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D가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을 확신하며 조르주 멜리에스를 낭만적으로 소환한 <휴고>(2011)와 몇몇 다큐멘터리를 제외하면, 공교롭게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한 마틴 스코시즈의 근작 세편은 모두 본질과 허상의 괴리가 파생하는 긴장을 담고 있다. <디파티드>(2006)는 갱단에 위장 잠입한 경찰이 정체성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누아르이고 <셔터 아일랜드>(2010)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내면 탐방기를 스릴러로 풀어낸 작품이다. 두 영화에서, 자아를 잃은 주인공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끝없는 투쟁을 벌인다. 부재와의 투쟁은 애초에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다. 허상을 적으로 상정한 캐릭터의 서사는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다. 스코시즈는 장르적 쾌감에 한껏 공을 들여 관객을 몰입시킨 후, 캐릭터의 패배를 고스란히 함께 맛보게 한다. 동일시를 통한 열패감의 전달은, 개인의 희생을 종용하는 사회 시스템에선 누구나 실패의 가능성을 짊어졌음을 깨닫게 한다.
무알코올맥주에 취한 시대를 위무하는 마틴 스코시즈의 해장술
-
응모작은 예년보다 많은 수의 112편이었으며, 예심을 거쳐 그중 11편이 본심에 올랐다. 본심은 변성찬, 송효정 영화평론가와 이영진 <씨네21> 편집장이 맡았다. 특정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주목할 만한 쏠림 현상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치열한 대결을 요하는 대상영화의 부재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베를린>까지의 1기 류승완 영화의 궤적과 한국영화 세대론을 살펴보는 작가론이 본심에 2편이 올라왔다는 점이다. 올해 특히 한국영화 감독론이 상대적으로 적었음을 감안할 때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마틴 스코시즈, 조너선 글레이저, 소노 시온, 제임스 그레이, 마이클 만에 대한 장르론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지금 왜’ 그 작가, 그 장르인가에 대한 치열한 내적 고민은 부족해 보였다.
심사평
최종적으로 박소미, 김명기, 송아름, 김수씨의 글에 주목했다. 각 글이 지닌 미덕이 단점을 능가할 정도로 압도적이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최우수상 선정에 주저하게 되
성실함과 명징함에서 발견한 가능성
-
베니스영화제의 수상 결과가 전해지자 한층 관심이 쏠린 영화들이 있다. 베니스 남녀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쥔 <헝그리 하츠>도 그중 하나였다. 뉴욕에서 만난 미국 남자와 이탈리아 여자는 결혼과 임신을 거치며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아이를 과잉보호하며 위험에 빠트리는 엄마 미나 역을 맡은 알바 로르와처의 섬뜩한 연기에 토론토에서도 박수가 쏟아졌다. 남편 주드 역의 애덤 드라이버는 <While We’re Young> <This Is Where I Leave You> 등 3편의 영화가 동시에 초청되며 토론토영화제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베니스가 끝난 지 3일 뒤인 9월9일 오후 <헝그리 하츠>의 사베리오 코스탄조 감독을 만나 채 식지 않은 수상의 흥분을 전해 들었다.
-엊그제 베니스에서의 수상 소식을 들었다. 토론토에는 언제 왔나.
=베니스영화제가 끝나자마자 출발해 7일 일요일에 도착했다. 토론토는 관객의 열기를 코앞에서 느낄 수 있다고 들었
사실 나를 위한 이야기다
-
리브 울만의 <미스 줄리>는 스웨덴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단막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도도하고 오만한 귀족 줄리의 이루지 못할 욕망을 그린 이 작품은 억압받는 여성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치열하게 파고든다. 배우로서는 잉마르 베르만의 페르소나로 활약했고 감독으로서는 여성의 이중적인 심리를 깊이 있게 그려낸 리브 울만이 이 연극을 원작으로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여배우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줄리 역에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캐릭터를 주로 소화해온 제시카 채스테인이 낙점된 것 역시 필연인 듯 보인다. 엄마와 딸처럼 닮은 두 여인의 숨겨놓은 마음을 들었다.
-토론토와 인연이 깊다고 하던데.
=나의 개인적이고 작은 이야기와 함께하는 도시다. 2차대전 때 공군 비행기를 수리하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토론토로 건너왔다. 항상 가죽점퍼를 입고 내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묻어 있다.
-<미스 줄리>는 이미 유명한 연극이지만 오래
서로를 바라보지만, 서로가 듣지 않는
-
-
예술은 자신을 알아봐주는 친구의 입을 통해 퍼져나간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와 사랑에 빠지며 시작된 지오반나 펄비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차세대 감독들에 대한 내리사랑으로 이어진다. 10년 동안 TIFF에서 한국영화의 동반자로 함께해온 지오반나 펄비에게 시티 투 시티-서울 기획에 얽힌 자세한 사정을 들었다.
-왜 이 시점에 다시 ‘서울’인가.
=2002년 TIFF는 ‘내셔널 시네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영화를 처음 주목했다. 박찬욱, 이창동 감독의 영화 등 10편의 영화가 초청되었는데 관객의 만족스런 반응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로부터 10년, 한국영화의 오늘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는 좋은 감독들이 많고 프로덕션의 수준도 높다.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안전한 선택이었다.
-8편의 영화는 어떻게 선정되었나.
=카메론 베일리와 함께 프로그램을 짜면서 각기 필요한 영화를 선정했다. 프로그래머로서 한국에서 얼마나 다양한 영화가 나오는지 보여주는
“우리 영화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주면 좋겠다”
-
9월10일 TIFF를 상징하는 벨 라이트박스에서 ‘시티 투 시티-서울’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카메론 베일리 집행위원장이 직접 진행을 맡은 이 행사에는 박정범, 부지영, 정주리, 김성훈 감독이 자리했다. 서울의 오늘은 물론 이창동, 홍상수를 이을 차세대 한국 영화감독들의 얼굴을 알린 자리였다. 여기에서 감독들이 전한 서울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짧게 전한다.
김성훈 서울은 수도로서 600년이 넘는 시간과 1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 도시다. 한국영화가 주로 자극적인 폭력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름답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화들도 많다. 그런 영화들도 많이 불러주면 좋겠다.
부지영 1990년대 한국영화는 다양했다. 2000년 이후 불안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영화 중 장르영화로는 조폭영화가, 아트하우스 경향의 영화로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의 영화 등이 성취를 이루며 폭력, 남성성 등의 인식이 굳어진 것 같다. 산업 전반에 남성
한국의 차세대 감독을 알리는 자리
-
“한국영화의 다음 세대가 어떤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시아영화 담당프로그래머 지오반나 펄비는 올해 시티 투 시티(city to city)의 주인공으로 서울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올해로 6번째인 시티 투 시티는 특정 도시를 선정해 해당 도시와 국가의 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토론토국제영화제(이하 TIFF)의 특별 프로그램이다. 텔아비브를 시작으로 이스탄불, 부에노스아이레스, 뭄바이, 아테네까지 이제껏 5개의 도시를 거쳐왔는데, 올해 대한민국 서울이 선정되어 8편의 한국영화들이 토론토 관객을 만났다. 5회까지의 시티 투 시티가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의 영화를 소개하는 발굴에 가까웠다면 올해는 상대적으로 익숙하지만 지속적인 노출이 부족한 한국영화에 대한 재발견의 의미가 더 크다. 임권택 같은 거장을 비롯해 박찬욱, 홍상수, 김지운, 봉준호 등 영화제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감독들이 다수지만 다음 세대의 출현과 인식은 정체되고 있다는 게 중론
한국을 직접 방문해 고른 작품들
-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이하 TIFF)는 아시아영화에 특별히 신경 쓰는 모양새다. 비단 ‘서울’ 편을 주제로 시티 투 시티(도시 기행) 섹션 소개 뿐만 아니라 ‘아시아필름서밋’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산업 전반에서의 교류를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 2008년부터 TIFF의 예술총감독을 맡으며 영화제 전반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카메론 베일리를 만나 TIFF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올해 TIFF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가.
=긍정적이다. 관객 반응은 늘 좋았지만 올해는 특별하다. 토론토는 관객을 위한 영화제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고 화제작부터 다큐멘터리, 아트하우스, 어려운 실험영화까지도 감싼다. 올해는 <이미테이션 게임> 같은 화제작은 물론 디스커버리의 신진감독들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들려와 좋았다. 어떤 취향의 관객이 찾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꼭 찾을 수 있는 영화제로 단단하게 다져지는 느낌이다.
-TIFF의 특징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관객을
북미 시장 진출의 확실한 확실한 입구
-
제39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시티 투 시티-서울’을 비롯한 각종 섹션에서 총 14편의 한국영화가 소개된,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해였다. 해외에서 본 한국영화의 현주소와 더불어 ‘북미의 칸’으로 불리며 각광받고 있는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미스 줄리>로 돌아온 리브 울만 감독과 베니스국제영화제 남녀주연상을 석권한 <헝그리 하츠>의 사베리오 코스탄조 감독의 인터뷰도 더했다.
로저 에버트는 토론토국제영화제(이하 TIFF)를 사랑했다. 2006년 암치료 때문에 한해 불참한 것이 화제가 될 정도로 영화제의 단골손님이었던 그는 토론토가 칸영화제보다 더 유익하고 중요한 영화제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최근 몇년 사이 급격히 성장한 TIFF를 보며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에 TIFF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로저 에버트의 주장이 그저 팬심에서 나온 외침만은 아니란 걸 실감한다. TIFF는 북미 시장의 실질적인 반응으로
관객이 왕이다!
-
<윈터 슬립> Winter Sleep
누리 빌게 세일란 / 터키, 독일, 프랑스 / 2014년 / 196분 / 월드 시네마 / 작가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 제한된 공간, 소수의 등장인물을 기반으로 하는 이 영화는 터키 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의 캐릭터 스터디라고도 부를 만하다. 기나긴 겨울,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남자 아이딘이 주인공이다. 아름답고 젊은 아내와 함께 살며, 지역의 유지이기도 한 그는 얼핏 보기엔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개인적인 성취감을 위해 여가 시간에 지역 신문에 쓸 칼럼과 터키 극장에 대한 역사서의 집필을 구상하던 아이딘의 평화로운 일상은 그의 자동차에 돌을 던진 한 소년의 출현으로 흔들리게 된다.
타인에게는 엄격하나 정작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부르주아 어른과, 그런 그에게 부모가 빚독촉을 받는다는 이유로 자동차에 돌을 던져 그를 위험에 빠뜨린 소년. 우리는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줘야 할
당신이 올가을 부산을 찾아야 할 30가지 이유(4)
-
<보이후드> Boyhood
리처드 링클레이터 / 미국 / 2014년 / 166분 / 월드 시네마 / 성장드라마
<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3), <비포 미드나잇>(2013) 연작을 통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같은 배우(에단 호크, 줄리 델피)를 집요하게 탐구해왔다. 그의 신작 <보이후드> 역시 배우들을 오랫동안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 간격을 두고 차례로 찍은 앞의 연작과 달리 <보이후드>는 주인공 메이슨(엘라 콜트레인)과 그의 가족 등 주요 등장인물을 12년 동안 꾸준히 담아온 ‘진짜’ 성장담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이 영화는 42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시간 나는 대로 배우와 스탭들이 만나 꾸준히 찍은 대서사시다.
메이슨은 아빠(에단 호크)와 이혼한 엄마(패트리샤 아퀘트), 누나(로렐라이 링클레이터)와 함께 사는 어린 소년이다. 일주일마다 자신을 돌보기
당신이 올가을 부산을 찾아야 할 30가지 이유(3)
-
<도원경> Jauja
리산드로 알론소 / 아르헨티나, 덴마크, 멕시코, 미국 / 2014년 / 108분 / 월드 시네마 / 드라마
1882년의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원주민들만이 살고 있는 이 거대하고 황량한 미지의 땅에 덴마크 점령군들이 들어와 있다. 장교 군너 딘센은 열다섯살 된 딸을 데리고 막사에서 생활한다. 그녀가 이곳의 유일한 여성이다. 비극은 딸이 젊은 장교와 사랑에 빠져 도망가면서 시작된다. 딸을 잃은 아버지 군너는 병영을 빠져나와 초원과 사막과 황야를 헤매며 딸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어느 날 그는 딸과 함께 도망친 젊은 장교를 발견하지만 그는 이미 원주민에게 당해 죽어가고 있고 딸은 온데간데없다. 군너는 말까지 원주민에게 빼앗겨 걷고 또 걸으며 다시 딸을 찾는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던 그 앞에 털 빠진 개 한 마리가 나타나고 개가 인도하는 곳으로 이끌려간 군너가 중년의 한 여인을 만나게 될 때 <도원경>의 영화적 경이는 정점에 다다른다. 아르헨
당신이 올가을 부산을 찾아야 할 30가지 이유(2)
-
영화의 축제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2일부터 11일까지 열린다. 축제에 가서는 후회 없이 즐겨야 하는 법. 그렇다면 영화의 축제에서 후회 없이 즐기는 방법은 뭘까. 말하나 마나 잘 보는 거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들을 보아야 잘 보는 것인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올해도 <씨네21>이 각 부문 주요작들을 뽑아 부산영화제 Must List 30을 작성했다. 칸, 베니스, 베를린, 로카르노 주요 영화제의 유명 수상작들에서부터 <씨네21>의 목록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단과 편견의 강추작까지 혹은 울리고 웃기는 대중 극영화에서부터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다큐멘터리와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실험적 미학의 영상 에세이까지. 자, 한편씩 차례차례 기억해두시라. 여기 모인 30개의 목록이 바로 올해 부산을 찾는 당신에게 권하는 우리의 추천서다.
<씨네21> 기자들의 Biff 위시리스트
김성훈
<단신남녀2> 두기봉
<황금시대> 허안화
<카
당신이 올가을 부산을 찾아야 할 30가지 이유(1)
-
이방인, 타자, 그림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재일조선인. 그들의 목소리에 전심으로 귀기울여온 이들이 있다.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의 생활을 3년간 기록한 <60만번의 트라이>의 박사유, 박돈사 감독이다. 영화의 개봉(9월18일)에 맞춰 두 감독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이 자리에는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를 3년간 촬영한 다큐멘터리 <우리학교>(2006)의 김명준 감독도 초대했다. 세 감독이 3시간여 동안 나눈 대화는 결국 하나로 정리됐다.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그들이 여기에 있다.’ 존재의 증명이자 인정의 투쟁이었다.
“한강에는 처음 왔습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들른 한강에서 ‘문학소년’ 같은 박돈사 감독이 휴대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서울을 남북으로 가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뒤따르던 박사유 감독이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2008년 유
함께 기록합시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