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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카메라 연기는 무대 연기와 어떻게 다른가?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내 얼굴이 어떻게 잡히는지, 심지어 내가 연기하며 무슨 말을 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상대역과 호흡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상대방의 대사는 들리지도 않고 내 대사가 틀리지 않는 데에 급급했다. (웃음)”
연극을 거치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 첫걸음을 뗀 임수정이 돌아보는 최초의 두려움이다. 교과서는 흔히 영화 연기의 속성을 연극 연기와 대비해 설명한다. 연기하는 현장부터 연극은 객석을 어둠으로 가리고 무대에만 조명을 비춰 극적 세계를 명확히 구획하지만, 영화배우는 좁게는 5m 반경에 늘어선 장비와 수군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몰입해야 한다. 일단 많은 배우가 연기에서 눈을 쓰는 방식의 차이를 말한다. 서영희는 “연극 몇 편을 하면서 눈을 마주치는 연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어깨나 허공을 보면서 연기하기가 힘들었다. 지금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황정민은 “영화는 눈으로만 연기를 해야 할 경우가 발생하는데, 말이
영화 연기라는 예술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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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는 인물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당신의 직업이 영화배우라고 가정하자. 계약서에 도장이 찍히고 크랭크인 날짜도 나왔다. 향후 몇달 동안 아무개로 살라는 정언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영화도 배우도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다. 아마도 당신은 캐릭터를 메주 밟듯 분석할 수도 있고 인물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자아를 지우는 데에 전념할 수도 있으리라. 물론 대부분은 절충이다. 제아무리 직관에 기대는 배우라 해도 고민없이 현장에 갈 리는 만무하다. 캐릭터가 기수라면 승마를, 요리사라면 프라이팬 놀리는 자세를 익히는 건 기본이다. 그렇다고 정말 기수나 요리사가 될 필요는 없다. 관련된 장면에서 미더운 ‘흉내’를 낼 수 있는 수준으로 족하고, 실제로도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흔히 말하듯, 배우는 타인의 삶에 어떻게 잠입하는가? 이병헌이 진하게 공감한다며 들려준 비유가 유용할 것 같다. “내 앞에서 인물이 뒷모습만 보여주며 계속 도망친다. 배우인 나는 그를 잡아서 어깨를 돌려세우고
영화 연기라는 예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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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기에 관한 논의는 언제나 가뭄이다. 영화의 성분 가운데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원소가 배우인 만큼 이는 불가피한 일이며 비단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연기의 비밀을 논하기 힘들기는 당사자인 배우들도 매한가지다. “내가 지금 배우가 어쩌고저쩌고 연기가 어떻고저떻고 말한들 진짜는 죽기 10분 전에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 오달수의 토로다. 영국 배우 폴 베타니(<마스터 앤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도그빌>) 역시 섹스와 연기는 하는 동안은 무진장 즐거운데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기는 죽도록 민망하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정리한 바 있다. 하지만 벽이 높을수록 구경꾼의 발돋움은 더해가는 법. <씨네21>은 채널CGV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마련한 4부작 다큐멘터리 <채널CGV 대기획 영화의 힘>(제작 이노스토리) 중 배우의 연기를 조명한 <배우를 보았다> 편에 참여하여 현재 왕성히 활동하는 한국 배우들에게 영화 연기의 실제
영화 연기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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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에서 김보경은 1인2역을 한다. 아니, 말과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있는 성준의 여정에서 보면, 1인3역 혹은 1인4역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성준(유준상)이 ‘2년 전에’ 헤어진 연인 경진이고, 성준이 북촌의 어느 술집에서 만난 여사장 예전이고, 그 다음날이거나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날 처음 만난 예전이고, 성준이 북촌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매일 밤 문자를 보내는 경진이다. 같은 듯, 다른 듯 보이지만 극중 영호(김상중)의 대사는 그 여자들을 통칭하는 설명인 듯 보인다. “사연이 많아. 예쁜데, 행복하게 살지는 못한 거 같아. 남자 운이 없는 것 같더라고.” 촬영 당일, 홍상수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받은 김보경은 슬펐다. “너무 불쌍한 애 같아서 감독님께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연기를 하는 내 상태는 너무 좋은데, 얘는 너무 어두워 보이는 거다. 할 수만 있다면 경진이랑 예전이 둘 다 불러서 삶의 지침을 이야기해주고 싶더라. (웃음)”
영화에서 다양하게 출몰하는
“조화(造化)로운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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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에서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돌아온 전직배우 중원을 연기했다.
=감독님이 농담을 좀 심하게 하신 거지. (웃음) 심지어 촬영 전날 술 마시면서 이야기했던 게, 다음날 내 대사로 쓰여 있기도 했다. “여자는 극단을 짚어주면 다 믿게 돼 있어”라고 말하는 부분인데, 내가 돈을 좀 받아야 할 것 같더라. (웃음)
-그런데 베트남에서 하던 사업이 정말 망한 건가.
=일은 좀 남아 있다. 잘나갈 때는 기사가 나갔는데, 망한 건 기사가 안 나가서 모르는 거다. (웃음) 한때 루머도 많았다. 김의성이 베트남에서 50억원을 벌었다고, 돈을 주체 못할 지경이라고.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지.
-공식적인 작품 기록은 1999년 <이프>가 마지막이다. 베트남으로 갔던 이유가 뭐였나.
=내가 연기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 생명연장을 하다간, 결국 초라하거나 비참해질 수 있을 것 같더라. 평소 베트남에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큰
홍감독님, 이제는 인간문화재같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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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에서 빠져나온 남자가 담배를 문다. 그를 뒤쫓아 나온 여자가 웃으며 말한다. “내가 여기 나오는 데에 몇 가지 우연이 작용했을까요?” 사실 남자가 기대한 여자는 그녀가 아니었고, 그래서 다소의 실망과 약간의 헛웃음이 교차되는 순간이지만, 이때 여자가 짓는 웃음과 그녀의 말투는 이 남자에게 새로운 기대를 심어놓는 듯 보인다. 여전히 ‘애교’라는 두 글자가 선명한 송선미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속이 뻔히 보이지만, 거부하고 싶지 않은 순간. 남자의 얼굴이 환해지는 건 당연하다. “평소 내 모습이다. 애교스러우면서도 장난기 있는 그런 거. (웃음) 나는 잘 몰랐는데, 영화를 본 누군가가 말하기를 <북촌방향>의 나는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요부처럼 보이기도 했다더라. 내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송선미가 <북촌방향>을 선택한 이유는 역시 ‘해변’의 기억 때문이었다. 홍상수 감독과 <해변의 여인>을 만들면서
<북촌방향>의 가장 화창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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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은 2010년 12월10일부터 27일까지 7회차에 걸쳐 북촌 일대에서 만들어졌다. 여섯 번째 촬영과 마지막 촬영 사이 4, 5일의 휴지기가 있었다. 홍상수 감독이 들려준 거의 모든 대답의 서두였던 30여번의 “기억이 잘 안 나는데”는 생략했음을 일러둔다. <북촌방향>의 스포일러가 불가피하게 포함돼 있다.
-전작 <옥희의 영화>는 모든 여건이 열악한 상태에서 “이런 극한 상황에서 만들면 어떤 것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과 “나는 어떤 상태에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확인해보고 싶은 심정으로 시작된 걸로 기억한다. <북촌방향>의 시작은 어땠는가.
=<옥희의 영화>를 2009년 겨울에 찍은 뒤 영화제 다니고 개봉시키다보니 뭘 했는지 모른 채 시간이 갔다. 2010년이 가기 전에 새 영화를 찍어야지 생각했다. 실은 그 사이 전북 부안을 다녀왔다. 부안에서 찍을 이야기가 잘 떠오르지 않아 어딘가에 들어가 잠시 생각을 하고
“영화는 언어적인 속박을 벗어나 어딘가로 가보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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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의 꿈
나는 <북촌방향>의 시간의 체험록을 써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이 영화의 비밀을 밝히고자 한 것이 아니다. 작용은 무수한데 뜻은 없는 이 영화는 그래서 의미상으로는 밝힐 비밀이 없다. 그 표면들의 작용 자체가 비밀이어서, 느끼다보니 감정들이 비밀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의 초입에서 영화가 시간을 다룰 수 있다고 한 나의 표현을 지금에 와서는 기꺼이 바꾸려고 한다. 어떤 영화들은 시간을 다룬다. 많은 공상과학영화들이 시간을 다룬다(<소스 코드>). 얼핏 <북촌방향>과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은, 시간의 고장으로 한 남자의 하루가 끝없이 반복되는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할리우드영화도 시간을 다룬다. 시간을 다루는 건 문학도 할 수 있고 어쩌면 더 잘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영화들은 시간을 다루지 않고 시간을 체험케 한다. 언어로는 포착하기 힘든, 그 시간의 작용을 체험케 한다. “영화는 시간이 내게 하나의 지각처럼 주어지
…북촌의 꿈, <북촌방향>이라는 이 진귀한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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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의 활동을 말하지 않고 건너뛰긴 어려울 것 같다. 홍상수 영화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다양한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압축과 확장에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건 이미 밝혀진 것인데, <북촌방향>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의외로 단출하다. 그게 이 영화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의 특별한 점이다. <북촌방향>에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갖는 건 성준과 경진 두 인물뿐이다. 그런데 쓰임이 상반된다. 성준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철저하게 그의 내면 상황만을 기술한다. 경진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철저하게 그녀의 존재를 성준에게 상기시키는 데에만 쓰인다. 말하자면 성준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홀림을 당하는 존재의 심리적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고 경진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언제든 그를 홀리러 나타날 경진이라는 존재의 시간적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다. 경진이 성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김보경이 그걸 읽는다. 결정적으로 성준이 술
시간의 불투명함 상징하는 <북촌방향>의 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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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이 칸에서 상영됐을 때 홍상수 영화에 무한한 애정을 지닌 동세대의 명감독 클레어 드니는 파리에서 칸까지 오로지 이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 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영화제에 왔고 영화를 보고 새벽에 돌아가면서 “더없이 슬픈 영화다. 특히나 라스트신의 정서가 훌륭하다”고 찬탄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성일은 <북촌방향>을 처음 본 날 사석에서 “홍상수의 영화가 너무 맑아지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는 사악한 파토스가 있어서 좋다”고 평했다. 슬프거나 사악하거나 하는 건 그들 각자의 감상의 결과이자 형용사적 표현에 해당할 것이지만, 나는 그 감상과 표현이 이 영화의 기이한 시간 작용이 일으킨 반응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북촌방향>을 본 다음 한 가지 느낌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던 중이었는데, 심지어 이런 경험을 했다. 영화 속 보람은 언젠가 20분 동안 아는 영화인을 연달아 네 명이나 만난 것이 참 신기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교차하고, 겹치고, 되돌아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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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시작은 했는데 막상 <북촌방향>을 설명하려니 난감하기만 하다. 시간을 중심 화제로 놓고 이 영화의 서사를 추릴 때 실은 다음과 같이 너무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전직 영화감독 성준(유준상)은 어느 날 서울의 북촌에 도착하여 친한 형인 영호(김상중)를 만나고 과거의 여인이었던 경진(김보경)을 잠깐 방문하고 영호가 아끼는 후배 보람(송선미)과 성준의 첫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중원(김의성) 등과 어울려 한정식집과 술집을 오가고 경진과 놀랄 만큼 닮은(실은 김보경이 1인2역 하는) 술집 주인 예전에게 관심을 쏟게 되고 그녀와 키스도 하고 하룻밤을 지낸다. 이야기가 이걸로 끝인가. 실은 끝이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는 안될 것 같고 조금 다른 식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한글 제목은 공간적으로 ‘북촌방향’이고 영어 제목은 시간적으로 ‘The Day He Arrives’(그가 도착한 날)인 이 영화는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한눈에 조감되지 않는데, 특히나 시간이 어
시간을 흔들어대는 영화, <북촌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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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그들의 대구란 이런 것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 김훈의 말처럼 “리얼리스트”일 때 홍상수의 <하하하>의 이순신은 세상은 있는 그대로 보는 거냐는 한 남자의 질문에 “아니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게 아니지. 그런 게 어디 있냐? 생각을 해봐”라고 말한다.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꽃은’과 ‘꽃이’ 사이에서 무엇이 더 옳은가 고뇌할 때 홍상수는 <하하하>에서 ‘꽃은’ 이건 ‘꽃이’이건 심지어는 꽃이라 불리건 그 무엇이라 불리건 “내가 사랑하는 거지요. 꽃을”이라고 한 여인이 자신의 느낌에 당당하도록 만든다. 김훈이 “시간은 인간쪽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인간은 시간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이 소외는 대책이 없는 소외다”라고 시간 속 인간사의 ‘속수무책’을 감별하여 말할 때 홍상수는 “<북촌방향>은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하루들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서로 상관없는 ‘첫날’ 같은 그런 하루들”이라며 시간
언어주의자 김훈과 영화주의자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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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영화 <북촌방향>은 참으로 이상하고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너무 쉽고 재미난 이야기인 것도 같다가 또 심오한 인생 이야기인 것도 같습니다. 주인공이 서울의 북촌에서 길을 잃고 시간도 잃고 맴맴 도는 영화입니다. 영화제 등을 통해서 이미 본 사람들의 반응은 참 다양합니다. 놀랍다, 슬프다, 웃기다, 각지각색입니다. <북촌방향>은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요. 뭐가 그리 재미있는 걸까요. 영화 속으로 들어가 북촌을 마음껏 거닐어봤습니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을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도 보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더 반가운 배우들, <북촌방향>의 주연배우들인 송선미, 김의성, 김보경도 만났습니다. 자, 이제 북촌으로 가볼까요. 슝슝!!
<북촌방향>의 홍상수와 대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창작자로부터 시작하고 싶다. 의외겠지만 그는 한국영화계의 어느 감독이 아니며 세계영화계의 그 누구도 아니고
홀리다, 홍상수에 홀리다, <북촌방향>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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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캐릭터를 만드는 모범답안 같은 것은 없다. 고로 이른바 ‘여전사’ 캐릭터에 대한 다음 의견들은 내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이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멋진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들어보고 판단하시라.
우선 ‘여전사’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내 생각에, 한국 언어문화에서 가장 위험한 점은 자기가 만들어낸 말의 함정에 스스로가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들은 너무 쉽고, 거기 일단 걸리면 그 말이 대표하는 막연한 큰 그림밖에 보지 못한다. ‘여전사’라는 단어부터가 그렇다. 우리나라 영화 저널리스트들이 ‘여전사’라고 부른다고 해서 엘렌 리플리와 뱀파이어 슬레이어 버피가 같은 종류의 캐릭터인가? 만약 이들을 하나로 묶어 대충 상을 하나 만들고 ‘나는 여전사 영화를 만들겠어!’라고 선언하면 뭐가 나올까? 훌륭한 여전사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여전사’라는 단어를 버리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캐릭터가 스
제발 남자들의 액션을 복제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