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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cm의 커다란 키. 홍승표 작가가 큰 키만 한 박스를 들고 뛰어온다. “집 나온 지 얼마 안돼서. (웃음)” 만화를 그리기 위해, ‘이고삼’(<고삼이 집나갔다>) 체험이라도 하는 걸까. 부천만화영상진흥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오피스텔, 현재 그가 가족과 떨어져 주말을 빼곤 꼬박 거주하는 공간이다. “처리할 일이 많아져서 작업실을 따로 얻어서 나왔다. 지금도 집기를 사가지고 오는 참이다.” 네이버 일요웹툰 <고삼이 집나갔다>와 모바일웹 <닭통령계양반>에 노래 가사 작업도 한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일주일에 7일을 꼬박 일했다. 다른 작가들이 도박빚이라도 있냐고 놀리더라. 작업실 와서 바짝 일하니 하루라도 여유가 생겼다.”
홍승표 작가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그의 영역이 확고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르물과 일상툰이 대부분인 웹툰계에서 그는 현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드라마화한다. ‘미티’라는 필명을 널리 알린 <남기한
청소년 여러분, 부모님과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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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하루를 혼자 있는다/그동안 이집은 내가 왕이다/나는 윗집을 향해 크게 짖을 수도 있고/쓰레기통을 뒤질 수도 있지만/하지 않는다/어릴 때는 한 것 같기도 한데/지금은 하지 않는다/이젠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얼마 안 남아서/아주 소중하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6화, ‘열다섯살이에요’ 중에서
사무실에서 이 웹툰을 정주행하다가 아차 싶었다. 집에서 볼걸.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혹여나 옆자리 선배가 눈치챌까 조용히 훌쩍이며 스크롤을 내려야 했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의 주인공은 작가의 반려동물인 열다섯살 푸들 낭낙이와 두달 된 아기 고양이 순대다(연재가 2년간 계속되며 낭낙이는 열일곱, 순대는 두살이 됐다). 초 작가는 그들의 눈빛으로부터, 보드라운 털의 온기로부터 읽어냈던 마음의 소리를 일상적인 에피소드에 담아 풀어냈다. 댓글에 ‘ㅠㅠ’의 행진을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은 낭낙이
낭낙이의 생이 다할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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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분량.’ 고영훈 작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미안하지만, <트레이스>를 보면 이런 과격한 언사를 수정할 생각이 안 든다. 지금까지 총 200회가 넘는 분량. 2007년부터 다음 만화속세상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5년째인 2012년 <트레이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플 때 빼고는 항상 <트레이스>를 그렸다.”
지금은 1.5버전을 통과한 잠깐의 휴지기. 2기는 내년 초에 들어갈 예정이다. “평생을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다. 안 끝났으면 좋겠다.” 마블코믹을 즐겨봤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히어로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다. 분량만큼이나 <트레이스>는 다양한 이야기로 그 긴 시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아왔다. 후천적 트레이스가 된 소년 강권의 이야기로 시작된 <트레이스>는 어느덧 트레이스의 운명으로 가족을 잃은 평범한 가장 윤성의 비극을 다룬 ‘거지’, 트레이스의 운명으로 사랑을 놓친 비극적 연애담 ‘장미’
한국형 히어로물의 끊임없는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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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숲>에는 살인자들이 산다. 모두 연쇄 살인범이다. 모두 사이코패스고 미친놈들이다.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살인의 덫을 놓기도 하고, 아이들을 납치해 잔인한 고문을 하다가 죽이기도 하고,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살인을 하기도 하며 아무나 보면 일단 죽이고 보는 살인범도 있다. 과연 이들 가운데 최강의 ‘똘아이’는 누구인가. 누가 가장 무서운 사이코패스인가. <인간의 숲>을 수차례 정주행하게 만드는 한편, 새로운 이야기가 올라오는 매주 월요일마다 ‘<인간의 숲> 00화’를 검색어 상위에 올려놓는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이 질문에 있다. 그들의 아귀다툼은 당연히 섬뜩하지만 때로는 뜬금없고, 종종 웃기기까지 한다. 애독자들이 내놓는 답은 결국 하나로 모아질 것이다. 작가가 제일 무서운 놈이다!
<인간의 숲>을 연재 중인 황준호는 이미 <악연> <공부하기 좋은 날> 등의 작품을 통해 웹툰계의 스타로 떠오른 작가다. 데뷔
이번 주에는 어떤 살인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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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래 인터뷰를 잘 안 하는데….” 그가 인터뷰에 선뜻 응한 건 지금, ‘영화에 매인 몸’이라서다. 요즘 훈(본명 최종훈) 작가의 프로필엔 김수현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원작자라는 소개가 포함된다. 촬영장이 작업실인 부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요즘은 촬영장 방문도 자주 한다. “영화사에 약속한 게 있다. 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하겠다고. 물론 영화사에서도 원작자에 대한 예우가 확실하다.” 촬영 중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뿐 아니라, 전작 <향연상자> <해치지 않아>도 이미 영화화 판권이 팔린 작품들이다. 추이를 보니 강풀작가라도 꺾을 기세다. “배급까지 확정된 건 <은밀하게 위대하게>밖에 없다. 사실 나 말고도 웹툰 작가들이 영화사와 계약을 많이 한다. 그런데 열개 계약하면 한 작품 될까 말까 한 실정이다. 적은 계약금만 주고 작품을 묶어놓고 그냥 버리는 거다. 만들 의지가 있다면 제대로
끝까지 봐야만 알 수 있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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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과 인쇄만화의 경계를 논하던 시절이 있었다. 스크롤을 내려보는 웹툰과 종이를 넘겨보는 인쇄만화의 형식을 두고, 만화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느라 바빴다. 웹툰 작가의 처우는 턱없이 낮았다. 이 모든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과도기를 지나 웹툰은 빠르게 그 자체의 영역을 확보했다. 그간 웹툰 작가들은 본연의 가치를 찾았고, 더불어 ‘비교적’ 나쁘지 않은 고료를 확보했다. 인기를 모은 웹툰이 인쇄만화가 되고, 또 영화 원작이 되는 순서가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다. 웹툰 진영은 이제 신진 ‘만화가’의 양성, 커뮤니티 형성을 주도하며 안정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바야흐로 웹툰 전성 시대다. 지난해 6인의 웹툰 작가에 이어, 올해는 8인의 웹툰 작가를 만났다. 지금 당신이 가장 먼저 챙겨봐야 할 목록에 기초한 선정이다.
언제 어디서나, 웹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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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0일, 영국을 대표하는 해로즈백화점 맞은편에 위치한 만다린호텔에서 영화 <호빗>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한 이들은 간달프를 연기한 이안 매켈런과 골룸 역의 앤디 서키스, 그리고 빌보의 마틴 프리먼이었다. 영화를 미처 볼 수 없었던 기자들의 영화에 대한 강한 호기심 덕분에, 간담회 자리는 배우들이 등장하기 전부터 서로의 의견과 기대감들을 나누느라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한국, 꼭 한번 가고 싶다
간달프 역의 이안 매켈런
간담회장의 문이 빼꼼히 열리며, 노신사 이안 매켈런이 등장했다. 화이트 와인잔을 손에 거머쥐고 들어온 그가 한 첫 질문은 “한국에서 온 기자가 있던데 누구인가요?”였다. 이안 매켈런과의 인터뷰는 “한국에 꼭 한번 가고 싶다”는 그의 바람에서부터 시작됐다.
-<반지의 제왕>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가 있었다. 정말 한국을 방문할 생각이 있나.
=(웃음) 당연히! 한국인이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다
간달프, 골룸, 빌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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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보다 더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감독직 수락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호빗>의 공식적 입장 표명은 이렇다. 그건 모르겠다만, 확실히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보다 더 욕심을 부린 건 분명해 보인다. 애초 2부작 제작이 3부작으로 늘었고, 초당 24프레임이 48프레임이 됐다. <호빗>의 제작 마디마디엔 고비가 있었고, 피터 잭슨은 그 위기의 순간에 굽히지 않고 강행을 택했다. 내용은 아무리 봐도 아이들 침대 머리맡에서나 읽어줄 동화책인데, 규모는 이미 그 수용 범위를 벗어났다.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우린 이미 <반지의 제왕>을 한참 돌아와, <킹콩>과 <러블리 본즈>와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을 거친 관객이다. 피터 잭슨 감독에게 <호빗> 제작 전말을 들었다.
-반지 원정대만큼이나 제작까지 험난한 과정이 아니었나. 제작사와의 소송건, 제작에서
정말로 중간계에 있다고 느끼게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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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원정대 출범 10주년을 계획한 게 분명하다. 2001년 <반지의 제왕>이 시작된 지 10년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피터 잭슨이 60년 전으로 시계태엽을 감는다. <호빗: 뜻밖의 여정>(이하 <호빗>)의 시작이다. 자신이 이룩한 영화 100년사의 ‘신화’를 고이 모셔두는 대신 깨뜨릴 각오로 임한 ‘뜻밖의 여정’이다. <반지의 제왕>보다 더 방대해진 이야기, 더 코믹한 캐릭터로 중무장했단다. <호빗>을 미리 가늠해볼 촬영장 모습과 피터 잭슨과 가진 전화 인터뷰, 런던에서 가진 배우 이안 매켈런, 앤디 서키스, 마틴 프리먼과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어느 쪽이 호빗인지 궁금해? 궁금하면 500원
요요현상인가. 어쨌든 푸근해진 예전의 상태로 돌아온 피터 잭슨 감독(연출력도 다시 <반지의 제왕> 때로 돌아갈 거라 믿으며!)과 <호빗>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 역의 마틴 프리먼(왼쪽부터).
뉴질랜드 관광코스 추가요
거대한 판타지의 서막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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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는 사회적 층위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징후를 내밀하게 그려내는 데 평생을 바친 미국 작가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미군으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군 포로의 입장에서 미군의 범죄적 만행을 경험한 보네거트는 가해자가 형성하는 세계관의 혼란스럽고 분열적인 성격을 누구보다 빨리 감지했다. 그의 소설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을 논박없이 조용하고 간단하게 뒤집어낸다. “그러므로 죄는 용서받아도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다.”
정지영의 접근은 커트 보네거트의 접근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보네거트의 소설에서 분열하는 건 언제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인 반면, <남영동1985>에서는 피해자인 김종태가 분열하고 가해자인 이두한은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신념을 보여준다. 이 차이는 역사적 유전자의 차이에서 올 것이다. 보네거트의 인물들은 주로 사해진 죄 혹은 종료된 역사 위에 홀로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남영동1985>의 인
죄는 용서받아도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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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는 중론에 피하고 싶었다. <경계도시2>를 끌어안고 보낸 세월의 여파가 여전히 남은 터라, 참혹한 현실은 물론이고 현실보다 잔인한 텍스트 역시 외면하고 싶었다. 지독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인간이 별 소리를 다 한다는 타박이 들리는 듯하지만, 모자란 인간이니 사실이 그렇다.
<남영동1985>와의 대면은 가을비 내리는 강남에서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잠룡들이 시사회에 총출동한 덕분에, 극장은 스릴 넘치는 대한민국 정치의 현장이 되었고, 관객은 졸지에 ‘유권자’로 격상하여 후보들과 손을 잡는 흥미진진한 풍경이 벌어졌다. 초단위 전략으로 움직이는 잠룡들이 꼼짝없이 두 시간을 공들이게 만든 영화 <남영동1985>. 궁금증이 더했다.
영화는 직격탄이다. 차(車), 포(包) 떼고 직진이다. 러닝타임 106분 중, 길어야 10분 정도를 제외한 시간은 고문 그 자체에 몰두한다.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 이곳에서 일하는 회사원(
참여로 이어지는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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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왜 하필 <클레멘타인>이었을까. 영화 속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김근태 코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부으면서 이 곡을 휘파람으로 불었다.
내 고등학교 시절, 일제시대 때 지은 커다란 강당 2층에 음악실이 있었다. 강당 옆 아카시아 꽃들이 하얗게 늘어지고, 향기가 교실 창문을 넘어오던 어느 초여름날. 까까머리들은 선생님 피아노에 맞추어 목청껏 이 노래를 불렀더랬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어떤 녀석들은 제풀에 눈시울도 조금 붉어졌다. 한때 그 고문기술자가 고등학교 선배라는 소릴 어디서 들었었다. 그도 까까머리 시절 그 음악실에서 나처럼 눈시울 붉히며 이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1985년 9월 남영동에서 전기고문, 물고문에 못 견뎌 나는 발가벗기고 두눈이 가려진 채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항복한다고, 용서해 달라고 두손으로 빌었다. 그때 고문자인 김수현, 백남은,
그도 까까머리 시절 그 노래를 불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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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부러진 화살>이 개봉할 당시 <씨네21>은 <의뢰인>을 연출한 손영성 감독에게 정지영 감독의 인터뷰를 부탁했다. 그때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정지영 감독은 “오늘 이 약속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곳이 있었다”고 말했다. “오늘이 김근태 의원의 영결식이더라고. 아침 8시에 영결미사로 시작해서 10시에 청계5가에서 노제를 지낸대요. 그리고 마석 모란공원으로 가는 거 같은데, 여기에 딱 걸렸어. 그래서 나는 어제 추모미사를 드렸어요. 내가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여하튼 한번은 인사를 해야겠다 싶어서….” 그 이야기를 들은 손영성 감독은 “딸 결혼식을 앞두고 병원에 들어가서 운명하신 거나, 고문당사자는 목사가 됐다는 그런 씁쓸함이 영화의 에필로그에 나올 법한 이야기 같다”며 “한 이상주의자가 현실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패퇴하는 모습이라고 볼 때, 감독님 영화 속의 캐릭터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1년이 채 되지
“박근혜 후보가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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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명들은, 사람들이 바뀌면서 계속되던 비명은 송곳같이, 혹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번쩍거리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돼지기름처럼 끈적끈적하고 비계처럼 미끄덩미끄덩한 것이었습니다. 살가죽에 달라붙은 그 비명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서울 용산구 갈월동 88번지. 과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들었던 수많은 비명에 대해 고(故) 김근태 의원은 이렇게 묘사했다. ‘번쩍거리는 비명’은 상상할 수 있는 소리이나, ‘끈적끈적하고 미끄덩미끄덩한 비명’은 가늠이 어려운 소리다. 가혹한 고문으로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비명은 단지 육체적인 고통만을 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비명은 아픔 때문에 저지르는 비명이자, 가슴에 삭이고 삭였다가 간신히 내뱉은 비애였을지 모른다. 예상할 수는 있으나 1985년 그때, 남영동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종태, 고문 당한 모든 이의 대표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남영동1985>는 김근태가 들었던 바
여기가… 남영동… 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