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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퀄리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그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 속 맨슨 패밀리의 일원으로 눈도장을 찍은 이후 <포시/버든>(2019), <조용한 희망>(2021)으로 두 차례 에미상에 지명됐고, <가여운 것들>(2023),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2024)까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그리고 퀄리는 <서브스턴스>의 공동 주연으로서 맹렬한 폭주로 가득한 영화에 굉장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서브스턴스>만큼이나 뜨거운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지난 8월, 작품의 스페셜 스크리닝을 위해 런던을 방문한 마거릿 퀄리와 나눈 화상 대화를 전한다.
- 수는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로부터 탄생한 존재고, 엘리자베스이면서 엘리자베스이길 거부하는 캐릭터다. 수를 연기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로부터 가져온 특성이 있나.
오히려 나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인터뷰] ‘악몽을 마주하다’, <서브스턴스> 배우 마거릿 퀄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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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서브스턴스>는 영화만큼 영화 바깥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랑과 영혼> 이후 34년 만에 최고의 글로벌 흥행작을 내놓은 배우 데미 무어, 첫 대형 배급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스트리밍 사이트 MUBI,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특수효과까지. <서브스턴스>를 둘러싼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정리해보았다.
빛나는 그 이름, 데미 무어
냉정히 말해 21세기의 데미 무어의 출연작 대부분은 졸작이었다. 또한 연기보다 타블로이드지에 오르내리는 가십으로 주목받았다. 무어는 매니저로부터 “우선 아무 말 안 할 테니 이 시나리오를 읽어보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서브스턴스>를 만났다. 모두 영화 속 엘리자베스는 ‘데미 무어의 커리어에 대한 은유’라고 평했고 노출 연기와 특수분장 등 60대에 접어든 배우가 감당해야 할 몫도 많았다. 무어는 엘리자베스가 마주하는 ‘업계의 거절’과 이에서 비롯한 ‘스스로에게 가하는
비극적이면서도 괴기하고 우아한, <서브스턴스>로 더 흥미롭게 만드는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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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여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한 방송국에 스타 에어로빅 강사로 출연하고 있다. 50번째 생일날, 그녀는 방송국 사장으로부터 50살이 되면 여자는 끝났다는 말을 듣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얼굴이 걸려 있던 도로 간판이 철거되는 광경에 한눈을 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자동차가 박살났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을 나온 그녀의 코트 주머니에는 수상한 쪽지가 들어 있고, 그것이 수(마거릿 퀄리)라는 젊은 몸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다. 증강된 신체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 엘리자베스는 대중매체가 규정하는 미의 기준에서 탈락되었다는 의미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에 상응하는 물리적인 충격이라는 죽음의 상징적인 절차를 이중으로 통과해야 한다. <서브스턴스>가 보디 호러로서 성립하는 방식은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사회적인 의식의 위협과 공포가 육체의 물질적인 훼손으로 치환된다는 규칙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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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의 우로보로스, <서브스턴스>가 여성의 자기혐오를 공포로 치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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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일찍이 피식자이던 여성이 포식자가 돼 직접 피 튀기는 복수를 단행하는 <리벤지>를 연출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그가 또 한번 문제작 <서브스턴스>를 들고 와 호평 속에서 박스오피스 흥행까지 쏠쏠히 챙기는 중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후 방문하는 영화제마다 다종다양한 충격을 선사하는 보디 호러 <서브스턴스>의 리뷰를 전한다. 알고 보면 더 재밌을 <서브스턴스>의 트리비아와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생명력으로 펄떡이는 배우 마거릿 퀄리와의 인터뷰도 함께 담았다. 당신도 이 영화와 ‘하나가 될’ 차례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보디 호러 영화 <서브스턴스> 기획이 계속됩니다.
[기획] 이 영화가 대단하다! 본 적 없는 괴이한 보디 공포, <서브스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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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한나는 불일치의 여자들을 주로 연기해왔다. <순수의 시대>에선 복수를 품은 채 무인에게 접근하는 기녀 가희를 맡아 이름을 알렸고 <붉은 단심>에선 가슴속에 큰 뜻을 숨긴 채 궁궐 안으로 걸어 들어간 조선의 여인 유정으로 분해 궁중 로맨스 마니아층의 마음을 흔들었다. <간 떨어지는 동거>의 혜선은 격차가 실로 컸다. 실제로는 747살의 구미호지만 22살 여대생이 되어 험난하고 달콤한 인간세계를 겪었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정유진 팀장과 <스타트업>의 원인재 대표에겐 이런 수식이 앞에 붙는다. 미모, 실력, 재력을 갖춰 완벽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 사랑이 없어서, 더 높은 자리를 원해서 늘 부족함을 느끼는 여자. 올해 주연작 드라마 <비밀은 없어>에서는 늘 오케이를 외치지만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은 예능 작가 온우주 역을 맡아 한 인물의 명암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10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
[기획] 강인하게 또박또박 나아가는, <대가족> 배우 강한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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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초겨울은 영화 보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기습적인 호우와 진눈깨비, 햇살, 우박으로 수시로 표정을 바꾸는 바깥에 있느니 극장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 동굴의 안식을 찾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이튿날부터 마음의 명령을 따라 충실히 영화를 보기로 작정했다. 2024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의 프로그래밍을 요약하면 호들갑을 떨 만한 발견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생동하는 기운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암스테르담에서는 4편의 한국 다큐멘터리영화가 프로그래밍되었다. 지난 1년간 국제 다큐멘터리 축제에서 성공적인 순회 커리어를 쌓은 작품들을 모은 ‘베스트 오브 페스트’ 섹션에 당당하게 포함된 2023년의 기린아 <애국소녀>(K-Family Affairs, 2023)를 제외하고, ‘루미너스’ 섹션에서 진정으로 빛난 <
‘움직이는 것들’에 관한 네편의 에세이, 2024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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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가 11월13일부터 24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다. 올해로 37회를 맞이하는 IDFA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핫독스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더불어 세계 다큐멘터리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영화제 중 하나다. 올해 IDFA에는 <네가 증오하는 우리의 진동> <애국소녀> <브라이트 퓨처> <에디 앨리스>까지 네편의 한국영화가 소개됐다. 다큐멘터리는 영상매체 중에 시대정신을 가장 예민하고 빠르게 반영하는 척도인 만큼 한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정국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2024년, 다큐멘터리의 문제의식은 초국가적으로 연결 중이다. 올해 IDFA를 방문한 장병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생동하는 한국 다큐멘터리들의 기운에 대한 긴 글을 보내왔다. 바야흐로 지구촌의 환상이 깨어지고 다시 다극주의가 등장 중인 지금,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은 ‘세계’라는 거창한 담론이
[기획] 2024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탐방기, 한국 다큐멘터리의 생동하는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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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이하 FLY2024)의 여러 프로그램 중 자막 현지화 및 더빙 전문회사 아이유노의 말레이시아 법인장 조앤 칸의 특강은 참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끌어냈다. 강의의 제목은 ‘미디어 현지화(로컬라이제이션)는 무엇인가?’. FLY2024에 참가한 영화학도들 모두 자국의 문화콘텐츠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국의 미디어 업계를 넘어 세계 영화시장에 진출하길 꿈꾼다는 점에서 자신의 작품을 수출국의 언어로 로컬라이징하는 여러 전략에 관심을 기울였다. 참가자들의 질문은 <씨네21> 독자들이 로컬라이제이션에 관해 가질 법한 의문과 맞닿아 있다. 특강 중 나온 인상적인 Q&A를 <씨네21>이 단독 지상중계한다.
Q. 로컬라이제이션은 원본 IP에 대한 저작권을 가진 주체가 특정 국가의 배급사에 콘텐츠 배급을 제안하는 과정인가.
A. 로컬라이제이션은 배급 이후의 과정이다. 플랫폼이 콘텐츠를 구매하면 배급 전 로컬라이제이션
다양한 언어로 콘텐츠를 즐기는 방법, FLY2024 특강 ‘미디어 현지화(로컬라이제이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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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를 거친 여섯명의 선배 영화인이 비엔티안으로 금의환향했다. FLY2024 참가자를 응원하고,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실질적 조언을 건네기 위해서다. 각국에서 전방위로 활약 중인 졸업생들이 느끼는 업계의 현실은 어떨까. 후배들을 만나기 전, 졸업생들은 라운드 테이블에 모여 출신 국가 영화계의 냉혹한 현실과 개선 방안을 함께 논의했다.
필리핀 졸업생 엘린 벤디술라(2012년 졸업), 지오 테렌스 곤잘베스(2018년 졸업)
“필리핀의 수많은 지역 영화제가 자신만의 영화를 선보이고 싶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플랫폼으로 기능하지만, 그 지원이 궁극적으로 영화인들에게 재정적 수익을 가져오지 못한다. 한국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 등 기관이 독립영화를 위해 200만달러 정도의 금액을 지원한다고 들었다. 필리핀 또한 같은 규모의 돈을 지원하지만 단위가 페소라 영화산업이 선진화된 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액수다. 임금체불과 열악한 근로환경 역시 필리핀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반
아늑한 인큐베이터 바깥의 현실은, FLY2024 졸업생 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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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이하 FLY2024)과 닷새 동안 함께했지만 사실 이들은 훨씬 오랜 시간 한팀을 이루어 협업했다. 21명의 교육생은 각자의 나라에서 화상 미팅을 통해 2개월간 온라인 프리프로덕션 과정을 거쳤고, 10월30일부터 11월13일까지 2주간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만나 프로덕션을 마쳤다. 영화제작은 물론 작품 시사 및 대담까지. FLY2024 참가자들이 밤을 지새며 영화에 몰두한 비엔티안에서의 영화로운 날들을 사진으로 정리해보았다.
A팀의 영화 중 한편인 <원스 아논 어 타임>은 집 밖을 나서기를 무서워하는 소년 아논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생애 처음으로 장을 보러 나가는 하루를 그린 단편영화다. 촬영을 마친 이들은 포스트프로덕션에 이르러 난관에 부딪혔다.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아논과 그를 뒤쫓는 낯선 남자의 존재가 끝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화다. 그런데 우리가 아논과 남자가 동시에 등장하는 풀숏을 찍지 않았다는 걸 포
비엔티안 영화 프로덕션 현장기, 사진으로 돌아보는 FLY2024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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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ASEAN-ROK Film Leaders Incubator: FLY2024, 이하 FLY2024)은 부산영상위원회와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AFCNet)가 주관하는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이다. 이 행사는 2012년 필리핀 다바오를 시작으로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아세안 10개국을 순회하며 코로나19 팬데믹 3년을 제외하고 매년 성황리에 개최됐다. 올해 한국과 아세안 10개국에서 국가별로 2명씩 선발된 FLY2024의 교육생 22명은 10월30일부터 11월13일까지, 총 2주간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에 머물며 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익혔다. 라오스를 끝으로 아세안 국가에서 개최를 마무리하는 FLY2024에 <씨네21>이 4박5일간 동행했다. 2025년 시즌 피날레를 앞두고 FLY2024가 겪은 주요한 변화 및 교육생들의 소감을 글과 사진으로 정리해 전한다. 또한 FLY2024에서만 들을 수 있는 흥미로운 세미나와 아세안 각국의
[기획] 미래의 아세안 영화 인재들, 날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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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촬영이 계획대로 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 계획 밖의 상황들이 때로는 감흥 넘치는 우연의 순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섯명의 촬영감독에게 각자의 현장에서 겪었던 그 감흥의 순간을 물었다.
<청설> 강민우 촬영감독
“영화의 시나리오상 수영장에서 촬영된 장면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배우가 물속에 옷을 입고 들어가는 장면도 찍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카메라가 배우와 함께 고스란히 그 장면 안에 머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직접 아크릴로 큰 박스를 만들고 그 안에 카메라를 넣은 후, 부력으로 물 위에 둥둥 뜬 박스를 손으로 들고 찍었다. 배우들과 같이 걷고 수영하면서. 테스트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배우들과 수영장에서 같이 논다는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찍었는데 잘 담긴 것 같다. 사전에 동선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찍은 장면도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있었지만, 카메라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태를 원했는데 잘 구현됐다.”
예상외의 한컷 - 촬영감독들이 뽑은 계획 밖의 좋은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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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촬영의 길로 들어선 이형빈 촬영감독은 어느새 경력 20년차의 촬영감독이 됐다. 열악한 2000년대 초반의 독립영화계부터,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그의 역량은 올해 좋은 성적을 낸 <시민덕희>란 결과물로 종합됐다. 많은 대화와 전화 장면 등 정적인 화면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한시도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기 위한 이형빈 촬영감독의 갖가지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 2시간가량의 영화는 끊이지 않는 동적인 리듬으로 완성됐다.
- 영화 촬영에 입문한 과정은.
원래는 영화 전공과 무관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관심이 있어 친구와 맨날 비디오만 엄청나게 빌려서 보다가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지원했다. 그런데 낙방했다. 바로 군대로 갔다. (웃음) 군대에 가서도 <씨네21>을 구독하면서 영화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했고, 전역 후에 부모님 몰래 복학을 하지 않고 등록금을 챙겨 한국독립영화협회에 찾
[인터뷰] ‘관객이 지루할 틈 없이’, <시민덕희> 이형빈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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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이하 영평상) 촬영상의 주인은 <세기말의 사랑>의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이다. 그는 다큐멘터리와 미디어아트의 영역까지 종횡무진하는 팔방미인이자 길 위에서 끝없는 배움을 찾는 여행자이며 심지어 여행 산문 두권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하다. 더 값진 경험을 위한 여행의 기술을 슬그머니 묻자 그는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구분 짓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질적인 영상 장르의 문법도, 여행자와 촬영감독의 삶도 그는 구획이 아닌 통섭의 관계로 인식한다. 세계를 갈라놓는 것만 같던 <세기말의 사랑>의 흑백과 컬러, 그 경계를 자신으로서 유유히 횡단하던 영미(이유영)의 모습처럼.
- <세기말의 사랑>으로 제44회 영평상 촬영상을 받았다.
평소 주변 영화인들에게 아쉬운 결과에 너무 슬퍼하지도, 그렇다고 수상에 너무 크게 기뻐하지도 말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 상을 받았을 때 침착하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웃음
[인터뷰] ‘총천연색이 난무하도록’, <세기말의 사랑>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