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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는 배우 이영애를 캐스팅하며 일찌감치 화제가 된 작품이다. <친절한 금자씨>(2005) 이후 13년 동안 영화를 찍지 않았으니, 어떤 이야기가 이영애의 마음을 움직였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찾아줘>는 실종된 자신의 아들과 똑같이 생긴 아이를 봤다는 제보를 받으면서 자식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엄마의 이야기다. 진부한 모성이 아닌 강인하고 특별한 모성을 그리려 했다는 김승우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종종 이영애의 미담으로 끝을 맺곤 했다.
-실종 아동과 부모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고 발전시켜나갔나.
=2008년에 처음 이야기를 썼고, 10년 동안 영화가 들어갈 듯하다 마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땐 실종 아동 사건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영화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도 조금 변했다.
[2019년 한국영화㉒] <나를 찾아줘> 김승우 감독 - 이영애 배우와 함께 ‘진짜’를 찾아가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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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찍고 영화 인생 끝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하는 거다.” <내부자들>(2015)과 <마약왕>(2018)에 이어 우민호 감독이 더 큰 현대사의 ‘고발’에 손을 댔다.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정권 18년간 ‘마피아와 다를 바 없는’ 행각으로 한국 중앙정보부(KCIA)가 벌인 정치공작과 그로 인한 비화와 비사를 기술한 김충식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첩보물. 최고 권력자 박통(이성민)을 저격한 김규평(이병헌)과 박용각(곽도원)을 중심으로 1970년대 공포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탐구한다. “현시대의 문제점, 그 뿌리는 1970년대 부모님 세대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크랭크인해 촬영 중반에 접어든 지금, 우민호 감독은 “고발 시리즈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마약왕>을 신나게 찍었다면, 이번엔 하루하루 버티고 의심하면서 찍고 있다.” 살얼음판 같은 현장의 한가운데 있는 우민
[2019년 한국영화㉑]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 권력의 속성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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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감독에 따르면 <증인>은 광화문에서 시작해 광화문에서 마무리되는 영화다. “시민들의 의견이 가장 활발하게 교류되는 장소”인 광화문이 그에게는 소통을 바라는 한국인의 갈증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소로 다가왔나 보다. 그의 신작 <증인>은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남녀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며 불가능해 보이던 소통을 이뤄내고자 하는 이야기다. 타인의 삶에 대해 알려 하지 않고, 깊이 개입하려 하지도 않는 최근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교집합이 없을 것만 같은 두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의 기적을 조명하는 <증인>은 <완득이>(2011), <우아한 거짓말>(2013), <오빠생각>(2015) 등의 작품에서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사려 깊은 필치로 그려온 이한 감독다운 선택이다.
-<증인>은 제5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2019년 한국영화⑳] <증인> 이한 감독 -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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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메가폰을 잡지 않았을 뿐 조철현 감독은 지난 30년 가까이 한국영화계의 성실한 파수꾼으로 이름을 새겼다. 한국영화배급주식회사, 오픈시네마, 씨네월드, 타이거픽쳐스, 영화사 두둥을 거치며 한국영화 제작과 외화 수입에 힘썼고, 그가 자막 번역한 외화의 수만 800편이 넘는다. 특히 기획, 제작, 각본에 두루 참여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사도>)을 살피면 역사극의 베테랑이라 할 만하다. 조철현 감독이 이번엔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세 배우와 함께 오랫동안 준비해온 훈민정음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를 둘러싸고 세종과 신미대사 그리고 소헌왕후의 우아하고도 첨예한 협업을 그려낼 작품이다. 촬영 중반을 훌쩍 넘긴, 지난해 12월 중순 조철현 감독을 만나 데뷔작의 면면에 대해 물었다.
-세종대왕이라는 익숙한 위인에게서 의외의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l
[2019년 한국영화⑲]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 - 갈등, 질투, 화해와 협업으로 완성되는 팽팽한 파트너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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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주에 이어 2019년 또 다른 10편의 한국영화 신작과 만난다. 올해 개봉을 목표로 연말 연초를 잊고 촬영장에서, 또 편집실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감독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간 구상하고 직접 촬영 현장에서 부대끼며 열과 성을 다했고, 혹은 다할 예정인 작품들에 대한 최초 공개인 만큼 그들 모두 흥분된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인터뷰와 함께 처음 공개되는 영화의 이미지, 시놉시스를 비롯해 미리 완성된 영화를 그려볼 수 있게끔 관전 포인트도 정리했다. 이로써 3주에 걸쳐 총 28편의 기대작을 모두 소개했다. 기대 감독들의 대거 귀환, 장르의 다변화와 함께 2019년 극장가도 여전히 뜨거울 것 같다.
[연속 특집3] 2019년 한국영화 신작 감독과의 대화 ⑲ ~ 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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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은 220만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영화, 특히 장편애니메이션 분야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이후 7년, 오성윤 감독의 차기작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길어진 시간만큼 한층 성숙하고 튼실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언더독>은 유기견들의 모험담이라는 독특한 오리지널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한국만의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그 길을 제시한다. 한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니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외적인 요소를 다 제외하고서도 이 작품은 확실히 잘 만든 장편 상업 애니메이션이라 할 만하다. 거기에 한국인이라면 좀더 깊고 넓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알차게 집어넣어 한층 풍성해졌을 따름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드디어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쓸 기회가 왔다.
개들은 먼저 죽으면 천국에서 주인을 기다린다고 한다. 다들 그 말을 듣고 위로받듯 가슴이 따뜻해진다고 했지만 나는 덜컥 겁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에 찾아온 단비 <언더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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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첫 장면에서 우리는 파도를 떠올린다. 바닥 청소를 하는 인물이 주기적으로 물을 뿌릴 때마다 화면 위쪽으로 물결이 되돌아가는 움직임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착시를 유도한 사운드는 철저히 디자인됐다. 잠시 후 카메라가 고개를 들면 배수구가 보이고, 그제야 우리는 그 파도가 인물의 행동과 중력이 만난 결과임을 깨닫는다. 사람의 움직임과 자연의 힘이 충돌하고 조응하며 만들어내는 차이와 반복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래비티>(2013)부터 보여준 운동의 본질이기도 하다. 더불어 4분34초의 이 숏에서 물에 비친 하늘은, 이곳이 벽은 있으나 지붕은 없는 안과 밖의 중간지대라는 점을 알린다. 한집에 살지만 가족은 아닌 경계인으로서 외부 계단을 이용하는 주인공 클레오(얄리트사 아파리시오)에게 계급이나 거대 시스템(항공기)은 중력만큼이나 거스를 수 없는 환경이다. 그 속에서 그저 살아내는 한 인물과 그녀가 처한 조건이 한 호흡에 담긴다.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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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현대건축을 좋아한다. 우리가 멕시코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과는 달리 멕시코에는 뛰어난 현대 건축가들이 존재한다. 나는 멕시코의 건축가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외모가, 내가 미국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멕시코 사람들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이 항상 궁금했다. 루이스 바라간, 후안 소르도 마달레노, 마리오 파니, 테오도로 곤살레스 데 레온 같은 잘 알려진 건축가들은 유럽계 백인들처럼 보였다.
인종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크게 백인, 백인과 원주민 혼혈, 원주민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밝은 피부색을 갖고 있을수록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쉽게 경제적 상층부로 올라갈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멕시코의 인종, 정치, 경제 분야의 역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건축가의 ‘외모’는, 어떤 직업은 부유한 계층에 속해야 하고, 이 직업이 발현되는 형식이란 부유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로마>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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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는 클레오(얄리트사 아파리시오)가 걷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녀는 걷고 또 걷는다. 걸레질을 할 때, 아이들을 깨울 때, 조명을 끌 때에도 클레오는 사뿐사뿐 걸으며 집안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녀가 잠시 바닥에 앉자 차를 내달라는 부탁이 떨어진다. 다시 몸을 일으켜서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이 스크린 위로 새겨진다. 그녀의 걸음은 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으며 제 속도를 유지한다. 걸음뿐만 아니다. 설거지를 하거나 걸레질을 할 때에도, 그녀의 움직임은 돌출이나 막힘없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어딘가 세상사에 초연한 느낌도 풍긴다.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에서 이런 움직임은 낯설지 않다. <그래비티>(2013)에서 라이언(샌드라 불럭)이 우주선 안을 유영할 때나 <위대한 유산>(1998)의 에스텔라(기네스 팰트로)가 화폭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보여주는 움직임들은 이상하게도 클레오와 겹쳐 보인다. 느리고 부드럽게 지속되는 초연한 움직임. 이것은 대개 너른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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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얄리트사 아파리시오)는 마당과 침실, 거실, 부엌을 반복적으로 드나들며 하루를 일로 채운다. 알폰소 쿠아론은 패닝과 트래킹 그리고 롱테이크의 화면 속에서 그런 클레오의 행동을 주시하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사소한 일상이 모인 그녀의 하루를, 아니 어쩌면 그녀의 삶(시간) 전체를 본다(또는 보아야 한다). 그녀의 행동에서 어떤 상징이나 은유를 발견하려 애쓰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알폰소 쿠아론에게 클레오의 일상은 또 다른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대상화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물만이 아니다. 알폰소 쿠아론은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 사물, 심지어 끊임없이 들려오는 여러 소음마저도 그 존재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려 한다. 즉 <로마>에서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는 그 어떤 큰 목적 아래 종속된 하위개념이 아니라 시청각적 이미지 각자의 존재성을 주장하고, 그때마다 <로마>는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한마디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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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다. 그녀의 상처와 나의 상처, 나아가 한 가정의 상처, 멕시코라는 나라의 상처 그리고 전 인류의 상처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가 클레오였다.” <로마>(2018)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바라보는 역사와 여성 그리고 개인적인 삶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안시환, 홍수정, 송형국 영화평론가와 윤웅원 건축가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로마>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았다.
비평으로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 세계 유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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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감독의 신작 <PMC: 더 벙커>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심리를 체험하게 하는 영화다. 전작 <더 테러 라이브>(2013)가 TV 방송국 상황실에 갇힌 앵커의 탈출기였다면 이번에는 벙커에 갇힌 용병의 탈출기다. 김병우 감독은 주인공의 서스펜스를 만들기 위해 상황에 따른 여러 제한을 설정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군사분계선 아래 위치한 남북한 비밀회담장, 그리고 복잡미묘한 국제정세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용병 에이햅(하정우)의 처지 등을 활용한다. 사실적인 총격 액션과 그것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의 박진감, 거기에 속도를 더하는 편집까지 영화를 이루는 연출의 모든 요소가 영화적 체험에 집중하기 때문에 막상 영화를 볼 때는 제작진의 노력을 제대로 체감하며 즐기기 어려웠을 터. 그래서 준비했다. <PMC: 더 벙커>를 만들기 위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한 김병서 촬영감독, 김병한 미술감독, 노남석 무술감독, 조성환 콘티작가가 직접 밝힌 제작 비하인드
<PMC: 더 벙커> 제작기- 벙커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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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원 감독은 2007년 장편 데뷔작 <도살자>를 통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물론이고 제46회 뉴욕영화제, 제41회 시체스국제영화제 등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개성 넘치는 공포영화로 주목받은 그가 10년 만에 또 한번 색다른 공포를 안긴다. 공포영화를 찍는 감독 지망생에게 벌어진 일을 다룬 영화 <암전>은 얼핏 김진원 감독의 자전적 체험이 반영된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공포의 ‘재미’를 살린 특색 있는 ‘장르영화’라는 목표를 놓치지 않는다.
-데뷔가 절박한 감독 지망생이 소재를 구하려고 소문 속의 공포영화를 찾아간다는 설정이다. 공포영화에 관한 공포영화라는 점이 독특하게 다가온다.
=소재를 찾다가 일본의 한 TV프로그램을 봤다. 어릴 때 재밌게 본 영화에 나온 곳을 찾아가는 컨셉이었는데 흥미로웠다. 저작권 문제로 마지막에 해당 영화의 영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도 재미있었다. ‘영화를 찾아간다’는 방식에 끌려 거기에 살을 붙여나갔다. 처음부터 의
[2019년 한국영화⑱] <암전> 김진원 감독 - 장르는 공포, 테마는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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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좀비영화가 아니라 가족 코미디 영화다.” 이민재 감독이 영화를 소개하며 강조한 건 ‘좀비’가 아니라 ‘가족’이다. <기묘한 가족>은 조용한 마을에 등장한 좀비때문에 벌어지는 예측 불허 소동극이다. 가족으로 엮인 개성 강한 캐릭터와 예상을 비껴가는 황당한 사건들이 영화에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충청북도 보은에서 두달간 합숙하며 촬영했는데, 촬영이 없는 날에도 다들 집에 돌아가지 않고 현장에 머물렀다.” 훈훈하고 끈끈했던 촬영장의 분위기까지 듣고 나니 <기묘한 가족>이 담아낼 가족의 모습과 유머가 더욱 기대된다. <기묘한 가족>은 이민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어떻게 좀비 코미디 영화를 구상하게 됐나.
=기본적으로 코미디영화를 좋아한다. 유쾌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010년 여름쯤 초고를 썼는데,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절에 느닷없이 영화적 상상을 해봤다. 전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2019년 한국영화⑰] <기묘한 가족> 이민재 감독 - 죽이기보다 살아남기를 중심으로 좀비 가족영화 만들기