케이션>), 작은 균열이 어떻게 가족을 한순간에 붕괴시킬 수 있는지(<도쿄 소나타>)와 같은 소재를 다루어왔다. 여성감독 이케다 치히로의 데뷔작 <도쿄 랑데부> 역시 그런 경향들에 편승하는 듯하면서도 현실을 그려내는 시선은 긍정적이다.
노가미(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은행 빚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그들이 사는 오래된 아파트를 팔자고 설득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요지부동. 둘의 갈등이 깊어갈 쯤 직장을 그만두고 갈 곳 없는 미사키(가세 료)와 역시 마땅히 하는 일없이 선을 보러 다니는 료코(가가와 교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2. 패기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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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영화의 최전선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다.
동시대의 영화사를 이끄는 거장과 신예들이 영화의 한 진풍경을 만들어낸다.
<멜랑콜리아> Melancholia
감독 라브 디아즈 | 필리핀 | 2008 | 480분 | DV | 흑백
정치적이고 실험적이며 시적이기까지 한 걸작. 안토니오 셰라드 산체스, 라야 마틴, 카븐 드 라 크루즈, 말하자면 ‘필리핀영화의 무서운 아이들’을 선두에 서서 이끄는 라브 디아즈의 신작이다. 줄리안, 알베르타, 리나. 그들은 실패한 혁명 전사들이다. 지금은 과거에 대한 상처를 안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은 잊혀지지 않았으며 혹은 알베르타의 남편 레나토처럼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다.
줄리안은 자신의 기억과 필리핀영화의 역사를 관통시켜 영화로 만들 계획을 한다. 영화는 8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과거, 현재, 대과거, 그리고 다시 현재라는 시간을 오가며 이들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화는 단순하게 정치적인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1. 거장과 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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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0일부터, 전주에서 알차게!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로 10회를 맞아 4월30일부터 5월8일까지 열린다. 10년을 기념하는 해인 만큼 상차림은 다양하다. <숏!숏!숏! 2009: 황금시대>를 개막작으로 하여 폐막작 <마찬>까지 영화들이 알차다. 폴란드의 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스페인의 전설 페레 포르타베야, 필리핀의 떠오르는 신예 라야 마틴의 회고전과 스리랑카영화의 특별전을 주목하자. 10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전주가 발견한 감독 열전 상영작’도 주시하자.
신예들의 등용문이 될 국제경쟁은 예년만큼 긴장감 넘치는 영화들을 볼 수 있고, 거장과 신인들의 다양한 신작이 포함된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에서는 필리핀의 거장 라브 디아즈나 포르투갈의 주앙 보텔료, 이란의 키아로스타미를 비롯하여 다양한 지금 영화의 현재를 엿볼 수 있다. 전주만의 특색으로 꼽아야 할 ‘영화보다 낯선’ 부문에서는 켄 제이콥스의 영화를 비롯한 실험적인 영화들이 기다린다. 거장과 신예,
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무엇을 맛볼지 차림표부터 감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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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정훈이의 아파트. 문을 열자, ‘정훈이의 콘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란 유머러스한 멘트가 이어진다. “여기 오시면 다들 왜 이렇게 깨끗하냐고 핀잔을 줘요.” 엉뚱한 남기남을 연상하고 온 기자가 머쓱하도록 정훈이는 먼저 선수를 친다. 그럴 정도로 작업실이 딸린 그의 아파트는 깔끔하고 정갈하다. 한쪽 벽면으론 책장, 나머지 한쪽 벽면으론 그림을 그리는 컴퓨터가 전부다. 설명이 필요한 건 필요 이상으로 두꺼운 커튼뿐. “해가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심지어 낮엔 노는 것도 부담스럽다니까요.” 야행성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 햇빛 투과율 제로의 커튼으로 그는 낮밤 가리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조성했다.
물론 그렇다고 결코 늦어지는 원고 마감을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와이프가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 제대로 안 하면 바로 태클이 들어오거든요.” 결혼 전, 어시스턴트와 함께 북적거렸던 작업실을 떠나 채색작업을 도맡아 해주는 아내의 도움으로 그는 집에서
[작업, 어디서 하세요?] 11. 만화가 정훈이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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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감독 장영규의 방은 18세기 서양 중산층 가정의 응접실 같다.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장영규는 감독과 함께 영화음악 회의를 하거나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을 하던 그 자리에서 “특히 좋아하는 파스타”를 요리하고, 방바닥에 누워서 잔다. 음악감독 장영규와 인간 장영규는 15평 남짓 되는 공간 안에서 묘하게 뒤섞인다.
중첩된 성격의 방처럼 그의 음악도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리를 충돌시킨다. 따뜻한 실내에서나 어울릴 산타 에스메랄다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넓은 사막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O.S.T로 탈바꿈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5년간 모든 영화음악을 이 방에서 작업한 그는 아이디어 역시 여기서 얻는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비롯한 일상적인 소리에 영감을 얻고 작업에 활용한다.” 일을 하다보면 재미난 경우도 많다. “개 짖는 소리가 필요해서 어렵
[작업, 어디서 하세요?] 10. 영화음악감독 장영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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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은 3개의 사무실을 갖고 있다. 필름있수다의 대학로 사무실, 충무로에 있는 KnJ엔터테인먼트 사무실. 그리고 신사동에 위치한 소란플레이먼트 사무실. 대학로에서는 연극공연을 준비하고 충무로에서는 본인의 연출작을 구상하며 신사동으로 내려오면 공연과 콘텐츠 사업을 진두지휘한다. 청담동과 충무로를 오가고 영화계와 연극계를 잇는 그의 활동영역에 어울리는 업무영역이다.
요즘은 3개의 사무실 중에서도 신사동으로 출근한다. 차기작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한 이곳에서 시나리오를 고치고 회사의 사장으로서 행정적인 업무도 살핀다. “원래 시나리오를 쓸 때는 태백에 있는 콘도로 가곤 했어요. 그런 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며칠씩 집을 비우기가 힘들어서…. (웃음)” 가장 눈에 띄는 물건은 ‘야구인’ 장진이 애지중지하는 배트와 글러브들이다. 이승엽 선수가 선물한 장비가 한 가득이고 직접 구매한 장비가 또 한 가득이다. 직업이 야구선수인 것도 아닌데, 굳이 이
[작업, 어디서 하세요?] 9. 영화감독 장진의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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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촬영감독의 방은 비어 있다. 시나리오를 받으면 그는 블라인드부터 내린다. 밝으면 꽉 차는 느낌이 들어 생각에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게 이유다. 최대한 어두울수록 좋다. 그리고 긴 책상 위에는 컴퓨터 외엔 아무것도 놓아두지 않는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예전에 찍었던 일상적인 사진들을 늘어놓으면서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그 흔한 책이나 DVD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원하는 환경이 갖춰지면 그는 밖에서 얻은 단서들을 확장시키기 시작한다. 워낙 영화를 안 챙겨보는 성격이라 박찬욱 감독은 매번 그에게 참고해야 할 목록을 건넨다. 그러면 방에 들어와 영화를 보고 촬영의 밑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진이다. 미국의 사진작가 알렉 소스(Alec Soth)의 것들인데, <박쥐> ‘촬영’의 핵심이라고 한다. “배우들의 감정선이 제일 중요했다. 그래서 인물이 먼저 움직이고 카메라가 뒤따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건조하리만치 중간에 서서 바라보는 것이 특징인 알렉
[작업, 어디서 하세요?] 8. 촬영감독 정정훈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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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내면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벽과 천장이 없는 공원. 공효진의 선택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녀에게서 언뜻 기대하기 힘든 곳이었다. 집 공개가 힘들다면 자주 찾는 청담동의 클럽이나 카페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짐작하던 터였다. “세상에서 옷이 제일 좋았는데 요즘은 자연이 좋아졌어요. 돈을 들어서 사는 게 아니라 언제든 가서 볼 수 있는 것들이요.”
꽃이 있고 풀이 있고 새소리가 들리는 공원은 요즘 공효진에게 편안함을 주는 맞춤형의 공간이다. 도산공원, 한강공원, 서울숲에서 산책도 하고 조깅도 하고 또 책도 읽는다. “배우다 보니 공공장소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런 공간을 좋아하지만 넉넉하게 누릴 수 없는 것들이죠.” 촬영을 하지 않는 여유 시간이 생기면 낮이어도 밤이어도 그래서 부러 공원을 찾는다. “여긴 뭘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공간이에요. 아무 생각없이 걷는 거죠. 일종의 멍 때리는 곳이에요.”
지금까지의 세련되
[작업, 어디서 하세요?] 7. 배우 공효진의 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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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마실 물도 없어요.” 해외 출장을 마치고 막 돌아온 최범석의 한남동 집. 그는 이곳에서 ‘밥은 절대 해먹지 않는다’는 설명으로 이 공간의 기능을 요약해준다. 널찍한 거실, 18층 테라스 아래로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커다란 부엌까지 잘 갖추어져 있는 공간이지만, 럭셔리함보다는 질서없이 펼쳐진 물건들이 먼저 시선을 압도한다. “여기선 뒹굴거리고 잠만 자요.” 디자이너 브랜드의 대중화로 자리잡은 지 십수년. 셀 수 없는 미팅과 하루 18시간 이상의 고된 작업, 그리고 쇼의 번잡함과 주말을 모두 허락해야 하는 해외 출장을 모두 빼버린 마이너스의 공간. 이곳에서 그는 혼자만의 유일한 휴식을 허락받는다.
“예전엔 달랐어요. 처음 일할 땐 작업실과 집이 같이 있었는데 그땐 집에서도 일이 끊이질 않더라고요.” 한적한 한남동은 그가 작업과 일상을 분리하기 위해 택한 수단이었다. 매일매일의 파티, 주말에도 약속을 잡던 예전과 달리 그는 이제 오롯이 혼자다. “전엔 즐기자, 가 모토였
[작업, 어디서 하세요?] 6. 디자이너 최범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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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쓰는 척’하지 않는다. 글로 먹고사는 다른 이들이 노트북을 놓고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을 때, 진중권은 그럴 시간에 쓰고 만다. 언제 어디서나 속전속결. 이동 중에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차에서 내려서 쓴다. 버스나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쓴다. 그래서 그에게 가장 편한 작업실은 대한민국에서 직선 거리로 2km 반경 내에 하나씩 있다는 PC방이다. 그는 이곳에서 글을 쓰고, 뉴스를 읽고, 강의를 준비한다. 자신의 글에 달린 악플도 읽는다. 흡연이 가능하고 커피가 제공되고 성능 좋은 컴퓨터가 있고, 무엇보다 “다른 데 신경쓸 게 없어서 몰입할 수 있다”는 게 PC방을 이용하는 이유다. 말하자면 누군가에게는 적의 총을 맞을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또 누군가에게는 화투장 하나를 뒤집어 전 재산을 날릴 수도 있는 순간에, 그리고 누군가는 그의 글을 향해 악플을 달고 있는 순간에, 진중권은 그 한켠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키보드 위를 넘나드는 손가락
[작업, 어디서 하세요?] 5. 문화평론가 진중권의 ’PC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