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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0년입니다. 주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영화 진흥정책이 형성-집행-평가되는 협치(거버넌스) 체제의 중요한 한축을 맡고 있는 영진위 출범 10년을 모른 체하기 어려워 몇 마디 보탭니다.
비전과 목표를 올바로 세우는 정책개발 능력, 세운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집행 능력, 결과를 평가하고 그 평가를 기초로 자기반성과 개혁을 통해 유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정책학습 능력, 흔히 이 세 가지를 국가 혹은 정책 수행기관이 갖춰야 할 필수 역량으로 꼽습니다. 멀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결코 오래지 않은 시기, ‘국민의 정부’는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절실하다는 사실에 공감했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더 나은 영화정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영화인 스스로의 주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영화인에 의한 영화인을 위한 영진위를 출범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공감이나 인정은 영화계의 자구노력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는 점에서, 표현
[영진위 10년을 말한다] 과거 폄하는 그만, 역량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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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조합
성장 단백질이자 고도비만의 주범
성장기에 꼭 필요했던 단백질, 혹은 고도비만을 일으킨 주범이다. 영진위가 지난 2000년부터 시행해온 투자조합출자는 한국영화의 성장을 양적으로 평가할 때와 질적으로 평가할 때 각각 다른 얼굴을 한다. 투자조합출자는 영진위가 재원을 소진하지 않으면서 자본의 유동성에 장기적으로 대처할 만한 방안으로 고려된 간접지원방식이다. 예를 들어 공적자금 20억원을 종잣돈으로 영화계 외부의 돈 80억원을 추가로 모아 100억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 영화제작에 투자하는 것이다. 영진위는 2006년까지 총 28개 조합을 운영해 총 245편의 영화에 약 2113억원을 투자했다. 시행준비단계에서는 “영화계의 몫을 왜 금융자본에 넘겨주느냐”는 식의 비난도 있었지만 영화산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자본이 안정화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단계에서 일정 정도의 유인책이자 안전판으로 기능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양적 성장은 독과점의 심화, 수익성
[영진위 10년을 말한다] ‘구조조정’의 산을 어떻게 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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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인가. 그걸 몰랐네.”
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직원은 무덤덤하게 되물었다. 올해 5월28일로 영진위는 창립 10돌을 맞았다. 이날 별다른 기념행사는 없었다. 해당 업무부서 관계자는 “그동안 영진위는 영화진흥공사(이하 영진공)가 만들어진 3월15일(1973년)에 맞춰 창립식을 치러왔다”면서 “예년처럼 이번에도 특별한 자리를 계획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영진위 직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뭘 했더라도 그게 10주년 기념은 아니었을 거다. 1주년 취임 기념이라면 몰라도. 강한섭 위원장에게 이전의 9년은 부정의 대상이니까.”
취임 1주년을 맞아 영진위 강한섭 위원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씨네21>은 강 위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 자리에서 강 위원장은 “노조에 빼앗겼던 경영권을 부분적으로 회복했다”면서 “경영진 2명과 노조원 5명 등 7명으로 구성됐던 인사추천위원회를 경영진 3명과 노조위원장 1명 등 4명으로 구
[영진위 10년을 말한다] 소통의 구심점, 길을 잃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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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고 현 4기의 과제를 말한다
DJ가 영화인들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손잡았던 1997년,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일컫는 말이었다. 원로영화인들이 뿔나서 홍릉을 공격하던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영화계가 청산하지 못한 ‘갈등’의 다른 말로 여겨지기도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등이 줄줄이 극장가에서 참패했던 2001년, 영화진흥위원회는 ‘다른’ 한국영화의 존재를 깨달았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불가능한 1천만명 관객 고지를 넘어섰던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당혹감을 느꼈다. 돈줄이 막혀 제작사들이 고사 직전에 내몰렸던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태어난 지 10년이 됐다. 보수의 망령이 문화계를 옥죄는 2009년, 소통 대신 독단을 택한
10살 영진위, 잘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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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감독 샘 레이미 각본 샘 레이미, 이반 레이미 출연 앨리슨 로먼, 저스틴 롱, 로나 레이버, 제시카 루카스 수입·배급 (주)케이디미디어 제작연도 2009년 상영시간 99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6월11일 상영관 와이드 릴리즈
샘 레이미가 호러 장르로 복귀했다. 20여년 만이다. 물 만난 고기가 얼마나 헤엄을 잘 치는지 알고 싶다고? <드래그 미 투 헬>을 보면 된다. 여기서 샘 레이미는 고전적인 호러영화가 해낼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낸다. 아주 무시무시하다. 미친 듯이 웃긴다. 정신없이 구역질난다. 진짜 롤러코스터 호러영화란 이런 걸 말한다.
그 옛날 한국의 영화광들 사이에서는 무섭다고 소문난 비디오가 몇개 있었다. 스튜어트 고든의 <지옥인간>(From Beyond)이나 미켈레 소아비의 <아쿠아리스>(Deliria),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Demoni) 같은 영화들 말이다.
[must see] <드래그 미 투 헬> 공포는 무시무시한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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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은 방금 이사 와서 아직 정리가 안된 건가요? 왜 바닥에서 저러고 자죠? 침대는 어딨어요?” (<살인의 추억> 중 박두만 형사 부부가 맨바닥에 이불 깔고 자는 것을 보고)
“옛 남자친구를 잊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나요? 꼭 옛 남자친구의 인정과 축복까지 받아야 새 남자친구를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고)
“취조하면서 정말 저렇게 때리나요?” (<추격자>에서 지영민이 경찰서에서 취조당하는 장면을 보고)
“경찰이 왜 총을 안 갖고 다니죠? 왜 그냥 쏴버리지 않죠?” (<살인의 추억>에서 김병순을 형사들이 쫓아 뛰는 것을 보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귀신이 정말 있다고 믿나요?” (<혈의 누>에서 모든 게 김인규의 범행이었음을 알게 되고도 핏물로 내리는 빗줄기에 사람들이 광란하는 것을 보고)
“술을 저렇게 마시는 사람이 왜 마약은 안 하나요?” (<
미국 대학생들, 한국영화 이렇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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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2년 11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했다. 선거운동이 진행돼 20분 정도밖에 할애받지 못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특유의 달변으로 개인적인 영화 취향과 표현의 자유문제 등에 관해 답변했다. 바쁜 일정을 감안해 스크린쿼터, 독립영화 같은 정책적인 사안에 관해서는 서면으로 문답을 진행했다. 다음은 당시 인터뷰 중 주요 부분을 요약한 내용이다.
“<라이언의 딸>에 깊은 공감”
-얼마 전 장애인들과 함께 <오아시스>를 보러 가셨던데요.
=눈 가리고 가려니까 정말로 눈앞이 깜깜하더구먼. (웃음) 단지 시각적으로 앞이 안 보인다는 게 아니라 심리적으로 깜깜해져요. 영화를 볼 때는 귀를 막았는데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결국 그 체험은 성공을 못했습니다. 바깥에 마개 덮고, 안쪽 귀도 봉했는데 다 들리더라고.
-극장엔 자주 가시나요.
=어쩌다 한번이죠.
-오래전에 봤어도 꽤
200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만난 노무현 후보의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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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지난 5월23일 새벽 그는 자신의 육체를, 영혼을, 회한과 분노와 슬픔을 절벽 아래로 내던졌다. <씨네21>은 영화 전문지라는 특성상 그의 삶을 되새기고 그 함의를 분석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영화인들의 이야기와 지난 2002년 대통령 후보 시절 나눴던 인터뷰를 실어 그의 안타까운 서거를 추모하고자 한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내 남은 생의 한 가지 숙제”
이창동 감독·참여정부 문화관광부 장관
처음 아내에게 전화를 받은 것이 칸 시각으로 새벽 3시였다. 그 뒤 잠을 자지 못했다. 그 다음날도 잠을 자지 못했다. 해가 뜨면 해야 할 내가 맡은 일이 있었으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고 무진 애를 썼다. 시간이 갈수록 슬픔과 아픔이 더해졌다. 가슴이 물리적으로 아팠다. 지난해 여름 그와 함께 올라갔던 부엉이바위, 그 절벽 끝에서 내려다보던 까마득한 허공이 계속 눈앞에 떠올랐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한 시대를 대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화적 인연 맺은 영화계 인물들의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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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감독인 내가 왜 스틸을 찍게 됐냐고? 사실 처음 스틸을 찍게 된 건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앵글도 보고, 화면 안의 구성요소를 확인하자는 차원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이유는 정서적인 것에 자리를 내줬다. 물론 현실적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젠 ‘기억’과 ‘추억’이 가장 큰 이유가 됐다. 한 작품 끝날 때마다 꼭 애인과 헤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순간들을 사진을 통해 떠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스탭들이나 촬영 막간의 장면을 더 열심히 찍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말재주는 없어도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게 ‘찍는’ 것이 아닌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표현하는 방법 또한 찍는 것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난 늘 현장에서 그들을 고생만 시키는 사람이잖나. 촬영이 끝난 뒤 사진이라도 한장씩 나눠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애정표현이리라.
1. 진구, 머리를 자르다
2008년 9월27일 전북 익산 여산삼거리_첫 촬영날
<마더>의 홍경표 촬영감독에게 직접 듣는 포토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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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답게 근사하다. 그러나 기대만큼 성에 차는 건 아니다. 칸영화제에 모인 외신들의 평가다. 제6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마더>가 현지시각으로 지난 5월16일 오후 2시 칸의 드뷔시 극장에서 최초 기자시사를 가졌다. 비교적 호의적인 리뷰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많은 언론은 특히 봉준호가 보여주는 비주얼리스트로서의 감각에 주목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봉준호는 TV스타 김혜자의 압도적인 연기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오페라 같은 멜로드라마를 통해 페드로 알모도바르 스타일로 방향을 돌렸다. 기품있는 구성과 무드가 넘치는 촬영으로 가득하다”고 썼고, 프랑스 잡지 <레 인록>은 “봉준호는 범죄영화, 그로테스크한 코미디, 멜로드라마간의 감미로운 혼합을 다시 보여주는 <마더>를 통해 우리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호의를 확인시켜주었다”고 평했다. <리베라시옹>은 “카메라 스틸, 연기, 서사. 이 모든 것이 견고한
칸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마더>, 외국 언론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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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과 그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건 모험심 가득한 탐험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과 비슷하다. 이미 그 영화의 여정 속을 수십, 수백번쯤 다녀갔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여정이 시작되면 그는 다시금 진지한 자세가 돼 그곳을 탐험하며 생생한 설명을 덧붙여준다. 그는 의례상 던진 질문에도 진지한 고민을 거듭하며, 답변을 하는 중에도 자신의 영화가 가진 함의를 새롭게 분석한다.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가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자신의 영화를 객관화하고 그 안을 끊임없이 후벼파는 그의 본성 때문이다. <마더>에 관한 대화 또한 비슷했다. <마더>에 관한 그의 생각 혹은 그와 함께한 <마더> 탐험 기록을 소개한다.
-칸영화제는 잘 다녀왔나.
=5월15일 떠났다가 어제(19일) 오후에 돌아왔다. 16일 저녁에 영화 상영을 한 뒤 17일 내내, 그리고 18일 칸을 떠날 때까지 계속 인터뷰만 했다. 물론 배우들에게는 흔치 않은 기회였을 것이다.
-내심 경쟁부문 진출을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마더>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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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공개됐다. 5월16일 칸영화제에서 첫 막을 열었고, 한국에서도 20일 기자시사회를 통해 첫선을 보인 <마더>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감각이 곳곳에서 번득이면서도 그의 이전 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문제작이다. <마더>의 첫인상과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칸 현지의 반응을 소개한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현장에서 틈틈이 찍은 사진과 짧은 이야기를 담은 ‘포토 코멘터리’는 <마더>의 이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괴이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다. 펼쳐진 갈대밭. 아무렇게나 차려 입은 한 중년의 여인이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화면의 중앙에 서자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처음에는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춤이고 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냥 몸을 슬프고 우스꽝스럽게 놀리는 것 같다. 이 여인의 기이한 춤사위에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혹은 그 음악 때문에 그 몸짓이 더 기이하다. 그런데 음악은 갈대밭에서 들리는
다재다능한 장르적 결속력이 돋보이는 <마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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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책을 권해주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권하겠는가. 사람마다 취향은 분명 다르겠지만, 책 판매량으로 알 수 있는 한국 독자들의 선택, 특히 일본 연애소설에 대한 취향은 꽤나 분명한 편이다. 여성 작가라면 에쿠니 가오리, 남자 작가라면 바로 요시다 슈이치다. 요시다 슈이치는 연애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과대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가장 절박한 형태의 소통이 연애라는 사실을, 그의 소설을 보면 절감할 수 있다. 요시다 슈이치는 1999년에 데뷔하고 2002년 <파크 라이프>로 아쿠타가와상을, <퍼레이드>로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받았고, <악인>으로 오사라기 지로상과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동경만경> <나가사키> <랜드마크> <7월24일 거리> <사요나라 사요나라> <사랑을 말해줘>와 같은 작품들이
[요시다 슈이치] 연애에서의 소통은 내게도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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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랑받는 두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와 온다 리쿠가 2009 서울국제도서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연애소설, 미스터리, 성장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특한 분위기와 매혹적인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두 작가가 말하는 소설 이야기.
<유지니아> <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온다 리쿠를 처음 알고 꽤 바빴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겨우 다 읽었다 싶으면 이미 새로운 책이 나왔고 그렇게 출간된 책들은 항상 나의 독서량을 앞질렀다. 끊임없이 이야기가 샘솟는 느낌. 그녀는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1992년 <여섯 번째 사요코>로 등단해 지금까지 쓴 소설이 45편. 현재 연재 중인 작품도 8편이다. 미스터리, 추리, SF, 성장담. 장르도 소재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 발간된 소설 <어제의 세계>엔 이 모든 게 담겨 있다. 온다 리쿠 이야기의 원동력은 뭘까. 그녀의 후기작들을 차례로 읽고 조심스레 추측해봤다. 서로 다른 장
[온다 리쿠] 이젠 1인 1장르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