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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희 미술감독은 <아가씨>에 합류하기 전에 두편의 시대극을 작업했다. 하나는 6•25 전쟁부터 이산가족찾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순간을 재현했던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2014)이었고, 또 하나는 항일운동이 한창이었던 1930년대 상하이와 경성을 스크린에 펼쳐냈던 <암살>(감독 최동훈, 2015)이었다.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히 재현하고(<국제시장>), 장르영화의 스펙터클을 화려하게 전시했던(<암살>) 전작과 달리 <아가씨>는 류성희 미술감독에게 “재현을 넘어서 시대의 분위기를 공간에 내면화해야 했던 도전”이었다. 그녀를 만나 <아가씨>의 주요 공간 스틸을 함께 보면서 나눈 코멘터리를 전한다.
#1 양관 응접실
모든 등장인물(하인들까지)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적 공간. 유럽식 건축양식으로 건축된 양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왼쪽에 응접실이, 오른쪽에 식당이 보인다. 응접실에 있는 소파, 테이블,
[스페셜] 류성희 미술감독이 말하는 <아가씨> 포토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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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명랑하고 통쾌할 줄이야. 새침하면서도 가차 없는 이야기일 거라고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에로틱한 영화가 될 거라는 점은 확신했다. 그런데 <아가씨>의 서슴없는 관능성은 천연덕스런 순진함과 맨살을 맞대고 있다. 우는 아기를 술 한 모금으로 취하게 만들어 잠재우고, 막대사탕으로 키스의 기술을 마스터하는 극중 일화처럼 말이다. 산전수전 겪고 나름 교묘한 계획을 세웠던 주인공들은 모든 적신호를 무릅쓰고 사랑에 빠진다. 아니, 사랑이 그 잘난 프로젝트들을 거꾸러뜨린다(이 점은 준주연인 백작과 코우즈키 경우에도 얼마간 적용된다). 그런데 그 사랑이 훨씬 교묘한 책략까지 선사한다. 이보다 만사형통일 수가 있을까. 성인을 위한 환상적 동화라고 불러도 거리낄 것이 없다. <위험한 관계> <도브> 등 남녀 세 사람의 조합이 음모로 출발해 진심에 부딪히는 이야기는 많은 영화에 쓰였다. 위의 영화들이 반성적 파국으로 귀결된다면 <아가씨>는 사랑의 혁혁한
[스페셜] <아가씨> 본격 스포일러하는 인터뷰 - 박찬욱 감독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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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꽃이 제 색깔을 선택할 수 없듯이, 우리는 지금의 자신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어. 이것을 깨달을 때만 자유로워질 수 있고, 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자유로워진다는 거지.”
박찬욱 감독의 전작 <스토커>(2013)에서, 인디아(미아 바시코프스카)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믿었던 소녀는 자신이 아빠의 벨트와 엄마의 블라우스, 삼촌의 구두를 물려받은 존재라는 점, 그리고 자신에게 불온한 광기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포기하는 순간 현실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박찬욱 감독의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의 성장과 도약은 종종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복수에는 성공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친절한 금자씨>의 이금자(이영애
[스페셜] 박찬욱 감독의 ‘소녀 3부작’ 그 마지막 장 <아가씨>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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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뒤 읽어주세요
무려 7년 만이다. 박찬욱 감독의 한국 장편 상업영화 신작을 극장가에서 만난다는 것 말이다. 2009년 오랜 숙원이었던 영화 <박쥐>를 세상에 내놓은 뒤, 박찬욱 감독은 할리우드로 떠나 <스토커>(2013)를 만들었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2013)를 제작했다. ‘Parking Chance’라는 이름 아래 동생 박찬경 감독과 공동 연출한 단편영화 <파란만장>(2011)과 <청출어람>(2012), <고진감래>(2014),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협업한 패션필름 <어 로즈 리본>(A Rose Reborn) 또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6월1일 국내 개봉한 <아가씨>는 이처럼 수많은 경유지를 거쳐 박찬욱 감독이 마침내 당도한 오랜만의 한국영화다. 1930년대 한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귀족 아가씨(김민희)의 막대한 재산을
[스페셜] <아가씨>를 만나는 세 갈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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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군함도>
2016 <곡성>
2015 <기화>
2010 <황해>
2006 <예의 없는 것들>
2005 <종려나무숲>
연극
2016 <밥>
2016 <최고의 사랑> 연출
2013 <미운 남자>
2011 <화장>
2009 <윤이상 나비이마주>
2006 <삼류배우>
2015 <둘이 타는 외발 자전거>
1997 <대권무림>
1991 <사랑 청문회>
드라마
2014 <정도전>
2012 <빛과 그림자>
2001 <여인천하>
2001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황해>에서 구남(하정우)을 연변에서 쫓아다니던 험상궂은 빚쟁이를 기억하는가. 구남의 주머니를 뒤져 돈 몇푼을 털어내던 그가 <곡성>에선 종구(곽도원)의 친구, ‘양복’으로 등장한다.
[스페셜] 액션에는 자신 있다 - <곡성> 종구 친구 역의 백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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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곡성>
2012 <26년>
2012 <마이 라띠마>
2012 <하울링>
연극
2011 <대한국인 안중근>
2010 <별방>
2010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곡성>은 누가복음 24장 37~39절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이 구절을 극중 누구보다 마음속 깊이 품었을 인물은 부제인 양이삼일 것이다. 신앙은 있지만 아직은 어리숙하고 유약한 이 부제는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종구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을 목격하며 혼란에 빠져든다. 부제를 맡은 배우 김도윤은 “주위에선 계속해서 끔찍한 일을 당하는데, 내가 믿는 신은 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가”에서 그의 의심이 출발한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나홍진 감독의 작가적 입장을 대변하는 캐릭터라 할 법하다. 김도윤은 성직자들을 만나며 “믿음을 시험당하는 상황에선 어떻게
[스페셜] 희망과 절망을 보고, 한 차례 성장했다 - <곡성> 부제 역의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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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프리즌>
2016 <곡성>
2015 <검사외전>
2015 <히말라야>
2014 <강남 1970>
2014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4 <우는 남자>
2012 <광해, 왕이 된 남자>
2010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0 <심장이 뛴다>
2009 <핸드폰>
2008 <모던 보이>
2006 <사랑을 놓치다>
연극
2013 <난중일기에는 없다>
2012 <키사라기 미키짱> 외 다수
천벌을 받아 마땅한 가당찮은 말을 일컬어 ‘벼락 맞을 소리’라 한다. 그렇다면 <곡성>에서 덕기는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기에 진짜 벼락을 맞은 걸까. 마을 야산에서 고라니 따위를 잡아 건강원을 운영하는 중년의 사내 덕기. 그가 한 말이라면 이런 것이다. “내가 참말로 봤당께. 짐승맨치로 깨 벗고 기어댕기는
[스페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내 것을 찾아서 - <곡성> 덕기 역의 전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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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곡성>
2014 <나를 잊지 말아요>
1993 <오사카의 푸른 밤>
1991 <미지의 흰새>
1990 <캬바레부인>
1989 <25불의 인간>
1988 <합궁>
1986 <허튼 소리>
1983 <장미와 도박사>
1982 <평양박치기>
1982 <요권괴권>
1980 <월녀의 한>
1980 <매일 죽는 남자>
1979 <마지막 찻잔>
1978 <망명의 늪>
1976 <여수 407호(속)>
1976 <여수 407호>
1976 <맨발의 억순이>
1974 <사랑이 있는 곳에>
외 다수
왕년의 스타라는 무게를 벗고 새롭게 반짝이는 중이다. 허진은 1971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자마자 스타 반열에 올랐다. 관능적인 캐릭터로 70, 80년대 영화계를 주름잡다 어느 날 홀연히
[스페셜] 캐스팅 전날 그렇게 많은 네잎클로버를 뽑았지 - <곡성> 장모 역의 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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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보다 빛나는 신 스틸러가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곡성>에서는 신 스틸러를 도저히 고를 수 없다. 기억에 남는 조연들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장면이 결정적이라서 그렇다. 매 장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뿜어내기 바쁜 이 배우들은 어디서 이렇게 한꺼번에 나타난 걸까. <곡성>의 미로를 돌파하기 위해 4인의 조연배우들을 만났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인 만큼 각 조연배우들의 사연과 숨겨진 명장면들도 범상치 않다. 어쩌면 미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도 모를, 각 장면의 주인공들이다. 한동안 이 씻기지 않을 존재감을 좀더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스페셜] 곡성이라는 미로를 완성한 특급 주민들 - 허진, 전배수, 김도윤, 백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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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시리즈의 프리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찰스 자비에(프로페서 X)와 에릭 렌셔(매그니토)의 과거로 돌아가, 오랜 친구였던 두 사람이 신념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렸다. 아직 엑스맨 군단이 탄생하기 전의 이야기였다. 프리퀄 3부작의 최종장으로서 <엑스맨: 아포칼립스>는 이제 엑스맨의 탄생을 보여준다. 찰스 자비에와 에릭 렌셔의 과거사를 정리하는 작품으로서 <엑스맨: 아포칼립스>가 선택한 길에 대해 살펴봤다.
<엑스맨> 시리즈만큼 똑같은 주제를 고집스레 반복해온 영화도 드물 것이다.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녔지만 놀림이나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돌연변이들의 존재론적 고민, 특별한 소수자로서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엑스맨> 시리즈를 관통해온 주제다. 인간과 돌연변이의 공존을 희망하는 프로페서 X 진영과 인간에 대한 불신이
[스페셜] 프리퀄 3부작의 최종, <엑스맨: 아포칼립스>가 선택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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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이방인>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그의 신작 <스테잉 버티컬>은 주인공 레오(다미앵 보나르)가 늑대를 찾기 위해 프랑스 시골 마을로 여행을 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하고, 서사 전개가 도무지 예측하기 어려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영화는 늑대, 자살, 싱글맘(파파) 등 프랑스 사회문제를 꾹꾹 눌러담아 기묘하게 펼쳐내고 있다.
-호숫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펼쳐냈던 전작 <호수의 이방인>과 달리 이번 영화는 주인공 레오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전작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전작에서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프랑스 외곽의 여러 장소를 여행하게 하고 싶었다.
-영화감독 레오가 늑대를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소설, 전설, 미신을 통해 어제(과거)와 오늘(현재)을 연결하는 작업은
[칸 스페셜] “현실 문제를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었다” - <스테잉 버티컬> 알랭 기로디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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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부문 단골 손님인 다르덴 형제의 신작 <언노운 걸>이 화제작으로 많이 언급되지 않은 건 의아한 일이다. 이 영화는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진 인물을 그린다는 점에서 전작과 비슷한 궤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윤리적인 딜레마의 근원이 주인공이 실제로 만난 사람이거나 직접 겪은 사건에 존재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영화는 주인공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데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 때문에 곤경에 처한다. 주인공 제니(아델 하에넬)는 장래가 촉망받는 여의사다. 어느 날, 그는 병원 진료 시간이 끝난 뒤 인턴과 언쟁을 벌이던 중, 한 흑인 소녀가 누른 병원 초인종에 응답하지 않는다. 다음날, 그 흑인 소녀가 다른 병원으로 가다가 목숨을 잃었고, 경찰이 소녀의 신분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니는 죄책감을 느끼고, 소녀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소녀의 죽음과 관련한 단서를 하나씩 찾아나선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온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은 이 영화를 통해 “도덕적
[칸 스페셜]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 - <언노운 걸> 다르덴 형제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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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감독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는 아직 국제 무대에서 낯선 이름이다. 그는 평론가와 단편영화 감독,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해오다가 지난 2012년 45살에 장편영화 데뷔작 <네이보링 사운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변화하는 브라질 사회에서 압박에 시달리는 커뮤니티 속 사람들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공간을 조명한 이 영화는 단숨에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를 영미와 유럽 매체들이 가장 주목하는 브라질 감독으로 눈여겨보게 만들었다.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아쿠아리우스> 역시 공간과 사람에 대한 필류의 지속적인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창문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가의 오래된 아파트, 아쿠아리우스는 65살의 매력적인 여성 클라라(소니아 브라가)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는 ‘아카이브’다. 그 자리에 호화 콘도를 지으려 하는 건축회사는 클라라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위협한다. 올해 영화제 상영작 중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한 <아쿠아
[칸 스페셜] “줌은 나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도구다” - <아쿠아리우스>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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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의 신작 <패터슨>은 아마 올해의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상영된 영화 중에서 가장 고요한 영화일 것이다. 시 쓰는 버스 운전기사의 일주일을 조명하는 이 작품은 매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일상의 변화와 리듬감에 주목한다. 드라마틱한 사건도 반전도 없지만, 그 어떤 경쟁작보다 강력한 여진을 남기는 이 영화는 간결함과 디테일이 지닌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5월17일, 짐 자무시를 만나 <패터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마치 그의 전작 <커피와 담배> 속 주인공처럼 커피잔을 들고 나타난 짐 자무시는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유머로 기자들을 종종 웃게 만들었다.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이 장소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 흥미로웠다. 패터슨은 뉴욕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도시다. 멕시칸, 모슬렘, 흑인, 아시아인 등 정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뉴욕과 무척
[칸 스페셜]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에 대한 해독제가 되길” - <패터슨> 짐 자무시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