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하지만 정의 내리기 어려운 페미니즘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페미니즘에 관한 이론서, 학자들의 에세이, 시대와 현상을 읽은 인문서적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초급부터 고급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밟고 나면 쉬운 듯 복잡한 페미니즘의 개념을 어렴풋하게나마 다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초급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은행나무 펴냄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우에노 치즈코가 현대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적 일면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책이다. 일본의 황실문화, 현대의 성산업, 여성들의 자기혐오, 대중문화 및 예술작품에 깃든 여성 혐오적 태도 등에 비판의 화살이 향해 있다.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 혐오를 “여성 멸시”로 풀이한다. ‘여성’이 아닌 ‘여성의 기호’에만 반응하는 남자들이 여성을 객체화했을 때 여성 멸시가 행해진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언어가 불편한 남성들을 향해서도 말을 건다. “만약 남성으로 분류되어 있는 자들이,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나라는 존재를
[스페셜] 역사부터 이론, 현실에의 적응까지, 곁에 두고 참고하기 좋은 이론서와 에세이
-
<비행공포>에 대한 <뉴스위크>의 서평에는 “‘여자라면 이런 상상은 못할 것’이라고 넘겨짚어온 남자들이여, 충격에 빠질 준비를 하라”고 되어 있다. 이런 오만한 시선이 수많은 재능 있는 여성 작가들과 그들의 저작을 시야 밖으로 밀어내온 것은 아닐까. 여기, 여성 작가들이 여성문제를 다룬 소설들을 소개한다. 가능한 한 최근 출간된 책 중에 골랐다.
<체체파리의 비법>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 아작 펴냄
저자에 대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필명인 동시에 이름의 주인이 여성임을 가리는 도구였다. 1942년 군에 입대, 공군 조종사와 군 정보원으로 일했던 앨리스 브래들리 셀던은 40대 남성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만들었다. 1977년 그는 여성임을 밝혔고, 사후 젠더문학에 대한 문학적 시야를 넓힌 SF와 판타지 소설에 수여하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기념상’이 제정되었다.
한 문장
“성적 욕망에 대한 응답으로, 또한 성적 욕망의 완
[스페셜] 소설로 공감하고 상상하는 페미니즘 명작 8권
-
페미니즘 운동의 싹을 틔운 이래 그 정신이 스며든 해외영화들을 꼽았다. 소개하고픈 영화는 셀 수 없지만 지면 관계상 70년대 이후 작품으로 한정했다. 조혜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추천작도 함께 전한다. 편견 없이 여성을 직시하는 힘 있는 영화들이 여기 있다.
<잔느 딜망> Jeanne Dielman
감독 샹탈 애커만 1975년
잔느 딜망은 매춘부이자 주부이며 어머니인 동시에 여성이다. 때론 주어진 사회적 위치와 책임, 역할 등이 그 사람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호명들이 없어도 잔느는 그저 잔느일 따름이다. <잔느 딜망>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여성의 노동, 여성이라는 굴레 속에 갇혀 감당해야만 하는 길고 지난한 시간을 묵묵히 보여준다. 201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잔느의 시간들을 드러내어 그 속의 모순을 관객이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극도의 권태와 압박 끝에 우리가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여성의 자화상을 마주
[스페셜] 7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페미니즘에 대한 화두를 던진 작품들
-
손희정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여/성이론> <문화과학> 편집위원이자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이다.
정은영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작가이다. 오랫동안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으며, 현대미술의 장에서 여성주의적 언어 생산을 언제나 고민하고 있다.
조혜영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현재 디지털 이미지와 페미니즘을 교차하는 이론에 대해 고민 중이다.
마치 지금 처음 접하는 개념인 양 갑자기 모두가 페미니즘을 말하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늘어난 관련 강좌나 매일 반복되는 언론의 기사들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 욕구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다들 페미니즘을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필요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왜 지금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를 되짚어보고자 3인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정은영 미술작가, 조혜영 서울국제여
[스페셜] ‘페미니즘 리부트’를 말하다 - 손희정 문화평론가, 정은영 미술작가, 조혜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
-
1년 전 이맘때였다. <씨네21>은 ‘페미니즘영화를 좋아하세요?’라는 페미니즘 특집 기사를 냈었다.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며 IS에 합류한 김군 사건,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칼럼니스트의 글, 개그맨의 여성 비하 발언으로 촉발된 여성 혐오 문제에 우리 사회는 긴급히 페미니즘을 소환했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지난 5월, 서울 강남역 대로변의 어느 주점 화장실에서 여성을 표적으로 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수사기관은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 범죄로 사건의 프레임을 가져갔다. 6명의 남성을 그냥 보낸 정황,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해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피의자의 진술은 조현병 진료 기록에 묻혔다. 시민들은 여성 혐오가 살인으로까지 번진 지금의 사회를 향해 즉각 목소리를 냈다. 강남역 10번 출구엔 추모의 포스트잇이 나붙었다. 인터넷 공간이 아닌 현실의 공간에 울려퍼진, 분노와 공포의 목소리가 담긴 애도와 추
[스페셜] <씨네21>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스터디 지금, 여기에 왜 양성평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지 배워봅시다
-
게이 클럽에서 벌어진 올랜도 참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이자 혐오/증오범죄로 기록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미국 전역에 동성결혼이 인정된 지 꼭 1년 만이다.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로 불리는 6월,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자긍심 행진이 이어지는 시기에 벌어진 참사다. 전세계 성소수자들이 애통함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참사 소식이 전해진 직후 추모 행사가 열렸다. 서울광장에 5만명이 모인 역대 최대 규모의 퀴어 퍼레이드의 흥분은 단 하루 만에 바다 건너 소식에 고통으로 내려앉았다. 동성혼과 같은 제도적 보장의 수준과 관계없이 성소수자 개인이 생명을 위협받는 현실은,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증오와, 공포와, 차별의 선동이 있는 한 어디에나 벌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LGBT에 대한 폭력
그렇다. 문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와, 공포와
[스페셜] 영화관 밖 LGBT의 현실
-
올해 우리를 ‘퀴어’하게 만들었거나 만들 여덟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몇몇 작품은 향후 극장가에서 만날 예정이다.
<위켄즈>
감독 이동하 / 2016년 /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관객상 수상작
<위켄즈>는 국내 유일의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의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을 앞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스무살의 신입 단원부터 중년이 된 창단 멤버까지 나이도 직업도 취향도 다양하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게이라는 것, 그리고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 이들에게 주말은 종로의 연습실에 모여 노래를 연습하고 한주의 밀린 수다를 떠는 즐거운 시간이다. 창단 10주년 공연을 며칠 앞둔 날,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결혼식이었던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러 간 지보이스는 혐오 세력이 뿌린 똥물을 뒤집어쓴다. 혐오를 면전에서 맞닥뜨린 이들은 왜 우리가 똥물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왜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한국에서
[스페셜] 개봉을 앞둔, 혹은 개봉을 촉구하는 퀴어영화들
-
내가 퀴어 퍼레이드를 준비 중인 서울광장 잔디밭 한가운데에 앉아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저주 소리를 들으며 이 원고를 쓰는 동안,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각색한 박찬욱의 <아가씨>는 300만 관객을 향해 질주 중이다. 동성애 혐오세력이 이 영화의 상영을 막으려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항의 시위도 없다.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대자본 퀴어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데도 여기에 대한 어떤 반발도 감지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것은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와 박찬욱의 힘인가? 아니면 여성 동성애자들은 이렇게 대놓고 깃발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존재인가?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2016년은 한국 퀴어영화 역사상 흥미로운 해가 될 것이다. 우선 <아가씨>의 흥행 성공이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여성동성애를 다룬 이현주 감독의 장편 <연애담>이 한국경쟁 대상을 받았으며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스페셜] 한국 퀴어영화 역사상 흥미로운 해가 될 2016년
-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난 6월15일 336만 관객을 돌파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 대한 팬덤이 어마어마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배우 김민희가 연기한 히데코와 김태리가 맡은 숙희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이다. 이들 커플의 애틋하고도 관능적인 사랑을 응원하는 팬들은 반복 관람은 물론이고 캐릭터의 주요 대사와 디테일한 행동에 대한 의미까지 수많은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누가 봐도 명백한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가, 한국 극장가에서, 이토록 뜨거운 지지를 받게 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징조는 있었다. 퀴어영화가 한국 극장가에서 새로운 대중적 성취를 이루기까지, 어떤 조짐들이 있었나. 또 <아가씨>의 바통을 이어받아 관객의 눈을 홀릴 ‘퀴어’한 영화로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한편 극장 밖에서 LGBT 이슈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나. 2016년의 무지갯빛 6월이 불러일으킨 몇 가지 질문들을 곱씹어보았다.
[스페셜] 2016년의 무지갯빛 6월이 불러일으킨 몇 가지 질문들
-
유일무이한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가씨>의 일본 프로덕션은 어찌 되었을까. ‘일본통’ 김종대 프로듀서는 <아가씨>에서 일본 프로덕션과 헌팅, 현지인 섭외 등 일본 관련 업무를 총괄했다. 용필름 임승용 대표와는 시오필름 시절부터 알던 사이라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김 프로듀서의 합류는 정해져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가씨>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이야기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1910년대 고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1910년대의 고베는 온갖 서양 문물이 오가던 곳이다. 주요 캐스팅을 일본인 배우로 할 예정이었고 프로덕션도 일본영화와 비슷했다. 규모가 큰 글로벌 프로젝트처럼 돼가고 있었다. 스탭 중 일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 부담이 컸는데 이야기가 지금처럼 방향을 틀면서 많이 편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책임은 막중했다. 매번 일본으로 헌팅을 가긴 어려웠기에 김 프로듀서는 현지에 임시 제작지원팀을 꾸려 방대한 자료 조사를
[스페셜] 일본 촬영분을 만들어낸 능력자 – 김종대
-
“저는 숨은 엑스트라고나 할까. 주역까지는 아닌 것 같다. (웃음)” 정원조 프로듀서는 인터뷰에 나서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아가씨>를 기획한 임승용 대표가 얘기를 하는 것이 맞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프로듀서로서 크레딧을 올리긴 했지만 윤석찬 프로듀서나 김종대 프로듀서에 비하면 그리 고생을 한 것도 아니기에 그들과 같은 자리를 나누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가 했던 업무 비중이 다른 프로듀서에 비해 크지 않았다는 이유는 동의할 수 없어 그를 꾀어내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원작자 세라 워터스와 박찬욱 감독 사이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임승용 대표의 말대로 그는 미국 변호사와 함께 판권 계약서를 세부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했다. <아가씨>의 판권 계약서에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대목이나 특정 지역을 무대로 고집하는 내용은 없었다. “매력적인 각색 방향이 있다면 원작자와의
[스페셜] 세라 워터스와 박찬욱 사이의 징검다리 – 정원조
-
<아가씨>의 유일한 여성 프로듀서이자 프로젝트의 가장 최초의 지점에 서 있던 사람이 용필름의 이유정 프로듀서다. 세라 워터스가 쓴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의 영화화 판권 구매를 주도한 사람이 그다. 2012년 8월, 용필름 설립 이전 임승용 대표는 바른손 영화사업부 본부장으로 있었고 이 프로듀서는 임 대표 밑에서 일하던 해외사업팀 직원이었다. 당시 마켓을 다니며 외화 수입 일을 하던 이 프로듀서는 2010년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포인트 블랭크>(2010)를 보고 임 대표에게 추천했고 임 대표는 이 프로듀서에게 그냥 수입이 아닌 한국어 리메이크 영화로 판권을 사게 했다. “그런 방식의 구매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평소보다 공격적으로 판권 구입을 추진했다. <핑거스미스>의 판권 구매도, 그때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맡기신 게 아닐까 혼자 짐작하고 있다. (웃음) 2010년 말부터 <핑거스미스> 구입 얘기가 나왔고 계약하기까진 일년쯤
[스페셜] 판권 계약과 관련된 신의 한수 – 이유정
-
<아가씨> 제작 진행의 모든 길은 윤석찬 프로듀서로 통한다. 그는 회차 운용 계획과 촬영 일정을 짜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촬영, 상영까지 제작의 전 공정을 진행한 살림꾼이다. 총 3부로 구성돼 방대한 촬영 분량, 시대극, 일본 로케이션, 변수가 많은 여름 날씨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는 제작 환경 속에서 68회차 만에 촬영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도 단지 <스토커>(2012)를 40회차 안에 찍었던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의 경험 덕분만은 아닐 것이다. 큰 키, 동그랗고 큰 눈, 조리 있는 말투 등 곱상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그는 “때로는 치열하게, 또 때로는 섬세하게 야전을 지휘”했다.
<아가씨>는 윤석찬 프로듀서의 입봉작이다. 윤석찬 프로듀서는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아가씨> 프로듀서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스스로 “맡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박쥐>(2009) 제작부로 박 감독님과 인연을 맺은 이
[스페셜] <아가씨>의 A2Z – 윤석찬
-
프로듀서가 많아야 두명인 보통 상업영화와 달리 <아가씨>에 참여한 프로듀서는 무려 4명이다. 프리 프로덕션부터 상영까지 영화의 전 공정을 이끌었던 윤석찬 프로듀서, 제작자 임승용 용필름 대표를 도와 원작 <핑거스미스>를 확보한 이유정 프로듀서, 판권 계약서를 세부적으로 검토하고, 박찬욱 감독과 원작자 세라 워터스 사이에서 의사소통을 담당했던 정원조 프로듀서, 일본 촬영을 담당했던 김종대 프로듀서가 그들이다. <아가씨>가 기획 단계부터 상영까지 큰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건 프로듀서 4인방의 숨은 노력 덕분이다.
[스페셜] <아가씨>에 참여한 프로듀서 4인방 윤석찬•이유정•정원조•김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