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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지면에서는 <씨네21>이 직접 만난 네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이들과의 만남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다.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은 올해 칸 경쟁부문에 초청된 다섯편의 프랑스영화 중 가장 선두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준다. 토드 헤인즈의 <캐롤>은 오랜만에 극영화로 돌아온 이 미국 거장의 화려한 귀환을 알리는 작품이다. 칸이 사랑하는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유스>는 프랑스영화 다음으로 올해의 경쟁부문에서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탈리아영화의 기수이자, 소렌티노의 두 번째 영어영화다. 캐나다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블레이드 러너>의 시퀄 연출을 앞둔 그의 확장된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올해의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중요한 위치를 선점했던 이들과의 만남을 전한다(아시아의 거장들과 신예의 인터뷰는 다음호에 게재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주자
독일이나 영국은 괜찮지만 미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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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디판> 자크 오디아르
“미하엘 하네케에게 감사하다. 그가 올해 영화를 만들지 않은 덕분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 대상 <사울의 아들> 라즐로 네메즈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다른 시각으로 홀로코스트 문제에 접근하고 싶었다. 우리 세대와 소통하는 게 중요했다.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얘기해줄 수 있는 생존자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상 <섭은낭> 허우샤오시엔
“당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는다면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영화들은 전세계에서 상영되어왔다. 상을 받거나 받지 않거나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이 <섭은낭>에 상을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돌을 던졌을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심사위원상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심사위원들은 영화에 대해 정확하고,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기 있는 심사위원들 모두 존경스럽다. 상을 받게 돼 영광이
올해 영화를 만들지 않은 미하엘 하네케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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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은 끝났지만 칸에서 화제를 모은 말들은 계속 회자되고 있다. 제68회 칸국제영화제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말들을 모아봤다.
➊ “집행위원장으로서 겸손과 야심을 동시에 가지고 싶다.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겸손은 질 자코브가 이루어낸 업적을 잘 이어받아 운영하는 것이다. 내 야심은 칸영화제가 끝났을 때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게 만드는 것이다.” - 영화제 개막 전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피에르 레스퀴르 집행위원장.
➋ “누구에게나 박수를 크게 치는 것만큼 야유를 보낼 권리도 있다.” - 출연작 <씨 오브 트리스>가 혹평을 받은 뒤 매튜 매커너헤이(사진 왼쪽)가 한 말.
➌ “나는 멕시코인이다. 나는 여자다. 나는 레바논계다. 그리고 48살이다. 나는 이 업계에서 가장 힘이 약하다. 혹시 내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나는 항상 주류 시스템 밖에서 활동하고
박수칠 권리, 야유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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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회 칸국제영화제가 지난 5월24일 막을 내렸다. 이번 영화제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시상식이 열리는 폐막 당일에 마련되어 있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디판>의 자크 오디아르가 모두를 놀라게 했고,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어왔던 <캐롤>의 토드 헤인즈는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올해 칸을 찾은 수많은 영화인들의 희비가 엇갈렸던, 그 드라마틱했던 순간을 전한다. 시상식에 대한 단상과 더불어 올해 영화제에 대한 전반적인 면모를 살펴보았고, 후반부에 상영된 한국영화 <마돈나>에 대한 현지 반응도 함께 실었다. 영화제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던 다양한 영화인들의 코멘트는 올해 영화제의 흐름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씨네21>이 직접 만난 경쟁부문 감독 네명과의 만남에도 주목해주시라. 이번 지면에서는 유럽•영미권의 거장과 중견감독들과의 인터뷰를 엄선해서 실었다. 미리 예고하자면, 올해의 칸에 대한 리포트는
프랑스영화에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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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셀마>(2014)는 마틴 루터 킹이 흑인 투표권 차별 금지를 위해 셀마에서부터 몽고메리까지 행진한 내용을 밀착하여 담아낸 전기영화다. 유명 감독도 스타 배우도 없는 저예산영화였던 <셀마>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 사태로 불붙은 인권 시위와 맞물려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로튼토마토 지수 99%를 기록하며 개봉 3주차 만에 북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고, 2015년 오스카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영화의 호소력은 무엇일까. 허지웅 평론가는 “사실 별로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드라마틱한 서사나 오락적인 쾌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른 의미의 즐거움을 가진 영화가 아닐까 싶다”며 GV의 포문을 열었다. “<셀마>는 마틴 루터 킹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은 마틴 루터 킹의 신격화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시도했다는 것. 그리고 종교적 지도자라기보다는 정치적 지도
소재의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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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의 <호수의 이방인>은 제6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 영화는 성기 노출 등으로 인해 제한상영가 판정이 예상되는 바 수입자 레인보우 팩토리가 제도가 개선될 때까지 개봉을 유예한 상태다. GV 진행을 맡은 김혜리 기자는 “호숫가라는 제한된 장소에서 인공조명, 폴리사운드, 삽입된 음악도 전혀 없이 만들어진, 에센스만 남아 있는 영화”라고 인상을 밝히며 토크를 시작했다. 영화는 게이들의 만남의 장소인 호수를 찾은 프랑크(피에르 데 라돈샴)가 매력적인 남자 미셸(크리스토프 파우)을 만나 매혹되지만 프랑크가 우연히 목격한 살인사건이 그들의 관계를 시험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먼저 김혜리 기자는 이 영화의 시공간에 대해 설명하면서 “건조하고 일조량이 풍부하면서 바람이 불어 촉각적 요소를 더하는 장소, 수평선이 가깝고 기슭이 반원으로 굽어 서로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친밀한 공간
사랑에 관한 영화의 새로운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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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경>은 2014년 베스트영화를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올라온 영화 중 하나다. 2001년 데뷔작 <자유>로 주목받은 리산드로 알론소는 7번째 영화인 <도원경>을 통해 기대의 신예에서 한 차원 도약했다. 워낙 소문이 무성했던 명작이라 당연히 국내 수입이 될 줄 알았지만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후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는 응당 극장에서 만날 필요가 있다는 일념 하에 <씨네21>이 발벗고 나섰고 수입사가 없어 직접 멕시코 제작사에서 수급한 끝에 두 차례 귀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GV를 맡은 김영진 평론가도 “극장에서 만나야 하는 영화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관람하는 걸 보니 동시적 연대감이 느껴져 힘이 난다”며 <씨네21>의 기획과 노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상영 후, “혹여 관람에 누가 될까 말로 설명하기 조심스러운 영화”라는 평으로 시작된 김영진 평론가의 해설은 겸양과는 반대로
매 장면이 한폭의 회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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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_어렵게 일정을 내주신 데 감사를 전합니다. 관객도 행사 전날부터 진을 치고 기다렸고요. 이경영씨는 현재 촬영 중이라 조금 늦을 것 같고 변요한씨부터 인사와 함께 촬영 중인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변요한_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드라마 <구여친클럽>을 찍고 있어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씨네 21>_즐기고 있는 게 맞나요? 여배우들에게 엄청난 시달림을 당하는 중인데.
변요한_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지금까지 어두운 작품을 많이 했는데 <구여친클럽>은 현장 분위기가 밝아서 좋아요.
<씨네 21>_체감하기에 드라마 현장은 어떤가요.
변요한_매체 자체가 빠른 시스템을 갖고 있으니까요. 거기서 당황하는 건 배우의 잘못인 것 같아요. 당황하게 되는 순간이 와도 당황하지 않은 척해야 돼요. (웃음)
<씨네 21>_그 와중에 <씨네21
지금까지 20년 지금부터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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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_<씨네21>은 20년간 한국영화계의 감독들과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엔‘나와 한국영화, 나와 <씨네21>’이라는 주제로 네분의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우선 <씨네21>과는어떤 인연들이 있으셨나요.
김지운_저는 <씨네21> 때문에 영화계에 들어오게 됐어요.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전에 낸 <조용한 가족>(1998)이 당선이 돼서 감독 데뷔를 했죠. 당시에는 하이브리드 장르여서 이상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씨네21>이 감독으로서 밥을 먹게 해준 장본인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인연이 각별한 감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씨네 21>_장준환 감독님은 직접 <씨네21>을 몇권 들고 오셨던데, 어떤 사연이 있는 호인가요.
장준환_제가 나왔던 호를 찾아봤어요.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2003)의 신하균씨가 표지로 나왔던 호
<씨네21>, 친구처럼 오래 곁에 있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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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_여기 계신 관객은 정말 계 탄 분들이네요. (웃음) 사람 나이로 따지면 스무살, 청춘이죠. 청춘이라는 말에 걸맞은 두 배우를 모셨습니다. 이젠 중후함까지 느껴지네요. (일동 웃음)
정우성_지난해가 저희 데뷔 20주년이었거든요. 스물하나인 거죠. <씨네21>과는 연년생이네요.
이정재_마인드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 말이에요. 저는 항상 청춘인 것 같습니다.
<씨네 21>_지난 20년을 돌아봤을 때 <씨네21>과의 추억이라고 할 만한 얘기가 있다면요.
정우성_작품 개봉 때마다 거의 표지를 장식했던 것 같아요. 우리의 영화인생과 <씨네21>의 영화인생이 궤를 같이하고 있네요. 창간기념호마다 우리를 빼놓고 이런 토크쇼도 여러 번 진행하신 것 같은데 참 섭섭하고요. (일동 웃음)
<씨네 21>_20주년 때까지 기다린 거죠. (웃음)
이정재_개인적으로도 <
“우리는 친해진 과정이 묵언수행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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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14일 창간한 <씨네21>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이 기념비적 숫자를 독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보았다. <씨네21>과 함께해온 영화인들과 만남을 주선하고, <씨네21>이 선택한 영화를 함께 본다면 의미가 있으리라 여겼다. 5월14일부터 4일간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씨네21>의 선택-스무살의 영화제’는 그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영화의 인상적인 순간을 꼽아보았다. 정우성과 이정재의 청년기를 한 작품에서 보는 호사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고, 김지운•장준환•임필성•류승완 감독을 필두로 개성 있는 감독들이 대거 출현하는 풍요로운 순간들이 있었다. 배우 이경영이 언제나 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고 ‘어린’ 배우 변요한이 독립영화계를 바탕으로 배우로서의 정신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씨네21>은 언제나 그 자리에 함께했고 영화인들을 응원해왔다. ‘
스무살의 영화제 현장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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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김성수_오래전 <무뢰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 초기부터 기획자 중 하나로 이름이 올라간 박찬욱 감독의 모호필름에서 만들어질 뻔했던 시절까지, 이 작품이 지나온 과정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로젝트다. (웃음)
오승욱_같은 작품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김성수 감독님에게는 박광수 감독님 연출부 출신이라는 진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좋아하는 영화 성향이 비슷하다. 싸이더스 전신 우노필름 시절에도 차승재 대표님이 “어쩌면 너희 둘은 좋아하는 영화도 똑같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냐”, 이런 얘기까지 하셨을 정도니까. (웃음)
김성수_굳이 나누자면 나와 이현승, 여균동 감독이 박광수 감독님 연출부 1세대이고 오승욱 감독은 허진호, 박흥식, 이창동과 같은 2세대다. 이른바 ‘박광수 아카데미’ 출신들이 잘 뭉치다 보니 함께한 작품이 없어도 만날 일도 많고 친했다. 특히 오승욱
내 영화의 주인공들이 행복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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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시간이 있다. 하루에 단 두번, 낮이 밤으로 밤이 낮으로 바뀌는 새벽과 해질녘. 그 시간을 일컬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저기 저 언덕 너머에 보이는 형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때다. 적과 동지를,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든 이 모호한 시간 안에서 모든 사물의 윤곽은 흐릿해지고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맥이 풀린다. 이때를 빌려 사물의 실체를, 저간의 사정을 명확히 포착해내려 한다면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는지 모른다. <무뢰한>은 이처럼 이상한 시간에 기대고 있는 영화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는 시종 여명인지 어둠인지 알 수 없는 푸르스름한 빛 사이를 부유한다. 이것은 단지 영화의 분위기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무뢰한>의 남녀주인공 정재곤(김남길)과 김혜경(전도연)은 이 애매하고 불명확한 시간 속에서 운신하는 사람들이다. 살인사건의 용의자 박준길(박성웅)을 쫓는 형사 정
이 남자,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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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한>은 ‘이해할 수 없는 남자’에 대한 질문의 영화다.”(<씨네21> 992호) 오승욱 감독의 말 그대로다. 감독이 <킬리만자로>(2000) 이후 무려 15년 만에 내놓은 신작 <무뢰한>(개봉 5월27일)은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형사 정재곤(김남길)을 따라간다. 영화는 정재곤이 용의자의 애인인 김혜경(전도연)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감정적인 변화에 주목한다. 오승욱 감독은 누아르 장르 안에서 주인공들의 폭발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대신 시종일관 인물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인물의 속내를 더 많이 보여주기보다는 조금 덜 드러냄으로써 얻게 되는 묘한 긴장감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다. 한국영화계에 오랜만에 찾아온 묵직하고 서늘한 누아르, 오승욱 감독표 하드보일드 멜로물에 대한 궁금증을 짧은 영화 리뷰로 풀어냈다. 이어서 <무뢰한>으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칸을 다녀온 오승욱 감독과, 역시
하드보일드 멜로 혹은 누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