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문을 통해 짐작만 하고 있었다. 풍문이라면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 중국의 알리바바픽처스가 서울과 베이징을 수차례 오가며 한국 영화인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과, 짐작이라면 조만간 또 다른 한•중 합작 프로젝트가 나올 거라는 예상이었다. 알리바바픽처스는 중국 3대 IT 업체인 ‘BAT’(바이두(Baidu)의 앞 글자인 B, 알리바바(Alibaba)의 앞 글자인 A, 인터넷 기업 텐센트(Tencent)의 앞 글자인 T를 합친 용어로, 세 회사가 중국 IT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편집자) 중 중간의 A에 해당하는 알리바바 그룹의 자회사다. 마윈 회장이 이끄는 알리바바 그룹은 지난해 홍콩의 차이나비전 미디어를 인수해 영화 투자제작사 알리바바픽처스를 설립하고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바이두, 텐센트, 아이치이 같은 경쟁 회사에 비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사업 행보는 여느 회사 못지않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창립작으로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 <미
“세계인이 즐기는 블록버스터 만들겠다”
-
“파전병 하나에 2.5위안. 원가는 1위안으로, 하루에 800개가량 판다. 한달이면 2만6천위안.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 가맹비 5천위안씩 받고 베이징에 점포 100개만 내면 가맹비만으로 매월 50만위안을, 1년에 600만위안을 벌 수 있다. 전국에 점포 5천개를 내면 매년 3억위안씩 벌 수 있겠네.” <로스트 인 타일랜드>(감독 서쟁, 2012)에서 주인공 쉬랑(서쟁)이 파전병 요리사인 보보(왕바오창)에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보라고 권하는 장면이다. 한국에서 ‘먹방’ 열풍이 불고 있듯이 중국 외식 시장도 하루가 멀다 하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맛집으로 소문나면 조 단위의 매출은 기본이고, 식당 소개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높은 데다가 스타 셰프들의 인기는 웬만한 배우 저리 가라다. 최근 전세계를 벌벌 떨게 한 중국발 금융위기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앞의 문장에서 외식 시장을 중국 영화산업으로, 맛집을 중국영화로, 식당 소개 프로그램을 극장으로, 셰프를 중국 감독
성장의 가속페달은 멈추지 않는다
-
중국발 금융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 중국 영화산업은 몸집이 더욱 커졌다. “2017년이면 중국이 세계 최고의 영화시장이 될 것”이라는 중국 영화인들의 호언장담이 이제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와 중국 박스오피스 최대의 성수기인 국경절(지난 10월1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 동안)에 선보인 중국영화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관객의 숫자에 화답이라도 하듯 장르가 다양했고, 완성도도 높았다. 현재 중국 영화산업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한다.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의 메인 투자자로 참여한 알리바바픽처스의 장창 대표를 부산에서 따로 만났다. 올해 여름 성수기에 극장 개봉해 중국영화 박스오피스 기록을 전부 갈아치운 애니메이션 <몬스터 헌트>를 연출한 라맨 허 감독으로부터 서면으로 이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었던 지난 10월6일, 아시아필름마켓에서 열린 중국제작자포럼에서 중국 박스오피스 상위 순위를 기록한
一日千里 破竹之勢(일일천리 파죽지세)
-
지난 10월16일 저녁,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슈퍼플렉스G관 상영에 맞춰 극장을 찾은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박찬욱 감독은 요즘 신작 <아가씨>의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아 있을까.
-개봉 당시 연속 9주 박스오피스 1위를 하며 한국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롭게 썼다. 앞선 작품에서는 체감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살았구나 싶었다. (웃음) 세 번째 작품을 만든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그것까지 망하면 끝인 상황이었다. 걱정이 컸는데 결과 보고 안도가 되더라. 한창 젊을 때였고 기분이 좋아 배우들이랑 술을 많이 마셨다. 무대인사, 행사도 많아서 정말 매일 어울려서 술 마신 기억밖에 안 난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명필름의 제안을 받고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조영욱 음악감독이 친한 친구였는데, 그때 그는 명필름과 <접속>(1997)의 음악작업
“<공동경비구역 JSA>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 됐을 것”
-
-
박찬욱 감독은 배우 이영애가 “군복과 잘 안 어울리는 배우”라서 소피 역에 어울렸다고 말한다. 한국계 스위스인이며 군 정보단 소령인 소피는 사건수사를 위해 파견되어 판문점에 온다. 진실을 끌어내기 위해 내키지 않은 일을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데, 그 불편함이 ‘안 맞는 옷을 입혀놓은 것 같은’ 이영애의 모습과 어우러졌다.
“난 지금도 강호씨가 동생 같지 않고 형같이 느껴진다.” 박찬욱 감독은 배우 송강호가 천진한 장난기와 더불어 형처럼 기대고 싶은 믿음직스러움을 동시에 가진 배우라고 이야기한다.
“왜 이병헌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당시 영화계에서 흥행작이 없었던 이병헌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평범한 남자를 원했다. 난 이병헌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굉장한 미남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건강한 느낌이 좋았다.” 이병헌은 박찬욱 감독이 <삼인조> 때부터 함께하고 싶어 하던 배우였다. 이병헌이 신뢰한다는 PD에게 직접 찾아가기도 할 정도로 이병헌과의 작
대한민국이 잊지 못할 명작 15년 만에 돌아오다
-
장선
1988년생.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 졸업. 2007년 KBS 홈페이지 광고로 데뷔했고, 장편영화는 <소통과 거짓말>이 첫 작품이다. <독살미녀 윤정빈>(2013), <늦게핀 꽃>(2014), <민중의 적>(2014), <정의란 무엇인가>(2015)에서 이현정 연출가와 함께 일했고, 김예나 연출가와 <당신은 지금 고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2013), <도시 속 마피아>(2014), <작당모의>(2015),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2015) 등을 작업했다. 이승원 감독과는 연극 <사랑한다면 이들처럼>(2012)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은 잠시 숨 돌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주원
1976년생. 부산예술대학교 연극과 졸업 후 곧바로 <난타>(2001)로 데뷔. <경남창녕군길곡면>(2008∼2009)과 이승원 감독이 연출한 <
연기와 아르바이트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
2013년 인천다큐멘터리피칭포럼으로부터 출발한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하 인천다큐포트)는 2014년 국내 프로젝트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까지 영역을 확장한 후 올해 드디어 두 번째 행사를 치른다. 감히 단언컨대 첫걸음은 성공적이었다. 비교적 신생 프로젝트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 다변화하는 다큐멘터리 시장의 시대적 요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방향성과 함께 완숙하고 매끄러운 진행 덕분일 것이다. 이같은 순조로운 출발에는 인천다큐포트를 이끌어가고 있는 프로그래머들의 명확한 구상과 탄탄한 역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큐멘터리 관련 분야에 오랜 기간 몸담아온 강석필, 김원중, 조지훈 3인의 프로그래머는 “한국 다큐멘터리 시장의 변화와 시대의 요구를 감지하고 물꼬를 트기 위해 인천다큐포트를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비록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한국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역 중 하나다. 3인의 프로그래머에게 인천다큐포트의 방향과 한국 다큐멘터리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다큐멘터리의 창작자, 투자자, 방송, 극장 관계자가 서로를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
-
호스트네이션은 미군 주둔국을 가리키는 단어다. 한국에서 이 단어가 가지는 함의는 간단치 않다. 한반도의 역사,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정세는 물론이고, 여성과 이주, 노동에 대한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내포한다. 이고운 감독은 미군 주둔을 둘러싼 시스템의 최말단에 있는 기지촌 여성을 중심에 두고 시스템의 이면을 파헤치려 한다.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출발한 감독은 “해외 취재를 다니면서 ‘한국인이 제일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한국의 성매매 산업을 실감하면서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의문과 불쾌감이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기지촌 여성을 위한 여성단체 ‘두레방’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녀의 계획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기지촌 여성들과 인연을 맺고 그녀들을 찍었다. 그러다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 여성들이 돌연 촬영 거부를 선언하면서 찍었던 분량을 모두 날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의문과 불쾌감
-
혐한이 일본에서 극심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시점,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 집단이 등장했다. SNS를 통해 익명으로 모이기 시작해 혐한반대 맞불 시위를 벌인 ‘카운터’가 그들이다. 15년 전 유학을 떠난 후 줄곧 일본에서 지내온 이일하 감독은 카운터 안의 무력 제압부대 ‘오토코구미’, 그중에서도 야쿠자 출신인 대장 다카하시를 주인공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카운터의 활동은 혐한 반대 시위에 그치지 않고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 개정과 평화헌법 개정 시도에 맞서는 시민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엊그제도 시위에 참여하고 왔다는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할 예정이다.
-오래 일본에서 생활했다. 재일동포 학생들의 권투 동아리 활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보 권투부>도 완성했다.
=재일동포로 아는 사람도 많다. (웃음) 소수자 외국인으로서 일본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 10월22일 개봉하는 <울보 권투부>는 재일동포라는 존재의
“행동해서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사람들 이야기”
-
이강현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사람이다. <파산의 기술>(2006)에서는 현미경으로, <보라>(2010)에서는 망원경으로 시대의 초상을 그려냈다. 이번 작품의 제목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구체성을 띤다. 그가 추상화에서 인물화로 선회하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아직 보지 못한,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로 이야기를 나누기란 쉽지 않았다. 내쪽에선 좀더 명확한 좌표를 원했고, 감독은 좌표 너머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랬기에 인터뷰는 종종 길을 잃었다. 알 듯 말 듯한 대답 어딘가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작품이 반짝 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느 날 지도가 생각났다. 지도가 주는 여러 가지 느낌이 감정적인 울림을 줬다. 지도라는 것은 황당무계하다. 그 안에 의미가 꽉 차 있는데 텅 비어 있고, 현실의 가장 완벽한 모사물인데 실제 현실은 아니다. 장소를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지도 밖은 뭐가 있지?’ 생각하게
‘바깥’에 대한 감각을 찾는다
-
보컬 없는 밴드, 그럼에도 음악을 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찬 밴드가 있다. <울트라 젠틀맨>은 보컬의 탈퇴와 교체, 부재에도 굴하지 않고 음악을 해온 밴드 ‘더 모노톤즈’의 행적을 좇는다. 밴드의 리더이자 노브레인과 문샤이너스 출신 기타리스트 차승우는 한때 홍대 인디신의 부흥을 이끌었던 록스타다. 그가 마지막으로 결성한 더 모노톤즈는 보컬을 영입하려 한다. 들어오는 보컬들마다 족족 실력 미달, 성격 차이 등으로 나가버리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결성 후 3년째, 그들을 좇은 카메라는 보컬을 찾는 밴드만큼이나 집요하다. 집요함의 주인공은 갈재민 감독. 차승우의 팬이자 중학교 친구로서, 록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인물이다. “해외에는 록 뮤지션에 대한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기록 영상이 많은데 한국엔 거의 없더라. 차승우와 더 모노톤즈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찍기 시작했다.”
밴드의 결성과 방황을 함께한 그는 어느 시점에서 이 기록물이 영화가 될 수 있는 가능
“원하는 삶을 위해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
“그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한곳에 살다보면 사람의 눈빛이 장소의 깊이를 닮게 되는 것일까. 문창용 감독은 라다크에서 만난 노승과 동자승과의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풍광 속에서, 정작 감독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건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100여편의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있는 문창용 감독은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방문한 라다크에서 노승 우르갼과 다섯살의 동자승 앙뚜를 처음 만났다. “노승과 꼬마승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그들이 보여주는 관계가 너무 사랑스러웠다”는 그는 언젠가 꼭 다시 오겠다고 결심한다.
드라마틱한 일이 펼쳐진 건 그다음이었다. 라다크를 다시 찾았을 때 “앙뚜가 린포체(환생한 고승)로 지명되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뒤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린포체는 티베트 불교에서 거의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존재다. 문제는 하나의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한 마을에 두명의 린포체가 존재할 수
“나도 저런 스승이 있으면 좋겠다”
-
“다큐멘터리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나?” 박혁지 감독의 관심사는 언제나 한결같다. 보는 사람이 흥미롭게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 바로 재미다. 이를 위해서라면 기존의 틀은 언제든 허물 수 있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의 기획안은 마치 극영화 시나리오처럼 구성이 흥미롭다.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감독의 머릿속에는 명확한 그림이 이미 잡혀 있는 듯하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처럼 흔한 소재라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참신한 장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무당이 되어야 했던 고등학생 소녀의 사연을 다룰 때도 그는 흔한 운명론이나 어두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소녀가 왜 무당이 되었어야 했는가’가 아니라 ‘무당의 능력을 지닌 소녀는 어떤 오늘을 살고 있을까’가 질문의 출발이다.
-무당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적지 않은데, 이 소재에 끌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무녀 관련 다큐가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다. 그럼
‘그’ 꿈이 소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
부동산과 흥망성쇠를 함께한 한 가족의 일대기와 현재를 그려낸 <버블 패밀리>는 피칭작 중 유일한 사적 다큐멘터리다. 마민지 감독은 부동산 브로커인 아버지와 부동산 텔레마케터 어머니, 감독 본인의 삶에 주저 없이 카메라를 밀어넣었다. 집 안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카메라에 담겼고, 어색하게 브이를 그리던 부모님은 나중엔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잊기 시작했다. “촬영 중반까지는 관찰자 입장에서 촬영하려 했다. 그런데 점점 거리가 좁혀지면서 나 역시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게 되더라. 급기야 경계가 없어져 촬영 중에 싸우기도 했다. (웃음)” 그러나 <버블 패밀리>는 단순히 한 가족의 자화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잠실 토박이인 마민지 감독은 1970년대 섬이었던 잠실이 개발된 과정과 그에 따른 부동산 열풍, 중산층의 모습을 다면적으로 그려낸다. 가족의 자화상은 곧 중산층의 자화상이자 도시의 자화상이 됐다.
“공간과 지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그녀가 태어나고 자라온
중산층의 자화상, 도시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